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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막이 내릴 때 (저자 사인 인쇄본) ㅣ 재인 가가 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9년 8월
평점 :
히가시노 게이고의 <가가 형사 시리즈>는 작가의 수많은 작품 가운데서 몇 안 되는 시리즈 가운데 하나다. 그런 만큼 독자들의 사랑과 충성도 역시 유별나지 않을까 싶다. 나는 여태 <가가 형사 시리즈>를 많이 만나진 못했다.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를 읽으며, 도대체 범인이 누구라는 거야! 하며 머리를 싸맸던 기억이 있으며, 『기린의 날개』를 읽으며, 니혼바시 다리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품게도 되었다(하지만, 이젠 안녕~~).
작가의 마지막 <가가 형사 시리즈> 작품이라는 『기도의 막이 내릴 때』를 만나게 되었다. 작품은 2013년 작품으로 금번 도서출판 재인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소설의 시작은 가가 형사의 어머니가 집을 떠나 홀로 어느 장소에 정착하는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쓸쓸한 죽음을 맞는 장면. 그리곤 시간이 흘러, 오시타니 미치코라는 여인이 타인의 아파트에서 살해된 시신으로 발견된다. 청소업체의 모범적 직원인 오시타니 미치코는 왜 아무런 연관도 없는 타인의 아파트에서 살해된 채 발견된 걸까? 그리고 이 아파트의 주인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이 사건을 가가 형사의 사촌 동생이자 형사 후배이기도 한 마쓰미야 형사가 추적하게 되고, 그런 가운데 가가 형사 역시 이 사건에 합류하게 된다. 왜냐하면, 이 사건은 가가 형사의 어머니 죽음과 연관이 있다는 고리를 발견했기 때문. 어머니의 유품 속에서 발견된 12다리의 메모가, 바로 살인 현장의 아파트에서 발견된 달력에 적힌 다리 이름 메모와 필체와 내용이 같기 때문. 과연 이 12다리에 감춰진 비밀은 무엇일까?
마쓰미야 형사는 피해자인 오시타니 미치코가 행방불명되기 전 찾았던 중학 동창 아시이 히로미(연극 연출가로 그의 연극이 유명한 극장에 올리게 된다.)로부터 사건의 흔적들을 찾아 나서게 된다. 그런 가운데 또 하나의 사건인 노숙인이 움막에서 불에 타 죽은 사건과 아시이 히로미가 어떤 식으로든 연관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되고, 아시이 히로미의 과거들을 추적하게 된다. 사건의 진상은 과연 무엇일까?
소설은 마치 본격추리소설 마냥 사건 속 범죄 트릭이 감춰져 있다. 여기에 탐정 역할을 하는 형사들이 등장한다. 그러니 어쩌면 본격추리소설이라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런 본격추리에 관심을 기울이기보다는 등장인물, 특히 범죄자의 사연에 관심을 더 많이 기울이고 있다. 이를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다.
등장인물의 사연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 부분으로 인해, 독자는 밝혀진 범인을 보면서도 마냥 그들을 미워할 수만은 없다. 아니 도리어 그들이 범죄의 길을 선택하게 되고, 그 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 아니 그들을 그 범죄의 늪으로 몰아넣은 사회적 상황을 먹먹한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소설은 사회파 소설임에 분명하다.
특히, 범인 쫓고, 어떤 과정을 통해 범죄를 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형사들이 그 범인의 진상으로 접근하는 과정 등을 통해, 깨진 가정의 모습, 그 암울하고, 먹먹하기만 한 상황을 오롯이 보여주기에 독자는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개인에게 있어 가장 단단한 보호막이 되고 안식처가 되어줘야 할 가정이 너무나도 쉬이 파괴되고 그 상처를 고스란히 떠안게 되는 가족들(특히, 자녀들. 가가 형사도 그렇고, 사건 속 용의자 아사이 히로미 역시 그렇다.)의 슬픔, 아픔을 바라보며 함께 아파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놀라운 반전은 그럼에도 여전히 가정이 가장 큰 힘이었으며, 가장 큰 보호막이었음을, 가정이야말로 삶을 끌고 가는 원동력이었음을 역설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이런 부분에서 소설은 뭉클한 감동을 주기도 한다.
상당히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연관성 없어 보이는 사건 내지 상황들이 촘촘하게 얽혀 나가는 과정이 조금은 복잡하여 소설에 대한 몰입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상황들이 사건이 서로 얼마나 촘촘하게 얽혀 있는지를 알게 될 때, 무릎을 치게 된다.
여기에 또 하나, 소설은 요 근래 끊임없이 작가가 관심을 기울이는 원전에 대한 내용 역시 언급되고 있다. 이는 일본의 원전 사고의 영향임에 분명하다. 아직도 결코 끝나지 않은 원전의 그림자, 그 어두운 굴레를 끊임없이 작가는 끄집어 내주며, 경고음을 발하고 있다. 마치 잊어서는 안 된다고 항변하는 것만 같다.
원전은 연료만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네. 그 녀석은 우라늄과 인간을 먹고 움직여. 인신 공양이 필요하지. 한마디로 우리 작업원들의 목숨을 쥐어짜야 움직인다 이 말이야. 내 몸만 봐도 알 수 있어. 이게 바로 목숨을 짜내고 남은 찌꺼기일세.(364쪽)
물론, 무엇보다 큰 관심은 가정의 해체, 그리고 가정으로부터 떨어져 홀로 살아가는 고독한 인생들의 먹먹한 삶에 대한 것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