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먼트
테디 웨인 지음, 서제인 옮김 / 엘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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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먼트>는 문학지망생인 두 청년 '나'와 '빌리'의 가장 뜨거웠던 시절에 관한 이야기다. 소설은 그 시절에 관계의 '형성''단절'이 남긴 균열의 흔적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 과정에서 가시적이고 의도된 폭력이 아닌 가시화되지 않은 무의식적인 폭력을 조명한다. ‘의 삶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은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자신의 작은 모서리를 쓰다듬어주고 지지해주는 빌리가 있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는 그 행복은 상대에 대해 또 자신에 대해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가능했음을 깨닫는다.

 


"우리가 글 쓰고 있는 거, 사진으로 한 장 찍자."

"증거로 남겨놔야지. 우리의 덧없는 청춘을. 언젠가 그리워하게 될 테니까." (p.147)

 


는 행복했던 순간을 박제화시킨 사진 속 순간처럼 영원을 꿈꾸지만, 그들의 관계는 프레임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는 초점 나간 사진처럼 불안정했고, 결국 영원이 아닌 멈춤과 단절을 향해 나아간다. ‘는 사람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행복이 얼마나 위태롭고 위험한 것인지, 또한 사람은 그런 식으로 쉽게 행복해질 수 없다는 사실을 관계가 남긴 흔적을 통해 깨닫게 된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이로움만을 건네는 관계가 성립할 수 있을까? 중력도 마찰력도 없는 세계에서 멈추지 않고 영원히 굴러가는 구와 같은 삶은 바람직한 삶일까? 우리는 관계의 미숙함으로 인한 상실의 경험을 아프게 회고하지만, 서로에게 무해한 존재라는 것은 때론 위안이 아닌 상처로 다가온다. 비록 부정적인 방향이지만 상대를 아직 요동치게 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그런 식으로라도 감정적인 교류를 나누며 관계에 아직도 피가 흐른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는 그 사실이 때론 우리에게 기쁨이 될 수 있다. 인간은 의도의 유무를 떠나 누군가에게 상처와 해를 끼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처와 균열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함께일 수 밖에 없다. 함께라면 타인의 고통을 느낄 수 있고 자신의 아픔도 진정시키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로의 고유한 존재 방식, 상실과 결핍의 기억들은 우리 각자를 섬으로 만들지만, 우리는 삶의 흔적, 아픔을 매개로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고 이해하고 위로하게 되는 것이다. 서로를 이해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이해는 마음이 구겨져 있는 사람 특유의 과시와 무시, 거부를 넘어서야 하고, 또한 어떻게든 살아보기 위해 세상 속으로 비집고 들어가기 위해 이해를 이용하는 위선을 극복해야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타인과 삶의 온도를 맞춰가는 일이며, 상대적 성숙의 시간을 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을 거치며 우리는 삶의 고통을 무조건적으로 거부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진정한 위로의 경험을 얻는다. 초월적인 존재를 통해서도 치유 받을 수 없는 오직 사람에게서만 구할 수 있는 마음이 존재하는 것이다. 밝은 곳에서는 어두운 곳이 잘 보이지 않지만, 인간은 서로 간에 존재하는 적당한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과 온기로 서로를 알아볼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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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아이 - 무엇으로도 가둘 수 없었던 소녀의 이야기
모드 쥘리앵 지음, 윤진 옮김 / 복복서가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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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고 음습한 지하 여인숙은 이 곳에 살고 있는 밑바닥 인생들의 이력만큼이나 어두운 무채색의 기운이 감돈다. 어느 날 이 곳 밑바닥 인생들 앞에 정체불명의 한 노인이 찾아온다. 노인은 죽지 못해 하루하루를 버티는 이들에게 귀를 기울이고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독려한다. 반신반의하던 사람들은 점차 그의 희망 섞인 말에 기대를 걸고 꿈꿔왔던 삶을 살겠다고 다짐한다. 이후 노인은 사라지고 희망에 가득 차 있던 이들은 냉혹한 현실에 직면해 꿈꾸던 삶과 현실의 간극 (間隙) 만큼의 충격을 안고 이전보다 더 밑바닥으로 추락한다.

"때론 희망도 어떤 이들에겐 독(毒)이 된다.“

고리끼의 희곡 <밑바닥에서>는 희망과 절망에 관한 이야기다. 희망의 상징으로 등장하는 노인 '루카'는 절망에 빠진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하면서 궁극적으로 이들에게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을 불어넣는다. 하지만 희망은 어떤 상황에서도, 그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일까? 그 형태와 방식에 있어서 저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어도 힘든 현실에서 공감과 위로는 누구에게나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밑바닥에서>는 이에 동의하면서도 '희망'의 무게와 진정성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희망은 ‘절망을 버텨내는 동력‘이 될 수 있는 반면 절망의 늪에 더 깊숙히 빠져 헤어나올 수 없게 만드는 ‘무책임한 거짓‘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 말이다. 희망은 때론 더 나은 삶을 위한 빛이 되지만 때로는 그 희망이 현실에 기반하지 않을 때 독으로 작용할 수 있다.

모드 쥘리앵의 <완벽한 아이>는 김영하의 북클럽을 통해 접하게 되었다. <완벽한 아이>에는 인간은 더없이 사악한 존재이고, 세상은 더없이 위험한 곳이며, 이렇게 오염된 세상의 기운이 닿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후계자를 키워내 언젠가 세상을 구원할 존재로 만들겠다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을 가진 아버지가 등장한다. 아버지는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은 전부 딸의 성공적인 인생을 위해서 라고 되풀이해 말한다. 중년 이후의 삶을 온전히 자신의 딸이 예외적 존재가 될 운명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딸의 형체를 빚고 조각하고 키워내는 일에 바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아버지는 자신이 살아온 삶과 개인적 체험에서 기반한 비뚫어진 세계관을 딸에게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오염된 세상에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 아버지가 선택한 것은 세상으로부터의 단절이다. 세상과 단절된 집 안에서만 칩거하면서 딸에게 오염된 세상에서 벌어질 수 있는 모든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초인이 되는, 불가능한 것을 강요하는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아버지의 계획하에서 어린 딸이 겪어야 했던 일들에 대한 기록이다.

삶이란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위치를 찾아가는 여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집이라는 물리적 공간은 이를 대표하는 상징적 공간이다. 우리가 꿈꾸는 삶에서 기반을 이루고 있는 것은 집이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와 같은 노래 가사처럼 저마다 그리는 이상향에는 저마다의 취향과 가치관이 투영된 ‘집‘이 있다. 우리가 집에 가진 고집들은 단순한 취미나 기호에 머물지 않는다. 개인의 가치관과 숨겨진 욕구가 드러난다. 또한, 그것은 미래지향적이라기보다 과거에 뿌리내리고 있다. 과거의 지나온 삶이 귓가에 조용히 속삭이는 것이다.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 세상과 완벽히 단절된 벽을 쌓고 그 안에서 생활하는 것을 택한 것은 아버지 자신이 지나온 과거를 반추하며 결정한 그 자신만의 유토피아라 할 있다. 직접 보지 않아도 신산했을 그의 삶에 일정 부분 동정이 가면서도 인격이 형성되지도 않은 어린 시절에 아버지가 구축한한 세계 안에 갖혀 삶을 박탈 당한 주인공 '모드'의 삶이 너무나 안타깝게 느껴졌다.

"나는 아버지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 수없이 많은 나 자신의 결점들과 싸운다." (P. 38)

"진짜 슬픔은 다른 데 있다. 아무도 모르게, 나는 초라한 삶을 동경한다. 나는 아버지를 배신한 딸이다." (P. 183)

 

인간은 인간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유토피아를 꿈꿀 수 밖에 없다. 인간은 현재의 삶을 딛고 더 나은 삶을 꿈꾸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유토피아는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대안으로서 바람직한 사회나 미래에 달성해야 할 모델이 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유토피아니즘은 기본적으로 희망의 철학이다. 하지만 사회구성원 모두가 동의하는 유토피아는 존재할 수 없다는 점에서 유토피아는 절망을 내포하는 것이기도 하다.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자신이 주장하는 유토피아를 사회가 추구해야할 유일한 대안으로 강조할 때 유토피아는 디스토피아로 변질될 수 있다. 누군가 바람직한 미래가 무엇인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그것을 거부하는 타인에게 강요할 때 비극이 시작되는 것이다. 모드는 절대적인 아버지가 구축한 좁고 빈틈없는 세계 안에서 앞에서 아무런 의지와 생각 없이 지체없이 땅에 구멍을 파야하는 나사송곳이었다. 모드가 내릴 수 있었던 유일한 결정은 밤마다 자신 스스로를 학대할 때 언제, 얼마동안 자신에게 벌을 줄 것인지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절망적 상황 속에서도 삶은 유지될 수 있었다. 인간적인 삶이 불가능한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모드의 영혼은 잠식 당하지 않았다. 기형적인 가족관계와 그 자신 조차 피해자인 어머니,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맺고 유지하는게 불가능한 상황... 그 텅빈 침묵 속에서 모드는 동물들에게서 놀라운 위안을 얻는다. 인간적인 교류와 유대관계는 없었지만 모드는 절망적인 유년기 동안 자신과 함께했던 개, 조랑말, 오리와 조건 없는 사랑을 주고 받았다. 또한, 책과 음악을 통해 아버지가 구축한 세계에 대항할 수 있는 길을 발견했다.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에드몽 당테스와 <변신>의 그레고리 잠자,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를 읽고 용기를 얻었고, 리스트의 <헝가리 랩소디>를 들으며 다른 세상을 꿈꿨다. 절망적 환경 속에서도 인간은 사랑과 무한한 상상력을 통해 인간성의 회복과 자유를 지향할 수 있다는 것을 저자 모드 쥘리앵은 자신의 삶을 통해 증명해내었다.

삶은 예측불가능한 정글과도 같다. 정글은 인간의 인식의 영역을 넘어서는 거대한 세계이자 인간을 구속하고 제약하는 현실이다. 인간은 삶과 죽음을 모두 포용하고 있는 정글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다.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불완전하고 불안정한 환경 속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여 절망 속에서만 머무르진 않는다. 때론 환경에 순응하고 적응하면서, 또 때론 맞서 싸우고 극복하면서 삶을 이어 나간다. 정글과 같은 삶을 살아가며 피할 수 없는 상실과 결핍, 아픔들은 자연스럽게 삶의 한 부분으로 녹아 든다. 인생을 살아가는 간다는 것은 어쩌면 조금씩 퇴보하고 소멸해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이 죽음을 예정하고 있는 유한한 존재라는 것과 그러한 운명에도 불구하고 삶 속에서 인간적 가치를 유지하는 것은 존재와 소멸의 문제와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정글과 같은 삶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 절망속이라 해도 함께 있다면 타인의 고통을 느낄 수 있고 자신의 아픔도 진정시키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자각과, 상대방의 존재에 대한 ‘인정’ 그리고 ‘이해’는 품이 드는 일이다. 그것은 환경의 제약 속에서 타인과 삶의 온도를 맞춰가는 일이며, 상대적 성숙의 시간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을 거치며 우리는 삶을 무조건적으로 거부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흐릿하게 잡힐 듯 떠오르는 희망에 대해, 삶의 온기에 대해 느낄 수 있는 것 아닐까? 우리가가 그토록 잡고자 했던 불분명한 현실의 경계를 너머 표류하고 있는 진실의 조각은 이것 아닐까?

“나는 안다. 가능한 방법은 언제나 있다. 자유는 무엇이든 가능하게 한다. 정말로, 무엇이든 가능하다.“ (P. 321)

앞서 언급했지만 고리끼의 <밑바닥에서>를 읽고 난 후 '희망의 진정성'의 문제는 한동안 내 화두였다. '현실에 기반하지 않은 장밋빛 희망이나, 상대방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무책임한 응원과 조언은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는 독이 되는 것 아닐까?'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완벽한 아이>에 등장하는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모드 쥘리앵의 믿을 수 없는 실화는 이런 내 생각을 바꾸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모드의 탈출은 극적인 단 한 번의 사건이 아니라 삶에서 빚어지는 보일듯 말듯 한 틈을 작은 노력들로서 파고들어 만든 결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노력들은 말 못하는 동물들의 사랑과 주위의 응원이 담긴 눈빛과 말 한마디, 더 나은 삶이 가능하다는 상상력과 용기로 비롯된 것이었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로 인해 벌어지는 희망의 진정성에 대한 문제에 대한 해답은 여기에 있지 않을까? 현실과 꿈의 간극을 메우면서 희망의 진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건 이러한 작은 노력들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멀리 보이는 지평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 누구도 지평선을 빼앗긴 채 살아서는 안 된다." (P. 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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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1-11-14 22: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래전에 읽었는데 좋은 리뷰 덕분에 감동이 다시 새록새록 떠 오르네요!ㅎ 감사드립니다!

잭와일드 2021-11-15 09:05   좋아요 0 | URL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홍범도 - 송은일 장편소설
송은일 지음 / 바틀비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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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너스 (Cygnus)는 여름밤 한가운데에서 빛나며 여름철 별자리의 기준이 되는 백조 모양의 별자리다. 두 날개를 활짝 편 채 거대한 십자가를 그리며 우아하게 날아가는 새의 모습과 유사하다는 의미에서 지어진 이름이다. 2021815일 대한민국의 영공에는 초저녁임에도 불구하고 시그너스가 찬란하게 빛났다. 청산리·봉오동 전투 101, 서거 78년만에 고국의 품으로 돌아온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실은 수송기 '시그너스'를 대한민국 공군이 운영하는 6개 전투기종이 총출동하여 양쪽에서 호위하는 모습은 밤하늘의 시그너스 보다 더 아름답게 지켜보는 국민들의 마음을 수놓았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신 홍범도 장군님의 귀환을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지금부터 대한민국 공군이 안전하게 호위하겠습니다. 필승!"


 

간절한 의지와 불굴의 용기로 싸워 끝내 끝끝내 이김으로서 우리 손으로 해방과 자유를 누리고야 말겠다고 전의를 불태운 홍범도 장군이었지만 날로 거대해지는 현실의 적 앞에서 초인의 의지로 지탱해야하는 독립군의 삶이 얼마나 두렵고 외로웠을까? 하지만 종합군사력 세계 6위의 군사 강국이 된 조국으로 공군의 첨단 장비를 동원한 호위를 받으며 귀환하는 장군의 모습을 보면서 그에 대한 부채감이 조금이나마 해소되는 느낌을 받았다. 후손들이 이루어 놓은 현재의 대한민국은 그가 없었다면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들이 살아갈 세상을 위해 우리가 이리 사는 게지. (P. 374)'라는 소설 속 홍범도 장군의 말과 하늘에서 이를 흐뭇하게 지켜볼 그가 떠올라 가슴이 벅찼다.

 


한편으로는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다. '우리는 그를 제대로 아는가?'라는 <나는 홍범도>의 저자 송은일의 질문을 마주하면서부터였다. 평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한 홍범도 장군이었지만 나는 봉오동 전투의 승장이었다는 것 외에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그가 어떻게 독립군의 삶을 택하게 되었는지, 어떻게 전투를 치루고, 어떻게 승리를 이끌어냈는지, 종국적으로 그는 인간으로서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그동안 역사적 사건의 연표로서 피상적으로만 기억했던 그의 삶에 대해 내가 관심을 갖고 찾아보게 된 이유이다.

 


홍범도 장군은 타인의 모범이 되라는 아버지의 소망이 담긴 이름 '범도(範圖)'에 걸맞는 삶을 살았다. 머슴의 아들로 태어나 출산 후 7일 만에 어머니를 여의었고, 9살에는 아버지마저 떠나보냈다. 그는 머슴, 군인, 제지공장 노동자. 승려, 포수였고, 독립군이 된 이후에도 군자금이 필요할 때는 솔선수범하여 광산과 부두 등 노동의 현장으로 향했다. 스탈린의 강제집단이주 정책에 의해 카자흐스탄으로 옮겨간 그는 극장 수위로서 말년을 보냈다. 이 수많은 삶의 형태 중 그의 삶을 가장 잘 대표하는 것은 독립군일 것이다. 그는 군림하지 않는 리더였다. 대의를 위해서는 직위를 구분하지 않았다.

 


독립군으로 살면서 그는 아내와 두 아들을 모두 잃었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오랜 시간 외롭게 삶을 이어왔던 그였기에, 가족을 이루고 남편과 아버지로서 느끼는 평범한 행복은 그가 절실하게 지키고 싶은 것이었을 것이다. 또한, 가족들의 헌신적인 희생이 독립군으로서의 그를 있게 했다.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그의 부인 단양 이씨는 적의 회유와 고문에 스스로 혀를 끊어내어 벙어리가 되었고, 굴복 보다는 죽음을 택했다. 장군의 두 아들도 독립전쟁 중 목숨을 잃었다. 한국 정부는 20213.1절 기념식에서 장군의 부인 단양 이씨와 장남 홍양순 선생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봉오동 전투는 평범한 사람들이 함께 만든 '승리와 희망의 역사'입니다. 나라를 되찾겠다는 의기 하나로 모여든 무명의 청년들과 동포들이 승리의 주역이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추모사에서 밝힌 것처럼 우리는 시대의 요구를 외면하지 않고 응답했던 사람들, 그들의 투쟁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음까지도 기꺼이 감수한 그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현장의 지도자뿐만 아니라 가족과 동료로서 그들의 삶을 지탱했던 이들이다. 독립운동의 진정한 주역은 어쩌면 민족과 국가를 위한 진심을 보이고 사라져간 민중들, 이름 없이 사라져간 수많은 '단양 이씨들'인지도 모른다. 독립운동이 가지는 의미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하나의 그림이 있다. 바로 윌리엄 터너의 명화 <전함 테메레르>.



1805년 넬슨 제독이 이끄는 영국 해군은 나폴레옹의 유럽제패를 저지하고 자국을 수호하기 위해 트라팔가 해전에 임한다. 전장에서 테메레르는 위기에 처한 영국의 기함 빅토리호를 구하는 전적을 올린다. 이를 기반으로 한 트라팔가 해전의 승리는 19세기 영국을 '해가 지지 않는 제국'으로 만들었다. 윌리엄 터너의 그림에 표현된 테메레르는 찬란하게 빛났던 트라팔가에서의 모습이 아닌 시대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구시대의 유물로 쇠락한 모습이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빛낸 존재였지만 더 이상 자신의 힘으로 동력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덩치 큰 범선은 그림 속에서 작은 증기선에 의해 예인되며 해체되기 전 마지막 항해를 하고 있다.



트라팔가 해전 승리후 런던에는 트라팔가 광장이 조성되었고 광장의 중앙에는 승장 넬슨 제독의 동상이 세워졌다. 넬슨이 승선했던 기함 빅토리호는 포츠머스 해군기지에 영구 보존되고 있다. 반면 1838년 영국 해군은 테메레르호를 런던의 운수업자에게 팔아넘겼고 배를 산 운수업자는 배를 해체하기로 결정했다. 템즈 강가로 산책을 나간 터너는 이 위대한 선박의 마지막 항해를 그림으로 남겼다. 윌리엄 터너는 시대를 빛내고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는 영웅에 대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찬사를 보냈다. 모두가 기억하는 넬슨 제독, 빅토리호도 있었지만 우리에겐 테메레르도 있었다고그것은 자랑스러운 우리의 과거였고 우리의 현재를 있게 한 또 하나의 영웅이라고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존재에 대한 최대의 찬사는 그를 오래도록 기억해주는 것이다.



역사의 뒤안길로 스러져간 이름 없는 민중들,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을 역사는 어떻게 기록하고 있을까? 우리는 윌리엄 터너가 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그들을 기억해주어야 한다. 그들의 숭고한 희생은 <전함 테메레르>가 되기 충분하다. 그들은 자랑스러운 우리의 과거였고 우리의 현재를 있게 한 또 하나의 영웅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자신의 삶을 희생해가며 세상의 진보를 위해 고독한 걸음을 내디딘 이름 없는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홍범도 장군의 유해 귀환이 중대한 기점이 되어 이름 없이 스러져간 영웅들의 삶이 다시 조명 받고, 국민들의 마음속에서 빛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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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무적 박정권 - 한국시리즈를 제패한 박정권 이야기
박정권 지음 / 글의온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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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팬은 모두 마약중독자다. 그들의 마약은 바로 통계다.” -로버트. S. 와이더- 

 

 


 

야구의 역사는 숫자를 기반으로 한 기록과 분석, 수학과 통계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는 기록경기로서 갖는 야구라는 스포츠가 갖는 특징때문이다. 야구 기록의 아버지라 불리는 헨리 채드윅은 야구기자로는 최초로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등재되었고, 빌 제임스는 통계적, 수학적 야구분석방법인 세이버메트릭스를 만들었다. 혹시 영화 ‘머니볼 (Moneyball, 2011)’을 기억하는가? 머니볼은 메이저리그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 단장 빌리 빈의 실제 이야기를 소재로 한 영화다. 스몰마켓 구단이었던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는 빌리 빈이 부임하면서, 주어진 예산 한도에서 선수단을 운영하기 위하여 데이터를 중심으로 효율화를 추구하고 (예를 들어 타율이 낮아 몸값이 산 선수 중에서 출루율이 높은 선수를 영입하는 전략), 이 결과 주목받지 못했던 팀이 2002년 20연승과 함께 지구우승을 차지하는 결실을 맺는다. 2004년 86년만에 밤비노의 저주를 깨고 보스턴 레드삭스의 우승을 이끌고 시카고 컵스로 이적하여 108년만의 염소의 저주를 깨고 우승을 이끈 테오 앱스타인도 세분화된 통계분석을 통해 저주를 깨고 기적을 만들어내었다. 최근에는 야구공과 선수를 추적하여 야구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순간들을 기록, 수치화하여 분석하고 있다. 2014년 메이저리그 3개 구장에 시범 설치되었던 스탯캐스트는 2015년 메이저리그 전 구단으로 확대 도입되었고, 한 경기를 치를때 생성되는 약 7테라바이트에 달하는 데이터를 메이저리그 30개 구단이 공유하여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야구라는 종목이 숫자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스포츠라면 누가 결과가 뻔한 승부를 흥미를 가지고 볼것인가? “끝날 때까지 끝난게 아니다. (It ain't over till it's over.)"라는 요기 베라의 전설적인 야구명언은 마치 인생과도 같은 야구의 드라마틱한 속성을 대변하고 있다. 어쩌면 야구팬들은 기록에 열광하면서도 기록 이면에 존재하는 감동을 원하는 모순적인 존재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성적 예측의 불완전성이 우리가 야구를 사랑하는 진짜 이유이지 않을까? 통산 4,413이닝, 305승을 달성하고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대투수 톰글래빈은 "야구를 향한 나의 열정은 스피드건에 찍히지 않는다. (You can't measure heart with a radar gun.)"는 말을 남겼다. 톰 글래빈의 말처럼 숫자로 표현되는 기록들은 선수들의 예상성적을 가늠해볼 수 있는 하나의 지표가 될 순 있지만 선수 개인의 열정, 원팀이 되어 발생하는 시너지를 대변해주지는 못한다. 내가 야구는 단순히 기록 스포츠만이 아니라는 걸 확신할수 있었던 건 한 선수를 알게 되고, 그의 플레이를 지켜보면서부터이다. 그는 바로 가을 사나이 박정권이다.

 

 

"어쩌면 박정권을 떠나보내는 것은 하나의 계절을 떠나보내는 것과 마찬가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가을 마다 떠올리는 행복한 추억들을 만들어줘서, 우리의 가을이 자신감과 자부심이 되게 해줘서 고맙습니다. 지금도, 영원히, 공기가 달라지는 이 계절이 되면 늘 기억하겠습니다. 박정권의 두번째 야구인생도 응원합니다." - SSG 랜더스 공식 인스타그램 포스팅 中에서 -

 

박정권의 은퇴를 앞두고 그와 함께한 행복했던 추억들과 그를 떠나 보내야 하는 아쉬움 마음이 담긴 SSG 랜더스 공식 인스타그램의 포스팅을 보며 나도 과거의 추억에 젖어들었고, 또 그를 떠나보내며 마치 한 시대, 하나의 계절과 이별하는 것 같은 서운한 감정과 그의 새로운 출발을 응원하고 축하를 보내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복합적인 감정을 느꼈다. KBO 통산 1,308경기 1,134안타 178홈런 679타점 타율 0.273... 이는 박정권의 선수시절을 대변하는 숫자다. 하지만 그는 결정적인 순간에 기록 이면의 감동을 만들며 팀의 단합과 팬들의 열정을 이끌어냈던 선수였다. '봄, 여름, "정권", 겨울'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박정권은 자타공인 KBO리그를 대표하는 가을 사나이였다.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이른바 SK 와이번스의 왕조 시대, 그리고 SK의 2018년 한국시리즈 우승은 모두 박정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시절에 SK는 7번의 한국시리즈 진출과 4번의 우승을 했고, 박정권은 2009년 플레이오프MVP, 2010년 한국시리즈MVP, 2011년 플레이오프MVP, 2018년 플레이오프 1차전 MVP, 2018년 한국시리즈 1차전 MVP를 수상하며 가을하늘을 수놓았다.

 


 

정규시즌 통산 성적 : 타율 0.273, 출루율 0.347, 장타율 0.460, OPS : 0.807

포스트시즌 통산 성적 : 타율 0.296, 출루율 0.376, 장타율 0.550, OPS : 0.926 

 

박정권의 정규시즌 통산기록과 포스트시즌 통산기록을 비교해보면, 그가 왜 Mr. October로 불리고, 가을을 대표하는 선수였는지 알 수 있다. 박정권은 KBO리그 포스트시즌 통산 홈런 3위(11개), 타점 3위(40타점), 2루타 2위(15개), 고의사구 3위(8개), 장타율 7위, OPS 8위를 기록했다. 이러한 기록들은 유난히 빛났던 가을의 박정권을 수식해주는 지표들이지만, 박정권은 팀이 꼭 필요한 결정적인 순간 이런 숫자와 기록들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활약을 하며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의 이런 면모를 단적으로 잘 보여준 사례는 2018년도 포스트시즌이라고 할 수 있다. 커리어의 마지막 해였던 2018년, 박정권은 플레이오프 1차전 끝내기 2점 홈런, 한국시리즈 1차전 역전 2점 홈런 등 빼어난 활약으로 SK의 8년만의 우승을 견인했다. 

 

2018년의 박정권을 본격적으로 언급하기에 앞서 2018년 SK 와이번스의 우승의 의미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한국시리즈 6차전 연장 13회까 가는 혈투 끝에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SK 와이번스의 우승은 여러모로 화제가 됐다. KBO리그의 계단형 포스트 시즌 시스템은 정규시즌 우승팀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구조다. 4위와 5위 팀이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치른 뒤 이긴 팀이 3위 팀과 준플레이오프를 치른다. 또, 준플레이오프 승리 팀은 2위 팀과 플레이오프를 치르고, 여기가 승리한 팀이 마침내 한국시리즈에 올라올 수 있는데, 이미 한국시리즈에 진출해 있는 정규시즌 우승팀에 비해 체력적으로 매우 불리한 위치에 있다. 또한, SK의 우승은 역대 다섯 번째로 정규시즌 비우승팀이 정규시즌 1위 팀을 꺾고 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한 '업셋 우승'이었다. 40여년의 KBO 역사에서 전후반기 리그 및 양대 리그의 경우를 제외한 역대 ‘업셋 우승’의 사례는 5번뿐이다. (① 1989년 정규시즌 2위 해태 타이거즈, ② 1992년 정규시즌 3위 롯데 자이언츠, ③ 2001년 정규시즌 3위 두산 베어스, ④ 2015년 정규시즌 3위 두산 베어스) 역대 KBO리그에서 정규시즌 비우승팀이 포스트 시즌 이전 단계부터 시작하여 우승한 확률은 13.8%에 불과했다. 더더군다나 2018년 정규시즌 1위 두산과 2위 SK의 승차는 무려 14경기 반 차이였고, 이러한 승차를 뒤집고 이룬 SK의 업셋 우승은 역대급 기록이라 할 수 있다. (비록 양팀의 정규시즌 전적은 8승 8패였지만...)

 

"13.8 퍼센트, 결코 높지 않은 확률이다. 확률대로, 분석대로만 이루어진다면 우리 삶은 얼마나 건조하고 재미없겠는가. 삶은 절대로 확률과 분석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내가 흘린 땀방울의 열매가 언제 찾아올지 아무도 모르기에 인생은 살아볼 만한게 아닐까?" (p. 27)

 

에이징 커브 (Aging Curve)는 선수의 나이에 따른 미래성적을 예측하기 위해 만들어진 지표다. 이에 따르면 야구에서는 선수 성적의 평균 추세가 일반적으로 27세를 정점으로 감소한다. 20대 중반부터 30대 초반까지는 대부분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지만 평균에서 벗어나는 아웃라이어라고 하더라도 30대 중반을 넘어가게 되면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도 성적이 부진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한다. 2018년 박정권의 나이는 38세였고, 확연히 에이징 커브의 영향 아래 있는 듯 보였다. 팀내 주전 경쟁에서도 밀려나 1군에서 거의 기회를 받지 못했고, 정규시즌 14경기에 출장하여 타율 0.172라는 초라한 성적을 남겼다. 하지만 2018년 박정권은 그의 별명처럼 찬바람이 부는 가을이 오자 자신이 어떤 선수인지 야구팬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각인시켰다.

 


 

 

"잘 맞췄습니다! 중견수 쪽, 뒤로! 박정권이 시리즈 SK에게 첫 승을 안깁니다! 이게 가을사나이 박정권입니다!!" 플레이오프 1차전 끝내기 투런포를 쳤을때, KBS 이광용 아나운서의 멘트 -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을 때 평균적으로 홈런이 발생할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 KBO리그의 기록에 따르면 홈런은 평균적으로 한 타석당 약 3%라는 매우 낮은 확률로 발생하고 있다. 박정권의 기록을 보더라도 통산 4,700 타석 중에서 178개의 홈런이 발생하여 타석당 홈런 발생비율은 약 3.8%에 불과하다. 정규시즌에서도 홈런 발생율이 타석당 3%에 불과한데, 포스트 시즌이라는 중압감이 큰 경기, 더더군다나 9회까지 양팀이 팽팽하게 맞선 긴장감이 고조된 상황에서 타격감을 유지하기 힘든 대타로 출전하여 끝내기 홈런을 칠 확률은 얼마나 될까? 2018년 10월 27일 넥센과의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박정권은 9회말 김상수를 상대로 끝내기 2점 홈런을 때렸다. SK 팬사이트에서 팬들 사이에서만 언급되곤 했던 '정권이 내'라는 말을 전국적인 유행어로 만든 순간이자 한국 야구사의 한페이지를 장식할 드라마틱한 장면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이로써 박정권은 플레이오프 통산 7호 홈런을 쏘아올리며, KBO 리그 플레이오프 통산 최다 홈런 (7개)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하였다. 플레이오프 1차전 MVP를 그가 차지한 건 당연했다.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스트라이크 아웃을 당하면서도 다시 방망이를 들고 공을 때리고 날아오는 공을 향해 몸을 던지고 구르며 운동하다 보면 어느 날 감독님이 부르신다. '박정권 내!'" (p. 136)

 


 

 

뒤이어 열린 11월 4일 한국시리즈 1차전 6회초 2:3으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박정권은 두산의 에이스 조쉬 린드블럼을 상대로 재역전 투런포를 때렸다. 이 홈런으로 박정권은 KBO 리그 포스트시즌 통산 홈런 3위에 등극했다. 이어서 7회에는 본인의 타석에서 장원준의 폭투로 SK가 추가득점을 올렸고, 고의사구로 나갔다. 9회에는 1사 1-3루에서 쐐기를 박는 희생플라이까지 만들어내며 3타수 1안타 1사사구 3타점을 기록, PO에 이어 한국시리즈에서도 1차전 MVP를 따냈다.

 

“가을을 노리고 운동하면 과연 가을이 왔다고 해서 성적이 올라갈 수 있을까? 그렇지 않아. 도리어 가을이 오든 말든 내 갈 길 가고 있으면 어느덧 쌓인 노력과 지켜온 체력이 갑자기 균형을 찾으면서 홈런이, 승수가 쌓이기 시작하는 거야.” (p. 93)

 


 

 

우리에게 박정권은 가을을 대표하는 선수이지만 그러한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남모르게 눈물겹고 피나는 노력을 해왔을 것이다. 이는 지도자가 된 후 후배들을 코칭하는 모습에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가을야구를 생각하기에 앞서 성공적인 시즌을 보낼 수 있도록 꾸준히 준비하고 노력한 시간들이 시즌중에 표면화되고, 결국 이런 꾸준함으로 자타공인 KBO의 대표적 가을남자가 될수 있었던 그의 개인적 경험을 지도자가 된 박정권은 애정어린 목소리로 후배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박정권이 은퇴식을 앞두고 했던 인터뷰에서도 빛나는 한 순간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남모르게 그가 했을 진한 땀과 노력을 느낄 수 있었다. 박정권은 그의 선수시절을 5글자로 표현해달라는 질문에 5글자로 표현하기는 어렵고, 7글자로 하겠다고 답하며 "소나무 같던 선수"라는 답을 했다. 사시사철 늘 푸른 모습을 하고 있는 소나무처럼 그는 우리에게 빛나는 한순간, 감동적인 경기를 만들어 내기 위해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비시즌 기간에도 꾸준하게 노력하고 준비해왔던 것이다. 그런 인고의 시간이 있었기에 박정권은 팬들의 가슴 속에 빛나는 기억들을 심어주었고, 그 자신 또한 영원히 시들지 않을 소나무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시력도 그리 좋지 못하다. '익상편 (翼狀片)' 이라는 낯선 이름의 안과 질환이 있어서다. 눈동자 표면에 꺼풀이 조금씩 덧자라는 질환인데, 증세가 심한 편은 아니지만 야구선수에게 인과질환은 치명적일 수 있다. 무조건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때 찾은 방법이 바로 렌즈가 큼직한 안경을 착용하는 것이었다. (p. 40)

 

 

 

<천하무적 박정권>을 읽으며 그에 대해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야구선수, 그 중에서도 타자는 동체시력이 중요하다는 것은 야구팬이라면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를 생각해 볼때 시력이 좋지 못해 안경을 착용한다는 것 만으로도 일정 부분 페널티를 안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단순히 시력이 좋지 않을 뿐 아니라 '익상편 (翼狀片)'이라는 특수한 안과질환을 앓고 있었다는 것은 그의 팬을 자체했던 나도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박정권은 이에 굴하지 않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찾으려 노력했다. 타석에서 타격 순간에 얇거나 작은 안경테나 고글을 쓰고 있다면 눈앞으로 공이 들어왔을 때 시야의 초점이 순간적으로 맞지 않았고, 이같은 미세한 차이는 렌즈 밖 공과 렌즈 안으로 들어온 공 사이의 차이에 의해 타자가 공의 궤적을 놓칠 수 있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박정권은 이런 사실을 깨달은 이후에는 렌즈가 큼직한 안경 착용만 고집했다. 이는 그에게 맞춤옷처럼 좋은 선택이 되었다. 교정시력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동일한 시각 안에서 투구를 집중할 수 있어서 정밀 타격이 가능해졌다. 박정권하면 떠올릴 수 있는 대표적인 이미지 중 하나인 '왕방울 안경'은 그렇게 탄생했다. 그는 불편한 눈에도 불구하고 야구계에 자리 잡았고, SK 왕조 시절 4번 타자로서 맹타를 휘둘렀다.

 


 

 

"많은 팬분들 앞에서 작별인사를 하진 못하지만 저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남부럽지 않은 선수 생활을 했고, 잘할 때나, 못할 때나 팬 여러분들의 많은 응원과 많은 사랑을 받은 선수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한편으론 아쉬운 생각도 듭니다. 선수생활 때 받았던 많은 사랑이 그때는 희미했고, 막연했었습니다." - 은퇴사 中에서 -

 

앞서 서두에서도 밝혔듯이 박정권의 오랜 팬으로서 그를 떠나 보내는 것은 무엇 보다도 아쉬움 마음이 크다.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은퇴식에도 팬들이 현장에서 함께 하지 못하고 텅빈 관중석의 다소 썰렁한 분위기로 그를 보내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은퇴사를 낭독하는 그를 지켜보면서 그의 선수시절에 왜 더 크게 환호하고 응원하지 못했는지 안타까운 마음과 지도자로서 제2의 인생을 열어갈 그의 앞날을 왜 현장에서 함께 기뻐하고 축복해줄 수 없는 것인지 너무나 답답하고 아쉬웠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선수생활의 그 못지않게 지도자로서의 그도 여전히 야구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 남아 있다는 걸 확인하며 아쉬운 마음을 달랠 수 있었다.

 

"끝내기 홈런의 방망이는 반창고를 덕지덕지 붙인 연습용 방망이가 되어 내가 지도하는 2군 선수들의 연습을 돕고 있다. '이 귀한 것을 왜 연습용으로 내셨어요?' 그때마다 나는 별말 없이 빙그레 미소로 대답을 한다. '그래. 그거야. 이 방망이로 연습하고 너도 나중에 멋진 홈런 꼭 날려야 해. 알았지?' " (p. 162)

 

야구는 앞으로도 숫자와 우연, 그 두 시소 사이 어딘가에서 방황하는 방랑자 같은 스포츠가 될 것이다. 또한, 우리가 박정권에게 열광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박정권이 키워낸 또 다른 박정권 키즈들에게도 열광할 것이다. 자신의 커리어를 대표하는 결정적인 빛나는 한 순간을 만들어낸 너무나도 소중한 방망이를 아낌없이 후배들의 연습용 방망이로 제공하는 그를 보며 나는 이를 확신할 수 있었다. 이제 선수로서는 참가하지 못하지만 지도자로서 자신의 가을 DNA를 후배들의 가슴속에 깊이 새겨넣는 자랑스러운 랜더스의 지도자로 또 다른 가을의 전설을 만들어 갈 박정권의 두번째 야구인생을 응원한다.

 

 

그가 은퇴를 기념하여 그의 선수생활과 짧게 나마 경험한 코치경험을 돌아보는 책을 낸다는 생각지도 못한 소식을 접하고 너무나 놀랍고 반가웠다. 출간 소식을 듣자마자 나는 그의 책 <천하무적 박정권> 두 권을 주문했다. 한 권은 선수시절 동안 내게 너무나 큰 즐거움과 행복을 안겨준 그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의미에서, 나머지 한 권은 선수생활을 마무리하고 제2의 인생을 열어갈 그의 앞날을 지지한다는 의미에서였다. 선수생활에 이어 이제 지도자로서 나아가는 박정권에게 더 빛나는 나날들이 펼쳐지길 그를 영원히 지지하는 팬으로서 진심으로 바라고 응원한다. 이제는 과거가 되어버린 그 시절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외쳐본다.

 

"기운 센 천하장사, 무쇠로 만든 박정권!!, Good-Bye MR. Octo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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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울립 2021-11-29 10: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댄디한 박정권선수. 은퇴하고 책도 냈군요!! 좋아하던(는) 선수 중 한 명.

잭와일드 2021-11-29 10:51   좋아요 0 | URL
네 올 가을 처럼 아쉽게도 ㅎㅎ 가을만 오면 유난히 그리워질 듯 합니다^^

KK 2022-09-17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동화과 가을정권ㅠㅠ 근데 올해는 가을에 왜이래 ㅠㅠ
 
중간착취의 지옥도 - 합법적인 착복의 세계와 떼인 돈이 흐르는 곳
남보라.박주희.전혼잎 지음 / 글항아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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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는 사전적으로 노동력을 제공하고 얻은 임금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으로 정의된다. 이를 기준으로 본다면 나도 노동자로서 살아온 세월이 꽤나 길다고 할 수 있는데, 내가 노동자임을 인지하고 노동자에게 행해지는 차별과 불합리에 대해 의식화한 기간은 생각 보다 짧았던 것 같다. 그러한 결정적 계기가 된 사건 중 하나는 잡지 <꿀잠>을 만난 것이다. <꿀잠> 10개 언론사의 기자 20명의 재능기부로 탄생한 비정규직을 위한 특별잡지다. 지상에서 가장 따뜻한 잡지라는 슬로건처럼 노동자들의 삶과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잡지 판매수익금 또한 비정규 노동자들을 위해 사용한다고 알고 있는데, 아쉽게도 현재는 발간되지 않고 있다.



내가 <꿀잠>에 강렬한 인상을 받은 건 가벼운 마음으로 첫 페이지를 넘겼을 때였다. 첫 페이지는 잡지 속 화려한 광고에 익숙해진 내게 어쩌면 무심코 넘겨질 페이지였는지도 모르겠다. 잘 차려입은 여성 모델들의 모습은 충분히 눈길을 끌만한 것이었지만, 별다른 특별한 것이 없는 광고라고 생각했고, 광고의 대상 또한 내 관심 분야가 아닌 여성복이었기 때문이다. 페이지를 넘기려는 손가락을 주저하게 만들었던 건 여성모델의 사진 아래에 남겨진 글이었다.



아름다워요. 또렷하고 밝게 빛납니다. 오늘 당신의 하루 어땠나요?
어둡군요. 흐릿합니다. 누구인지, 왜 거기에 있는지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 청소를 하고 계셨군요. 깨끗해야 하는 것을 닦느라 더러워진
당신 손안의 걸레를 이제야 보았습니다. 오늘 당신의 하루 어땠나요?



문구를 읽고 나서 다시 사진을 보았다. 사진은 스튜디오에서 광고를 위해 촬영된 것이 아닌 LED조명으로 환하게 밝혀진 대형 옥외광고물을 찍은 것이었다. 그리고 사진 속에는 문구를 보고나서야 비로소 나는 발견할 수 있었다. 모델의 밝은 미소를 부각시켜주는 조명판을 더 빛나게 하기 위해 청소 아주머니가 걸레로 닦고 있는 모습이 불빛에 비춰진 실루엣으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자본주의의 꽃이라는 광고는 이윤추구를 위해 사람들의 눈을 잡아끌며 상냥한 인사를 건네고 있는 반면 사회의 버팀목인 노동은 어둠 속에 가려져 있었다.



어두운 곳에서는 밝은 곳이 잘 보이지만 밝은 조명 안에서 바라보면 어두운 부분이 잘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는 특정부분만을 강조하는 스포트라이트로 인해 땀의 눈물과 소중함을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노동으로 일군 삶이야말로 자랑스럽고 떳떳해야 하고, 그 땀의 웃음이 밝고 아름답게 빛나야 하는 것은 아닐까? 노동이 웃음이 되는 세상, 노동이 보람이 되는 세상을 간절하게 꿈꾼다는 잡지 <꿀잠>의 존재이유와 지향점을 나는 첫 페이지만으로 확실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한 장의 사진만으로 노동자들이 처해 있는 현실을 이 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잡지 <꿀잠>은 내게 '당신의 노동은 안녕한가?'라고 묻고 있었다.





비정규직 중에서도 간접고용 노동자의 급여가 유난히 작은 이유는 단 한가지 차이 때문이다. 노동력을 사용하는 사람과 노동자 사이에 누군가 개입해 있다는 것. 그게 이들을 비정규직 중에서도 제일 밑바닥으로 끌어내렸다.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에 누군가 개입하는 순간, 착취는 필연적이다.” (P. 54)



<중간착취의 지옥도> 읽으며, <꿀잠>의 첫 페이지를 펼쳤을 때의 충격과 안타까움을 느꼈다. 정규직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자의 지위에 놓여있는 비정규직을 대상으로 벌어지는 차별과 부당 대우 등의 사회 부조리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비정규직 중에서도 약자로 분류되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우리나라에 346만명이나 존재하고 있고, 이들 중 대다수가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을 정도의 임금을 착취당하고 있음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아니 이 책을 읽고 그 모든 걸 알게 되었다는 건 변명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회사에서 기획업무를 담당하며 회사의 고용형태 중파견이나용역이 존재한다는 건 알고 있었고, 회사가 영위하고 있는 다양한 사업 중 간접고용이 많이 발생하는 콜센터도 있었기 때문에 관심을 조금만 기울였다면 알 수 있는 기회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활 반경 가까이에 자리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기 전에 나는파견용역의 차이가 무엇인지, 간접고용과 중간착취가 무엇이고 그것이 어떤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지, 간접고용이 많이 발생하는 사업영역은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사회가 주목하는 대상들을 더 빛나게 하기 위해 기꺼이 어둠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낮추며 차별과 착취를 견디고 있는 노동자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있었음을, 또한 그들이 불안과 분노, 체념의 수레바퀴에 짓눌려 신음해왔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엄습하는 불안감을 애써 떨쳐내며 떨리는 목소리를 내어 왔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중간착취의 지옥도>에는 간접고용에 대한 기발하다 못해 기괴하고 치졸하게까지 느껴지는 수많은 중간착취사례와 방법이 등장한다. 또한 이에 대한 의미 있는 문제제기와 이를 규제하기 위한 노력들도 같이 언급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이렇게 많은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착취에 신음하고 있다는 사실이 참담하기까지 하다. 한국의 근로기준법은 직접고용관계를 원칙으로 설계되었다. 그리고 우리의 근로기준법은 여전히 1958년 제정 당시 과거의 노동시장에 머물러 있다. 용역업체도 파견업체도 없던 그때, 당연히 간접고용이라는 말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당시의 법은 당연하게도 오늘날 실재하는 346만명의 간접고용 노동자를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파견법은 제정된 당시부터 노동자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1998 IMF 구제금융으로 경제가 휘청거리던시절노동 시장 유연화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법이다. 법원에서 원청이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근무환경을 개선하라는 취지의 판결이 나왔지만, 이 판결 이후 원청은 처우 개선에 대한 노력 대신 불법 파견의 근거가 될 만한 일을 없애기 위해서만 노력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간접고용 개선을 위한 판결은 이렇게불법 파견 판결의 역설로 왜곡된 채 현실화되어 나타났다. 또한, 건설업에서는 임금직접지급제가 법제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똥떼기라 불리는 중간착취는 여전히 오히려 더 진화한 형태로 자행되고 있다.



이쯤되면 국회와 정부의 움직임이 궁금해지지 않을수 없다. <중간착취의 지옥도>에서 언급된 중간착취에 대한 국회와 정부의 대응을 살펴보자. 2000 (16대 국회, 파견법 시행이후 열린 첫 국회)부터 21 2월 말까지 21년동안 국회에서 발의된 간접고용 관련 법안은 91건이었다. 이는 21년간 국회에서 발의된 전체 법안인 7 9,216건 중 0.11%에 불과하다. 이는 간접고용에 대한 국회의 관심도를 나타내주는 지표다. 하지만 이보다 더 처참한 건 91건의 법안 중 실제 법 개정으로 이어진 것은 단 2 (2%)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2건 마저도 파견 노동자의 차별 개선에 대한 것으로, 중간착취와 관련된 법안은 아니었다고 한다.



더 아프게 느껴진 건 이러한 현실을 방조하고 가속화시킨 것이 노동자를 보호해야 할 정부 당국이라는 것이다. 정부는 1998년 간접고용의 문을 활짝 여는 파견법을 제정했고, 그 후 23년 동안 정부는 총 7건의 파견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이중 3건이 국회를 통과했다. 일부 노동자를 보호하는 법안도 있었지만, 대부분 노동자 보다는 파견업체에 유리한 규제완화에 관한 법안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국정과제 1로 추진했지만, 비정규직은 늘어나고, 정규직 일자리는 감소하는 등 고용의 질은 오히려 더 퇴보하는 모양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사회적 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간접고용의 폐해를 깊숙히 들여다보고 취재하여 기사화하였고, 이에 그치지 않고 기자라는 신분으로 파견법 개정안에 대해 국회와 정부를 대상으로 사상 최유의 입법 청원까지 추진한 한국일보 소속 기자 남보라, 박주희, 전혼잎에게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



희망과 불안, 체념 사이를 오가는 나를 희망 쪽으로 이끄는 사람은 불안에 발을 딛고 선 그였다.” (P. 262)



참으로 답답한 현실이다. 현실에서 부조리가 자행되고 있고, 그것이 명백하게 부당한 것임을 누구나 쉽게 인정하는데도 불구하고, ‘노사갈등현장혼란이 발생할 우려 등의 논리를 내세워 이미 갈등과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이들을 애써 외면한 채개선이나대안이 아닌검토라는 단어로 결론을 맺는 국회와 정부의 답변을 지켜보며 드는 생각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희망은 무엇일까? 나는 꿈을 꾸는 사람은 자신은 물론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을 아직 놓지 않고 있다. 세상의 변화를 위해서는 작지만 의미 있는 발걸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할 것은타인에 대한 관심일 것이다. 타인에 대한 따뜻한 관심 속에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간접고용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중간착취는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존재할 겁니다.“ (P. 174)



타인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우리가 내딪어야 할 첫 걸음은 간접고용 실태에 대한 조사라고 생각한다. 조사의 목적은 중간착취의 형태나 범위를 파악하여 이를 시정하기 위한 것 보다는 간접고용이 왜 발생했는지에 대한 원인파악과 지속적으로 유지될 필요성이 있는 것인지에 대한 검토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에서도 언급되었지만, 간접고용이 존재한다면 중간착취는 어떠한 형태로든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간착취 문제해결의 핵심은 간접고용을 최소화하는 방안이 되어야 한다. 최소한 정부 공공부문에서라도 간접고용의 현황을 파악하여 이것이 상시적으로 이루어지는 업무인지, 사업진행에 있어 필수적인 것인지 등을 검토하여 먼저 간접고용을 최소화시키는 방안을 구체화해나가면 어떨지 조심스럽게 의견을 제시해본다. 타인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한 작지만 의미있는 발걸음과 끊임없는 목소리들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 나는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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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1-10-08 18: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잭와일드 2021-10-08 20:5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1-10-08 19: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잭와일드 2021-10-08 20:5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