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로, 정신의 힘 예술가의 삶과 진실 2
프레드 베랑스 지음, 정진국 옮김 / 글항아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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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얼마 전 '앙드레 드 헤베시'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방랑>이 레오나르도를 생생하게 그려내지 못한다고 아쉬워했다. 조반니 파피니의 미켈란젤로 전기와 비교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앙드레 드 헤베시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던 건 아닐까? 레오나르도와 관련된 자료가 부족하기 때문에. 스스로 콘디비에게 구술자서전을 쓰게 한 미켈란젤로에 비해 레오나르도 다 빈치, 라파엘로 관련 자료는 많이 부족하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방랑>에서 앙드레 드 헤베시가 애매모호한 기행문 형식을 취한 것도, 사료부족으로 인한 불가피한 선택은 아니었을까? 그에게 했던 비난은 제한적으로 이해했으면 좋겠다.

이제 막내격인 라파엘로의 전기, <라파엘로, 정신의 힘>이다. 프레드 베랑스는 사료가 절대 부족한 상황에서 라파엘로를 그려내기 위해 힘든 여정을 떠난다. 먼저 라파엘로가 태어나기 전 이탈리아의 역사를 돌아보고, 그에게 영향을 주었을 법한 역사적 사건ㆍ배경위주 서술을 한다. (제1부) 그리고 제2부에서는 라파엘로의 주변 인물을 살피면서 흩어져 있는 라파엘로의 흔적을 더듬는다. 직접적으로 라파엘로가 얽힌 사랑이야기(전설은 잠깐 이야기 된다.p.323)나 충격적 사건 따위는 없지만, 차근차근 위대한 예술가의 자취를 찾아가는 여정은 위대했다.

제1부는 다양한 역사적 인물과 사건이 부각되기 때문에, 약간의 세계사적 지식이 필요하다. 라파엘로가 페루자에 머물 때 벌어졌던 '보르자의 로마뉴 침공'(p.129)이나 라파엘로의 고향에서 벌어진 '체사레의 우르비노 공화국 침공'(p.151) 같은 것들. 저자는 이런 사건을 라파엘로 중심으로 구성하고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 살핀다. 생소한 부분이라 다소 어려웠지만, 프레드 베랑스의 탐구적이고 세밀한 서술은 마음에 들었다.

제2부에서 놀란 건 작가의 미켈란젤로 비판이다. 프레드 베랑스는 브라만테,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등과 라파엘로를 비교하는데, 특히 라파엘로와 사이가 좋지않던 미켈란젤로를 심하게 비난한다.

- "그(미켈란젤로)가 머물렀던 피렌체, 볼로냐, 로마 어디에서나 싸움꾼처럼, 그는 주변의 모든 것을 물리치고 텅 비워놓았다. 그의 성격은 그의 천재성에 누가 되었다."(p.357)

한마디로 성격이 X같아서 친구도 없이 혼자 쓸쓸했다는 말이다. 프레드 베랑스는 미켈란젤로가 페루지노를 공공연히 얼간이 취급을 한 것, 대노상에서 레오나르도를 모욕한 것, 시뇨렐리가 일거리를 엊고자 하는 걸 방해한 일(p.356이하), 라파엘로의 패배를 위해 세바스티아노에게 데생을 제공한 것등을 언급한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얽힌 보다 충격적인 이야기도 하는데,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 '십 년 뒤에(길에서 미켈란젤로가 레오나르도를 모욕했던) 두 사람이 다시 마주치게 된 로마에서, 미켈란젤로는 레오나르도를 끈질기게 괴롭혔다고 한다. 이에 레오나르도는 바티칸에서 생활하면서 레오 10세의 찬사를 받았고, 줄리아노 데 메디치는 그를 떠받들었는데도, 유배지에서 죽게 될 줄 알면서도 떠나기로 했다고 한다.'(p.356) 이 글을 그대로 믿는다면, 미켈란젤로는 그야말로 악당 아닌가?

- "미켈란젤로는 귀족적 태도를 보였다. 그는 자신이 독일 황제의 후손이라고 믿고 있었는데, 이는 개인의 힘만을 존중했던 당시 그 나라에서는 우스운 처신이었다. 그는 요즘 말로 하자면, '콤플렉스'에 시달렸다. 은밀한 수치심이 그를 괴롭혔는데, 이는 최악의 수치였다. 그는 사랑 때문에 수치스러워했다. 동성애자이기 때문이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불쾌하게 했기 때문이다. 그는 결코 거물을 공평하게 대하지 못했고, 그들을 경멸하면서도 그들 앞에서는 비굴했다."(p.358)

동성애? 미켈란젤로가 독일 황제의 후손이라 믿었다는 건 알고 있었고, 위 마지막 문장도 어느 정도 공감하지만 동성애라니.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아무튼 프레드 베랑스의 신랄한 비판은 충격적이다.

이런 비판 다음에 미켈란젤로와 구별되는 라파엘로의 모습을 대조한다. '라파엘로는 미켈란젤로처럼 잘난 척을 하지 않았다', '미켈란젤로가 까다롭고 퉁명스러우며, 투덜대는 사람이었던 데 반해, 라파엘로는 우르비노 공작 귀도발도의 정신적 아들로서 젊은 왕자 같은 인상을 준다.', '라파엘로는 사람을 맺어주는, 사랑하는 지극한 천성을 타고났다. (…) 오직 모세의 조각가 미켈란젤로만 그를 신랄하고 극성맞게 압박했다.'(p.359이하)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인간 라파엘로를 고찰하려는 작가의 노력은 위대한 작품을 탄생시켰다. 짧은 생애를 살았던 라파엘로는 그의 작품처럼 우아하게 다가왔다. 특히 주변 인물과 비교해가며 라파엘로를 형상화한 노력은, 사료의 절대부족이란 어려움을 극복하는 원동력이 됐다. <라파엘로, 정신의 힘>에서 거장의 위대한 힘을 느껴 보시길.

 

* 글항아리 예술가전기 시리즈의 또 다른 묘미는 앞부분에 실린 올컬러 작품사진이다. 거장의 작품을 삶과 함께 접할 수 있다는 것, 그것처럼 행복한 게 또 있을까? 전기를 읽고 나서 본 작품은 분명 뭔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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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zydevil 2009-04-07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라파엘로는 다빈치나 미켈란젤로에게 늘 밀려 넘버3 벗어나지 못하는 이미자라 늘 관심가는 화가임다. 읽어보고 싶지만 요즘 편식병이 심각하여~~ ㅠㅠ

쥬베이 2009-04-08 00:17   좋아요 0 | URL
그쵸? 넘버3ㅋㅋㅋ
이 책, 소장가치 있어요 나중에 관심가면 읽어보세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방랑 예술가의 삶과 진실 3
앙드레 드 헤베시 지음, 정진국 옮김 / 글항아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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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방랑>은 <라파엘로, 정신의 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와 더불어 '시리즈'로 출간된 책이다. 통일성 있고 아름다운 표지에 혹해 '같은 작가의 작품이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작가가 다르다. 역시 작품 스타일이나 미묘한 느낌에 차이가 있다. 이런 차이는 직접적으론 작품별-위에 세 작품-비교를 가능하게 하고, 간접적으론 전기문학의 다양성을 접할 수 있게 한다. 이하에서는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와 이 작품을 비교해 보며 이야기하겠다.

1) 구성과 문학적 시도.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이하 B)가 인물, 사건별로 각 장을 짧게 끊는 데 반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방랑>(이하 A)은 그렇지 않다. 작가는 문학적 시도를 하면서 소설처럼 길게 이어지는 서술을 한다. 조반니 파피니가 우려했던 지루함은 문학적 장치로 어느 정도 희석되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A에서는 B에서 볼 수 없었던 문학적 과장과 수사가 상당하다. 예를 들어, p.39 둘째 문단과 p.42 '집은 정원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포도밭 허리쯤에 무성한 올리브나무들로 포도잎이 얽혀 있었다. 이마에 붉은 양모 술을 내려뜨리고 희고 큰 황소들이 아르노 강의 계곡으로 이어지는 흙 먼지투성이 길에서 수레를 끌었다.'같은. 이는 전기의 딱딱함을 완화하지만, 서술의 객관성내지 신뢰성을 저하시키기도 한다.

2) 역사추적과 기행문. B는 미켈란젤로를 둘러싼 사건과 주변인물을 분석하고 추적하는 역사추적 같은 느낌이다. 반면 A는 작가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흔적을 되짚는 기행문 성격이 강하다. 조반니 파피니가 엄청난 사료를 바탕으로 추적하고 파헤쳐 미켈란젤로에 근접했지만, 앙드레 드 헤베시는 말 그대로 기행,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흔적을 돌아보는데 그쳤다. B를 읽고는 미켈란젤로의 외양, 성격, 습관 등 거의 모든 것이 생생하게 다가왔다. 그러나 A에서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극히 흐릿하다.

3) 등장인물과 내면묘사. A와 B의 등장인물 수는 별 차이 없다. 하지만, A의 경우 등장인물을 레오나르도 다 빈치 중심으로 엮어내지 못한다. 인물 간 갈등이나 교류도 미미하며, 내면심리를 파악할 수 있는 사건도 거의 소개되지 않는다. 결국 이들은 각기 따로 놀고 이야기는 산만해진다. 전체적으로 어수선한 느낌.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방랑>을 읽고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를 접했다면 어땠을까? 감탄하고 다시 한번 감탄하지 않았을까. 전기문학의 걸작 중 걸작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를 이미 접했다는 게 최대 비극이다^^ 기대치도 한껏 높아진 상태에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방랑>의 단점은 더욱 크게 다가왔다. 마치 김연아 선수 다음에 연기하는 선수가 별볼일 없어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이 작품을 통해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가 얼마나 빼어난 명작인지 재확인했다는 게 조금은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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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zydevil 2009-03-28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재로서의 삶도 다 빈치보다 미켈이 훨씬 흥미로운 거 같아요. 다 빈치는 부침없이 앨리트 코스만을 밟아온 선동열 선수같다고나 할까요?

쥬베이 2009-03-28 16:21   좋아요 0 | URL
ㅋㅋㅋlazydevil님 말씀 공감합니다.
미켈란젤로가 얽힌 사건도 많고, 좀 특이한 인물이기도 했고
이야기거리는 훨신 많았을거에요^^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
온다 리쿠 지음, 박수지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9월
절판


여자는 과거를 가차 없이 끊을 수 있는 생물이다. 남자가 역사소설에서 인생의 지혜를 얻으려고 하거나 과거의 여자들을 자신의 훈장처럼 떠벌리는 동안에도 여자는 현재와 미래만을 생각한다. 물론 과거에 연연하는 여자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내 안에도 그런 여자의 일면이 있음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나의 경우, 평소에는 그런 여자를 다른 방에 가둬 두고 있다. 나중에 시간이 넉넉하고 찬찬히 자기 자신을 동정하고 싶은 기분이 들 때, 손님으로 쓰려고 대기시켜 놓은 것이다. 어저다 한 번씩 거실로 불러내서 마음껏 자기 연민에 빠지기 위해. 여자에게는 자기 연민이라는 오락이 있으니까.-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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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 박사와 하이드씨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강미경 옮김, 마우로 카시올리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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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않았음에도 읽었다고 믿는 경우가 있다. 생 텍쥐페리의 <어린 왕자>같은 경우, 10여년 동안 저랬다. 교과서에 실린 일부를 공부하곤 착각에 빠진 것이다. 또한 널리 알려진 명작이거나, 어린 시절 아동용 전집으로 제목만 접한 책은 저런 함정에 빠지기 싶다. <지킬박사와 하이드씨>,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이 작품을 읽었다고 믿었지만 아니었다. 우습지만 차라리 다행이다. 덕분에 '첫 만남'은 멋진 삽화가 곁들여진 제대로 된 완역본이 되었으니 말이다.

<지킬박사와 하이드씨>는 여러 출판사에서 출간되었지만, 문학동네 판의 의미는 남다르다. 첫째, 기존의 오류를 바로잡은 정확한 번역. 둘째, 마우로 카시올리의 생생한 올컬러 삽화. 셋째, 읽기 편하고 깔끔한 장정이다. 하나씩 살펴보자.

1) 정확한 번역. p.23에는 변호사 어터슨이 친구 래니언에게 지킬박사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있다. "이보게 래니언, 자네와 나 정도면 헨리 지킬의 가장 오랜 친구라고 할 수 있겠지?" / "글쎄, 난 '그의 젊은 친구'라고 하는 편이 좋겠는데." 래니언의 답은 약간 엉뚱하다. 하지만, 이건 언어유희였다. 역자는 각주를 통해 대화 속에 숨겨진 언어유희를 설명하고, 나아가 의미를 분석한다. (구체적인 소개는 피한다)

p.26에도 비슷한 부분이 있다. 어터슨은 정체불명의 사내 '하이드'를 찾기로 하고 결의를 다진다. 어터슨의 다짐, "그자가 숨는 자라면 나는 찾는 자가 될 테다." 역시 언어유희를 하고 있는데, 역자는 각주를 통해 이를 설명한다. 이런 깔끔하고 상세한 번역은, 작품속으로 한층 더 빠져들게 하고 어린 독자들의 작품이해를 돕는데 일조한다.

2) 생생한 올컬러 삽화. 하이드의 외양은 충격적 설정의 백미다. p.31에서 직접 묘사하지만, 글만으로는 약간 아쉬는 감이 있다. 하이드의 모습은 시각적 이미지로 보는 게 훨신 생생하지 않은가? 마우로 카시올리의 삽화는 이런 문제를 일거에 해소한다. 털 한 올까지 생생한 삽화를 통해 하이드는 오싹하게 다가온다. (p.28, p.116 참조하시길) 또한 삽화는 작품의 독자층 확대와도 관련을 가진다. 삽화가 실려 있기에 어린 독자들도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 '그림과 함께 읽는' 명작은 성인독자에게는 추억과 색다름을, 어린 독자에게는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3) 편하고 깔끔한 장정. 작품 장정은 특이하다. 삽화가 있기 때문에 세로보다 가로가 길고, 여백도 넓다. 신국판이나 4*6양장만 보다 보니 처음엔 어색하기도 했는데, 읽어보니 더 좋았다. 여백 중간 중간 삽화가 있어 재미있었고, 가로가 긴 것도 독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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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zydevil 2009-03-22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전 펭귄클래식 출간본으로 읽어보려했는데... 그림에 호기심이 가네요. 근데 솔직히 표지그림은 쫌 그래요. 너무나 지극히 호러블하다고나 할까요~~~^^;;

쥬베이 2009-03-24 22:39   좋아요 0 | URL
저도 팽귄클래식 마음에 들더라고요..
표지도 멋지고..모을까 말까 고민중ㅋㅋㅋ

비로그인 2009-04-11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은 고양이를 읽고, 재미난 삽화와 정확하고 섬세한 번역에 감동을 받아 강미경님 번역본으로 다른 작품을 찾고있던 중에 이렇게 책을 발견하게 되었네요.
지킬박사와 하이드는 저 역시 펭귄으로 구입을 하긴 했으나 선뜻 읽어보진 못했거든요.
역시나 삽화에 먼저 눈길이 가네요^^ 그리고 번역은.. 쥬베이님 서평덕분에 다시한번 믿음이 가네요.. 어서 읽어보고싶어요. 감사합니다^^

쥬베이 2009-04-11 17:12   좋아요 0 | URL
와 반가워요^^ 삽화도 멋지고 번역도 좋고 나중에 펭귄판하고 비교해 보세요^^

lazydevil 2009-05-13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학동네 판 <지킬 박사>의 삽화를 봤는데 정말 원작의 분위기를 잘 살렸더군요.
표지만 보고 조금 의구심이 들었는데, 실제로 보니 대단했습니다.
언제 역자 달아논 주석도 살펴봐야겠어요~~^^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1 예술가의 삶과 진실 1
조반니 파피니 지음, 정진국 옮김 / 글항아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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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를 읽으며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일방적인 미화와 과장이다. 특성상 일정 정도 호의적인 서술은 불가피하지만, 찬양수준까지 이르면 곤란하다. 조반니 파피니의 이 작품은 저런 비판에서 어느 정도 자유롭다. 균형 있는 시각을 견지하려는 노력이 여러 곳에서 눈에 띄기 때문이다. (자세한 건 후술) 뿐만 아니다. 기존 전기의 문제를 비판적으로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각 장을 짧게 짧게 끊은 구성이다. 이는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는 전기의 문제점을 극복하는 토대가 된다. 예를 들어, 일본이란 나라를 소개한다고 하자. 연대기대로 쭉 소개할 수도 있고, 인구ㆍ기후 등 관련항목으로 나누어 소개할 수도 있다. 작가는 관련항목별 소개를 기본으로 하되, 항목을 유기적으로 연결한다. 결국, 두가지 방법의 장점을 모두 손에 넣는다. 작가의 말을 들어보자. "너무 지루하게 늘어지지 않고, 불필요한 군더더기나 현학을 피하고서, 또 확고한 역사적 기초 위에 근거하면서도 읽기 쉽고 가능하다면 술술 읽을 수 있는 책을 쓰려고 했으며… (중략) 각 장은 짧게 끊었다. 가독성을 높이고 찾아보기도 쉽게 하려고 했다. 하지만 연대적 순서라든가 서술은 서로 방해되지 않는다."(p.40)

초반부 100페이지까지는 정신이 없었다. 이름조차 생소한 많은 인물이 등장한데다, 이탈리아 역사도 한번 되짚어 봐야 했기에. 하지만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작품의 진가를 느낄 수 있었다. 등장인물간 대화가 없다는 점만 빼면, 소설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로 '재미'있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거장 미켈란젤로 역시 평범한 인간이었음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들, 레오나르도 다 빈치ㆍ라파엘로 와의 갈등이다.

1) 잘 알려지지 않은 미켈란젤로의 모습 (충격적 에피소드)

- 조각가 '피에트로 토리자노'에게 구타당해 코뼈가 주저 앉다.

미켈란젤로의 성격은 의외였다. 거장다운 진중하고 차분한 성격의 소유자일 거라 생각했는데, 공격적이며 독선적인 면이 있었다. 그는 자신과 방향이 다를 경우, 엄청난 비난과 조롱을 퍼부어 댔다. 구타사건도 그의 이런 성격이 '유발'한 측면이 있다. 기존 미켈란젤로 전기는 피에트로를 불량배로 몰아대지만, 저자는 사건을 균형 있게 바라본다. 그리고 피에트로의 주장에 귀를 기울인다.

피에트로는 말한다. "어렸을 적에 미켈란젤로와 나는 그림 공부를 하러 카르미네 성당의 마사초 예배당을 찾아갔었다. (…) 그런데 부오나로티는 그림 그리는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조롱하는 버릇이 있었던 만큼, 어느 날 그는 평소보다 더 자극적인 말을 하기에 나 역시 극도로 화가 나 주먹을 한 방 날렸는데, 내 손에 뼈와 연골이 과자처럼 부서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이 상처를 평생 간직했다."(p.109) 정말 그랬다. 미켈란젤로는 이 상처를 평생 간직했다. 그의 초상의 코부위를 자세히 보면 코뼈가 비뚤어지고 내려앉은 걸 알 수 있다.

- 미켈란젤로가 사기를 쳤다???

사실이다. 비록 젊을때 꾐에 빠져서 한 행동이지만. 미켈란젤로가 만든 '어린 쿠피도 신상'은 너무나 우아하고 세련되어 고대작품으로 속일 수 있을 정도였다(p.161)고 한다. 그걸 본 로렌초는 그를 유혹한다. 훨신 돈을 많이 받을 수 있으니 속여팔자고 말이다. 미켈란젤로는 돈 욕심 때문이었는지 제안에 응하고 산 조르조 추기경에게 비싸게 판다.(p.162참조) 놀랍지 않은가?

미켈란젤로는 돈을 참 열심히 벌었다. 평생 그를 질리게 하며 돈을 요구한 가족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궁핍했던 유년에 대한 반동이었는지는 몰라도. 생각해보면, 돈을 버는 게 죄가 될수는 없는데도, 세속적인 면을 초월한 거장의 이미지가 지나치게 강한 나머지, 이상하게 느껴지는 건 아닐까? 물론 사기사건은 예외다.

- 프란체스코 프란차와 벌인 언쟁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미켈란젤로는 자부심이 대단했고, 거친 비난과 조롱도 서슴치 않았다. 프란차 역시 미켈란젤로가 보기엔 예술가를 자칭하는 쓰레기일 뿐이었다. 프란차가 라파엘로를 좋아했다는 점도 거장의 심기를 건드렸다.(이 점은 2)로 후술함) 선제공격은 프란차였다. 미켈란젤로의 신작 '율리우스 2세의 좌상'을 보고 '주물과 재료가 아주 훌륭하다'(p.291)고 말한다. 주물과 재료가 훌륭하다니… 미켈란젤로는 완전히 무시하는 태도를 보인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분개한다. "이 재료가 훌륭하다면, 당신이 물감을 대주는 안료상에게 감사하듯이, 그것을 대준 교황님께 감사드려야겠지요." 그러자 프란차는 "난감하구먼, 자네와 코사는 예술에 관한 한 길마 얹은 당나귀일세."라고 한다.

더욱 웃긴 상황이 남아 있다. 얼마 뒤, 프란차의 잘생긴 어린 아들이 미켈란젤로를 찾아오자. "얘야, 네 아버지는 그림그릴 때보다 더 훌륭하고 잘생긴 인물을 만들었구나!"(p.292)하고 외쳤다고 한다ㅋㅋㅋ 아, 이 사람 참 대단하다.

- 미켈란젤로의 나약한 모습.

미켈란젤로는 위기가 닥쳐오면 맞서기보다 도망을 선택했다. 또한 메디치가의 후원을 받았지만, 정치격 격변기에는 그들의 적에 동조했으며, 안전을 위해 자신을 투옥시켜려던 '바초 발로리'에게 작품을 선물하기도 한다.(p.507,508) 작가는 이처럼 솔직하게 미켈란젤로의 아쉬운 면도 이야기한다. 독자는 객관적으로 그를 돌아볼 수 있다.

2) 앙숙 -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라파엘로

읽는내내 많이 놀랐던 부분이다. 거장의 자부심이 이렇게 충돌할지는 몰랐다. 미켈란젤로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라파엘로를 아주 싫어했고,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저자의 말을 들어보자. "미켈란젤로는 이 두 사람(레오나르도 다 빈치, 라파엘로) 모두를 좋아하지 않았고 좋아할 수도 없었다. 그는 자신이 이들과 너무나 다르다고 느꼈다. (중략) 그의 거칠고 신랄하며, 영웅적이고 엄격한 예술은 레오나르도와 라파엘로의 작품을 찬란하게 만들었던 미묘하고 부드러우며 세련된 것과 너무 거리가 멀었다."(p.314)

- 미켈란젤로 vs 라파엘로

라마초가 전하는 이야기. "어느 날 라파엘로가 제자들과 함께 있던 자리에 미켈란제로가 지나가면서 이렇게 말했다. '관리 나리들에 둘러싸여 어딜 가시나?' 그러자 라파엘로는 이렇게 응수했다. '그러는 당신은 망나니처럼 늘 혼자이시군요.'"(p.315) (좀 더 추가적인 이야기는 p.450 참조하시길)

- 미켈란젤로 vs 레오나르도 다 빈치

익명의 전기 내용. "레오나르도가 조반니 디 가비나와 스피니 궁전 앞 산타 트리니타 광장을 걷고 있었는데 단테의 글을 논하던 몇 사람이 그들을 불러 세웠다. 그리고 그들의 의견을 물었다. 바로 그 순간에 우연히 미켈란젤로가 그곳을 지나치게 되면서 그들 중 한 사람이 그에게도 같은 질문을 청하자, 레오나르도는 '미켈란젤로가 잘 설명해줄 거네'라고 답했다. 미켈란젤로는 레오나르도가 자신을 조롱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에게 흥분한 어조로 이렇게 응수했다. '당신이 설명하지 그러십니까. 청동으로 주물을 뜨려고 말을 그리지 않으셨던가요. 주물에 실패해서 포기해버린 것이 창피한 줄 아시는지요?'라고. 그렇게 말하고는 훌쩍 가버렸다. 이 말을 들은 레오나르도는 황당해하면서 얼굴을 붉혔다."(p.209)

작품속에서 막연한 이미지의 미켈란젤로는 생생하게 부활했다. 작가는 미켈란젤로의 위대함을 납득시키지만, 동시에 날카로운 비판을 잊지 않는다. 균형있는 서술과 역사적 논증은 작품의 가치를 한차원 높혀 줬다. 또한 방대한 자료를 깔끔하게 정리해,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서술한 점도 대단한 일이라 생각한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전기문학의 새 길을 제시한 좋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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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zydevil 2009-03-26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파엘로와 다 빈치, 미켈란젤로... 그들이 같은 시대, 같은 곳에 태어났다는 거 자체로 극적이네요. <다크나이트>의 배트맨, 조우커, 투페이스가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요?^^

쥬베이 2009-03-26 23:47   좋아요 0 | URL
저도 사실, 같은시대 사람인지 잘 몰랐습니다.
뭐낙 위대한 예술가라 그런지, 사이는 안 좋았어요
중간중간 소개된 일화보면 참 대단합니다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