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이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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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쓸쓸한 얼굴을 하고 있는 건 아마 내가 쓸쓸하기 때문일 거야. 하지만 나는 네 얼굴에 내 마음이 비칠 때까지 내가 쓸쓸하다는 것조차 전혀 깨닫지 못했어."-1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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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건강법 - 개정판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민정 옮김 / 문학세계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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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작품을 과대평가 했을까? 작가에 대한 애정이 식은 걸까? 다시 읽은 <살인자의 건강법>은 무척 지루했다. 특히 '니나'가 등장하기 전(~p.112), 네 명의 기자를 농락하는 '프레텍스타 타슈'의 모습은, 지나치게 과장되어 거북했다. 물론, 작가의 의도적인 설정이지만, 자기중심적 궤변과 독설을 100여 페이지나 읽는다는 것은 어찌 되었건 힘든 일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에 빛나는 팔순의 노작가 '프레텍스타 타슈'. 그가 곧 사망할 거라는 소문이 퍼지자 전 세계의 기자들이 단독 인터뷰를 하겠노라고 나선다. 선생의 비서는 '엄선해서' 인터뷰 요청에 응하고, 드디어 첫 인터뷰가 이루어진다.(p.11) 거동조차 힘든 여든 세 살의 뚱보 작가는 특유의 독설과 언변으로 기자를 농락한다. 다른 기자들 역시 인터뷰를 하다 봉변만 당하고, 노작가의 자신감 넘치는 궤변은 극에 달한다.

"당신 같은 미련퉁이가 감히 이 프레텍스타 타슈를 찾아와 성가시게 굴다니. (중략) 후레자식 같으니! 나가! 가서 기자들한테 프레텍스타 타슈는 존경받아 마땅한 사람이라고 전해!"(p.30) "호감을 사? 내가? 살다 보니 별말을 다 듣는구먼. 게다가 당신이 뭔데 날 찿아와서 훈계를 늘어놓는 거요? 내 영광스러운 죽음이 채 두 달도 남지 않았는데 말이오. 대체 당신이 뭐길래? '실례를 무릅쓰고'라던데, 실례를 무릅쓸 생각일랑 하지 마시오! 자, 이제 나가시오, 성가시니까."(p.68)

여성기자 '니나'가 등장하면서 분위기가 반전된다. 프레텍스타 타슈가 드디어 호적수를 만난 것. 둘은 내기를 한다. 논쟁에서 지는 쪽이 상대방 발치에서 기기로.(p.121참조) 이제부터 뚱보 노작가와 여기자의 격렬한 논쟁은 시작이다.

<살인자의 건강법>은 대부분이 기자와 작가가 주고받는 논쟁이다. <시간의 옷>과 같은 구성인데, 이는 정말 대단한 재능이다. 하지만, 대화로만 구성된 작품이 '좋은 작품'인지는 모르겠다. 구성의 독특함과 기발함을 얻는 대신, 입체적인 구성과 내밀한 묘사 가능성은 포기해야 했기 때문이다. (작가가 초반, '프레텍스타 타슈'를 지나치게 과장한 것도 오로지 대화로만 등장인물을 부각해야 했기 때문 아닐까?)

'프레텍스타 타슈'는 아멜리 노통브 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단한' 캐릭터다. <오후 네 시>의 베르나르뎅, <머큐리>의 롱쿠르, <공격>의 에피판 같은. '니나'는 지적이며, 자신감 넘치는 인물이다. 출간된 타슈의 작품 모두를 읽었으며, 베일에 싸인 타슈의 어린 시절과 사랑에 대해 알고 있다. 이 점은 그녀의 정체에 의구심을 품게 했다. 타슈 역시 그녀에게 묻는다. 당신은 도대체 누구냐고.(p.224) 니나가 말하는 프레텍스타 타슈의 어린 시절, 이상한 사랑, 그리고 결말. 이것은 언급하지 않겠다. 읽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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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이사카 고타로 지음, 인단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6월
구판절판


"즐겁게 살기 위해서는 딱 두 가지만 지키면 돼. 클랙슨을 울리지 않는 것과, 사소한 일에는 신경 쓰지 않는 것. 그것뿐."-2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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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감한 동물 호시 신이치의 플라시보 시리즈 33
호시 신이치 지음, 윤성규 옮김 / 지식여행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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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감한 동물>은 현재까지 출간된 플라시보 시리즈의 마지막 권이다. 이후 작품의 출간여부가 미정이라 하니, 어쩌면 말그대로 '플라시보 시리즈의 마지막 권'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런 상징성에 걸맞게 <민감한 동물>엔 빼어난 작품이 많다. 장편으로 선보였으면 했던 놀라운 스토리의 작품, 유명한 이야기를 차용한 작품, 한편의 시 같은 작품 등. 시리즈의 피날레는 역시 화려하고 풍성했다.

[세월]부터 이야기 하고 싶다. 이 작품은 소설이 아니다. 에세이, 혹은 장시라고 할 수 있다. 분량은 한 페이지가 채 되지 않지만, 잔잔한 여운과 묵직한 울림은 대단했다. 삶을 돌아보며 회한에 잠긴 인생 선배의 이야기라 할까?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그리 길지 않으니 작품 전체를 소개하겠다.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젊고 아름답고, 무얼 봐도 즐겁고 달콤하고 향기로운 시절의 어느 날. 빨간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가 문득 눈에 들어온 '절망'이라는 글자. 그게 왠지 마음에 걸려 책을 덮고, 나에게도 언젠가 절망이 찾아오지 않을까 하고 상상해 본다. 그리고 미래의 자신이 절망에 빠져 있는 모습이 이상하리만큼 선명하게 머릿속에 떠오른다. 당황스러워서 서둘러 그것을 머릿속에서 쫓아낸다. 그런 일이 있을 리가 없지. 지금 이렇게 즐거운 걸. 그리고 앞으로도 행복으로 가득한 날들이 계속될 거야. 꺼림칙한 환영은 지워 버리자. 하지만 세월이 흘러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나고 믿고 있던 것들에게 배신을 당하게 되는 때가 온다. '이게 바로 절망이구나'하고 중얼거린다. 힘없이 창백해진 얼굴로 침대 위에 벌러덩 쓰러진다. 그 순간, 멀리 지나버린 근심 없던 시절의 어느 날이 선명히 떠오른다. 그때 앉았던 의자의 색이 빨간색이었다는 것까지…….(p.180)

[민감한 동물]과 [우주 영웅]은 설정도 기발하고 스토리 전개도 좋다. 순식간에 빠져들었는데, 짧은 분량으로 이 정도의 몰입도를 선사한다는 건 쉽지 않을 일이다. [민감한 동물] 빌딩경비로 일하는 청년이 있다. 순찰을 돌던 그는 놀라운 장면을 목격한다. 쥐들이 떼를 지어 이동하는 모습. 불길한 일의 전주는 아닐까? 뭔가 나쁜 일이 벌어지는 건 아닐까? 고민하던 청년은 다른 빌딩으로 배치해 달라고 요청한다. 하지만, 그 빌딩에서도 쥐들은 이동은 계속 된다. 이동하는 쥐떼, 무슨 비밀이 있을까?

[우주영웅] 구원을 요청하는 통신문이 소형로켓에 담겨 지구로 온다. 뛰어난 우주 경비대원인 주인공은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그 별을 돕기 위해 떠난다. 그런데 우주선 안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린다. 상사의 딸이 몰래 숨어 들어온 것이다. "당신, 멀고 먼 미지의 별에 가는 거지요? 나도 보고 싶어요. 같이 데려가 주세요."(p.21)라며. 이 설정은 생각해 볼만하다. 지금까지 호시 신이치의 SF엔 오로지 남성 주인공 뿐이었고 여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남녀가 함께 우주로 가는 설정은 신선하다. (물론 이 작품도 여성의 존재의의는 미미한데 이게 한계라면 한계) 주인공은 위험에 처한 별을 구할 수 있을까? 위 두 작품은 장편으로 만들어도 재밌을 거 같다. 청년의 일상과 빌딩의 비밀 부분, 우주 경비대원과 상사의 딸의 우주여행 에피소드, 로맨스를 추가해서.

전 자동화, 인간화된 컴퓨터 시스탬 이야기인 [사무실 요정], 꿈과 현실을 넘나드는 구로쓰 살해기 [살의]는 의아하다. 이전 플라시보 시리즈에서 이미 본 작품이다. 편집상의 실수인지, 아주 유사한 다른 작품인지는 찾아서 비교해 본 후에야 정확하게 말할 수 있지만, 전자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30권 이상인 시리즈라 당장 비교하기는 무리) 호시 신이치는 여러 곳에 기고했고, 이후에 작품의 제목을 바꾼 게 상당수다. 아무래도 플라시보 시리즈의 편집자가 '제목이 바뀐 같은 작품'을 다른 작품으로 착각한 것 같다. 이것도 하나의 에피소드네.

아담과 이브 이야기가 차용된 [포획한 생물], 알라딘과 요술램프 이야기가 차용된 [성급한 녀석]도 괜찮았고, 자칭 배우지망생 여자와 스릴러 작가이야기 [반주자], 타임머신을 타고 영주가 있던 시대로 날아간 박사와 조수이야기도 재미있었다. 3개월에 걸쳐 플라시보 시리즈 33권의 서평을 끝냈다. 행복했다. 다른 어떤 말도 필요 없다. 저 한마디면 충분할거라 생각한다. 당분간 호시 신이치의 새로운 작품을 볼 수 없다는 생각이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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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zydevil 2008-10-22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플라시보 시리즈의 대장정을 마감하셨군요. 그간 고생하셨어요. 덕분에 좋은 이야기 많이 소개받았습니다.

쥬베이 2008-10-23 02:06   좋아요 0 | URL
아^^ 고맙습니다ㅋㅋㅋ
저도 처음 시작할때는 이렇게 33권이나 서평할지는 몰랐어요...
사실 호시 신이치는 저도 처음이었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요ㅋㅋㅋ
 
눈의 정령 호시 신이치의 플라시보 시리즈 32
호시 신이치 지음, 윤성규 옮김 / 지식여행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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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정령>은 '플라시보 시리즈의 전형'과 같은 작품이다. SF를 기본으로 다양한 느낌의 쇼트-쇼트가 실려 있고, 수록 작품수도 평균적이다. 아주 빼어난 작품은 없지만 전체적인 수준이 고르다. 수록 작품을 순서대로 훑어보겠다.

(스포일러 있을지도) [해안에서 있었던 소란]은 호시 신이치 작품 속 귀신이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괴기스런 전형적인 이미지의 귀신은 없다. 젊고 매력적인, 심지어 '에로틱한 분위기까지 자아내는'(p.9) 귀신이 있을 뿐이다. 여름 해변가에서 벌어진 색다른 설정의 대 소동극, 기대 하시길. [비애]는 두 페이지 분량의 전형적인 쇼트-쇼트 작품이다. 그 이상의 의미를 찾긴 어렵다. [여가의 예술]은 멋진 작품이다. 사회비판의식이 강렬하다. '우리 주변의 예술, 비평활동, 나아가 모든 관계가 저렇지 않을까?'란 생각까지 들었다.

[여우 녀석]은 가진 자의 돈을 훔쳐 가난한 이를 돕는 의적(?) '여우 녀석'에 대한 이야기다. 재미있었지만 결말은 아쉽다. [유품]은 SF와 공포가 결합된 작품이다. 약간 익숙한 설정인데, 호시 신이치의 아이디어를 재가공한 것을 접한 듯하다. 우주 탐사를 마치고 우주기지에 착륙하려는 젊은 두명의 과학자. 화자의 동료에겐 '리라'라는 예쁜 여자친구가 있다. 착륙도중 사고가 나고 둘은 비상탈출을 하는데…

[기업 내의 성인]은 약간 의아하다. 작품은 훌륭하지만, 이전 플라시보 시리즈에서 이미 본 적이 있다. 어찌 된 거지? 30편 이상이라 동일제목인지, 정말 결말까지 똑같은지 확신은 못하지만 분명 유사하다. 편집상의 실수인지 미묘하게 다른 작품인지 찾아 봐야겠다. [불길한 지점]은 <왕자가 되지 못한 왕자>의 [시체 만세]처럼 다양한 이야기가 맞물린 구성이다.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운송 중], [우주의 검문소], [버튼 혹성에서 온 선물], [발송인], [목걸이], [미의 신] 등은 SF다. [버튼 혹성에서 온 선물]을 보자. 도산 직전에 N전기회사,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하늘의 별에 소원을 빌기로 한다. 뜻밖에도 어떤 별에서 반응을 보인다. 사정을 전해들은 그들은 여러 장치의 설계도를 보내준다. 버튼 하나면 알아서 목적지로 가는 자동차, 버튼 하나면 수염을 깎고 몸을 씻겨주는 장치 등등. N전기회사는 기사회생, 어마어마한 수익을 올린다. 그러던 중 '어떤 별'에선 특이한 장치의 설계도를 보낸다. 어떤 일이 벌어질까?

[미의 신]은 코메디코드가 가미된 SF다. 화자는 고고학자로 우주 탐험중인 탐사대의 일원이다. 탐사대의 수장은 '도깨비 정장'이라 불리는 특이한 외모의 소유자. 이들은 한 행성에서 흰색 정육각형 모양의 건조물을 발견하고 조사를 시작한다. 화자는 이것이 '종교적 의미의 미용실'이란 걸 밝혀내는데.

표제작인 [눈의 정령]은 미스터리한 분위기가 일품이었고, 똑똑한 아내 몰래 술집에 가는 남편이야기인 [잔잔한 즐거움]의 반전도 좋았다. 마지막 작품인 [복수]는 충격적인 작품이다. 아버지를 치고 달아난 뺑소니범을 추격하는 아들의 이야기다. 작가는 해피엔드라고 끝내고 있지만, 섬뜩함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눈의 정령>, 역시 멋진 작품이다. 작가가 맘껏 펼쳐낸 28가지 매력을 이 한 권으로 느낄 수 있다니, 그것만으로도 행복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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