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TV 피플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스토리 / 200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TV피플>, 내가 가장 힘들었을 때 함께 해준 책이다. 책도 마음대로 못 읽던 군대에서, 그것도 GOP에서 잠잘 시간을 쪼개 읽던 <TV피플>. 참 많이 읽었다. 읽고 또 읽고…또 읽고…과연 그 때 난 어떤 생각을 했는지, 뭘 느꼈던 것인지, 어쩌면 마냥 글이 그리웠던 것일 수도…
갑자기 생각나 찾아보니 '판'도 '출판사'도 바뀌어 있다. 그리고 펼쳐보니 단편의 '수록 순서'도 바뀌어 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책은 'TV피플'이 제일 앞에 있었는데, 여기엔 젤 뒤로 가 있다. 새로 읽으며, 생각해 보니 새로운 수록순서가 더 나은거 같다. 가장 맛있는건 역시 나중에 먹어야 하는 법. <TV피플>은 단편 6편이 수록된 단편집이다. 표제작 'TV피플'과 '잠'은 분량이 조금 긴 편이다. 수록 순서대로 살펴보자.
[가노 크레타] 가노 크레타, 가노 마루타 두 자매의 이야기이다. 언니 마루타는 '물의 소리를 듣는 일-인간의 몸을 채우고 있는 물의 소리를 듣는(p.11)'을 하고, 동생은 언니를 돕는다. 동생은 이상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데, 그건 남자들이 그녀를 보면 반드시 범하려고 한다는 것(p.14)이다. 그걸 그녀의 문제라고 해도 될런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런 연유로 크레타는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있다.
한가지 사건이 있었다. 크레타를 범하려 했던 경찰을 언니가 살해한 것. 경찰은 유령이 되어 떠돌지만, 유령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한편, 건축설계재능을 살려 행복한 삶을 시작하려던 크레타를 찿아온 한 남자. 크레타는 인간의 몸을 채우고 있는 물의 소리를 분명히 듣는다. '자기' 몸을 채우고 그 소리를. 굉장히 짧은 분량이지만,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아채기가 쉽지 않다. 솔직히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극히 비현실적인 설정, 마지막 '래롯프'의 의미등 안개숲을 걷는 기분.
[좀비] 결혼을 앞두고 있는 다정한 커플. 그들은 묘지옆으로 난 길을 걷고 있다. "오른쪽 귀 바로 안에 사마귀가 세 개 있어. 아주 방정맞은 사마귀야"(p.29) 이 말이 비극의 시작임을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악담후 정체를 드러내는…좀비. 그건 과연 꿈일까? 다른 작품에 비해 이야기가 명료하다. 꿈과 현실을 넘나드는, 도대체 어떤 것이 꿈이고 어떤 것이 현실인지 알 수 없는 상황. 그 속에서 온 몸을 죄어오는 공포. 괴기스러운 분위기가 계절하고 잘 매치된다.
[우리들 시대의 포크로어] <상실의 시대> 분위기와 조금 비슷하다. 고등학교 내내 함께 공부하고, 옷을 입은 채 페팅을 하던 커플. 남자는 그 이상의 관계를 원하지만, 여자는 거부한다. "만약 약속을 하라고 하면 하겠어. 난 너랑 잘 거야. 하지만 지금은 안 돼. 내가 누군가와 결혼한 다음에 너랑 잘 거야. 거짓말이 아니야. 약속해."(p.66) 남자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이해하지 못하고…이렇게 엉성한 관계는, 조용히 역시 엉성하게 끝나 버린다.
시간은 흘러 두사람 모두 가정을 이루고, 남자는 수입가구 사업으로 나름대로 성공한다. 그러던 중 갑자기 걸려온 그 여자의 전화. 그녀는 말한다. "난 옛날에 너랑 한 약속을 아직도 분명히 기억하고 있어" 그들은 만난다. 과연 그들의 만남은 그들 삶에 어떤 의미일까?
[TV피플] 가장 난해했고, 깊게 고민했던 작품이다. 일요일 저녁무렵 방문한 TV피플. 그들은 인간의 몸을 축소한 작은 체형이며, 짙은 파란색 윗도리를 입고 있다. 이들은 아무말 없이 묵묵히 TV를 옮기고, 전선을 연결한다. 이들은 과연 누구란 말인가? 사라진 아내와 방안을 휘젓고 다니는 TV피플. 저자는 TV속에 매몰된 인간의 모습을 표현하려 했던 것이 아닐까? 한마디로 결론 내리기는 불가능하다. 저자가 어떤 의도로 썼든 받아들이는건 독자의 몫이니…
요즘 다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고 있다. <상실의 시대>, <어둠의 저편>등 읽을때마다 느끼는 것은 느낌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르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