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눈의 정령 ㅣ 호시 신이치의 플라시보 시리즈 32
호시 신이치 지음, 윤성규 옮김 / 지식여행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눈의 정령>은 '플라시보 시리즈의 전형'과 같은 작품이다. SF를 기본으로 다양한 느낌의 쇼트-쇼트가 실려 있고, 수록 작품수도 평균적이다. 아주 빼어난 작품은 없지만 전체적인 수준이 고르다. 수록 작품을 순서대로 훑어보겠다.
(스포일러 있을지도) [해안에서 있었던 소란]은 호시 신이치 작품 속 귀신이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괴기스런 전형적인 이미지의 귀신은 없다. 젊고 매력적인, 심지어 '에로틱한 분위기까지 자아내는'(p.9) 귀신이 있을 뿐이다. 여름 해변가에서 벌어진 색다른 설정의 대 소동극, 기대 하시길. [비애]는 두 페이지 분량의 전형적인 쇼트-쇼트 작품이다. 그 이상의 의미를 찾긴 어렵다. [여가의 예술]은 멋진 작품이다. 사회비판의식이 강렬하다. '우리 주변의 예술, 비평활동, 나아가 모든 관계가 저렇지 않을까?'란 생각까지 들었다.
[여우 녀석]은 가진 자의 돈을 훔쳐 가난한 이를 돕는 의적(?) '여우 녀석'에 대한 이야기다. 재미있었지만 결말은 아쉽다. [유품]은 SF와 공포가 결합된 작품이다. 약간 익숙한 설정인데, 호시 신이치의 아이디어를 재가공한 것을 접한 듯하다. 우주 탐사를 마치고 우주기지에 착륙하려는 젊은 두명의 과학자. 화자의 동료에겐 '리라'라는 예쁜 여자친구가 있다. 착륙도중 사고가 나고 둘은 비상탈출을 하는데…
[기업 내의 성인]은 약간 의아하다. 작품은 훌륭하지만, 이전 플라시보 시리즈에서 이미 본 적이 있다. 어찌 된 거지? 30편 이상이라 동일제목인지, 정말 결말까지 똑같은지 확신은 못하지만 분명 유사하다. 편집상의 실수인지 미묘하게 다른 작품인지 찾아 봐야겠다. [불길한 지점]은 <왕자가 되지 못한 왕자>의 [시체 만세]처럼 다양한 이야기가 맞물린 구성이다.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운송 중], [우주의 검문소], [버튼 혹성에서 온 선물], [발송인], [목걸이], [미의 신] 등은 SF다. [버튼 혹성에서 온 선물]을 보자. 도산 직전에 N전기회사,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하늘의 별에 소원을 빌기로 한다. 뜻밖에도 어떤 별에서 반응을 보인다. 사정을 전해들은 그들은 여러 장치의 설계도를 보내준다. 버튼 하나면 알아서 목적지로 가는 자동차, 버튼 하나면 수염을 깎고 몸을 씻겨주는 장치 등등. N전기회사는 기사회생, 어마어마한 수익을 올린다. 그러던 중 '어떤 별'에선 특이한 장치의 설계도를 보낸다. 어떤 일이 벌어질까?
[미의 신]은 코메디코드가 가미된 SF다. 화자는 고고학자로 우주 탐험중인 탐사대의 일원이다. 탐사대의 수장은 '도깨비 정장'이라 불리는 특이한 외모의 소유자. 이들은 한 행성에서 흰색 정육각형 모양의 건조물을 발견하고 조사를 시작한다. 화자는 이것이 '종교적 의미의 미용실'이란 걸 밝혀내는데.
표제작인 [눈의 정령]은 미스터리한 분위기가 일품이었고, 똑똑한 아내 몰래 술집에 가는 남편이야기인 [잔잔한 즐거움]의 반전도 좋았다. 마지막 작품인 [복수]는 충격적인 작품이다. 아버지를 치고 달아난 뺑소니범을 추격하는 아들의 이야기다. 작가는 해피엔드라고 끝내고 있지만, 섬뜩함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눈의 정령>, 역시 멋진 작품이다. 작가가 맘껏 펼쳐낸 28가지 매력을 이 한 권으로 느낄 수 있다니, 그것만으로도 행복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