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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착취의 지옥도 - 합법적인 착복의 세계와 떼인 돈이 흐르는 곳
남보라.박주희.전혼잎 지음 / 글항아리 / 2021년 8월
평점 :
‘노동자’는 사전적으로 노동력을 제공하고 얻은 임금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으로 정의된다. 이를 기준으로 본다면 나도 노동자로서 살아온 세월이 꽤나 길다고 할 수 있는데, 내가 노동자임을 인지하고 노동자에게 행해지는 차별과 불합리에 대해 의식화한 기간은 생각 보다 짧았던 것 같다. 그러한 결정적 계기가 된 사건 중 하나는 잡지 <꿀잠>을 만난 것이다. <꿀잠>은 10개 언론사의 기자 20명의 재능기부로 탄생한 비정규직을 위한 특별잡지다. 지상에서 가장 따뜻한 잡지라는 슬로건처럼 노동자들의 삶과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잡지 판매수익금 또한 비정규 노동자들을 위해 사용한다고 알고 있는데, 아쉽게도 현재는 발간되지 않고 있다.
내가 <꿀잠>에 강렬한 인상을
받은 건 가벼운 마음으로 첫 페이지를 넘겼을 때였다. 첫 페이지는 잡지 속 화려한 광고에 익숙해진 내게
어쩌면 무심코 넘겨질 페이지였는지도 모르겠다. 잘 차려입은 여성 모델들의 모습은 충분히 눈길을 끌만한
것이었지만, 별다른 특별한 것이 없는 광고라고 생각했고, 광고의
대상 또한 내 관심 분야가 아닌 여성복이었기 때문이다. 페이지를 넘기려는 손가락을 주저하게 만들었던
건 여성모델의 사진 아래에 남겨진 글이었다.
"아름다워요. 또렷하고 밝게 빛납니다. 오늘 당신의 하루 어땠나요?
어둡군요. 흐릿합니다. 누구인지, 왜 거기에 있는지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아, 청소를 하고 계셨군요. 깨끗해야 하는
것을 닦느라 더러워진
당신 손안의 걸레를 이제야 보았습니다. 오늘 당신의 하루 어땠나요?"
문구를 읽고 나서 다시 사진을 보았다. 사진은 스튜디오에서 광고를 위해 촬영된 것이 아닌 LED조명으로
환하게 밝혀진 대형 옥외광고물을 찍은 것이었다. 그리고 사진 속에는 문구를 보고나서야 비로소 나는 발견할
수 있었다. 모델의 밝은 미소를 부각시켜주는 조명판을 더 빛나게 하기 위해 청소 아주머니가 걸레로 닦고
있는 모습이 불빛에 비춰진 실루엣으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자본주의의 꽃이라는 광고는 이윤추구를 위해
사람들의 눈을 잡아끌며 상냥한 인사를 건네고 있는 반면 사회의 버팀목인 노동은 어둠 속에 가려져 있었다.
어두운 곳에서는 밝은 곳이 잘 보이지만 밝은 조명 안에서 바라보면 어두운 부분이 잘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는 특정부분만을 강조하는 스포트라이트로 인해 땀의 눈물과 소중함을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노동으로 일군 삶이야말로 자랑스럽고 떳떳해야 하고, 그 땀의 웃음이 밝고 아름답게 빛나야 하는 것은 아닐까? 노동이 웃음이 되는 세상, 노동이 보람이 되는 세상을 간절하게 꿈꾼다는 잡지 <꿀잠>의 존재이유와 지향점을 나는 첫 페이지만으로 확실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한 장의 사진만으로 노동자들이 처해 있는 현실을 이 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잡지 <꿀잠>은 내게 '당신의 노동은 안녕한가?'라고 묻고 있었다.
“비정규직 중에서도
간접고용 노동자의 급여가 유난히 작은 이유는 단 한가지 차이 때문이다. 노동력을 사용하는 사람과 노동자
사이에 누군가 개입해 있다는 것. 그게 이들을 비정규직 중에서도 제일 밑바닥으로 끌어내렸다.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에 누군가 개입하는 순간, 착취는 필연적이다.” (P. 54)
<중간착취의 지옥도>를 읽으며, <꿀잠>의 첫 페이지를 펼쳤을 때의 충격과 안타까움을 느꼈다. 정규직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자의 지위에 놓여있는 비정규직을 대상으로 벌어지는 차별과 부당 대우 등의 사회 부조리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비정규직 중에서도 약자로 분류되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우리나라에 346만명이나 존재하고 있고, 이들 중 대다수가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을 정도의 임금을 착취당하고 있음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아니 이 책을 읽고 그 모든 걸 알게 되었다는 건 변명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회사에서 기획업무를 담당하며 회사의 고용형태 중 ‘파견’이나 ‘용역’이 존재한다는 건 알고 있었고, 회사가 영위하고 있는 다양한 사업 중 간접고용이 많이 발생하는 콜센터도 있었기 때문에 관심을 조금만 기울였다면 알 수 있는 기회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활 반경 가까이에 자리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기 전에 나는 ‘파견’과 ‘용역’의 차이가 무엇인지, 간접고용과 중간착취가 무엇이고 그것이 어떤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지, 간접고용이 많이 발생하는 사업영역은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사회가 주목하는 대상들을 더 빛나게 하기 위해 기꺼이 어둠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낮추며 차별과 착취를 견디고 있는 노동자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있었음을, 또한 그들이 불안과 분노, 체념의 수레바퀴에 짓눌려 신음해왔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엄습하는 불안감을 애써 떨쳐내며 떨리는 목소리를 내어 왔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중간착취의 지옥도>에는 간접고용에 대한 기발하다 못해 기괴하고 치졸하게까지 느껴지는 수많은 중간착취사례와 방법이 등장한다. 또한 이에 대한 의미 있는 문제제기와 이를 규제하기 위한 노력들도 같이 언급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이렇게 많은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착취에 신음하고 있다는 사실이 참담하기까지 하다. 한국의 근로기준법은 직접고용관계를 원칙으로 설계되었다. 그리고 우리의 근로기준법은 여전히 1958년 제정 당시 과거의 노동시장에 머물러 있다. 용역업체도 파견업체도 없던 그때, 당연히 간접고용이라는 말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당시의 법은 당연하게도 오늘날 실재하는 346만명의 간접고용 노동자를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파견법은 제정된 당시부터 노동자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1998년 IMF 구제금융으로 경제가 휘청거리던시절 ‘노동 시장 유연화’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법이다. 법원에서 원청이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근무환경을 개선하라는 취지의 판결이 나왔지만, 이 판결 이후 원청은 처우 개선에 대한 노력 대신 불법 파견의 근거가 될 만한 일을 없애기 위해서만 노력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간접고용 개선을 위한 판결은 이렇게 ‘불법 파견 판결의 역설’로 왜곡된 채 현실화되어 나타났다. 또한, 건설업에서는 임금직접지급제가 법제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똥떼기’라 불리는 중간착취는 여전히 오히려 더 진화한 형태로 자행되고 있다.
이쯤되면 국회와 정부의 움직임이 궁금해지지 않을수 없다. <중간착취의 지옥도>에서 언급된 중간착취에 대한 국회와 정부의 대응을 살펴보자. 2000년 (16대 국회, 파견법 시행이후 열린 첫 국회)부터 21년 2월 말까지 21년동안 국회에서 발의된 간접고용 관련 법안은 91건이었다. 이는 21년간 국회에서 발의된 전체 법안인 7만 9,216건 중 0.11%에 불과하다. 이는 간접고용에 대한 국회의 관심도를 나타내주는 지표다. 하지만 이보다 더 처참한 건 91건의 법안 중 실제 법 개정으로 이어진 것은 단 2건 (2%)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이 2건 마저도 파견 노동자의 차별 개선에 대한 것으로, 중간착취와 관련된 법안은 아니었다고 한다.
더 아프게 느껴진 건 이러한 현실을 방조하고 가속화시킨 것이 노동자를 보호해야 할 정부 당국이라는 것이다. 정부는 1998년 간접고용의 문을 활짝 여는 파견법을 제정했고, 그 후 23년 동안 정부는 총 7건의 파견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이중 3건이 국회를 통과했다. 일부 노동자를 보호하는 법안도 있었지만, 대부분 노동자 보다는 파견업체에 유리한 규제완화에 관한 법안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국정과제 1호’로 추진했지만, 비정규직은 늘어나고, 정규직 일자리는 감소하는 등 고용의 질은 오히려 더 퇴보하는 모양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사회적 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간접고용의 폐해를 깊숙히 들여다보고 취재하여 기사화하였고, 이에 그치지 않고 기자라는 신분으로 파견법 개정안에 대해 국회와 정부를 대상으로 사상 최유의 입법 청원까지 추진한 한국일보 소속 기자 남보라, 박주희, 전혼잎에게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
“희망과 불안, 체념 사이를 오가는 나를 희망 쪽으로 이끄는 사람은 불안에 발을 딛고 선 그였다.” (P. 262)
참으로 답답한 현실이다. 현실에서 부조리가 자행되고 있고, 그것이 명백하게 부당한 것임을 누구나 쉽게 인정하는데도 불구하고, ‘노사갈등’과 ‘현장혼란’이 발생할 우려 등의 논리를 내세워 이미 갈등과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이들을 애써 외면한 채 ‘개선’이나 ‘대안’이 아닌 ‘검토’라는 단어로 결론을 맺는 국회와 정부의 답변을 지켜보며 드는 생각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희망은 무엇일까? 나는 꿈을 꾸는 사람은 자신은 물론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을 아직 놓지 않고 있다. 세상의 변화를 위해서는 작지만 의미 있는 발걸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할 것은 ‘타인에 대한 관심’일 것이다. 타인에 대한 따뜻한 관심 속에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간접고용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중간착취는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존재할 겁니다.“ (P.
174)
타인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우리가 내딪어야 할 첫 걸음은 간접고용 실태에 대한 조사라고 생각한다. 조사의 목적은 중간착취의 형태나 범위를 파악하여 이를 시정하기 위한 것 보다는 간접고용이 왜 발생했는지에 대한 원인파악과 지속적으로 유지될 필요성이 있는 것인지에 대한 검토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에서도 언급되었지만, 간접고용이 존재한다면 중간착취는 어떠한 형태로든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간착취 문제해결의 핵심은 간접고용을 최소화하는 방안이 되어야 한다. 최소한 정부 공공부문에서라도 간접고용의 현황을 파악하여 이것이 상시적으로 이루어지는 업무인지, 사업진행에 있어 필수적인 것인지 등을 검토하여 먼저 간접고용을 최소화시키는 방안을 구체화해나가면 어떨지 조심스럽게 의견을 제시해본다. 타인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한 작지만 의미있는 발걸음과 끊임없는 목소리들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 나는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