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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2 - 두 번째 방문 ㅣ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10
이종호 외 8인 지음 / 황금가지 / 2007년 8월
평점 :
세키노 쇼코, 사타케 노부히로...이젠 일본이름의 주인공이 낮설지 않다. 아니 아주 친숙하다. 폭풍처럼 밀려든 일본소설의 열풍. 특히 미스테리,공포쪽은 더욱 강하다. 상대적으로 너무나 취약한 우리나라의 미스테리,공포소설. 이는 근본적으로 이 분야를 2류취급하고, 이단시하는 태도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는 걸 잘 알면서도. 솔직히 나 역시 그랬다. 정체모를 편견. 읽기도 전에 손사래치던...뒤늦게나마 이 작품을 접하게 되어 기쁘다. 편향된 관심을 바로잡는 방향추가 되어준 작품이다.
<한국 공포문학 단편선-두번째 방문>엔 총 9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작품마다 약간 편차가 있었다. 기억에 남는 건 '벽' '드림머신' '레드 크리스마스', 이 세 작품.
[벽] 인상적인 것은, '층간소음'이라는 일상 문제를 공포문학으로 형상화해 냈다는 점이다. 읽다가, 저자가 묘사해내는 층간소음의 공포가 어찌나 절절하게 다가오던지 나도 모르게 우리집 천장을 쳐다보았다. '층간소음'은 정말 심각한 문제이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이게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는 동윤과 인하. 남편의 승진, 새집마련, 자기 소설의 영화화, 그리고 임신까지, 행복은 절정에 달하지만, 이는 동시에 불행의 전조곡이었다. '쿵쿵쿵' 울려대는 천장. '쿵쿵쿵' '쿵쿵쿵' 저자는 이렇게 표현한다. '천장을 울려대는 기세가 어찌나 우악살 스러운지 금방이라도 발바닥이 천장을 뚫고 나오는 게 아닐까 싶을 지경이었다.'(p.19) 또한, 동윤과 인하의 물건이 완벽하게 사라져 버리는 일이 반복되고, 불행과 공포는 서서히 다가온다.
[드림머신] 탁월한 묘사에 감탄했다. 특히 초반부 유진의 꿈 묘사(p.143-145)는 압권이다. 일단 내용을 보자. 귀여운 아미. 자상한 유진. 둘은 이상적인 커플이다. 그들은 특별한 데이트를 꿈꾸며, 두 사람이 함께 잠들면 먼저 잠드는 쪽의 꿈을 함께 꿀 수 있다는 '드림머신'을 체험하기로 한다.
드림머신이란 설정은 꽤 익숙하다. 어찌보면 다소 진부해 보일 수도 있지만, 저자는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와 날카로운 묘사로 이를 돌파한다. 아미는 상당히 귀여운 이미지로,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요즘여자'를 정확히 재현했다. 또한 드림머신을 운용하는 '홍'의 악마적 이미지도 인상적이었다.
[레드 크리스마스] 강렬했고, 통쾌했다. 이 단편집 최고의 작품으로 꼽겠다. '레드 크리스마스'엔 악마, 유령같은 비현실적인 것이 하나도 없다.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이들이 주인공이다. 그래서 공포소설이라기 보다, '사회적 잔학극,복수극'(이런 용어가 적절한지는 몰라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욱 인상적이었는지 몰라도.
폐지를 수거해 하루하루 살아가는 노인. 그런 그 앞에 괴롭힘 당하는 늙은 개가 있다. 왕자처럼 자란 우리의 꿈나무들에게 늙은 개는 또다른 장난감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은 개 주둥이에 철사를 걸어 개를 고문했다.(p.219참조) 노인은 개를 구해, 같이 지내고 이내 깊은 애정을 공유한다. 늙은 개와 노인의 우정, 사랑…그건 그 어떤 것보다 못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악마였다. 단순히 철없음으로 변명하고 넘기기엔 그들의 행동은 너무나 잔악하다. 결국, 개는 죽고 노인은 눈물을 흘린다. 당신은 노인의 분노를 이해 할 수 있는가? 가슴이 울렁거린다. 생명의 소중함을 알지 못하는 그들에게 난 분노했다.
사회정의를 위해 자신을 던졌던 노인이 결국 아무런 보상도 없이, 추락해야만 하는 우리 사회...그리고 생명의 가치를 모른채, 제 멋대로 자라나는 아이들...저자의 비판은 강렬하다. 그것은 비판받아 마땅한 우리 사회의 추악함이다. 유령도 악마도, 끔찍한 묘사도 없는 이 작품이 공포스러웠다면, 그건 바로 저런 이유 때문이리라. 굉장히 인상적이었고, 충격적인 작품이었다. 저자에 특별한 고마움을 전한다.
<한국 공포문학 단편선-두번째 방문> 마지막 장을 넘겼다. 지금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고맙다는 말'이다. 척박한 현실속에서 묵묵히 이 분야개척을 위해 노력해 온 작가분들과 출판사에…우리 공포문학의 밑알을 뿌리고 있는 그들은 칭찬받아야 한다. 이 작품이 편향된 관심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