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알랭 레몽 지음, 김화영 옮김 / 비채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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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적 소설이다. 쌍을 이루고 있는 두 편의 중편 소설을 한 권으로 묶어 내놓았다. 표제작인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과 그 후속작인 <한 젊은이가 지나갔다>, 이렇게 두 편이다. 전작이 가족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면 후속작은 그의 젊은 시절을 다루고 있다. 전작이 개론적인 부분이 있다면 후속작은 그 개론서의 한 부분을 좀더 세밀하게 다루고 있다. 전작에서 짐작했던 것과 전혀 다른 그의 성장과 삶이 들어 있다. 이 두 편에 녹아 있는 감정들은, 생각들은 간결한 문장과 함께 빠르게 읽히고 가슴 한 곳에 조용히 파고든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문장과 속도감이다.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은 이미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적이 있다. 작품 해설에서 역자가 그 당시 느낀 감정이 그대로 전해진다. 개인적으로 이 감정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지만 이 중편이 나에게 강한 인상을 준 것은 분명하다. 열 명의 자식을 두었고, 2차 대전 중에 운 좋게 살아남은 그 가족이 어떤 시련을 겪었고, 이사를 한 후 어떻게 살았는지 보여줄 때 한국의 대가족 모습이 살짝 겹쳐졌다. 자신이 살았던 트랑의 집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가족에 대한 추억과 사랑으로 채운 이 소설은 격렬함보다 잔잔한 감정의 여운을 전해준다. 집에 대한 회상 부분은 내가 한때 살았던 집에 대한 기억을 갑자기 떠올리게 만든다.

 

열 명의 자식을 뒀다고 부모가 사랑하는 것일까? 어떻게 보면 피임에 실패한 것일 것이다. 부모는 자식들을 열심히 키운다. 그런데 이 부부가 싸우는 순간이 계속 이어진다. 이 기억은 어린 아이에게 아주 나쁘게 각인된다.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그가 떠올린 추억 둘은 잊고 있던 감정을 되살리는 계기가 된다. 대가족이 모여 살면서 일어나는 사소한 모험과 일상이 간결하게 그려지고, 그의 삶도 빠르게 설명한다.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 누이의 죽음이 가져다 준 강한 충격이 잔잔했던 이야기에 진한 그리움과 아픔을 전해준다. 아버지가 죽었던 나이와 같은 나이가 된 화자는 산 사람들과 죽은 사람들 모두와 평화롭게 지내고 싶어 이 소설을 썼다.

 

<한 젊은이가 지나갔다>도 다른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이 중편은 전작의 성공과 오해와 아버지의 편지가 이야기를 만들었다. 그가 잘 몰랐던 아버지의 군복무 시절 이야기가 나오고, 한 소년이 청년으로 자라고 성인이 되는 과정에서 겪는 불안과 고뇌와 홀로서기를 다룬다. 어쩔 수 없는 환경 속에서 그가 선택한 것은 신부가 되는 것이지만 시대의 흐름과 종교의 교조화 등은 그로 하여금 고뇌하게 만든다. 알제리에 대한 부채의식이 군복무를 그곳에서 하게 만들지만 그의 삶을 뒤흔들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간 곳에서 배운 것들이 그의 내면을 뒤흔든다. 그리고 밥 딜런. 딜런에 대한 광적인 팬심은 적지 않은 분량 속에 풀려나온다. 재밌고 흥미로운 부분이다.

 

중편이란 분량 속에서 젊음은 역시 간결한 문장과 핵심을 파고드는 내용으로 빠르게 풀려나온다. 그가 기독교인이라고 했을 때 공감하는 것은 신학을 공부하고 믿었던 열정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시대 지식인들에게 일본 선불교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보았을 때 다시 한 번 놀란다. 하이쿠에 대한 예찬과 선불교와의 연관성은 낯설게 다가온다. 68혁명에 대한 수많은 성공을 들었지만 그 성공에 매몰되지 않고 그 후 현실을 더 이야기한다. 이 또한 낯설다. 읽으면서 가장 먼저 다가온 것은 열정이다. 신에 대한 열정, 사회 개혁에 대한 열정, 딜런에 대한 열정 등. 다시 집의 추억으로 돌아가고, 아버지를 추억한다. 삶은 멈춰있지 않고 전진한다.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이란 말처럼 헤어지지만 그 추억은 조용히 가슴 한 곳에 내려앉아 있다. 언젠가 더 차분하게 다시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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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 크로니클 셜록 시리즈
스티브 트라이브 엮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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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미니 시리즈 <셜록>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솔직히 말해 이 시리즈를 아직까지 시리즈 1만 보았다. 그 후 보려고 하다가 이런 저런 이유로 보지 못하고 있다. 이 책을 받았을 때도 시리즈 3까지 정주행한 후에 읽자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다가는 요즘 나의 일상과 어그러질 것 같아 조금씩 읽기 시작했다. 보통의 책 크기라면 들고 다니면서 단숨에 읽었을 텐데 크기와 무게가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물론 절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조금씩 읽다보니 어떤 날은 진도가 많이 나가고, 또 어떤 날들은 그냥 아무 것도 읽지 못하고 시간만 흘러갔다. 늘 보이는 곳에 펼쳐두었는데도 말이다.

 

크로니클이란 용어가 붙어있는 것처럼 셜록의 시작부터 시리즈 3까지 어떻게 이 시리즈가 만들어졌는지 보여준다. 주인공과 다른 등장인물의 캐스팅부터 원작을 어떻게 현대적으로 각색하고 새롭게 에피소드를 만들지 등의 모든 아이디어가 나온다. 여기에만 머물지 않고 의상과 특수효과 등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 등도 알려준다. 한 편의 드라마가 만들어지기 위해 어떤 단계를 거치고, 어떤 협업을 통하는지 잘 알려준다. 연대기란 말처럼 시리즈마다, 편집자의 의도에 따라 나누어져서 나타난다. 읽으면서 이미 본 드라마의 이미지를 수시로 떠올린 것은 당연한 일이다.

 

드라마를 보면서 특이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나왔는지 알려줄 때 그 단순함 속에 담긴 깊은 고민이 엿보였다. 대표적인 것이 문자 메시지다. 그리고 드라마를 보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 중 하나가 셜록이 내뱉는 많은 단어들인데 이 또한 설명이 나온다. 하나의 시리즈가 3편으로 제작되고, 그 시간이 1년이란 공백이 있는 것을 감안하면 시리즈 마지막 편과 다음 시리즈 시작을 이을 때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도 같이 엿보게 된다. 개인적으로 시리즈 1의 마지막 장면과 시리즈 2의 시작인 수영장에 그런 변화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단순히 세트장을 지은 것이 아니라 현존하는 건축물들을 이용했다는 부분에서 이 작업의 어려움을 느낀다.

 

하나의 아이디어가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와 만나 불꽃이 튈 때 그것이 곧바로 미니시리즈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시작을 하기 위해서는 시나리오도 써야 하고, 감독도 섭외하고, 가장 중요한 배우도 캐스팅해야 한다. 성공이 보장된 프로그램이 아니라면 예산도 그렇게 많지 않다. 방영일이 결정된 후에는 더 많은 일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시리즈 1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다음 시리즈에 대한 부담이 생겼고, 촬영 현장은 수많은 팬들이 지켜보는 곳으로 바뀌었다. 배우들도 당연히 몸값이 올라갔고, 더 바빠졌다. 이 때문에 생긴 문제도 조금씩 나오는데 시청자의 입장이 아닌 스탭으로 돌아가니 쉽지 않다. 이전에 이벤트 준비하는 것을 보고, 실제 현장에 갔을 때 그 차이가 얼마나 컸는지 보고 놀랐던 기억이 떠올랐다.

 

사실 이 드라마 이전에는 베네딕트 컴버배치를 전혀 몰랐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왓슨이 <호빗>의 주인공이란 것도 알아채지 못했다. 셜록의 가장 큰 적인 모리아티를 처음 드라마에서 보았을 때 뭔가 약하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의 반응은 다른 모양이다. 이 캐스팅에 대한 이야기와 이들이 입는 옷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는 또 다른 재미다. 제작자, 감독, 특수효과팀 등의 사람들이 이 시리즈에 대해 가지는 애정과 열정은 대단하다. 그것이 모여 하나의 멋진 시리즈로 탄생한 것이다. 그리고 각 장마다 원작과 드라마의 장면을 비교하고, 삭제된 장면을 보여주면서 내가 보지 못한 시리즈를 상상하게 만든다. 본 것은 음~ 솔직히 잘 기억나지 않는다.

 

셜록에 대한 영화가 적지 않게 나왔고, 드라마로도 이미 나왔었다. 하지만 이 시리즈는 현대적으로 각색했고, 수많은 아이디어들이 시대에 맞게 녹아 있다. 완벽하게 셜록이 현대에 부활한 것이다. 각본과 연출과 배우가 최상의 결합을 보여준 것이다. 이 결합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주연뿐만 아니라 비중있는 조연들의 이력도 같이 보여주고, 그들이 이 작품에 대해 가지는 감정 등을 알려주면서 시리즈3까지의 기록을 보여주었다. 많은 사진들이 있어 빠르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제작자와 연출자와 배우들의 이야기가 그 사이에 흘러나오고, 각 장면에 대한 해설이 나오고, 삭제 장면 등도 같이 보여주면서 잠깐씩 숨을 고를 수밖에 없었다. 아직 시리즈1밖에 보지 못해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고, 이 시리즈를 다 보고 나면 이 책을 다시 펼쳐 비교해볼 곳들이 곳곳에 있을 것이다. 이 드라마 때문에 셜록 홈즈 시리즈를 사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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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랩 : 학교에 갇힌 아이들
마이클 노스롭 지음, 김영욱 옮김, 클로이 그림 / 책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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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동북부 지방도시 타타와에 폭설이 내린다. 학교장은 오후 1시에 수업을 종료한다. 학생들의 귀가를 독촉한다. 하지만 어떤 학교나 이런 지시를 어기는 학생들이 있다. 이 소설의 화자인 스코티 윔스는 친구들인 제이슨과 피트와 함께 학교에 남는다. 제이슨의 아버지가 사륜구동 트럭을 타고 그들을 데리러 올 것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이렇게 세 명은 다른 네 명의 학생들과 함께 학교에 남는다. 선생님도 한 명 있다. 하지만 고슬 선생님은 도움을 요청하러 나갔다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때만 해도 이들은 이 사태를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남자 아이 다섯에 여학생 두 명이 남은 학교는 고요했다. 휴대폰의 신호가 터지지 않아 그들의 부모에게 연락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들은 그렇게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전기가 나갈 때까지는. 현대 문명의 편리함에 익숙한 이들에게 이 단전이 의미하는 바는 너무나도 낯선 현실이다. 전기가 나간다는 것은 학교를 따뜻하게 만들고, 빛을 넣어주고, 신선하게 보존하는 모든 것이 중단된다는 의미다. 그들은 문명에서 야생으로 떨어져 생존을 걱정해야 한다. 전기가 끊어졌을 때 그들이 보여준 반응은 너무나도 한심하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것이니 어쩔 수 없다고 하겠지만.

 

살기 위해 필요한 몇 가지가 있다. 음식과 불이 가장 우선이다. 하루가 지났을 때 그들은 배가 고픈 것을 알고 식당으로 가려고 한다. 그런데 제도권 교육의 영향 아래 있는 윔스가 조금 더 기다리자고 한다. 그 이유는 살아남은 다음 그들이 파괴한 것들로 인해 자신에게 피해가 올 것을 걱정했기 때문이다. 이 장면은 교육의 무서운 점을 보여준다. 생존보다 다음에 생길 일을 걱정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배고픔은 이들을 음식이 있는 식당으로 이끌고, 그곳에서 먹을 것을 찾아낸다. 며칠은 걱정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들은 아직 추위를 잘 못 느낀다. 추워졌을 때는 학교가 불타는 것을 걱정한다. 학교라는 공간은 태울 것이 상당히 많은 데도 말이다.

 

윔스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그가 좋아하는 여학생 크리스타에 대한 감정, 친구인 제이슨과 피트에 대한 민감한 반응, 문제아로 소문난 레스에 대한 두려움, 고스족으로 오해한 엘리야 등이 뒤섞이면서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재난으로 고립된 고등학생들의 생존은 생각만큼 그렇게 치열하지 않다.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에 적응하고, 더 많은 생존품을 학교 속에서 찾아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일곱 명의 아이들 사이에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오해하고 잘 몰랐던 사이가 조금 좁혀지지만 서로 속내를 솔직하게 드러낼 정도까지 나아가지는 않는다.

 

고립된 공간에서 같이 살다보면 자신들이 오해하고 있던 것이 해소되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레스다. 저자는 ‘레스와 문제가 있었던 아이는 없었다’고 말하고, 일일이 규칙을 정해 놓고 아이들을 통제하려고 드는 선생님들이 오히려 문제라고 말한다. 이 부분은 작가가 아이들을 어떻게 보는지 잘 드러내는 대목이다. 그리고 레스에 대한 두려움이 그 녀석의 소문과 외모 때문이라고 인정한다. 선입견이 사람의 심리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잘 보여준다. 어쩌면 이것은 이 소설의 유일한 갈등을 폭발시키는 원인이 된다. 단순히 선입견만 작용한 것은 아니지만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다.

 

외부의 공포는 사람들 심리에 아주 큰 영향력을 미친다. 멈추지 않는 눈은 학교 지붕을 무너트린다. 추위는 학교의 수도관을 얼게 하고, 밀폐된 공간은 불을 피우는데 하나의 장애요인이 된다. 이 각자의 심리를 깊이 파고드는 대신 화자의 내면과 관찰을 통해 이 상황을 차분하게 보여준다. 강렬하지도 아주 섬세하지도 않지만 그것만으로도 어려운 상황에 빠진 아이들의 내면을 보여주기는 충분하다. 그리고 외부의 도움을 받기 위해 밖으로 나간 윔스를 도운 것은 힘들게 훈련했던 근육의 힘이다. 포기할 수 없는 한 줄기 희망이다. 이 재난 속에서 학생들이 고립된 것은 학생들의 잘못도 있지만 마지막까지 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내지 못한 선생들의 책임이 크다. 번역자가 세월호 이야기를 끌고 온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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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미 2016-01-02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처음부터 왠지 세월호가 떠오르던데, 번역자도 언급을 했군요.. 세월호 이후 재난상황에 대한 트라우마가 작용하는것 같아요 .
 
악의 - 죽은 자의 일기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29
정해연 지음 / 황금가지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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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한국 스릴러다. 도입부에 사건의 범인을 그대로 드러내고, 범인과 형사의 대결로 이어간다. 그런데 그 범인이 한 도시의 시장 당선이 유력한 여당 후보다. 형사는 탁월한 실적을 올리고 있는 형사지만 관할경찰서의 팀장일 뿐이다. 그들의 이름은 강호성과 서동현이다. 이 둘의 대결은 시작부터 일방적이다. 책 속에도 나왔듯이 한국의 1%는 자신들의 힘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사용하는지 잘 안다. 권력 앞에 일개 형사는 무력하다. 물론 이것은 밖으로 드러난 것일 뿐이다. 정의감 넘치는 형사는 자신이 문 먹이를 쉽게 놓치지 않는다.

 

가상의 도시 영인 시. 호화로운 주상복합 아파트에서 한 여성이 떨어져 죽었다. 강호성의 아내인 주미란이다. 그녀가 떨어진 집으로 들어가니 한 노파가 목이 졸려 죽어있다. 강호성의 어머니 장옥란이다. 이 시체를 발견한 사람은 가사 도우미 서산댁이다. 강호성에게 전달된 문자 메시지를 보면 주미란이 치매로 고생하는 시어머니를 죽이고, 암으로 시한부인생을 사는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은 것처럼 보인다. 주변에 놓인 단서들이 너무 뻔하다. 지신우 경장도 이 현장의 모습에 선입견을 가진다. 이때 서동현 팀장은 냉철하게 현장을 바라본다. 선입견을 털어내려고 한다. 그리고 이 모든 사건의 중심에 있는 강호성이 등장한다.

 

앞부분에 이 사건의 진실을 알려준다. 주미란이 남편 강호성의 악행을 대민일보 박계류 기자에게 알리려다가 장옥란에게 후두부를 맞고 쓰러졌다. 이 상황을 알리려고 아들을 불렀는데 비정하고 잔혹한 아들은 어머니 장옥란을 죽인다. 이유는 장옥란의 치매 때문이다. 그리고 아직 죽지 않은 아내 주미란을 창밖으로 던진다. 두 사람 모두를 죽인 것이다. 자신이 살인자이다 보니 현장에 나타났을 때도 피해가족이 보여주는 일반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 부분을 날카롭게 파악하는 인물이 서동현이다. 너무 빤한 사건에 의혹의 눈길을 던지고, 그 이면을 파헤치려고 한다. 하지만 유력한 여당 실세가 이것을 그대로 둘 리가 없다. 경찰서장이 직접 불러 사건 종결을 지시한다.

 

권력을 가진 거대한 악은 법의 힘으로 심판하는 것이 쉽지 않다. 분명하고 정확한 증거자료가 있다면 여론의 힘으로 어떻게 해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없다면 권력은 그 힘을 사용하여 증거를 수집하는 것을 방해한다. 이 소설의 재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악의 축인 강호성과 그 악을 쫓는 형사 서동현. 약자는 당연히 서동현이다. 그 주변을 맴돌다 발견되면 바로 경찰서장에게 압력이 가해진다. 몰래 수사를 해야 한다. 여기에 강호성은 이 사건을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데 사용한다. 영인 시장 후보 사퇴를 내세우지만 지지자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다시 일어선 척 한다. 우리가 흔히 보던 그 정치쇼다. 그의 지지율이 올라갈수록 일개 형사의 힘은 무기력해진다.

 

형사들이 사건현장에서 가지고 온 단서는 거의 없다. 있다면 가계부 정도다. 유력한 정치인이자 거부인 남편을 둔 그녀가 가계부를 썼다는 것이 이상하다. 지신우가 이 가계부에서 이상한 것을 하나 발견한다. 한 보육원에 많은 과자를 사가지고 간 것이다. 서동현이 신분을 속이고 방문한다. 몰래 방명록을 찍어온다. 나오다가 자신을 미행하고 있던 차를 발견한다. 그리고 서산댁을 본다. 서산댁을 만나 더 많은 정보를 얻으려고 하지만 겨우 주미란의 다이어리를 받았을 뿐이다. 특별한 내용이 없다. 실제 다이어리는 소설 사이사이에 삽입되어 사실을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이 장면을 몰래 찍는 사람이 있다. 이 사진은 강호성에게 전달된다. 그는 이 사실을 알지만 서산댁에게 말하지 않는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작가가 곳곳에 심어놓은 서산댁의 모습에 의혹을 품는다. 그녀가 강호성에게 주미란이 모은 자료를 그대로 전달하면서 흘린 냉소는 다른 장면들에서도 같이 반복된다. 병든 아들을 위해 자신을 내치지만 말아달라고 강호성에게 부탁하는 모습과 사뭇 다르다. 같이 살면서 이 가족의 치부를 알게 모르게 모두 본 그녀는 어떻게 보면 이 소설의 핵심 인물이다. 무력한 형사들이 그녀에게 도움을 요청해도 거절하고 자신의 위치를 지킨다. 이것은 강호성의 신뢰로 이어진다. 이 묘한 관계는 뒤로 가면서 뭔가 있을 것이란 기대를 불러온다. 그녀가 꼭꼭 숨겨둔 속내는 무엇일까, 호기심이 계속 이어진다.

 

인간의 비정하고 추악한 욕망은 그 끝을 알 수 없다.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과 열정은 그 악이 지닌 권력 앞에 무력하다. 하지만 의지는 멈추지 않는다. 무너질 순간이 몇 번이나 있어도 다시 일어서 그 악과 싸우는 형사가 있다. 그 때문에 이 소설은 지루함을 느낄 수 없다. 강호성의 죽음을 바라는 주미란의 의도가 막힌 후에도 이 대결은 우리의 현실을 그대로 대변하면서 긴장감을 불러온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하는 순간 다시 시작되고, 마지막 장면에서 보여준 여운이 서늘하다. 기억해야 할 새로운 스릴러 작가 한 명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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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신화, 재밌고도 멋진 이야기
H. A. 거버 지음, 김혜연 옮김 / 책읽는귀족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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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우리 삶에 북유럽 신화 속 인물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아마 <반지의 제왕>이 영화로 성공하고, 이 영화가 소설의 성공으로 이어지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톨킨이 만들어 놓은 세계관 속에서 한국의 인터넷 판타지 작가들은 세계관을 공유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오딘이나 토르란 이름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그리스 로마 신화에 비하면 그 친밀도나 익숙함은 뒤질 수밖에 없다. 나 자신도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책은 읽었지만 북유럽 신화에 대한 책은 읽은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북유럽 신화를 다룬 책이 거의 없는 것도 하나의 이유다.

 

이 책이 출간된 것은 1909년이다. 처음 이 책을 선택할 때 이 사실을 몰랐다. 하지만 이것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북유럽 신화 속 신들을 한 명씩 한 명씩 소개해주기 때문이다. 그 이름들을 하나씩 읽다보면 낯익은 이름보다 낯선 이름이 훨씬 더 많다. 여기저기서 오다가다 들은 이름도 몇 있다. 딱 그 정도에서 나의 지식이 멈춘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으면서 얻은 지식들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물론 이것은 이 책을 다 읽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딘을 비롯한 수많은 신들의 이름에 익숙해지고 있다. 고무적인 일보라고 하면 너무 자화자찬일까.

 

모두 29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세상의 시작을 시작으로 그리스 신화와 북유럽 신화의 유사성을 비교한 글로 마무리한다. 마지막 장인 이 비교는 앞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의문을 품고 비슷하다고 생각한 것을 간략하게 요약한 것이다. 읽으면서 복습하는 느낌도 생긴다. 앞에서 한 장에 한 명의 신을 다룬 것을 감안하면 더욱 요약한 느낌이다. 그런데 이 글에는 한 가지 문제점이 있다. 그리스 신화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이 비교가 의미하는 바를 전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 그리스 로마 신화를 거쳐 북유럽 신화 속에 들어오겠지만 토르가 영화의 주인공으로 성공한 요즘을 생각하면 그 반대인 경우도 생길 수 있다.

 

<토르>란 영화 덕분에 토르 외에 익숙한 또 한 명의 신이 있다. 로키다. 이 북유럽 신화 속에서 어쩌면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 셋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나의 경우 그의 이미지가 영화로 먼저 굳어진 탓인지 읽으면서 몇몇 장면에서는 이질감을 느꼈다. 그가 보여준 다양한 캐릭터는 그 정체가 정확하게 무엇인지 잘 모르게 만든다. 어떤 때는 악당이고, 또 어떤 순간은 악동이고, 어딘가에서는 꾀돌이의 모습을 보여준다. 다양한 신들의 이야기 속에서 그 모습은 자주 변하는데 저자도 이 부분은 지적하고 있다. 모호한 정체성을 제외한다면 가장 흥미로운 신임에 분명하다.

 

오딘과 토르의 이야기는 그 이름에 비해 낯선 이야기들이 상당히 많았다. 오딘의 경우 제우스와 비슷한 모습인데 아주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토르는 영화 속 이미지가 너무 강해 읽으면서 자꾸 겹쳐지는 부작용이 생겼다. 재미난 부분은 이들이 드워프의 세공 기술에 의해 무기를 만드는데 그 성능이 정말 대단하다. 그런데 이 절대무기도 모순에 처한다. 어떤 무기는 항상 승리를 준다고 했지만 중과부족에 처한 경우가 있다. 토르의 묠니르가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지만 다른 마법에 막히는 경우도 있다. 절대성이란 대전제가 흔들린다. 그런 점에서 이 신들은 지극히 인간적이다. 물론 이들이 의미하는 바는 의인화를 거친 신들이지만 말이다.

 

그렇게 복잡한 구성도 아니고 어렵고 힘든 내용을 다룬 것도 아니다. 처음에 낯익은 신들이 나올 때는 아주 흥미로웠지만 낯선 이름이 나오면서 집중력이 조금씩 깨졌다. 다양한 운문을 인용하면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데 그 출처가 적지 않다. 처음에는 에다를 인용한다고 착각하기도 했다. 뭐 금방 다른 작가의 작품인줄 알았지만. 이야기 곳곳에 어떻게 북유럽 신화가 사라졌는지 알려주었을 때 안타까웠다. 그 지역의 신화를 껴안고 축제로 승화한 부분이나 현대의 요일을 의미하는 단어로 바뀐 것을 알려줄 때 생각보다 우리의 생활 속에 많은 영향력을 끼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책이나 영화 등을 보다가 북유럽 신화 속 인물이 등장할 때 참고하기에 좋다. 간략하게 보기는 북유럽 신화 소사전이 아주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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