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적 소설이다. 쌍을 이루고 있는 두 편의 중편 소설을 한 권으로 묶어 내놓았다. 표제작인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과 그 후속작인 <한 젊은이가 지나갔다>, 이렇게 두 편이다. 전작이 가족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면 후속작은 그의 젊은 시절을 다루고 있다. 전작이 개론적인 부분이 있다면 후속작은 그 개론서의 한 부분을 좀더 세밀하게 다루고 있다. 전작에서 짐작했던 것과 전혀 다른 그의 성장과 삶이 들어 있다. 이 두 편에 녹아 있는 감정들은, 생각들은 간결한 문장과 함께 빠르게 읽히고 가슴 한 곳에 조용히 파고든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문장과 속도감이다.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은 이미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적이 있다. 작품 해설에서 역자가 그 당시 느낀 감정이 그대로 전해진다. 개인적으로 이 감정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지만 이 중편이 나에게 강한 인상을 준 것은 분명하다. 열 명의 자식을 두었고, 2차 대전 중에 운 좋게 살아남은 그 가족이 어떤 시련을 겪었고, 이사를 한 후 어떻게 살았는지 보여줄 때 한국의 대가족 모습이 살짝 겹쳐졌다. 자신이 살았던 트랑의 집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가족에 대한 추억과 사랑으로 채운 이 소설은 격렬함보다 잔잔한 감정의 여운을 전해준다. 집에 대한 회상 부분은 내가 한때 살았던 집에 대한 기억을 갑자기 떠올리게 만든다.
열 명의 자식을 뒀다고 부모가 사랑하는 것일까? 어떻게 보면 피임에 실패한 것일 것이다. 부모는 자식들을 열심히 키운다. 그런데 이 부부가 싸우는 순간이 계속 이어진다. 이 기억은 어린 아이에게 아주 나쁘게 각인된다.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그가 떠올린 추억 둘은 잊고 있던 감정을 되살리는 계기가 된다. 대가족이 모여 살면서 일어나는 사소한 모험과 일상이 간결하게 그려지고, 그의 삶도 빠르게 설명한다.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 누이의 죽음이 가져다 준 강한 충격이 잔잔했던 이야기에 진한 그리움과 아픔을 전해준다. 아버지가 죽었던 나이와 같은 나이가 된 화자는 산 사람들과 죽은 사람들 모두와 평화롭게 지내고 싶어 이 소설을 썼다.
<한 젊은이가 지나갔다>도 다른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이 중편은 전작의 성공과 오해와 아버지의 편지가 이야기를 만들었다. 그가 잘 몰랐던 아버지의 군복무 시절 이야기가 나오고, 한 소년이 청년으로 자라고 성인이 되는 과정에서 겪는 불안과 고뇌와 홀로서기를 다룬다. 어쩔 수 없는 환경 속에서 그가 선택한 것은 신부가 되는 것이지만 시대의 흐름과 종교의 교조화 등은 그로 하여금 고뇌하게 만든다. 알제리에 대한 부채의식이 군복무를 그곳에서 하게 만들지만 그의 삶을 뒤흔들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간 곳에서 배운 것들이 그의 내면을 뒤흔든다. 그리고 밥 딜런. 딜런에 대한 광적인 팬심은 적지 않은 분량 속에 풀려나온다. 재밌고 흥미로운 부분이다.
중편이란 분량 속에서 젊음은 역시 간결한 문장과 핵심을 파고드는 내용으로 빠르게 풀려나온다. 그가 기독교인이라고 했을 때 공감하는 것은 신학을 공부하고 믿었던 열정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시대 지식인들에게 일본 선불교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보았을 때 다시 한 번 놀란다. 하이쿠에 대한 예찬과 선불교와의 연관성은 낯설게 다가온다. 68혁명에 대한 수많은 성공을 들었지만 그 성공에 매몰되지 않고 그 후 현실을 더 이야기한다. 이 또한 낯설다. 읽으면서 가장 먼저 다가온 것은 열정이다. 신에 대한 열정, 사회 개혁에 대한 열정, 딜런에 대한 열정 등. 다시 집의 추억으로 돌아가고, 아버지를 추억한다. 삶은 멈춰있지 않고 전진한다.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이란 말처럼 헤어지지만 그 추억은 조용히 가슴 한 곳에 내려앉아 있다. 언젠가 더 차분하게 다시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