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견쟁이 신들 호시 신이치의 플라시보 시리즈 27
호시 신이치 지음, 윤성규 옮김 / 지식여행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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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견쟁이 신들>에서 주목한 것은, 코메디 같은 설정의 작품이다. [현대의 미담], [우발적 충동], [마법사], [고대의 비법] 등, 감탄했던 작품 대부분이 이에 해당했다. '코메디 같은 설정'이라고 했지만, 간단하게 말할 수는 없다. 시작부터 '이건 코메디구나' 알 수 있는 게 아니라, 결말에 이르러서야 무릎을 치게 되기에. 또한 호시 신이치가 선보인 것을 코메디와 매치시켜도 될런지 조심스럽다.

[우발적 충동]으로 이야기 해보자. 호화 호텔에 누워 과거를 회상하는 노인이 있다. 퇴직 후 힘겨운 삶을 살았던 그가 호화 호텔이라니, 거기다 곁에는 엄청난 액수의 돈다발도 있다. 노인에겐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노인은 일하던 회사의 금고를 털었다. 그러나 자신을 믿고 채용해 준 사장과 회사를 배신했다는 죄책감에 괴로워 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어느 노인의 신산한 삶과 충격적 행각, 그리고 고뇌를 다룬 작품이다. 하지만 호시 신이치는 마지막에, 웃을 수 밖에 없는 설정을 추가한다. (구체적인 내용은 읽어 보시길.)

[마법사] '성냥팔이 소녀'를 연상시키는 작품이다. 꽃파는 소녀, 초상화를 그리는 청년, 의문의 신사가 있다. 소녀와 부딪친 신사는 꽃을 사주고 실수로 위조지폐를 건넨다. 그 사실을 안 신사는 깊은 후회를 한다. 그 위조지폐는 오랜 연구 끝에 만든거라 정말 귀중한 거였고, 자칫 잘못하면 화폐위조범으로 몰릴 수 있다. 신사는 소녀에게 준 위조지폐를 회수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한다. 신사의 노력과 소녀의 반응이 코믹했던 작품이다.

혹시 '신神'이 등장하는 작품이 많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다. '플라시보 시리즈의 제목독법'을 고려하면 당연한 생각. 물론 있다. [웃는 얼굴의 신], [상업의 신], [마스코트]이 대표적인데, 마지막 작품을 보자.

이 작품은 마스코트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 놓는 구성이다. '나는 수백 년 동안 줄곧 하나의 동전 속에 살고 있다. (중략) 나는 직무에 충실하다. 주인에게 반드시 행운을 가져다준다. 하지만 요즘은 일할 의욕이 사라진다. 왜냐고? 내 이야기를 들어보시라.'(p.81) 마스코트가 직접 화자로 등장하는 점이 특이한데, 마스코트의 파란만장한 이력 역시 재미있다.

그 외에도, 뜻하지 않게 범죄에 휘말린 남자 이야기 [밤의 목소리], 아침 조깅을 하다 살인청부업자를 만나 벌어지는 에피소드 [현대의 미담], [죽음의 무대]가 괜찮다. [죽음의 무대]는 호텔 옥상에서 자살을 시도하는 여성을 둘러싼 에피소드가 핵심내용으로, 자살하려는 여성과 만류하는 경찰, 호텔지배인 등이 주고받는 대화가 대단하다. 여성은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섰다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침착하다. 이는 놀라움을 넘어 의아함까지 야기한다. '정말 여성은 자살할 생각이 있는 걸까?'라는.

<참견쟁이 신들>엔 탄탄한 완성도와 재미를 겸비한 작품이 많다. 곳곳이 심어둔 코메디 코드도 유치하지 않고, 작품의 생생함을 더해 주었다. 즐겁게 읽었다. 플라시보 시리즈의 최상위에 위치한 작품으로, 호시 신이치를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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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몽 호시 신이치의 플라시보 시리즈 26
호시 신이치 지음, 윤성규 옮김 / 지식여행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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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몽> 역시 전체적인 분위기는 <앞으로 일어날 일>과 유사하다. 다만, 시대물 미스터리의 비중이 적어지고 그 자리를 요괴나 귀신이 등장하는 작품이 차지하고 있다. 요괴나 귀신이 등장한다고 해서 무시무시한 공포물을 생각해선 곤란하다. 이들은 특별히 의식할 수 없을 정도로 자연스럽고 엉뚱한 면모를 보인다. [밤과 술과]엔 술만 마시면 여자귀신이 나타난다. 소복 입고 입가에 피를 묻힌 처녀귀신이 아니다. 세련된 미인에 성격도 상냥한, '남자의 로망'(ㅋㅋ)같은 귀신(p.89)이다. 또한 [서재의 쓸모]에 등장하는 서재귀신 역시 이웃집 남자같은 편안한 모습(p.116)이다.

사실, 이는 이 작품뿐만이 아니라 '플라시보 시리즈' 전체의 특징이다. 으스스한 공포물로 분류되는 작품을 보더라도, 귀신이나 유령은 의외로 거의 나오지 않는다. <흉몽>만 해도 그렇다. 정말 무서운 건 [손가방]같은 작품이지, 귀신이나 유령이 나오는 [밤과 술과]나 [서재의 쓸모]가 아니다. 호시 신이치 작품세계에서, 이들 존재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생각해 볼만하다. 아무튼, <흉몽>을 통해 이제껏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던 것을 새삼 생각해 보게 되었다. 뜻하지 않게 얻은 큰 수확.

[깊은 사이], [씨앗의 쓸모], [마이너스], [다각경영] 네 작품이 가장 마음에 들었고, [왕의 옷]은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을 패러디했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 했다.

[다각경영] 등산이 취미인 30대 중반의 남자. 전망 좋은 곳에서 휴식을 취하다 불안정하게 위치한 돌을 치워 버린다. 그러자, 옛날 전국시대의 무장이 나타난다. 돌 때문에 극락왕생을 못했는데, 남자가 덕에 극락왕생할 수 있게 되었다며 기뻐한다. 무장 왈, "답례를 하고 싶네. 큰 힘을 주겠네. (중략) 사람을 저주하고 죽일 수도 있지. 무한한 것은 아니지만 여기서 함께 죽은 부하의 수만큼 사람을 죽일 수 있다네."(p.182참조) (이 점은 영화 '데스 노트'의 설정과 유사하다.) 남자는 힘을 어떻게 사용할까?

[마이너스] 외국여행도중 골동품 목걸이를 산 이후부터 비극적 사건에 휘말려 버린 남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종교에 관심이 많은 동창을 찾아가 의논한다. 동창은 목걸이가 '마이너스의 마스코트'라면서 몰래 남한테 줘버려야 한다고 조언한다. 고민끝에 불쌍한 삶을 살고 있는 다른 남자에게 목걸이를 선물처럼 준다. 목걸이를 받는 남자의 삶은?

[씨앗의 쓸모] 소년은 길을 묻는 남자에게 친절하게 길 안내를 해준다. 그러자 남자는 "이걸 주지. 식물의 씨앗인데 그 잎을 차로 우려서 마시면 좋아. 효과가 확실하다네."(p.33)하며 씨앗을 준다. 소년은 정원 한 구석에 씨앗을 심고, 잎으로 차를 만들어 마신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성적은 오르긴 커녕 점점 떨어졌다. 걱정스러워진 소년은 식물을 뽑아버린다. 놀랍게도 식물의 뿌리는 황금이 달려 있었다. 신비한 씨앗과 식물덕에 소년은 학업을 전폐하고 식물제배에 온 힘을 다한다. 씨앗을 준 남자의 정체는? 황금 식물덕에 소년은 행복했을까?

[깊은 사이] 고미술품 무역회사로 성공한 남자가 있다. 여유가 생긴 걸까? 점점 살만 찌는 아내 대신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린다. 같은 회사 직원인 후사에, 전통 의상 전문 모델 유키코, 이국적 매력의 메리까지. 그러던 어느 날, 아내는 충격적인 말을 건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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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일어날 일 호시 신이치의 플라시보 시리즈 25
호시 신이치 지음, 윤성규 옮김 / 지식여행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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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일어날 일>의 특징은 한마디로 '미스터리 함'이다. 임금과 무사가 존재하던 시대물 미스터리, 현대 미스터리, 미래과학에 대한 예언과 같은 작품이 있지만, 작품 전반을 흐르는 분위기는 역시 미스터리다. '플라시보 시리즈의 제목 독법'을 고려한다 해도 이해할 수 있다. '앞으로 일어날 일'이라니, 제목 자체가 미스터리하지 않은가?

표제작과 유사한 제목이 더 있다. [산에서 일어난 일], [숲에서 일어난 일]. 미스터리 함은 전설을 소재로 차용한 [산에서 일어난 일]이 가장 강하나, 나머지 둘을 살펴보겠다.

[앞으로 일어날 일] 사고를 당한 것으로 보이는 남자가 있다. 꼼짝할 수도 없고, 눈의 초점도 맞지 않는다. 청력은 정상인지 남자는 어떤 여자의 목소리를 듣는다. "이제야 의식이 돌아왔군요. 말은 되도록 많이 하지 마세요. 큰 사고를 당하셨어요."(p.95) 남자는 몸이 불편한지 여자에게 이것저것 부탁한다. 하지만 여자는 의외의 반응을 보이는데…. [한 단계]와 더불어 미래과학에 대한 예언과 같은 작품이다.

[숲에서 일어난 일] 정확한 시대파악이 불가하며, 블랙유머가 가미되어 있다. 단조로운 생활을 하지만, 일만은 성실히 수행하는 숲지기 초사쿠. 우연히 어떤 남자에게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피리와 소를 두드리며 춤을 추는 법'(p.77)을 배운다. 초사쿠는 이것도 재주라고 열심히 연습한다. 연습하며 호수 근처를 지나고 있는데, 갑자기 요정이 나타난다. 요정이 하는 말, "악령이 제게 건 저주가 당신의 재주 덕에 풀렸어요.". 그러면서 일 년에 하나씩 소원을 들어준다는 게 아닌가? 초사쿠에게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

시대물 중 인상적인 것은, [어느 고풍스런 이야기], [어떤 인연]이다. 숲에서 성장해야 했던 어느 왕자의 대모험극인 [어느 고풍스런 이야기]는 [상상속에서]와 더불어 '호시 신이치표 스토리의 무한폭주'를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다. 마치 대작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 장면장면이 생생했는데, 짧은 분량으로 이런 스케일을 표현해 냈다는 게 놀랍다.

[어떤 인연]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견문을 넓히려는 향사집안의 장남. 참외를 몰래 훔쳐 먹기도하고, 잠시 머문 집 처자에게 달콤한 지킬 생각도 없는 사랑약속을 던지고, 우연히 만난 사내에게 위해를 가하기도 한다. 장남은 절에서 명상을 하며, 자신을 돌아본다. 그 때 장남에게 찾아온 한 사내, 그는 누구일까?

그 외에도 '푸른수염 이야기'를 연상시키는 [문], 5대조 타로베와 영혼친구(^^ 읽어 보시길) 이야기인 [타로베의 소개], 하나의 주제를 미스터리 함과 절묘하게 구성한 [구인란]이 인상적이다. [구인란]을 보자.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사장 S씨. 여러 고민에 고개를 숙이고 걷다 어떤 지갑을 줍는다. 놀랍게도 지갑은 '황금알을 낫는 거위'처럼, 열었다 닫을 때마다 돈을 토해낸다. 도대체 이 지갑은 뭐란 말인가.

<앞으로 일어날 일>은 호시 신이치의 수많은 작품 중에서도 빛을 발하는 수작이다.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여러 작품이 한가지 분위기로 이어진다는 것은, 이 작품이 갖는 특별한 의미를 대변한다. 멋진 작품이다. 재미있게 읽었다. 시대물이나 미스터리를 좋아한다면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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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를 학대하라
조이 고블 지음, 최세희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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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일러 있음.

분량은 꽤 되지만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다. 같은 또래 작가라 그런지 문체도 잘 맞았고, 이야기 속 등장하는 문화아이콘도 친근했다. 독특한 설정과 탄탄한 이야기전개, 전반에 깔린 유머코드까지, 재미있는데다 작품성도 빼어나다. 도저히 집중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읽었는데도 완전히 몰입했다.

초반부 구성은 난해하다. 편지로 시작되고, 여러 등장인물의 이야기가 시간흐름과는 무관하게 이어지기 때문에. 할런이 일곱 살인 빈센트에게 보낸 편지는 의아하다. 내용이 도저히 어린아이에게 보내는 거라고 할 수 없다. '너에게 이런 말 하는 사람이 되고 싶진 않았지만, 넌 결코 행복해질 수 없을 거야. (중략) 나는 네가 햇빛 좋고 상쾌한 날 밖에 나가 조용하면서도 분명하게 외치기 바란다. "나는 절대 행복해지지 못할 것이다!"라고.'(p.11) 도대체 할런과 빈센트는 어떤 관계인가?

미디어왕국 'IUI-글로브터너'의 권력자 '포스터 리포비츠'이야기를 해야한다. 모든 권력을 손에 넣었고, 원하는 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리포비츠였지만, 나이를 먹어가고 암과 싸우면서 지난 날을 다른 눈으로 보기 시작한다. 그가 바란 것은, '주류 엔터테인먼트의 가치 체계가 상업이 아닌 예술로 전복되는 모습을 보는 것(p.36)이었고, 그 첫 걸음이 바로 '뉴르네상스 아카데미'(이하 '뉴르네상스')이다. (뉴르네상스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p.40이하 참조)

빈센트는 뉴르네상스가 요구하는 문학적 소양을 인정받는다. 뉴르네상스는 보다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빈센트의 엄마 '베로니카'와 접촉한다. "저희는 장래가 촉망되는 학생들을 선정해 매니저를 지정하고 있는데요, 빈센트가 그 중 한 명으로 뽑혔습니다. (중략) 매니저가 아이들이 창조적 활동에만 집중할 수 있게 도울 겁니다."(p.46) 그래서 빈센트 매니저로 '할런 아이플러'가 파견(p.56)된다. 할런은 베로니카와 계약하는 과정에서 뉴르네상스의 목적, 비밀을 설명한다. "우린 당신 아들의 인생을 비밀리에 조종해서 빈센트를 고통에 빠트리고, 그것으로 그애가 지속적인 창조적 자극을 받아 위대한 예술작품을 만들어내길 원합니다."(p.72) 놀랍다. 예술적 창조를 위해 일부러 고통에 빠트린다니.

포스터 리포버츠가 할런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좀 더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어쨌거나 우리는 고통받는 예술가로 살 수 밖에 없는 운명을 안은 이들을 고를 것이고, 선생님은 그때 개입하셔서 그의 인생이 맨 밑바닥에 이르도록 해야 합니다. (중략) 세 가지 실행해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1) 예술가를 끊임없이 고독하개 할 것. 2) 예술가에게 끝없는 창조적 자극을 줄 것. 3) 예술가가 계속 창작을 하도록 관리할 것, 이상입니다.'(p.119)

여기까지 살펴 봄으로써, 나머지 500페이지를 읽을 수 있는 모든 준비가 끝났다. 제목 '예술가를 학대하라'가 어떤 의미인지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어지는 내용은 매니저 할런이 빈센트를 고통으로 몰아넣는 독특한 이야기이다. 먼저 할런은 빈센트가 키우던 애완견 '위노라'에게 쥐약을 먹여 죽이고(p.127), 베로니카가 사라진 후에는 빈센트의 집을 불태워 버린다.(p.164) 또한 빈센트가 '대프니 설리번'과 사랑에 빠지자, 돈을 주고 그녀를 떠나 보내기까지 한다.(p.200) 이런 할런의 노력(?) 덕분일까? 빈센트의 글쓰기 실력은 나날이 발전(p.175)하며, 그가 만든 '너만을 위해'란 곡은 유명 여가수 앨범에 수록되기에 이른다. 시간이 흐르고, 빈센트는 각종 로열티와 시나리오 판매수익이 계속 늘어 부자가 된다. 즐겁고 풍요로운 삶이 빈센트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그의 성공은 비뚤어진 기반 위에 이룩된 것이었다.

할런과 빈센트의 기묘한 관계는 주목할 만하다. 할런이 베로니카에게 털어놓은 비밀을 빈센트는 모르고 성장 대부분을 할런과 함께했기에, 빈센트는 할런을 아버지와 같은 존재로 여긴다. 할런 역시 자신의 활동을 돌아보고 고민(p.387)한다. 빈센트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다.

중요한 사건이 벌어진다. 'IUI-글로브터너'의 권력자이자, 뉴르네상스 아카데미의 창시자인 '포스터 리포비츠'가 사망(p.365)하고, '드류 프롬프츠'가 새 CEO로 취임한 것(p.372)이다. 리포비츠는 죽기 전에 할런과 빈센트를 만나고 싶어한다. 그가 빈센트에게 건넨 말을 보자. 애정을 느낄 수 있다. "빈센트, 자네가 우리 회사에 얼마나 중요한 존재였는지 잘 알았으면 하는 말을 하고 싶네. 정말로 도움이 됐다는 걸 알아주게. 기회가 있을 때 자네에게 꼭 해주고 싶었던 말이야. 자네의 고통은 헛되지 않았어. 자네와 뉴르네상스의 아이들은 정말 훌륭한 일들을 많이 해냈어. 하지만 자네야말로 가장 눈부시게 해냈어. 자넨 수많은 사람이 눈뜰 수 있도록 해주었어."(p.364)

빈센트에 호의적이었던 리포비츠의 죽음은 비극이었고, 프롬프츠의 CEO등극은 더 큰 비극이었다. 프롬프츠는 뉴르네상스의 노선변화를 꾀한다. 이는 빈센트에 대한 압박으로 이어져, 예술적 창조활동에 소홀하다며 물리적 위해를 가하기까지 한다. 또한 할런이 자신의 노선에 동조하지 않자, 빈센트에게 다른 매니저를 소개(p.452)해 주려고 한다. 이런 갈등 상황에서 또 하나의 중요사건이 발생한다. 빈센트와 할런은 프롬프츠가 주최한 파티에 참석하는데, 파티는 난교파티(p.441)였다. 여기서 사라졌던 베로니카가 등장하고(잘못하면 어머니와 근친상간할 뻔한 상황-_-), 빈센트, 베로니카, 할런, 리포버츠 등을 둘러싼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다.

<예술가를 학대하라>엔 미국문화에 대한 풍자와 비판이 깔려 있고, 다양한 문화아이콘이 등장한다. 그렇기에 미국문화를 잘 안다면 더욱 생생하게 읽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빈센트가 할런에게 노래가사를 인용해 말하는 부분(p.182)에선 해당 노래(Can't Take My Eyes off You)를 안다면 더욱 좋을 것이고, 할런이 베로니카에게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p.47)에선 등장하는 음악가(노에프엑스, 돈 맥클린)를 안다면 더욱 깊게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잘 모른다해도 이 책의 메시지를 이해하는데 지장은 없다. 최세희 역자님께서 꼼꼼하게 역주를 달아주셨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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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친 막대기
김주영 지음, 강산 그림 / 비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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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아련한 추억을 자극하는 아름다운 이야기, 그리고 아기자기하면서 동시에 힘있는 필치의 삽화.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동이었다. <똥친 막대기>의 배경은 소가 농사일을 하고, 쭈그려 앉아 변을 보던 60,70년대이다. 부모님 세대가 아이였던 그 시절, 티 묻지 않은 순수함이 가득했던 그 시절…. 읽는 동안, 답답했던 가슴이 편안해 졌다.

<똥친 막대기>는 '백양나무 곁가지의 대모험, 그(?)가 바라보는 재희네 가족이야기'라 할 수 있다. 놀랍게도 화자는 인간이 아니라, 백양나무의 곁가지이다. 회초리가 되어 재희를 아프게 한 것에 미안해 하고, 똥을 휘저어 오물투성이가 된 모습에 괴로워하는, 사람과 똑같은 녀석.  

백양나무 곁가지가 백양나무에서 떨어진 것은, 농사꾼 박씨에 의해서였다. 암소가 일에 집중하지 못하자 매질하려고 박씨는 곁가지를 꺾는다.(p.24) 이렇게 대모험은 시작되었다.

재희는 사랑스런 아이다. 화자가 아니기 때문에, 내면묘사엔 한계가 있지만, 사랑스러움이 묻어나는 장면이 여럿 있다. 자기가 맞아야 할 회초리를 구한 다음, 종아리를 시험삼아 톡톡 두드려 보는 모습(p.76), "요놈의 개구리 잡아서 울 엄마 몸보신 해 주어야지."(p.131)라며 개구리를 잡는 모습(p.130), 놀리는 아이들에게 야무지게 혼줄을 내는 당찬 모습(p.120) 등. 생각만 해도 귀엽다.

백양나무 곁가지는 이런 재희를 좋아한다. 봇도랑에 버려진 후엔 손꼽아 재희를 기다리고(p.139), 재희가 회초리를 구하러 나오자, '나는 회초리 감으로 그녀에게 선택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선택되는 행운까지만 누리고 싶었을 뿐 그녀를 내려치는 회초리로서의 역할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p.75)라며 깊은 애정을 드러낸다.

백양나무 곁가지는 박씨에게 꺾여져 나무 막대기가 되었다가, 재희네 집으로 가서는 회초리, 똥친 막대기, 낚시대가 된다. 딱딱하게 응어리진 똥오줌을 휘저어야 했고, 낚싯대가 되어 허리가 부러질뻔 했고, 홍수에 떠내려가 사라질 위험에까지 처했지만, 결국 뿌리를 내려야 할 곳을 찾는다.(p.161)

<똥친 막대기>는 전 국민이 읽어야 할, 전 국민이 감동할만한 작품이다. 울보소녀 재희를 보며, 부모님 세대는 향수에 잠길 수 있고, 아이들은 부모님의 어린 시절을 간접체험할 수 있다. 지나친 생각일지 모르지만, 이 작품은 국어교과서에 실려 널리 읽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백양나무 곁가지의 모험에서 수많은 교훈과 감동을 느낄 수 있기에. <똥친 막대기>는 황순원의 <소나기>처럼 오래오래 사랑받을만한 명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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