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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너는 자유다 - 모든 것을 훌훌 털어 버리고 떠난 낯선 땅에서 나를 다시 채우고 돌아오다, 개정판
손미나 글.사진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TV를 통해 보아온 손미나 아나운서의 모습은 예쁘다는 것 뿐, 특별히 인상적인 점은 없었다. 이 책의 출간소식을 듣고야 '아나운서 손미나'를 다시금 주목하게 되었고, 읽은 후 '인간 손미나'를 좋아하게 됐다. 그녀는 내면까지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그녀의 열정, 도전정신, 학구열. 정말 멋지다.
안정된 직장과 편안한 삶을 버려두고, 훌쩍 먼 곳으로 떠날 수 있을까? 지금 나라면 과연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곁눈질로 스폐인을 느끼면서 내내 내게 했던 질문이다. 아마, 하지 못 할 것이다. 안정된 삶속에서 안주하고 있을 내 모습이 떠올라, 자신이 갑자기 미워진다.
그녀의 말을 들어보자.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를 혹시 읽어봤니? 그걸 읽고 내게 있어 '지금'이 아니면 안되는 일이 무었일까 고민해 봤는데, 서른일곱의 하루키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꿈을 찿아 나서는 일이 아닐까 쉽더라고. (중략) 그리고 만약 그럴수 있다면 스폐인에 가고 싶어. 내 몸도 마음도 그걸 간절히 원하는 것 같은데…"(p.8) 그녀는 자기 몸과 마음의 이끌림대로 스폐인으로 간다. 저 한문장속에 숨겨져 있는 그녀의 고뇌와 노력을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그녀가 대단하단 생각이 든다. 부럽다. 멋지다.
이 책은 크게 1부에서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스폐인에서 생활과 심리적 갈등, 어려움등이 중심으로 그녀의 도전이 얼마나 힘든 것이 였는지를 알 수 있었다. 2부, 3부는 바로셀로나 대학원을 다니게 된 그녀의 학업, 우정이 중심인데, 여러가지 에피소드가 많이 소개되어 아주 흥미로웠다. 4부는 친구들과의 축제, 낚시등 일상적인 이야기와 친구들과의 이별, 아쉬움이 중심이다.
[제1부. 스폐인에 중독되다] 가장 인상깊게 읽은 부분은 다운증후군을 앓는 라파엘과의 만남, 헤어짐이다. 추수감사절 축제에 해당하는 포도축제, '산 마떼오 축제'에 맞춰 친구네 집에 머물게 된 그녀는 그 친구네 형 '라파엘'을 만나게 된다. 라파엘은 29살이지만 정신능력은 15살에 불과한 다운증후군 환자. 라파엘은 동양에서 온 이 아름다운 여성에게 빠져버린듯 싶다. 내가 생각해도 그럴 법하다. 친절하고 예쁜 아가씨가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준다는 것 그 하나만으로도 그는 아주 행복했을 것이다.
"라파엘은 날마다 눈을 뜨면 나를 찿아와 '너는 나의 가장 좋은 친구야, 맞지?'라는 다짐을 했고 산책을 할때도 꼭 내 손을 잡고 걷기를 원했다. 축제의 마지막 밤에는 모두가 강가에 잔디밭에 자리를 잡고 누워 하늘 가득 터지는 불꽃놀이를 즐겼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마치 영원과도 같이 느껴졌던 그 시간, 그 여름밤 강가에서 나를 향해 눈부시게 쏟아지던 수많은 불꽃을 바라볼때도 내 곁에는 라파엘이 있었다. 행복한 미소를 짓고, '미나, 너는 나의 가장 중요한 친구야'라는 말을 반복하면서…'(p.61) 하지만, 만남은 언제나 헤어짐을 동반하고, 순수했던 라파엘에겐 그 이별의 아픔이 크게 다가왔으리라. 9년의 세월이 흐르고 다시 만난 그녀의 친구이자 라파엘의 동생에게, 라파엘의 안부를 전하고 보고 싶다는 말을 전하지만, 그는 이렇게 말한다.
"라파엘은 네가 떠난 후로 하루도 빠짐없이 네 이야기를 했어. 헤어짐은 곧 다른 만남이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이제 미나는 오지 않을거라고 말할때마다 불같이 화를 냈지. 미나가 분명히 다시 만날거라 약속했는데, 왜 그런 소리를 하나며 한번도 그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어. 하지만 그게 벌써 10년전이잖아. 이제 겨우 너의 존재를 잊었는데, 이제와서 네가 라파엘을 다시 만나면 라파엘은 또다른 10년을 너를 기다리며 보내게 될지 몰라. 우리 모두는 그 약속을 곧 잊었지만 라파엘은 그 약속을 포기하는데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단다."(p.64)
[제2부. 바로셀로나의 유쾌한 강의실] 저자의 생일파티하는 부분이 있는데, 뭐낙 생생한 묘사에 젊은이들의 열정과 광란^^이 눈에 보이는듯 했다. 격정적인 살사춤과 흥겨운 80년대 팝송들, 그리고 지칠줄 모르는 수다까지…그녀가 '내 생애 최고로 흥겨운 생일파티'라 칭하는데 과연 부족함이 없었다. 그리고 빠질 수 없는 사건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사랑고백. "멋지게 연주를 끝낸 루카스가 갑자기 초조해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데낄라를 한잔 들이켜더니 고백할게 있다고 말을 꺼냈다. (중략) 그런데 그는 엉뚱하게도 나에게 다가와 느닷없이 손을 잡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사실,내가 미나 너를 좋아하고 있거든…넌 정말 예쁘고 착한거 같아'"(p.150) 허허. 이 일을 어찌할꼬^^ 그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읽어보시길^^ 루카스와 그녀의 사진이 실려있는데 사진속 그녀는 내가봐도 정말 예뻤다. 귀엽고 앙증맞은 인형같다고나 할까. 같은 동양인이 봐도 그런데 우락부락한 서양남자 눈에는 오죽했겠는가?
[제3부. 스폐인 사람처럼 사는 법] 여기서는 '꽃무늬 스포츠카'와 얽힌 에피소드가 인상적이었다. 한친구의 배려로 아름다운 해변가 별장에서 지내게 된 그녀는 통학을 위해 차를 구했는데, 그 차는 광고가 그려져있는 스포츠카였다. 벤츠스포츠카에 만족하는 그녀, 하지만 신호에 걸려 차가 서게 될 때마다 남자들이 차를 보며 히죽거리고, 느끼한 남자는 노골적으로 말까지 건넨다. "내가 사실 이탈리아 사람이거든, 이런 미인을 상대하려면 이탈리아 남자정도는 돼야지. 나처럼 말이야. 그래서 말인데 자기 차에 있는 전화번호 있지, 그거 정확히 뭐야?"(p.206) 이건 도대체 뭐란 말인가? 이유는 저러했다. "내 차 뒷부분에는 '야마 이 엔꾸엔뜨라'(전화해서 만나세요)라는 노란글씨가 현란한 꽃들 사이에 전화번호와 함께 떡하니 적혀있었다. (중략) 웬 아시아 여자가 현란한 꽃무늬 스포츠카를, 그것도 전화해서 만나라는 문구를 차에 붙이고 돌아다니니 너나 할거 없이 호기심어린 눈초리로 쳐다 봤을 수 밖에…(p.207)
[제4부. 태양은 뜨겁고, 나는 자유로웠다] 대학원동기들과, 일본에서 우연히 만난 친구, 그외 스폐인 친구들…그리고 그녀. 모두가 눈물짓는 이별의 순간은 너무나 가슴아프고 아름다웠다. 국경을 초월한 진정한 우정을 본 듯한 기분에 나까지 숙연한 기분이 들었다.
책 곳곳이 실려있는 스폐인의 아름다운 경치, 사람들 사진. 경험이 녹았는 생생한 글들. 이 땅의 젊은이라면, 일탈을 꿈꾸는 젊은이라면 한번은 읽어야 할 책이다.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