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거 (아니)야 풀빛 그림 아이 54
크리스토퍼 와이엔트 그림, 강소연 글 / 풀빛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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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안) 작아』의 강소연 작가의 두 번째 그림책이 나왔네요. 이번엔 『내 거 (아니)야』란 제목의 그림책입니다. 『넌 (안) 작아』에서 나왔던 복실이들(꼭 곰돌이처럼 생겼지만, 그냥 복실이라고 부를게요.)이 이번에도 또 나오네요.

큰 복실이가 의자에 앉아 뜨개질을 하고 있는데, 작은 복실이가 그 의자는 자신의 것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큰 복실이가 앉아 있기 전에 자신이 먼저 그 의자에 앉아 있었다는 거죠. 이에 큰 복실이는 지금은 자신이 앉아 있으니 자신의 의자라고 주장합니다. 이에 작은 복실이는 꾀를 내어 큰 복실이가 일어나게 만든 후, 의자에 잽싸게 앉는답니다. 이젠 자신이 앉았으니 자신의 의자라고 말하면서요.

어떻게 될까요? 둘은 결국 서로 의자를 갖겠다고 다투게 됩니다. 어쩌죠? 저러다 큰일 날 텐데 말입니다. 걱정이네요. 게다가 서로 갖겠다고 다투는 녀석들의 얼굴들, 참 밉네요.

다툼의 끝엔 아무도 승자가 될 수 없답니다. 둘 다 넘어졌거든요. 다툼은 둘 모두 지게 만드는 거죠. 저 표정 좀 보세요. 조금 바보 같지 않아요? 모든 것을 잃은 것 같은 표정. 저 표정이 오늘 다툼으로 인한 우리의 표정이 아니면 좋겠어요.

이렇게 둘 다 넘어진 후에야 둘은 정신을 차립니다. 이젠 서로 미안하다고 말하며 상대를 향해 손을 내미네요. 그리고선 언제 다퉜나 싶게 함께 놀러 가고요. 이제 이 빈 의자는 누구의 것이 될까요? 여러분이 앉겠다고요? 네. 앉아도 됩니다. 하지만, 혼자만 앉아야 한다고 주장하진 마세요. 함께 나누면, 함께 누릴 수 있고 반대로 혼자 가지려 하면, 혼자만 누리게 되거든요.

 

이 그림책은 자신만 알고,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이라 주장하는 것이 어떤 나쁜 결과를 가져오는지, 그리고 함께 나눔이 얼마나 큰 즐거움을 선물하는 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나눔의 행복을 아는 아이들이 될 수 있다면 좋겠네요.

 

이런 이야기가 있죠. ‘나’뿐인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고요. 우리 그런 나쁜 사람이 되지 않길 바라요. 내가 더 갖겠다는 마음이 결국 다툼을 가져오게 되고, 다툼이 우리의 삶을 망가뜨리니 말입니다. 우리의 손이 날 향해 움켜쥐려는 인생이 아니라, 남을 향해 펼쳐질 수 있는 인생이 되면 좋겠네요. 그렇게 될 때, 세상은 보다 더 아름다워지고, 보다 더 따스해지며, 보다 더 살 맛 나는 곳이 될 테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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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묻힌 도시의 연인
한지수 지음 / 네오픽션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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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수 작가의 신작 『파묻힌 도시의 연인』을 읽게 되었다. 한지수 작가의 작품을 처음 만난 건 『빠레, 살라맛 뽀』이었다(물론 그 이전의 책들도 있지만, 난 아직 읽진 못했다). 『빠레, 살라맛 뽀』란 소설을 참 재미나게 읽었기에 설레는 마음으로 책장을 펼쳤는데, 느낌이 달랐다.

 

『파묻힌 도시의 연인』은 고대 로마의 도시였던 폼페이, AD 79년에 베수비우스 산의 화산 활동으로 사라져버렸던 도시 폼페이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다. 화산 활동이 벌어지기 직전의 폼페이는 온통 죄악으로 가득한 도시다. 성적 문란, 정치적 타락, 탐욕의 만연함 등 온통 어둡고 방탕함이 가득한 도시다. 그러한 도시에서 어느 날 살인 사건이 벌어진다. 희생자는 당시 폼페이에서 잘 나가던 고급 창부인 쿠쿨라라는 여인인데, 사인은 독살. 과연 누가 그녀를 죽인 것일까? 소설은 쿠쿨라 뿐 아니라, 계속하여 수많은 희생자들이 발생하며, 과연 누가 무슨 이유로 이러한 엽기적 살인을 벌이는 지를 추적하게 한다.

 

이처럼 살인 사건으로 시작하여 범인이 누구인지를 찾아가는 작업으로 소설의 한 축이 전개된다. 하지만, 진짜 소설의 축은 살인사건이 아니다. 그건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이다. 바로 베루스라는 오줌장수와 플로시아라는 세탁소 안주인 간의 사랑이야기. 그리고 베루스를 둘러싸고 있는 신분의 비밀이 소설의 커다란 축이 된다.

 

한 청년과 유부녀의 사랑 이야기라니, 그렇다면 이는 불륜의 사랑이다. 하지만, 그 사랑이 더럽다거나 불쾌하지 않다. 도리어 독자는 이들의 사랑을 응원하게 될 만치 이 둘의 사랑은 아름답다. 소설 속에서의 폼페이는 온통 문란한 성적 행위들이 가득하다. 폼페이가 마치 성경의 소돔과 고모라처럼 심판의 도시가 된 이유가 타락한 윤리에 있음을 느끼게 할 만큼 작가는 폼페이의 타락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성적으로 타락한 도시, 탐욕에 이성을 잃어가는 도시, 사치와 방탕이 가득한 도시가 폼페이다. 이런 도시에서 불륜의 사랑인 베루스와 플로시아의 사랑은 도리어 순수하고, 순박하고, 애틋하게 느껴진다.

 

당시 폼페이의 여인들은 검투사 애인을 두는 것이 유행이었다. 왜냐하면 죽음을 마주한 자가 풍기는 병적인 매력을 도리어 즐겼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뛰어난 검투사 애인을 두는 일은 더더욱 몸살 나는 유행이었다. 늘 죽음을 곁에 둔 검투사의 연인들은 그 아슬아슬한 삶과 죽음 경계를 탐닉하는 데에 온 몸과 마음을 쏟았다.(165쪽)

 

얼마나 폼페이가 타락한 도시였는지를 보여준다. 그런데 그런 매력을 주기 위해 죽음과 마주한 청년이 있다. 바로 주인공인 베루스다. 하지만, 베루스의 이런 선택은 왠지 타락한 사랑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도리어 사랑을 얻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으로 느껴져 애틋하다. 그리고 그런 베루스의 선택에 아파하는 플로시아의 모습 역시. 이 둘의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

 

솔직히 소설의 도입부분에서는 집중하기 어려웠다. 왠지 산만한 것 같은 도입과 특히 익숙지 않은 이름의 수많은 등장인물들로 인해 개인적으로는 쉽게 몰입하지 못했다. 하지만 소설이 전개되는 가운데 나도 모르는 사이 이야기 속으로 깊이 빠져들어 있음을 느끼게 된다.

 

이 소설은 로맨스 소설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단순히 로맨스로만 그치지는 않는다. 역사의 비극적 사건을 배경으로 보여주는 거대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당시 폼페이라는 도시의 어두운 정치상이야말로 어쩌면 화산으로 인한 자연의 심판의 이유가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 정치가 타락하면 망할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 폼페이의 정치는 향락과 공포의 정치였다. 오늘 우리의 정치는 어떤 모습일까? 왠지 공포 정치로 돌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는지.

 

아울러 오늘 우리의 성문화 역시 폼페이를 책할 수 있을까? 타락한 사랑이 가득하기에 도리어 아름답게 느껴지는 한 쌍의 연인, 그들이 만들어 가는 사랑이야기를 올 가을 한 번 들여다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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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드리안을 본 적이 있니? - 추상 회화의 선구자 피트 몬드리안이 만난 세상, 안데르센 상 수상작 예술톡
알렉산드로 산나 글.그림, 이현경 옮김 / 톡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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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파랑새)에서 예술가에 대한 또 한 권의 그림책이 나왔네요. 이번엔 네덜란드 출신의 피트 몬드리안에 대한 그림책입니다. 아마 몬드리안이란 이름이 조금은 낯설지라도, 사각형 도형 안에 원색으로 칠해진 추상화는 많이들 본 적이 있는 그런 화가랍니다.

 

물론, 몬드리안이 처음부터 그런 사각형에 원색을 칠하는 그림을 그렸던 건 아니고요. 이 책은 몬드리안의 작품들을 몇 점 소개함으로서 화가의 눈으로 본 세상이 어떤지를 보여주고 있네요.

예를 들면, <햇빛 속의 풍차>(1908년)라는 작품을 통해, 화가가 본 풍차는 어떤 모습인지, <아마릴리스>(1910년)라는 작품을 통해서, 화가가 본 꽃은 어떤 모습일지를 생각해보게 한답니다. 이 <아마릴리스>란 작품은 제목을 알고 나니, 아~ 하며, 왜 화가가 꽃을 이런 모습으로 그렸는지 알게 되네요.

 

그 외에도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은 <여름, 제일란트의 모래 언덕: 모래 언덕 Ⅵ>(1910년경), <붉은 나무>(1908년), <빨강과 하양의 구성 No.1>(1938년), <큰 바다 5>(1915년), <뉴욕 시티 Ⅰ>(1941-1942년), <빅토리 부기우기>(1942-1944년) 이랍니다.

마지막 작품인 <빅토리 부기우기>(1942-1944년)는 몬드리안의 유작으로, 재즈 음악인 ‘부기우기’를 추상화로 형상화 시킨 작품이랍니다. 몬드리안은 재즈 음악인 ‘부기우기’를 참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의 말년의 작품들 가운데는 이처럼 음악인 ‘부기우기’를 그림으로 추상적으로 형상화시킨 작품들이 많답니다. 바로 이 작품들에서 그 유명한 원색의 사각 추상화들이 나옵니다. 마지막 작품인 <빅토리 부기우기>는 작가가 미국으로 건너가서 활동하며 그린 작품인데, ‘부기우기’를 들으며, 춤을 추는 모습들을 형상화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미완성이지만, 이 그림을 보면, 춤을 추는 사람들이 보이나요? 솔직히 전 잘 안 보이는데, 모르죠. 여러분 눈에는 보일지 말입니다.

 

작가의 눈으로 사물을, 또는 음악을 바라보는 훈련을 하다보면, 우리 아이들도 이처럼 세상을 멋지고, 남다르게 표현할 수 있으리라 여겨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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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그림은 재미있다, 여기는 상상미술관 - 보고 생각하고 그려 보는 우리 명화 워크북
전영실 지음, 유설화 그림 / 토토북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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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성장하며 제일 먼저 행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그림을 그리는 거죠(물론, 기는 게 먼저겠지만, 서고 걷기 전에 이미 그리기를 시작하죠.). 물론, 처음엔 단순한 선들을 끼적일 뿐이지만, 언젠가부터 동그라미를 그리고, 그 안에 얼굴을 그리게 됩니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그림 그리는 시간을 대단히 즐기며 행복해 하죠. 저희 집 딸아이도 미술활동을 제일 좋아합니다. 미술은 아이들에게는 공부가 아닌 하나의 놀이이기도 하죠. 그러니 그림은 우리 인간에게는 가장 원초적인 행동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싶네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러한 그림이 어렵게 느껴지고, 특별한 사람들만의 영역으로 오해되어지기 시작합니다. 이는 우리의 교육이 입시 위주이다 보니 미술이 보편적인 사람들에게는 필요치 않은 부분으로, 아니 해서는 안 되는 낭비의 시간으로 곡해되었기 때문일 겁니다. 미술은 특별히 전공하는 분들만의 영역이 되어 버린 거죠. 어쩌면 한쪽으로 치우진 교육이 미술을 향한 아이들의 본능을 억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이 책 『옛 그림은 재미있다, 여기는 상상미술관』이 참 고맙게 느껴지네요. 이 책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옛 그림들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책 제목에 상상미술관이라고 나와 있는 것처럼, 마치 미술관에서 우리의 자랑스러운 옛 그림들을 감상하는 느낌을 갖게 한답니다.

책의 차례 역시 이처럼, “미술관 안내 지도”라고 꾸며 놓았고요. 이 안내 지도에 따라 하나하나 감상하며 배우고, 느끼고, 상상해보면 된답니다.

 

 

 

 그림에 대해 몰라도 괜찮습니다. 먼저, 원 그림을 소개하는데, 찬찬히 감상해보며, 느끼면 되죠. 그 다음에는 이 그림에 관한 설명을 듣고 배우면 되고요. 다음에는 그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또는 그림이 내 삶 속으로 들어오는 상상을 해보면 되요. 첫 그림인 고구려 벽화의 사신도를 통해서, 작가는 우리에게 이런 상상을 해보라고 하네요. 사신도의 네 수호신들이 만약 내 방을 지켜 준다면 어떨지를 말이에요. 그러면 오히려 무서울까요? 아님, 든든할까요?

제 딸아이는 이 책의 표지를 보더니, 대뜸 이렇게 말하네요. “어, 수염으로 그네 탄다.” 맞아요. 이 그림은 윤두서의 자화상이란 그림인데, 우리나라 국보 240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전남 해남 녹우당이라는 아주 멋진 곳에 전시되어 있답니다(녹우당은 은행나무가 멋진 곳이에요^^). 상당히 무서운 얼굴이죠. 그런데, 이처럼 무서운 얼굴의 멋진 수염을 토끼가 그네 타는 모습으로 그려놓았네요. 이러한 접근도 미술을 가깝게 느끼게 하는 좋은 시도라 여겨지네요. 수염으로 그네를 탄다는 이런 상상력으로 그림을 본다면, 윤두서 할아버지가 무섭기만 한 것이 아니라, 친근한 할아버지로 다가올 수도 있겠네요.

 

이 책과 함께 우리 아이들이 상상미술관의 그림들을 잘 감상하고 보다 더 멋진 미술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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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삭임의 바다
팀 보울러 지음, 서민아 옮김 / 놀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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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보울러의 신작이 나왔다. 『속삭임의 바다』라는 제목의 소설. 소설은 과연 어떤 이야기를 속삭여줄까 설렘는 마음으로 책장을 펼쳐본다.

 

외딴 섬 모라 섬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15살 소녀 헤티는 남들과는 다른 점이 있다. 그는 평범한 바다유리 속에서 남들이 보지 못하는 형상들을 본다.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형상을. 그리고 바다에서 들려오는 속삭임도 듣는다. 누군가 마치 유령들의 속삭이는 것과 같은 소리들을.

 

그런 헤티가 살고 있는 모라 섬에 지독한 폭풍이 몰아치던 밤, 한 노파가 작은 배에 실려 떠내려 왔다. 이 정체불명 노파의 출현에 섬사람들은 점차 불안에 쌓이기 시작한다. 특히, 섬에서 가장 나이 많은 어른인 파 노인은 노파의 출현을 악의 출현이라고, 이제 섬은 온통 불행이 시작될 것이라고 외치기 때문이다.

 

우연의 일치였을까? 유일한 외부세상과의 소통의 도구인 배, ‘모라의 자랑’이 폭풍에 파괴되고, 노파를 죽이기를 외치던 파 노인은 헤티의 반대에 부딪치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이런 불행의 일들이 겹치자 섬사람들은 노파를 불행의 단초로 여기기 시작하며, 살려둬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기 시작하는데.

 

한편 외딴 섬에 갑자기 나타난 이 노파의 얼굴을 본 헤티는 노파가 바로 자신이 바다유리 속에서 봤던 그 얼굴임을 알고 어떻게든 노파를 살리려 한다. 하지만, 점차 마을 사람들의 광기가 드러나게 되고, 헤티 역시 마을 사람들의 미움의 대상으로 변해 가는데. 과연 헤티는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게 될까?

 

팀 보울러의 소설, 『속삭임의 바다』를 읽으며 몇 가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무엇보다 헤티라는 이 소녀의 용기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마을 사람들이 점차 인간성을 상실해 가며, 광기에 휩쓸리는 가운데서도 자신과는 일면식도 없는 노파를 지켜내기 위해 그 여린 소녀의 몸으로 맞서는 그 모습. 뿐 아니라 섬마을 공동체의 분열을 더 이상 볼 수도 없고, 노파를 모른 척 할 수도 없기에, 자신의 작은 배에 노파를 태우고 노파의 집이 있는 곳으로 여겨지는 본토를 향해 떠나는 용기는 대단히 감동적이다. 타인을 향한 관심을 끊어버린다면, 쉽게 나 자신을 지켜낼 수 있지만, 헤티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힘든 결정을 하고 실행에 옮기게 된다. 얼마나 숭고한 정신이며, 또한 불굴의 용기인가. 이런 용기 있는 발걸음은 또한 헤티를 새로운 세상으로 안내하게 되고, 새로운 삶이 시작될 것을 희망하게 한다. 오늘 우리에게 헤티와 같은 멋진 용기와 헌신의 모습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음으로, 섬사람들의 광기에도 눈이 간다. 이들은 자신들의 작은 세계에 갑자기 들어온 한 죽어가는 노파를 악의 씨앗으로 간주한다(어쩌면 자신들의 안정을 위해 노파를 희생시키려는 그들이야말로 악의 씨앗이 아닐까?). 노파 때문에 자신들에게 불행이 거듭된다고 믿는다. 그리곤 노파를 살려둬서는 안된다고 여긴다. 처음엔 그 동조가 몇 사람뿐이었지만 점차 많은 사람들이 동조함으로 노파를 지켜내려는 사람들이 도리어 궁지에 몰리기도 한다. 이들이 노파를 마녀사냥의 대상으로 삼는 이유는 다름 아니라 두렵기 때문이다. 그들 모두가 정말로 노파가 악의 씨앗이라 믿는 건 아닐 거다. 하지만, 혹시 노파가 정말로 악의 씨앗이어서 자신들에게 재앙을 가져올까 그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이 두려움이 광기로 변한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가 발견하는 수많은 광기가 이런 두려움 때문이 아닐까? 문제는 어느 공동체의 우두머리, 즉 절대적 힘을 가진 이가 이런 두려움으로 인한 광기에 휩싸이게 될 때가 아닐까? 이러한 두려움의 광기가 우리 곁에는 없길 소망한다.

 

마지막으로 작가는 『속삭임의 바다』를 통해, 바다라는 대자연에 의해 목숨을 잃은 이들을 향한 진혼곡을 노래하고 있진 않은지 싶다. 남들과 다른 신비한 힘을 가진 헤티. 그녀가 바다유리에서 발견하는 형상, 그리고 듣게 되는 바다의 속삭임은 모두 이런 바다에 의해 희생된 생명과 연관이 있다.

 

모라 섬의 역사는 늘 그런 상실의 역사죠. 그랜의 할머니나 다른 어른들은 우리가 강해져야 한다고 말씀하곤 하세요. 그게 섬에서 살아가는 방법이래요. 죽은 자는 빨리 묻고 산 자는 계속 살아야 한다는 거예요. 하지만 전 그런 방식이 마음에 안 들어요. 저는 바라서는 안 되는 걸 소망하고 있어요.(291쪽)

 

헤티가 소망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다로 인해 상실된 자들, 그들을 기억 저편에 묻어버리기보다는 자신들의 삶 곁에 두고 여전히 기억하고, 다시 떠올려봄으로 소통하려는 것은 아닐까? 이런 소망이 결국 헤티에게는 남들이 보지 못할 형상을 보게 하고, 바다의 속삭임을 듣게 하는 것일 테고 말이다. 물론, 슬픔의 기억, 상실의 기억을 묻어버리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슬픔과 상실을 뛰어넘어 우리 곁을 떠난 이들, 상실의 역사가 되어버린 이들을 여전히 오늘 내 삶 속에서 기억하며 회상하는 것이야말로 어쩌면 상실의 역사가 되어버린 영혼들을 다독여주는 한 방법이 되지 않을까?

 

팀 보울러의 신작 『속삭임의 바다』는 모라 섬에 갑자기 불어 닥친 폭풍, 그리고 한 노파가 표류된 사건을 통해 마을 공동체가 어떻게 두려움에 빠지고 광기에 휩쓸리고 있는지. 또한 이러한 인간성 상실의 모습과 그에 맞서는 자들의 용기를 잘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바다의 속삭임을 통해, 바다로 인해 상실의 역사가 되어버린 희생자들의 넋을 향한 진혼곡을 들려준다. 바로 헤티라는 연약한 소녀의 모습을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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