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루몽 9
조설근 외 지음, 안의운 외 옮김 / 청계(휴먼필드)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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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뒤로하고 9권으로 넘어가자. 대부인은 보옥의 혼인문제를 꺼내는데, 보옥의 부친 가정은 보옥에 대해 냉정하게 이야기한다. "신부될 규수도 훌륭해야 하겠지만 그 애 자신도 학문이 있을 만큼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게 되면 공연히 남의 집 귀한 딸을 데려다가 신세만 망치게 될 테니까요"(p.95) 그러다 오히려 대부인은 심사가 뒤틀려 손자를 감싼다. 결국 가정은 보옥을 불러다 문장공부를 얼마나 했는지를 묻고, 지어 놓은 글을 보는데...보옥은 어떻게 평가받을것인가? 혼담역시 무르익어 남소의 장씨네 댁 딸과 혼담이 오간다. 하지만 장씨네 댁이 데릴사위를 원한다는 것과 구두쇠라는 점 때문에 오가던 혼담은 흐지부지해 진다.

난봉꾼 설반은 또 하나의 사건을 벌이는데, 이번 역시 살인사건-_-한 주막집 급사, 즉 종업원이 설반에게 무뢰하게 굴고 시중을 똑바로 들지 않자 쳐죽인 것이다. 설부인,왕부인등은 설반을 구해내기 여기저기 청탁을 하고 뇌물을 써보지만 뭐낙 잘못이 명백한지라 빼내기가 여의치 않은데...결국 현령 지현은 많은 뇌물에 눈이 멀어 여러곳에 있던 상처를 머리 단 한곳에 상처 있는걸로 고치고 우연한 오살로 처리한다. 돈에 눈이 먼 부폐한 관리는 세상 어디든 있구나...

아무리 생각해도 대돈방화백의 멋드러진 그림과 안의운, 김광렬님의 감칠맛 나는 번역은 이 책의 백미다. 인물의 성격까지도 제대로 표현해내는 그림, 그 당시 물건들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그림. 정말 감탄할만 하다. 그리고 번역역시 대단해서 우리말의 감칠맛을 정확히 살려내었다. 지금까지 읽으며 번역체를 읽는 것 같은 이질감이 들지 않았다. 이런점이 홍루몽의 가치를 더욱 높혀주는 것 아닐까? 처음 등장인물들 이름을 외고, 하나둘 친해지기 시작한게 얼마전인데, 벌써 하나둘 유명을 달리하는 인물이 생겨난다. 이제 슬슬 이야기가 끝을 향해 가는구나...다음회에는 누가 또 죽어갈 것이며,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10회,11회, 그리고 마지막 12회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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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루몽 8
조설근 외 지음, 안의운 외 옮김 / 청계(휴먼필드)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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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8권으로 넘어가도록 하자. 느닷없이 소작이라는 견습시녀가 내일 대감님이 보옥 도련님을 ?으실거란 말을 던지고 가는데, 보옥은 아버지가 자신의 공부상태를 확인하려는 것임을 직감한다. "막 잠에 들려던 참에 이런말을 듣게 된 보옥은 마치 손대성(손오공)이 삼장법사의 조임테 주문소리를 들었을 때처럼 금세 사지와 오장이 불편해지는 것이었다. 아무리 궁리 해 보아야 내일 아버지의 꾸중을 면할 도리는 없을 것 같았다."(p.68) 시험을 앞두고 있는 학생의 심정을 헤아리면 저런 보옥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될 것이다. 얼마나 불안하겠는가? 그 동안 공부는 안하고 놀기만 했는데 말이다. 습인과 청문을 중심으로 시녀들이 뒤늦게 밤을 세워 공부하는 보옥을 보살펴 주는데, 졸린 시녀들이 꾸벅꾸벅 졸다 청문에게 혼나는 부분은 어찌나 웃긴지. 결국 공부를 해도 꾸중을 면할 수 없음을 알고 청문이 꾀를 내는데, 그건 누군가 침입했다는 소란상황에 보옥이 놀라 몸저 누웠다고 하는 것, 즉 꾀병을 부리는 것이었다.

일은 엉뚱한데로 튀는데, 누가 침입했다는 것을 조사하던 대부인은 요즘 숙직서는 하인들의 방심을 지적하고 이들을 벌하려 하고, 탐춘은 숙직서는 이들이 도박판까지 벌려 왔음을 일러바친다. 대부인은 대노하여 외친다. "도박을 한 년놈들을 당장 가서 잡아오너라! 그레서 잘못을 비는 년에겐 용서를 하겠지만  하고도 안 한 척 숨기려는 년에게는 벌을 주도록 해라!"(p.74) 결국 큰물주 셋을 잡아 곤장40대를 치고 내쫓고, 나머지사람들은 곤장20대에 3개월간 월당을 제하는 벌을 내린다. 큰 물주중 한명은 바로 영춘의 유모였는데, 그 유모는 자기가 영춘을 젖먹여 키웠다는 것을 자랑스러이 여기고 오만하게 행동하던 자였다. 거기다 영춘의 비녀까지 훔쳐다 도박밑천으로 삼았음이 밝혀지는데, 착한 영춘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위에서 잠깐 이야기한 시녀들간 시기와 모함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 있다. 왕부인이 색실로 춘화를 수놓은 향주머니를 희봉에게 가지고 와 혹시 희봉이 흘린건 아닌지 의심하자 희봉은 여러이유를 대며 그것이 자기것이 아님을 주장한다. 그리고 젊은 시녀들의 것일 가능성을 언급하는데, 이와 더불어 시녀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왕보선의 여편네가 보옥의 시녀 청문을 모함하자 왕부인은 청문을 불러들인다. 왕보선 여편네가 청문을 모함하는 말. "남보다 얼굴이 좀 반반하게 생기고 주둥이까지 좀 여물었다는 것을 턱대고는 날마다 서시같이 차리고 나서서 입방아만 찧고 있어요. 그러다가 한마디라도 제 비위에 거슬리게 되면 당장 눈살을 꼿꼿이 세우고 욕설을 내뱉는단 말예요. 그 요염하고 오만한 꼴이란 정말 눈뜨고 못 볼 정도예요."(p.104) 정말 해도해도 너무했다. 역시 궁중같이 시기와 모함이 판치는 곳. 왕부인은 청문을 불러 모질게 혼내고  청문은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소리내어 운다.

왕부인은 춘화의 임자를 ?아내기 위해 시녀들의 방을 수색하자는 왕보선 여편네의 말에 따라 일제히 수색을 시작하고, 의외로 시녀 입화의 상자에서 금덩이,은덩이 3,40개나 싼 보퉁이를 발견한다. 이는 과연 어떻게 된 것일까? 춘화를 ?아내려다 뜻밖에 장물로 의심이 되는 것을 발견했으니...거기다 또 의외호 왕보선 부인의 외손녀인 시녀 '사기'의 상자에서 '반우안'과 주고받은 음화와 연애편지나 나왔으니, 왕보선 부인은 공연히 자기 외손녀만 잡아낸 결과. 잘난척하던 왕보선 부인의 무안한 모습은 통쾌하지 그지없다. 이 일을 어떻게 해결될 것인지...?

결국 조사결과가 왕부인에게 보고 되고, 우선적으로 사기는 집안에서 내쫓기게 된다. 가엾은 사기. 왕부인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보옥 주변 시녀들을 족치는데, 청문이 아무래도 뭔 일을 당할거 같은 분위기. 먼저 보옥과 같은 날에 난 혜향이를 내치고, 방관이마저 내친다. 그리고는 병들어 야윈 청문이를 불러들여 한바탕 혼쭐을 내고 옷까지 전부 빼았아 내쫓아 버린다. 어쩌면 저럴 수 있는지, 너무 안타까운 상황. 청문은 유일한 혈육인 난봉꾼 사촌오빠네로 가게 되고, 쓸쓸히 병든 몸을 다스린다. 그러다 결국 청문은 눈을 감는다. 사람들의 시기심때문에 온갖 안좋은 누명을 쓰고 쓸쓸하게 죽어간 청문, 너무 가슴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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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루몽 7
조설근 외 지음, 안의운 외 옮김 / 청계(휴먼필드)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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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어느덧 7편까지 오고 인물사전을 들쳐보던 손길이 적어졌다. 그만큼 등장인물에 대해 파악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초반 인물사전 들쳐보던데 급급해하며 읽던것에 비하면 많은 발전이다. 이젠 등장인물마다 우리 연애인들과 매치해보기까지 하니...등장인물들에 대한 애정이 많이 깊어졌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7편-9편은 유난히 흥미로웠다. 

처음 이야기는 시녀들간 눈에보이지 않는 갈등과 '오아''채운'이 연루된 절도사건이 축이다. 이야기속으로 들어가자. 영춘의 시녀인 '사기'는 견습시녀를 보내 계란을 쪄달라고 하고, 유서방댁은 갖가지 이유를 들어 거부한다. 견습시녀 연화와 유서방댁의 엄청난 논쟁이 오가는데 정말 점입가경이다. "고대광실에 편안히 들어앉아 물이 오면 손이나 내밀고 밥이 오면 입이나 벌리는 너희들은 달걀이 그저 예사로운 물건으로 여기고 있다만 바깥세상의 시세를 알기나 하니? 달걀은 고사하고 어떤 해엔 풀뿌리조차 이어 대기 힘들때가 있단 말이다. (중략) 이러다간 원주인님들의 시중은 그만두고 너희들 두번째 주인들의 시중만 들어야 겠구나!"(p.12) 유서방댁은 집안에서 가만히 받아먹기만 하면서 매일 새로운 음식으로 바꾸어 대령하라는데 불만이 많은 것이다. 거기다 여기저기서 한가지 음식씩 말하면 다합치면 여남은가지나 되는 현실적 어려움을 토로하는 것이다. 그런데 요 연화란 계집이 보통내기가 아니다. 연화의 대꾸를 들어보자. "누가 말마다 무얼 해 달랬다고 이렇게 잔소리를 늘어놓는 거에요? 아주머니를 여기 들어오게 한 건 아가씨들의 편의를 위해서이지 달리 그런줄 아세요?" 연화의 말은 유서방댁이 여기 있는게 그런일, 즉 아씨들의 음식수발을 하려고 있는거 아니냐는 것이다. 결국 연화는 돌아가서 사기에게 있는 말, 없는 말로 있던 일을 이야기하고, 사기는 노기탱천한다. 사기는 영춘의 식사시중을 마치기가 무섭게 견습시녀들을 이끌고 주방으로 달려가 호령하는데, "상자나 찬장안에 있는 찬거리들을 있는 대로 다 뒤져서 개한테 던져 줘. 아무도 먹을 것이 없게 말이야."(p.15) 이런 유서방댁에 대한 사기의 악감정은 뒤에 있을 '오아'(오아는 유서방댁의 딸임) 절도사건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오아는 어미에게 복령분을 조금 얻자 그것을 '방관'에게 주고 싶은 맘에 길을 나선다. 그러다 임지효의 아내를 만나게 되고, 임지효의 아내는 뭔가 쭈뼛거리는 오아를 최근 절도사건의 용의자로 의심하는데...임지효의 아내는 희봉에게 전말을 이야기하고, 희봉은 분부를 내린다. "그 어미년은 곤장 마흔대를 쳐서 다시는 중문 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내쫓고 오아년은 곤장 마흔대를 쳐서 시골로 내려보내 팔아 버리든지 누구한테 주어 버리도록 해라."(p.19) 저 말을 들은 오아는 기겁해서 울음을 터트린다. 이럴수가. 사실 저 복령분은 채운이가 훔쳐다 가환에게 준것으로 우연히 오아한테까지 흘려왔을뿐 오아가 훔친것이 아니었다. 이 사실을 안 습인,평아,보옥은 오아를 걱정하고, 마음 †╂?보옥이 사건을 무마하기로 한다. 처음에 보옥에 대해서 안 좋은 이미지를 품어왔었는데, 회를 거듭할 수록 보옥이 좋아진다. 부잣집 도령의 우쭐한 모습이 아닌, 인간적이고 정이 많은 그의 모습  때문이다. 아무튼 유서방댁과 오아가 내침을 당하게 되어 좋아하던 사기는 보옥의 사건무마로 별일 없이 사건이 끝나자 아쉬움과 분노를 억지로 삼킨다.

분위기를 바꿔서 보옥의 신명나는 생일잔치 이야기를 해보자. 보옥은 습인과 밤에 벌일 주연에 대해 의논하는데, 딱부러진 습인은 벌써 돈을 조금씩 걷어 과일을 준비해 두었다. 시간이 흐르고 보옥은 문까지 걸어놓고 놀 준비를 하고, 놀 사람이 적다며 탐춘,대옥,보채까지도 불러 오는데, 집안 젊은 여인네들은 전부 모인듯하다. (시끌벅적한 놀이모습을 p.88그림을 보시길) 이들은 술을 마시고, 과일을 먹고, 주사위 던지기 놀이를 하는데, 무척이나 흥미롭다. 주사위놀이가 뭔가하면, 주사위를 던져 제비뽑을 사람을 정하고, 그 사람이 제비를 뽑으면 그 제비에 써 있는 대로 하거나(예컨데,'동년배가 한잔, 같은 날에 난 사람이 한자,성이 같은 사람이 한잔을 들 것이다'하는 제비가 나오면 제비를 뽑을 사람과 실제 동년배,성이 같은사람,같은 날에 난 사람이 술을 마시는 것) 써 있는 점괘대로 되리라고 믿는다. (탐춘은 좋은 낭군을 만날거라는 제비를 뽑고 얼굴을 붉힘) 시간가는줄 모르고 놀던 그들은 술에 취해 아무렇게나 누워 잠을 잔다. 뒤늦게 일어난 방관은 자기가 보옥과 한침상에서 옆에 누워 잤음을 알고 얼굴을 붉히는데...얼굴을 붉히는 방관의 모습을 떠올리니 너무 귀엽다.

한바탕 즐거움 뒤에 평지풍파가 기다리고 있으니 문제의 근원은 바로 희봉의 남편인 '가련'. 희봉몰래 첩질을 한 것이다. 또 시작이군-_- 상대는 '우이저'로 시녀들에게 반드시 아씨로 부르게 하는등 그녀가 귀엽고 사랑스러워 어쩔줄을 모른다. 심지어 이런말까지 하는데..."남들은 우리 그 야차같은 년(희봉)을 반반하게 생겼다고 하지만, 지금 보니 임자(우이저)의 발치에도 못 가겠어."(p162) 조강지처를 야차라고 하고 첩질에만 한눈팔린 가련. 같은 남자로써 정말 부끄럽다. 그러던중 우연히 가련의 형 '가진'과 우이저의 동생 '우삼저' 넷이서 같이 술을 먹게 되는데 '우삼저'란 처자는 보통내기가 아니다. 우삼저는 술에 취하자 이런 말까지 한다. "저도 당신 부인이 만만치 않은 사람이라는 걸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제 언니를 홀려서 몰래 첩실로 들여앉혀 놓고는 훔쳐온 징이라고 두드리지도 못하고 있지요? (중략) (희봉이)조금이라도 야박스레 군다면 먼저 당신네 두 사람의 썩은 창자부터 꺼내 놓고 다시 그 몹쓸 년하고 사생결단을 할 거에요. 흥! 그러지 못한다면 전 우삼저가 아니란 말예요."(p.162) 허허. 정말 화끈하다. 이야기가 어떻게 될지 왠지 파국으로 치닷는듯한 느낌.

우이저는 동생 삼저의 지나친 성격때문에 고민하다 가련에게 이런말을 꺼낸다. "가진 시아주머님과 상의를 해서 저 삼저를 어디 잘 아는 사람한테 주어 버리도록 하세요. 언제까지나 이렇게 놓아두는 건 방법이 아녜요. 그러다가 무슨 일이라도 저지르게 되면 어떡하겠어요"(p.168) 그리하여 삼저의 혼인문제가 부각되고 가련은 여기저기 삼저의 남편감을 ?는데...그러던 그는 설반과 의형제인 유상련을 만나고 삼저이야기를 꺼내자 "전 워낙 절세미인한테 장가드는게 소원이었습니다. (중략) 두 분께서(가련과 설반) 마음대로 결정하십시오. 저는 그 처분에 따르겠습니다"(p.186)라며 혼인하고 싶다는 뜻을 전하고,  삼저에게 혼인의 정표로 원앙검을 준다. 한편 삼저역시 마음에 들어하며 하루빨리 상련이 돌아와 자신의 종신대사를 마무리져 주시기를 기다린다. 하지만 일이 잘못되려고 했는지, 뜻밖에 일이 벌어진다. 상련의 약혼을 축하하던 보옥이 우씨네 집안 이야기를 하자, 상련은 이런 말을 한다. "에쿠. 일이 잘못됐군! 그 혼사는 절대로 치를 수가 없어! 자네네 동부댁에서야 돌사자 두개를 빼놓고는 더럽혀지지 않은 게 없으니까. 심지어는 고양이나 개까지도 깨끗하지 못하단 말이야. 난 그런 오쟁이를 지는 노릇은 하지 않겠네."(p.190) 한마디로 오삼저의 정절에 의심이 가기 때문에 혼인을 못하겠다는 것이다. 이럴수가..이런 사실을 알게 된 우삼저는 약혼정표로 받은 원앙검으로 자결한다. 아...이럴수가. 천하제일 미녀가 정절을 의심받고 파혼당해 자결하다니...하지만 우씨집안의 우환은 이게 끝이 아니니, 희봉의 서슬퍼런 악행이 기다리고 있음을 어이할까. 불쌍한 우이저, 우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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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 1
송은일 지음 / 문이당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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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반야 마지막장을 넘기며 넘쳐오르는 만족감을 느꼈다. 국내문학의 한정된 소재선정에 늘 불만을 품어오던 난 이 책의 신선한 소재와 흥미로운 이야기 전개에 빠져버렸다. 무녀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것부터 시작해서, 사신계란 흥미로운 설정, 반야의 놀라운 능력등 한순간도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채정'과 '순정'이 있다. 이들은 어려서 부모를 잃고, 숙부네 집에서 얹혀살게 된다. 채정이 열여섯이 되던해 숙부는 벼슬 한자리를 하기위해 채정을 마흔살 영감의 후실로 시집보내려 한다. 가엾은 채정은 짐을 챙겨 도망가고, 흘러흘러 무녀 동매의 수양딸이 된다. 채정은 그 후 본명을 버리고 '유을해'란 이름으로 살아가는데, 유을해가 바로 '반야'의 어머니이다. 바로 동매와 유을해,반야 이 무녀3대가 이야기의 한 축이다. 반야는 '별님'이란 또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이름하나만으로는 감당이 안 될듯하여 별칭을 붙여주었다고 한다. 그럼 이쯤에서 반야의 놀라운 능력을 엿보기로 하자.

한신(한신은 젊은시절 유을해와 서로 사랑의 감정을 나누던 사람)의 누이동생 영신이 행방불명되고 한신은 반야에게 행방을 수소문한다. "혼백의 유모였다는 여인을 방문 쪽에 앉힌 반야는 칠성 방울을 흔들어 흩어져 맴도는 혼백의 기를 모아 불러 들였다. 비로소 영신 아씨의 생전형상이 뚜렷이 보이는가 싶을 때 급작스런 공포가 반야를 엄습했다. 겁탈당할 위기에서 발생한 공포였다.'(p.82) 그렇다. 영신아씨는 몸종과 함께 누군가에게 욕을 당하고 살해 당한것이었다. 반야는 이것뿐만 아니라 시체가 숨겨진 곳까지 지목하는데...마치 범죄미스테리를 보는듯한 재미까지 있다.

이야기의 다른 한축은 '동마로'에서 비롯한다. 유을해에 의해 받아들여져, 반야의 보디가드 역할을 하는 듬직한 동마로. 꽃님이가 자꾸 그를 '언니'라고 칭하는 바람에 처음엔 여성인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잘 생긴 외모로 뭇 여성들을 설레게 하는 남정네다. 동마로는 이야기의 핵심인 '사신계'에 투신한다. 사신계는 '모든 인간은 동등하고 자유로우며 스스로의 의지로 자신의 삶을 가꿀 권리가 있다.'라는 강령을 가졌으며 최고수장은 '사신총'이라 불린다. 과연 이들의 정체는 무었이고, 무었을 하는 자들일까?

고을 사또는 계속해서 반야를 불러들이고, 반야는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는다. 계속 그러한 요구를 피해오던 반야지만, 집요한 사또의 청에 결국 사또에게로 가게된다. 사또는 신기(神氣)가 있는 자로, 사내셋 계집하나가 사또를 둥지삼고 있었다. 즉 귀신이 씌여있다. 사또는 의외로 이런말을 한다. "나는 네가 내 곁의 것들을 쫓지 않고도 내 심신에 내리는 통증을 없애 주기 바라고, 무기(신기) 또한 강하게 만들어 주기를 소망한다."(p.167) 씌여있는 귀신을 ?기보단 이용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일개 사또라 보기엔 간악하고 사특한 인물. 이야기 전반에 걸쳐 중요한 인물이 될 거 같은 느낌이 든다.

반야. 그녀는 남장을 하고 길을 떠난다. 한신(사은재)로부터 '시현'이란 이름까지 받고서. '이제부터 반야의 본격적인 활약상을 볼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반야는 한양에게 가장 큰 혜정원이란 객점에 잠깐 머무르게 되는데, 혜정원 주인 혜정은 그녀에게 자기 앞날을 봐달라고 한다. 그리고 복채를 꺼내는데...그녀가 가진 복채주머니는 반야의 할머니 '동매'가 가지고 있던것도 똑같았다. 이게 뭔 일일까? 그리고 혜정이 하는 말. '귀천도 없고, 남녀차별도 없는 신세계. 그 세상은 모든 사람의 목숨값이 같습니다 (중략) 그런세상을 들어 본적 있나요?(p.228) 동매가 죽어가면서 한 말하고 어찌도 저리 유사한지. 여기서 난 감을 잡았다. 동매와 혜정은 바로 '사신계'의 일원이 아닐까 하는 점, 그리고 그들은 표식으로 같은 주머니를 가지고 있다는 점. 이런 인연으로 인해 반야도 사신계에 투신하게 될거 같다는 점. 계속 읽어나가며 내 추론이 맞는지 살펴봐야 겠다. 이야기는 계속된다.

반야와 사신계의 관련은 곧 드러난다. 다음 서술을 보자. "반야가, 사신계가 기다리던 재목이거니와 예비되었던 계원이었음도 그 뒤 밝혀졌다. 반야의 양조모인 칠성부 오품 동매가 반야를 키웠더니와 칠성부 부령이 일찌감치 반야를 점찍고 반야가 자라 사신계로 ?아들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인연이 되려 그랬던지 반야의 아우 동마로가 저 홀로 사신계로 ?아들어 계원이 되어 있기까지 했다.(p.239) 그랬군. 반야와 동마로의 활약상이 기대된다.

일본소설의 국내시장 점유률이 50%가 넘은데는 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국내소설이 제한적인 소재만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 이유가 있다고 본다. 반야는 그런점에서 한국문학의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고 생각한다. 자유분방한 소재와 이야기 전개속에서 난 무한한 흥미를 느꼈다. 멋진 이야기를 펼쳐보여준 송은일 작가님께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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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너는 자유다 - 모든 것을 훌훌 털어 버리고 떠난 낯선 땅에서 나를 다시 채우고 돌아오다, 개정판
손미나 글.사진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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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TV를 통해 보아온 손미나 아나운서의 모습은 예쁘다는 것 뿐, 특별히 인상적인 점은 없었다. 이 책의 출간소식을 듣고야 '아나운서 손미나'를 다시금 주목하게 되었고, 읽은 후 '인간 손미나'를 좋아하게 됐다. 그녀는 내면까지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그녀의 열정, 도전정신, 학구열. 정말 멋지다. 

안정된 직장과 편안한 삶을 버려두고, 훌쩍 먼 곳으로 떠날 수 있을까? 지금 나라면 과연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곁눈질로 스폐인을 느끼면서 내내 내게 했던 질문이다. 아마, 하지 못 할 것이다. 안정된 삶속에서 안주하고 있을 내 모습이 떠올라, 자신이 갑자기 미워진다.

그녀의 말을 들어보자.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를 혹시 읽어봤니? 그걸 읽고 내게 있어 '지금'이 아니면 안되는 일이 무었일까 고민해 봤는데, 서른일곱의 하루키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꿈을 찿아 나서는 일이 아닐까 쉽더라고. (중략) 그리고 만약 그럴수 있다면 스폐인에 가고 싶어. 내 몸도 마음도 그걸 간절히 원하는 것 같은데…"(p.8)  그녀는 자기 몸과 마음의 이끌림대로 스폐인으로 간다. 저 한문장속에 숨겨져 있는 그녀의 고뇌와 노력을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그녀가 대단하단 생각이 든다. 부럽다. 멋지다.

이 책은 크게 1부에서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스폐인에서 생활과 심리적 갈등, 어려움등이 중심으로 그녀의 도전이 얼마나 힘든 것이 였는지를 알 수 있었다. 2부, 3부는 바로셀로나 대학원을 다니게 된 그녀의 학업, 우정이 중심인데, 여러가지 에피소드가 많이 소개되어 아주 흥미로웠다. 4부는 친구들과의 축제, 낚시등 일상적인 이야기와 친구들과의 이별, 아쉬움이 중심이다.

[제1부. 스폐인에 중독되다] 가장 인상깊게 읽은 부분은 다운증후군을 앓는 라파엘과의 만남, 헤어짐이다. 추수감사절 축제에 해당하는 포도축제, '산 마떼오 축제'에 맞춰 친구네 집에 머물게 된 그녀는 그 친구네 형 '라파엘'을 만나게 된다. 라파엘은 29살이지만 정신능력은 15살에 불과한 다운증후군 환자. 라파엘은 동양에서 온 이 아름다운 여성에게 빠져버린듯 싶다. 내가 생각해도 그럴 법하다. 친절하고 예쁜 아가씨가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준다는 것 그 하나만으로도 그는 아주 행복했을 것이다.

"라파엘은 날마다 눈을 뜨면 나를 찿아와 '너는 나의 가장 좋은 친구야, 맞지?'라는 다짐을 했고 산책을 할때도 꼭 내 손을 잡고 걷기를 원했다. 축제의 마지막 밤에는 모두가 강가에 잔디밭에 자리를 잡고 누워 하늘 가득 터지는 불꽃놀이를 즐겼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마치 영원과도 같이 느껴졌던 그 시간, 그 여름밤 강가에서 나를 향해 눈부시게 쏟아지던 수많은 불꽃을 바라볼때도 내 곁에는 라파엘이 있었다. 행복한 미소를 짓고, '미나, 너는 나의 가장 중요한 친구야'라는 말을 반복하면서…'(p.61) 하지만, 만남은 언제나 헤어짐을 동반하고, 순수했던 라파엘에겐 그 이별의 아픔이 크게 다가왔으리라. 9년의 세월이 흐르고 다시 만난 그녀의 친구이자 라파엘의 동생에게, 라파엘의 안부를 전하고 보고 싶다는 말을 전하지만, 그는 이렇게 말한다.

"라파엘은 네가 떠난 후로 하루도 빠짐없이 네 이야기를 했어. 헤어짐은 곧 다른 만남이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이제 미나는 오지 않을거라고 말할때마다 불같이 화를 냈지. 미나가 분명히 다시 만날거라 약속했는데, 왜 그런 소리를 하나며 한번도 그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어. 하지만 그게 벌써 10년전이잖아. 이제 겨우 너의 존재를 잊었는데, 이제와서 네가 라파엘을 다시 만나면 라파엘은 또다른 10년을 너를 기다리며 보내게 될지 몰라. 우리 모두는 그 약속을 곧 잊었지만 라파엘은 그 약속을 포기하는데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단다."(p.64)

[제2부. 바로셀로나의 유쾌한 강의실] 저자의 생일파티하는 부분이 있는데, 뭐낙 생생한 묘사에 젊은이들의 열정과 광란^^이 눈에 보이는듯 했다. 격정적인 살사춤과 흥겨운 80년대 팝송들, 그리고 지칠줄 모르는 수다까지…그녀가 '내 생애 최고로 흥겨운 생일파티'라 칭하는데 과연 부족함이 없었다. 그리고 빠질 수 없는 사건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사랑고백. "멋지게 연주를 끝낸 루카스가 갑자기 초조해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데낄라를 한잔 들이켜더니 고백할게 있다고 말을 꺼냈다. (중략) 그런데 그는 엉뚱하게도 나에게 다가와 느닷없이 손을 잡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사실,내가 미나 너를 좋아하고 있거든…넌 정말 예쁘고 착한거 같아'"(p.150) 허허. 이 일을 어찌할꼬^^ 그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읽어보시길^^ 루카스와 그녀의 사진이 실려있는데 사진속 그녀는 내가봐도 정말 예뻤다. 귀엽고 앙증맞은 인형같다고나 할까. 같은 동양인이 봐도 그런데 우락부락한 서양남자 눈에는 오죽했겠는가?

[제3부. 스폐인 사람처럼 사는 법] 여기서는 '꽃무늬 스포츠카'와 얽힌 에피소드가 인상적이었다. 한친구의 배려로 아름다운 해변가 별장에서 지내게 된 그녀는 통학을 위해 차를 구했는데, 그 차는 광고가 그려져있는 스포츠카였다. 벤츠스포츠카에 만족하는 그녀, 하지만 신호에 걸려 차가 서게 될 때마다 남자들이 차를 보며 히죽거리고, 느끼한 남자는 노골적으로 말까지 건넨다. "내가 사실 이탈리아 사람이거든, 이런 미인을 상대하려면 이탈리아 남자정도는 돼야지. 나처럼 말이야. 그래서 말인데 자기 차에 있는 전화번호 있지, 그거 정확히 뭐야?"(p.206) 이건 도대체 뭐란 말인가? 이유는 저러했다. "내 차 뒷부분에는 '야마 이 엔꾸엔뜨라'(전화해서 만나세요)라는 노란글씨가 현란한 꽃들 사이에 전화번호와 함께 떡하니 적혀있었다. (중략) 웬 아시아 여자가 현란한 꽃무늬 스포츠카를, 그것도 전화해서 만나라는 문구를 차에 붙이고 돌아다니니 너나 할거 없이 호기심어린 눈초리로 쳐다 봤을 수 밖에…(p.207)

[제4부. 태양은 뜨겁고, 나는 자유로웠다] 대학원동기들과, 일본에서 우연히 만난 친구, 그외 스폐인 친구들…그리고 그녀. 모두가 눈물짓는 이별의 순간은 너무나 가슴아프고 아름다웠다. 국경을 초월한 진정한 우정을 본 듯한 기분에 나까지 숙연한 기분이 들었다.

책 곳곳이 실려있는 스폐인의 아름다운 경치, 사람들 사진. 경험이 녹았는 생생한 글들. 이 땅의 젊은이라면, 일탈을 꿈꾸는 젊은이라면 한번은 읽어야 할 책이다.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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