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루몽 7
조설근 외 지음, 안의운 외 옮김 / 청계(휴먼필드)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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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어느덧 7편까지 오고 인물사전을 들쳐보던 손길이 적어졌다. 그만큼 등장인물에 대해 파악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초반 인물사전 들쳐보던데 급급해하며 읽던것에 비하면 많은 발전이다. 이젠 등장인물마다 우리 연애인들과 매치해보기까지 하니...등장인물들에 대한 애정이 많이 깊어졌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7편-9편은 유난히 흥미로웠다. 

처음 이야기는 시녀들간 눈에보이지 않는 갈등과 '오아''채운'이 연루된 절도사건이 축이다. 이야기속으로 들어가자. 영춘의 시녀인 '사기'는 견습시녀를 보내 계란을 쪄달라고 하고, 유서방댁은 갖가지 이유를 들어 거부한다. 견습시녀 연화와 유서방댁의 엄청난 논쟁이 오가는데 정말 점입가경이다. "고대광실에 편안히 들어앉아 물이 오면 손이나 내밀고 밥이 오면 입이나 벌리는 너희들은 달걀이 그저 예사로운 물건으로 여기고 있다만 바깥세상의 시세를 알기나 하니? 달걀은 고사하고 어떤 해엔 풀뿌리조차 이어 대기 힘들때가 있단 말이다. (중략) 이러다간 원주인님들의 시중은 그만두고 너희들 두번째 주인들의 시중만 들어야 겠구나!"(p.12) 유서방댁은 집안에서 가만히 받아먹기만 하면서 매일 새로운 음식으로 바꾸어 대령하라는데 불만이 많은 것이다. 거기다 여기저기서 한가지 음식씩 말하면 다합치면 여남은가지나 되는 현실적 어려움을 토로하는 것이다. 그런데 요 연화란 계집이 보통내기가 아니다. 연화의 대꾸를 들어보자. "누가 말마다 무얼 해 달랬다고 이렇게 잔소리를 늘어놓는 거에요? 아주머니를 여기 들어오게 한 건 아가씨들의 편의를 위해서이지 달리 그런줄 아세요?" 연화의 말은 유서방댁이 여기 있는게 그런일, 즉 아씨들의 음식수발을 하려고 있는거 아니냐는 것이다. 결국 연화는 돌아가서 사기에게 있는 말, 없는 말로 있던 일을 이야기하고, 사기는 노기탱천한다. 사기는 영춘의 식사시중을 마치기가 무섭게 견습시녀들을 이끌고 주방으로 달려가 호령하는데, "상자나 찬장안에 있는 찬거리들을 있는 대로 다 뒤져서 개한테 던져 줘. 아무도 먹을 것이 없게 말이야."(p.15) 이런 유서방댁에 대한 사기의 악감정은 뒤에 있을 '오아'(오아는 유서방댁의 딸임) 절도사건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오아는 어미에게 복령분을 조금 얻자 그것을 '방관'에게 주고 싶은 맘에 길을 나선다. 그러다 임지효의 아내를 만나게 되고, 임지효의 아내는 뭔가 쭈뼛거리는 오아를 최근 절도사건의 용의자로 의심하는데...임지효의 아내는 희봉에게 전말을 이야기하고, 희봉은 분부를 내린다. "그 어미년은 곤장 마흔대를 쳐서 다시는 중문 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내쫓고 오아년은 곤장 마흔대를 쳐서 시골로 내려보내 팔아 버리든지 누구한테 주어 버리도록 해라."(p.19) 저 말을 들은 오아는 기겁해서 울음을 터트린다. 이럴수가. 사실 저 복령분은 채운이가 훔쳐다 가환에게 준것으로 우연히 오아한테까지 흘려왔을뿐 오아가 훔친것이 아니었다. 이 사실을 안 습인,평아,보옥은 오아를 걱정하고, 마음 †╂?보옥이 사건을 무마하기로 한다. 처음에 보옥에 대해서 안 좋은 이미지를 품어왔었는데, 회를 거듭할 수록 보옥이 좋아진다. 부잣집 도령의 우쭐한 모습이 아닌, 인간적이고 정이 많은 그의 모습  때문이다. 아무튼 유서방댁과 오아가 내침을 당하게 되어 좋아하던 사기는 보옥의 사건무마로 별일 없이 사건이 끝나자 아쉬움과 분노를 억지로 삼킨다.

분위기를 바꿔서 보옥의 신명나는 생일잔치 이야기를 해보자. 보옥은 습인과 밤에 벌일 주연에 대해 의논하는데, 딱부러진 습인은 벌써 돈을 조금씩 걷어 과일을 준비해 두었다. 시간이 흐르고 보옥은 문까지 걸어놓고 놀 준비를 하고, 놀 사람이 적다며 탐춘,대옥,보채까지도 불러 오는데, 집안 젊은 여인네들은 전부 모인듯하다. (시끌벅적한 놀이모습을 p.88그림을 보시길) 이들은 술을 마시고, 과일을 먹고, 주사위 던지기 놀이를 하는데, 무척이나 흥미롭다. 주사위놀이가 뭔가하면, 주사위를 던져 제비뽑을 사람을 정하고, 그 사람이 제비를 뽑으면 그 제비에 써 있는 대로 하거나(예컨데,'동년배가 한잔, 같은 날에 난 사람이 한자,성이 같은 사람이 한잔을 들 것이다'하는 제비가 나오면 제비를 뽑을 사람과 실제 동년배,성이 같은사람,같은 날에 난 사람이 술을 마시는 것) 써 있는 점괘대로 되리라고 믿는다. (탐춘은 좋은 낭군을 만날거라는 제비를 뽑고 얼굴을 붉힘) 시간가는줄 모르고 놀던 그들은 술에 취해 아무렇게나 누워 잠을 잔다. 뒤늦게 일어난 방관은 자기가 보옥과 한침상에서 옆에 누워 잤음을 알고 얼굴을 붉히는데...얼굴을 붉히는 방관의 모습을 떠올리니 너무 귀엽다.

한바탕 즐거움 뒤에 평지풍파가 기다리고 있으니 문제의 근원은 바로 희봉의 남편인 '가련'. 희봉몰래 첩질을 한 것이다. 또 시작이군-_- 상대는 '우이저'로 시녀들에게 반드시 아씨로 부르게 하는등 그녀가 귀엽고 사랑스러워 어쩔줄을 모른다. 심지어 이런말까지 하는데..."남들은 우리 그 야차같은 년(희봉)을 반반하게 생겼다고 하지만, 지금 보니 임자(우이저)의 발치에도 못 가겠어."(p162) 조강지처를 야차라고 하고 첩질에만 한눈팔린 가련. 같은 남자로써 정말 부끄럽다. 그러던중 우연히 가련의 형 '가진'과 우이저의 동생 '우삼저' 넷이서 같이 술을 먹게 되는데 '우삼저'란 처자는 보통내기가 아니다. 우삼저는 술에 취하자 이런 말까지 한다. "저도 당신 부인이 만만치 않은 사람이라는 걸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제 언니를 홀려서 몰래 첩실로 들여앉혀 놓고는 훔쳐온 징이라고 두드리지도 못하고 있지요? (중략) (희봉이)조금이라도 야박스레 군다면 먼저 당신네 두 사람의 썩은 창자부터 꺼내 놓고 다시 그 몹쓸 년하고 사생결단을 할 거에요. 흥! 그러지 못한다면 전 우삼저가 아니란 말예요."(p.162) 허허. 정말 화끈하다. 이야기가 어떻게 될지 왠지 파국으로 치닷는듯한 느낌.

우이저는 동생 삼저의 지나친 성격때문에 고민하다 가련에게 이런말을 꺼낸다. "가진 시아주머님과 상의를 해서 저 삼저를 어디 잘 아는 사람한테 주어 버리도록 하세요. 언제까지나 이렇게 놓아두는 건 방법이 아녜요. 그러다가 무슨 일이라도 저지르게 되면 어떡하겠어요"(p.168) 그리하여 삼저의 혼인문제가 부각되고 가련은 여기저기 삼저의 남편감을 ?는데...그러던 그는 설반과 의형제인 유상련을 만나고 삼저이야기를 꺼내자 "전 워낙 절세미인한테 장가드는게 소원이었습니다. (중략) 두 분께서(가련과 설반) 마음대로 결정하십시오. 저는 그 처분에 따르겠습니다"(p.186)라며 혼인하고 싶다는 뜻을 전하고,  삼저에게 혼인의 정표로 원앙검을 준다. 한편 삼저역시 마음에 들어하며 하루빨리 상련이 돌아와 자신의 종신대사를 마무리져 주시기를 기다린다. 하지만 일이 잘못되려고 했는지, 뜻밖에 일이 벌어진다. 상련의 약혼을 축하하던 보옥이 우씨네 집안 이야기를 하자, 상련은 이런 말을 한다. "에쿠. 일이 잘못됐군! 그 혼사는 절대로 치를 수가 없어! 자네네 동부댁에서야 돌사자 두개를 빼놓고는 더럽혀지지 않은 게 없으니까. 심지어는 고양이나 개까지도 깨끗하지 못하단 말이야. 난 그런 오쟁이를 지는 노릇은 하지 않겠네."(p.190) 한마디로 오삼저의 정절에 의심이 가기 때문에 혼인을 못하겠다는 것이다. 이럴수가..이런 사실을 알게 된 우삼저는 약혼정표로 받은 원앙검으로 자결한다. 아...이럴수가. 천하제일 미녀가 정절을 의심받고 파혼당해 자결하다니...하지만 우씨집안의 우환은 이게 끝이 아니니, 희봉의 서슬퍼런 악행이 기다리고 있음을 어이할까. 불쌍한 우이저, 우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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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 1
송은일 지음 / 문이당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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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반야 마지막장을 넘기며 넘쳐오르는 만족감을 느꼈다. 국내문학의 한정된 소재선정에 늘 불만을 품어오던 난 이 책의 신선한 소재와 흥미로운 이야기 전개에 빠져버렸다. 무녀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것부터 시작해서, 사신계란 흥미로운 설정, 반야의 놀라운 능력등 한순간도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채정'과 '순정'이 있다. 이들은 어려서 부모를 잃고, 숙부네 집에서 얹혀살게 된다. 채정이 열여섯이 되던해 숙부는 벼슬 한자리를 하기위해 채정을 마흔살 영감의 후실로 시집보내려 한다. 가엾은 채정은 짐을 챙겨 도망가고, 흘러흘러 무녀 동매의 수양딸이 된다. 채정은 그 후 본명을 버리고 '유을해'란 이름으로 살아가는데, 유을해가 바로 '반야'의 어머니이다. 바로 동매와 유을해,반야 이 무녀3대가 이야기의 한 축이다. 반야는 '별님'이란 또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이름하나만으로는 감당이 안 될듯하여 별칭을 붙여주었다고 한다. 그럼 이쯤에서 반야의 놀라운 능력을 엿보기로 하자.

한신(한신은 젊은시절 유을해와 서로 사랑의 감정을 나누던 사람)의 누이동생 영신이 행방불명되고 한신은 반야에게 행방을 수소문한다. "혼백의 유모였다는 여인을 방문 쪽에 앉힌 반야는 칠성 방울을 흔들어 흩어져 맴도는 혼백의 기를 모아 불러 들였다. 비로소 영신 아씨의 생전형상이 뚜렷이 보이는가 싶을 때 급작스런 공포가 반야를 엄습했다. 겁탈당할 위기에서 발생한 공포였다.'(p.82) 그렇다. 영신아씨는 몸종과 함께 누군가에게 욕을 당하고 살해 당한것이었다. 반야는 이것뿐만 아니라 시체가 숨겨진 곳까지 지목하는데...마치 범죄미스테리를 보는듯한 재미까지 있다.

이야기의 다른 한축은 '동마로'에서 비롯한다. 유을해에 의해 받아들여져, 반야의 보디가드 역할을 하는 듬직한 동마로. 꽃님이가 자꾸 그를 '언니'라고 칭하는 바람에 처음엔 여성인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잘 생긴 외모로 뭇 여성들을 설레게 하는 남정네다. 동마로는 이야기의 핵심인 '사신계'에 투신한다. 사신계는 '모든 인간은 동등하고 자유로우며 스스로의 의지로 자신의 삶을 가꿀 권리가 있다.'라는 강령을 가졌으며 최고수장은 '사신총'이라 불린다. 과연 이들의 정체는 무었이고, 무었을 하는 자들일까?

고을 사또는 계속해서 반야를 불러들이고, 반야는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는다. 계속 그러한 요구를 피해오던 반야지만, 집요한 사또의 청에 결국 사또에게로 가게된다. 사또는 신기(神氣)가 있는 자로, 사내셋 계집하나가 사또를 둥지삼고 있었다. 즉 귀신이 씌여있다. 사또는 의외로 이런말을 한다. "나는 네가 내 곁의 것들을 쫓지 않고도 내 심신에 내리는 통증을 없애 주기 바라고, 무기(신기) 또한 강하게 만들어 주기를 소망한다."(p.167) 씌여있는 귀신을 ?기보단 이용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일개 사또라 보기엔 간악하고 사특한 인물. 이야기 전반에 걸쳐 중요한 인물이 될 거 같은 느낌이 든다.

반야. 그녀는 남장을 하고 길을 떠난다. 한신(사은재)로부터 '시현'이란 이름까지 받고서. '이제부터 반야의 본격적인 활약상을 볼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반야는 한양에게 가장 큰 혜정원이란 객점에 잠깐 머무르게 되는데, 혜정원 주인 혜정은 그녀에게 자기 앞날을 봐달라고 한다. 그리고 복채를 꺼내는데...그녀가 가진 복채주머니는 반야의 할머니 '동매'가 가지고 있던것도 똑같았다. 이게 뭔 일일까? 그리고 혜정이 하는 말. '귀천도 없고, 남녀차별도 없는 신세계. 그 세상은 모든 사람의 목숨값이 같습니다 (중략) 그런세상을 들어 본적 있나요?(p.228) 동매가 죽어가면서 한 말하고 어찌도 저리 유사한지. 여기서 난 감을 잡았다. 동매와 혜정은 바로 '사신계'의 일원이 아닐까 하는 점, 그리고 그들은 표식으로 같은 주머니를 가지고 있다는 점. 이런 인연으로 인해 반야도 사신계에 투신하게 될거 같다는 점. 계속 읽어나가며 내 추론이 맞는지 살펴봐야 겠다. 이야기는 계속된다.

반야와 사신계의 관련은 곧 드러난다. 다음 서술을 보자. "반야가, 사신계가 기다리던 재목이거니와 예비되었던 계원이었음도 그 뒤 밝혀졌다. 반야의 양조모인 칠성부 오품 동매가 반야를 키웠더니와 칠성부 부령이 일찌감치 반야를 점찍고 반야가 자라 사신계로 ?아들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인연이 되려 그랬던지 반야의 아우 동마로가 저 홀로 사신계로 ?아들어 계원이 되어 있기까지 했다.(p.239) 그랬군. 반야와 동마로의 활약상이 기대된다.

일본소설의 국내시장 점유률이 50%가 넘은데는 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국내소설이 제한적인 소재만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 이유가 있다고 본다. 반야는 그런점에서 한국문학의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고 생각한다. 자유분방한 소재와 이야기 전개속에서 난 무한한 흥미를 느꼈다. 멋진 이야기를 펼쳐보여준 송은일 작가님께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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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너는 자유다 - 모든 것을 훌훌 털어 버리고 떠난 낯선 땅에서 나를 다시 채우고 돌아오다, 개정판
손미나 글.사진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TV를 통해 보아온 손미나 아나운서의 모습은 예쁘다는 것 뿐, 특별히 인상적인 점은 없었다. 이 책의 출간소식을 듣고야 '아나운서 손미나'를 다시금 주목하게 되었고, 읽은 후 '인간 손미나'를 좋아하게 됐다. 그녀는 내면까지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그녀의 열정, 도전정신, 학구열. 정말 멋지다. 

안정된 직장과 편안한 삶을 버려두고, 훌쩍 먼 곳으로 떠날 수 있을까? 지금 나라면 과연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곁눈질로 스폐인을 느끼면서 내내 내게 했던 질문이다. 아마, 하지 못 할 것이다. 안정된 삶속에서 안주하고 있을 내 모습이 떠올라, 자신이 갑자기 미워진다.

그녀의 말을 들어보자.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를 혹시 읽어봤니? 그걸 읽고 내게 있어 '지금'이 아니면 안되는 일이 무었일까 고민해 봤는데, 서른일곱의 하루키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꿈을 찿아 나서는 일이 아닐까 쉽더라고. (중략) 그리고 만약 그럴수 있다면 스폐인에 가고 싶어. 내 몸도 마음도 그걸 간절히 원하는 것 같은데…"(p.8)  그녀는 자기 몸과 마음의 이끌림대로 스폐인으로 간다. 저 한문장속에 숨겨져 있는 그녀의 고뇌와 노력을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그녀가 대단하단 생각이 든다. 부럽다. 멋지다.

이 책은 크게 1부에서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스폐인에서 생활과 심리적 갈등, 어려움등이 중심으로 그녀의 도전이 얼마나 힘든 것이 였는지를 알 수 있었다. 2부, 3부는 바로셀로나 대학원을 다니게 된 그녀의 학업, 우정이 중심인데, 여러가지 에피소드가 많이 소개되어 아주 흥미로웠다. 4부는 친구들과의 축제, 낚시등 일상적인 이야기와 친구들과의 이별, 아쉬움이 중심이다.

[제1부. 스폐인에 중독되다] 가장 인상깊게 읽은 부분은 다운증후군을 앓는 라파엘과의 만남, 헤어짐이다. 추수감사절 축제에 해당하는 포도축제, '산 마떼오 축제'에 맞춰 친구네 집에 머물게 된 그녀는 그 친구네 형 '라파엘'을 만나게 된다. 라파엘은 29살이지만 정신능력은 15살에 불과한 다운증후군 환자. 라파엘은 동양에서 온 이 아름다운 여성에게 빠져버린듯 싶다. 내가 생각해도 그럴 법하다. 친절하고 예쁜 아가씨가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준다는 것 그 하나만으로도 그는 아주 행복했을 것이다.

"라파엘은 날마다 눈을 뜨면 나를 찿아와 '너는 나의 가장 좋은 친구야, 맞지?'라는 다짐을 했고 산책을 할때도 꼭 내 손을 잡고 걷기를 원했다. 축제의 마지막 밤에는 모두가 강가에 잔디밭에 자리를 잡고 누워 하늘 가득 터지는 불꽃놀이를 즐겼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마치 영원과도 같이 느껴졌던 그 시간, 그 여름밤 강가에서 나를 향해 눈부시게 쏟아지던 수많은 불꽃을 바라볼때도 내 곁에는 라파엘이 있었다. 행복한 미소를 짓고, '미나, 너는 나의 가장 중요한 친구야'라는 말을 반복하면서…'(p.61) 하지만, 만남은 언제나 헤어짐을 동반하고, 순수했던 라파엘에겐 그 이별의 아픔이 크게 다가왔으리라. 9년의 세월이 흐르고 다시 만난 그녀의 친구이자 라파엘의 동생에게, 라파엘의 안부를 전하고 보고 싶다는 말을 전하지만, 그는 이렇게 말한다.

"라파엘은 네가 떠난 후로 하루도 빠짐없이 네 이야기를 했어. 헤어짐은 곧 다른 만남이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이제 미나는 오지 않을거라고 말할때마다 불같이 화를 냈지. 미나가 분명히 다시 만날거라 약속했는데, 왜 그런 소리를 하나며 한번도 그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어. 하지만 그게 벌써 10년전이잖아. 이제 겨우 너의 존재를 잊었는데, 이제와서 네가 라파엘을 다시 만나면 라파엘은 또다른 10년을 너를 기다리며 보내게 될지 몰라. 우리 모두는 그 약속을 곧 잊었지만 라파엘은 그 약속을 포기하는데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단다."(p.64)

[제2부. 바로셀로나의 유쾌한 강의실] 저자의 생일파티하는 부분이 있는데, 뭐낙 생생한 묘사에 젊은이들의 열정과 광란^^이 눈에 보이는듯 했다. 격정적인 살사춤과 흥겨운 80년대 팝송들, 그리고 지칠줄 모르는 수다까지…그녀가 '내 생애 최고로 흥겨운 생일파티'라 칭하는데 과연 부족함이 없었다. 그리고 빠질 수 없는 사건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사랑고백. "멋지게 연주를 끝낸 루카스가 갑자기 초조해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데낄라를 한잔 들이켜더니 고백할게 있다고 말을 꺼냈다. (중략) 그런데 그는 엉뚱하게도 나에게 다가와 느닷없이 손을 잡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사실,내가 미나 너를 좋아하고 있거든…넌 정말 예쁘고 착한거 같아'"(p.150) 허허. 이 일을 어찌할꼬^^ 그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읽어보시길^^ 루카스와 그녀의 사진이 실려있는데 사진속 그녀는 내가봐도 정말 예뻤다. 귀엽고 앙증맞은 인형같다고나 할까. 같은 동양인이 봐도 그런데 우락부락한 서양남자 눈에는 오죽했겠는가?

[제3부. 스폐인 사람처럼 사는 법] 여기서는 '꽃무늬 스포츠카'와 얽힌 에피소드가 인상적이었다. 한친구의 배려로 아름다운 해변가 별장에서 지내게 된 그녀는 통학을 위해 차를 구했는데, 그 차는 광고가 그려져있는 스포츠카였다. 벤츠스포츠카에 만족하는 그녀, 하지만 신호에 걸려 차가 서게 될 때마다 남자들이 차를 보며 히죽거리고, 느끼한 남자는 노골적으로 말까지 건넨다. "내가 사실 이탈리아 사람이거든, 이런 미인을 상대하려면 이탈리아 남자정도는 돼야지. 나처럼 말이야. 그래서 말인데 자기 차에 있는 전화번호 있지, 그거 정확히 뭐야?"(p.206) 이건 도대체 뭐란 말인가? 이유는 저러했다. "내 차 뒷부분에는 '야마 이 엔꾸엔뜨라'(전화해서 만나세요)라는 노란글씨가 현란한 꽃들 사이에 전화번호와 함께 떡하니 적혀있었다. (중략) 웬 아시아 여자가 현란한 꽃무늬 스포츠카를, 그것도 전화해서 만나라는 문구를 차에 붙이고 돌아다니니 너나 할거 없이 호기심어린 눈초리로 쳐다 봤을 수 밖에…(p.207)

[제4부. 태양은 뜨겁고, 나는 자유로웠다] 대학원동기들과, 일본에서 우연히 만난 친구, 그외 스폐인 친구들…그리고 그녀. 모두가 눈물짓는 이별의 순간은 너무나 가슴아프고 아름다웠다. 국경을 초월한 진정한 우정을 본 듯한 기분에 나까지 숙연한 기분이 들었다.

책 곳곳이 실려있는 스폐인의 아름다운 경치, 사람들 사진. 경험이 녹았는 생생한 글들. 이 땅의 젊은이라면, 일탈을 꿈꾸는 젊은이라면 한번은 읽어야 할 책이다.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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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지의 표본
오가와 요코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수첩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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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녀는 섹스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 책을 덮고 나서 제일 처음 든 생각이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에서 보여준 오가와 요코의 참신한 이야기전개는 인상적이었다. 자연히 <약지의 표본> 역시 많은 기대를 하고 손에 잡았다. 이 작품은 표제작 [약지의 표본]과 [육각형의 작은방] 두편의 중단편으로 구성된 단편집이다. 먼저 [약지의 표본]을 살펴보자.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나'가 등장한다. 그녀는 사이다공장에서 일하다 약지손가락 끝 살점을 살짝 떼이는 상처를 입은 여성...그녀는 사무원을 구하는 표본실의 구인광고를 보게되고, 표본전문가 데시마루와 만나게 된다. 데시마루의 표본실이 있는 곳은 퇴락한 여성전용아파트를 개조한 곳으로 지금은 노부인 두명만이 살고 있다.

표본실은 일반적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것들, 예를들어 악보속 음악, 소녀의 얼굴의 화상흔적등도 표본 해준다. 이 점에 표본전문가 데시마루는 이야기내내 미스테리한 인물로 부각되며,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그에 대한 상세한 정보는 제시되지 않는다. 하지만 난 그에 대한 이미지를 굳혔다. 데시마루는 비정상적, 한마디로 변태에 정신이상자다.

여성전용 아파트에 아직 살고 있는 한 노부인은 그녀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곳이 표본실로 바뀐지 한참 되었는데, 대부부의 아가씨가 1년이 안되어 다들 그만뒀어. 뭐, 그만둔다는 표현이 옳은지 어떤지는 의문이지만, 느닷없이 뚝, 안보이는거야. 공기에 녹아든 것처럼 없어져 버려. 아무 인사도 없이…(중략) 그나저나 그 데시마루라는 사람도 정체불명이야"(p.99) 표본실 여직원들은 어디로 간걸까? 갑자기 전부 어디로 사라진걸까?

제일 처음 언급한 섹스얘기를 해야겠다. 데시마루는 종업원인 그녀와 섹스를 한다. 한참 표본이란 색다른 세계에 빠져 몰입하던 내게 그들의 섹스는 한마디로 어이없음을 넘어 실망감까지 안겨주었다. 흥미로운 소설이 갑자기 신파로 전략해 버렸다고나 할까? 그리고 그들이 섹스를 하기 전후 서술을 보면 데시마루의 본색을 추론해 볼만한게 꽤 있다. 내가 보기엔 그는 여직원들을 채용하고 접근해서, 농락하는 전형적인 파렴치한이다. 그런 그에게 아무렇지 않게 몸을 맞기는 그녀 역시 내가 보기엔 철없는 철부지 아가씨에 불과했다.

등장인물에 대한 애정없이 소설에 몰입한다는 건 무척이나 힘들다. 하지만 지금까지 읽은게 아까워서라도 끝까지 읽었고, 섹스와 그로 인해 야기된 신파분위기만 배제한다면, 나름대로 괜찮은 작품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꽤 개방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도 데시마루와 추잡한 행동(그의 행동으로 추단되는)과 그녀의 철없음은 신파이상으로 봐 줄 수 없다. 한마디로 그녀는 섹스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

[육각형의 작은 방] 이 이야기는 꽤 환상적인,미스테리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작품이다. 그녀는 의사인 남친과 아무 이유없이 헤어진다.(정확히 얘기하면 차버린) 그녀가 왜 미치오와 헤어질 결심을 했는지, 그녀는 아무 이유없다고 하지만, 육각형방의 주인의 유즈루와 대화를 볼때, 항상 호출이 있으면 언제라도 달려가야 하는...자기보다도 일이 우선인 미치오의 태도가 한가지 이유인것 같다. 그녀는 헤어짐의 한가지 단초인 약혼식 사건(음식은 준비하다 실수로 엎어버리고 병원 호출로 병원으로 달려가 버린 미치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이 부분에 대해 언급한다.

"레스토랑에서 메인 디시를 한 입 먹자마자, 침대에서 벌거숭이가 되자마자, 그것은 자주 삐이삐이 울렸습니다. (중략) 나는 그 소리를 얼마나 두려워 했는지요. 어떤 소란스러움에도 지지 않고, 준엄하고도 정확하게 울리는 그 소리는 내 고막을 찌르고 아픔을 남기고, 죽음과 이별을 떠오르게 했습니다. 그는 나를 혼자 남겨두고 죽어가는 사람에게 달려갔습니다."(p.187~188)

내가 그녀의 이별을 중요하게 부각시켰지만, 사실 이 이야기는 핵심이 아니다. 모자지간인 미도리와 유즈루가 운영하는 육각형의 작은 방. 여긴 사람들이 들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하는, 혼자서, 아무런 도청장치도 없이....그런 곳이다. 우연히 저 곳을 알게된 그녀는 당황해 하지만, 그녀의 속마음, 그녀가 하고 싶어하던 말들을 쏟아낸다. 저 이야기를 들으면 독자는 자신에게 고해성사하고 있는 듯한 그녀의 내면을 공유하고, 공감하게 된다. 

<약지의 표본>은 독자에 따라 평이 크게 엊갈릴 수 있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난 기대 이하였지만, 프랑스에서는 영화로까지 제작되었다고 한다. 어찌보면 데시마루와 그녀의 관계를 하나의 사랑으로도 봐줄 수 있을런지 모른다. 그건 뭐 독자마다 다른 반응이 있겠지. 한번 데시마루와 그녀의 관계를 평가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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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벼룩에서 유연한 코끼리로 - 1인기업부터 중소기업까지, 성장하는 기업들의 7가지 전략
스티븐 리틀 지음, 윤은진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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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창조적 벼룩에서 유연한 코끼리로> 이 특이한 제목의 책은 기업가들을 주독자층으로 겨냥한 일종의 경영전략서다. 하지만 골치아픈 경제이론이나 통계따윈 없다. 생생한 경영전략과 다양한 사례를 통해 일반독자들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편안한' 책이다.

저자는 현실직시의 필요성과 성공하는 기업들의 특징을 언급한 다음, 본격적으로 성장하는 기업의 7가지전략을 이야기한다. 일단 성공하는 기업들의 특징 10가지중 인상적인 것을 살펴보기로 하자. 일단 부지런함이다. '부지런함이란 근면하고, 원기 왕성하며, 헌신적인 것이다. 기업가들은 과업 지향적인 동시에 강력한 결단력을 가지고 열망하는 결과를 추구해야 한다.'(p.44). 그렇다. 비단 기업활동뿐만 아니라 사회생활 전반에 걸쳐 가장 중요한건 부지런함이 아닐까 생각한다. 부지런함은 자기일에 대한 끝없는 애정을 바탕으로 하기에, 부지런한 사람은 아름답다. 그들은 항상 노력하며 진취적이다.

'인맥관리에 탁월하다' 저자는 인맥관리에 대한 부정적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일정한 선을 긋는는다. '기업인들은 다양한 환경에 어울리게 자신의 색깔을 바꾸는 카멜레온과 같지만, 결코 연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업을 이끌어 나가기 위해서는 사람들과 악수를 해야 하고 (중략) 대화를 나눠야 한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p.44) 한마디로 저자가 말하는 인맥관리는 카멜레온 같은 처신이 아닌, 사업활동에 있어 폭넓은 인적네트워크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이제 핵심내용인 성장하는 기업들의 7가지 전략에 대해 살펴볼 차례다. '고객의 욕구를 고객보다 더 잘 이해하라'(p.89) 두번째 전략으로 소개된 고객욕구이해의 중요성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특히 다양한 사례들이 집중적으로 소개되어 읽는 재미도 쏠쏠했다. '고객은 언제나 옳다. 그러나 신제품을 개발할때는 그들의 의견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그들은 설문조사에서 소금과 기름이 적게 들어간 감자칩을 원한다고 얘기하지만, 실제로는 대부분 소금이 듬뿍 들어간 기름진 감자칩을 선택한다.'(p.108) 저 이야기를 듣고 상당히 놀랐다. 실제 사람들이 설문조사할 때와 실제 선택할 때 다른 선택을 하리라는건 예상했지만, 실제사례를 통해 접하게 되니 놀라움이 앞선다. 저자는 이러한 시장조사의 한계에 대처하기 위해 고객의 필요를 미리 예상하고, 고객이 요구하기 전에 그들이 찾는 것을 먼저 제공할 것을 제안한다. 그래야만 고객들의 진정한 의사에 부합하는 기업활동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고객 중심 프로세스를 개발하라' 이 부분을 읽는내내 고개를 끄덕였다. 저자는 '밀크셰이크 이야기'라는 호텔 룸서비스 사례를 이야기한다. 하루종일 밀크셰이크만을 생각한 저자는 그것을 주문하지만 투숙한 비지니스호텔은 바닐라 밀크셰이크를 룸서비스로 제공하지 않았다. 하지만 밀크셰이크의 재료가 되는 밀크아이스크림과 우유는 제공하고 있었고, 단지 메뉴와 판매시스템 단말기에 그것이 없다는 이유로 제공하지 않은 것이다. 저자는 이를 통해 시스템조직의 유연한 운영을 강조한다.

이어서 '고객 확보 및 유지를 위한 10가지 고려사항'(p.145)이 제시되는데. 난 이걸 인터넷서점 관계자들에게 복사해서 주고 싶었다. 국내 대부분의 업체를 이용한 내가 보기엔 어느 한 업체도 100% 만족스러운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한다. 포장이 좋으면 배송이 느리고, 가격이 마음에 들면 포장이나 고객응대가 형편없다. 고객관리에 제발 좀 신경써 주시길...특히 고객응대.

처음에 잠깐 언급했지만, 이 책은 단순히 기업가들을 대상으로 한 책이 아니다. 오늘을 사는 일반인들 역시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책이다. 특히 저자의 경험이 녹아있는 풍부한 사례와 철학은 이 책의 가치를 한껏 높여 주었다. 새롭게 자신을 돌아보려는 직장인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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