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한 차별주의자 (30만부 기념 거울 에디션)
김지혜 지음 / 창비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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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 작가의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평등'과 '정의'를 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 곳곳에 보일듯 보이지 않게 존재하는 '차별'에 관한 이야기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모두 같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서로 다른 존재이기도 하다. 인간을 본질적으로 가르는 차이란 없다는 점에서 우리는 사람으로서 보편성을 공유하지만, 서로가 가진 정체성과 상황에 따라 다양성을 가진 존재가 된다. 그 다양성은 때론 우리를 빛나게 하고 우리 존재가치를 드러내주기도 하지만, 차이와 차별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따라서 우리는 그 차이에 대해 주목하고 표면화된 차별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차별의 이야기는 단지 '사회적 약자' 혹은 '소수자'로 표상되는 특정집단에 한정되지 않는, 우리 모두의 삶을 구성하는 관계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별은 드러나지 않은 형태로 존재할 때가 많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은 선량한 시민이고, 차별을 하지 않으려 한다고 생각하고 살아간다. 작가가 이 책의 제목을 '선량한' 차별주의자도 명명한 이유이다. 지금도 자신이 인식하지 못하는 채로 수많은 선량한 차별주의자들이 생겨나고, 이로 인해 의도하지 않은 상처와 피해를 주고 있다. 이러한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다음은 내가 차별과 부조리에 대해 인식하게 된 하나의 사례이다.


"당신 정말 육아휴직 갈꺼니?"


딸이 태어났을 때 축하인사 다음으로 회사의 경영지원부문 임원이 내게 건넨 말이다. 일과 가정의 균형을 위해 회사는 남성육아휴직을 지원하기로 하였지만 아직 안정적으로 정착이 되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회사의 인사와 복지정책을 총괄하는 경영지원부문 임원의 농담인 듯 진담인 듯 건넨 말 한마디는 내게 항거할 수 없는 압박이었고 보이지 않는 권력이었다.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지만 그 안의 소소한 규칙, 약속, 습관들은 크게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는 말을 일상에서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또한 이는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평범한 남자들은 모르는 게 당연하다는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아내로, 엄마로 살아가는 것의 고충을 느끼게 된 순간이기도 했다. 세상이 변하지 않는 이유는 어쩌면 가시화되고 권력화된 악 때문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악의 없는 무심함, 선의로 포장된 무례가 누적된 결과가 아닐까?

나는 다른 모든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아버지로서 내 딸이 살아갈 세상은 여성들에게 더 많은 기회와 선택지가 주어지길 바란다. 딸이 성장해나가면서 가장 많이 받게 될 질문 중 하나는 꿈과 장래희망에 대한 것일 것이다. 아이에게 꿈이 무엇인지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은지 묻는 건 상당히 흔하고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질문이 담고 있는 의미는 딸이 성장해가면서 '너는 도화지와 같아서 어떤 그림으로든 완성될 수 있단다. 너의 무한한 가능성을 맘껏 펼쳐보렴'에서 "이제는 무슨 일을 하며 살 것인지 정해야 하지 않겠니?"로 바뀌어 갈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여자인 네가 그걸 한다는 게 가능할까?"로는 변질되지 않길 바란다.


우리 주변의 수많은 여성들은 일상의 부조리 앞에서 눈을 감고 입을 닫고 살아왔다. 기득권 가해자들이 작은 것 하나를 잃을까 전전긍긍할 때 피해자인 여성들은 삶의 전부를 잃을 각오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한다고 하더라도 세상은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피로와 보복, 무력감 속에서 괴로워해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삶의 작은 순간들이 누적되어 한 사람의 일생을 구성하듯 세상의 변화도 생각보다 작은 부분에서 시작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회사에 남성 육아휴직을 신청하였다. 이는 물론 태어난 아이를 위해 앞으로 일정부분 여성이 아닌 엄마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될 아내 그리고 세상에 태어나 또 다른 여성으로서 살아갈 내 딸을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내린 결정이 조직 구성원들의 부정적 인식을 전환시켜 육아휴직제도가 안정화되고 나아가 조직문화가 개선되는데 미약하나마 기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결국은 우리 모두가 소수자이며 "우리는 연결될수록 강하다"는 정신이 세상을 변화시켜왔다." (p. 190)


쉽사리 변하지 않는 세상에 절망하지 않고 신뢰하고 연대하며 협력과 공생의 질서를 만들어나가는 것, 그것이 비록 사소하고 미약한 성공에 불과하다고 할지라도 아내와 엄마가 아닌 여성으로서의 삶이 빛나는 사회로 나아가는 동력은 그러한 곳에서 나온다고 나는 믿는다. 대한민국이라는 공간에서 지금도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희생과 헌신이 그리고 그들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작지만 끊이지 않는 목소리들이 우리 모두를 다른 삶을 살아가게 할 것임을 믿는다.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엄마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모든 여성들의 삶에 행복이 깃들길 진심으로 바라고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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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구 뮤지엄 - 소품을 넘어 예술품으로 거듭난 부티크 문구 컬렉션
정윤희 지음 / 오후의서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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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구뮤지엄이라니… 책 내용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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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왕 형제의 모험 -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장편동화 재미있다! 세계명작 4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김경희 옮김, 일론 비클란드 그림 / 창비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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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왕 형제의 모험>은 아이들을 위한 동화인 동시에 시대를 거슬러 우리 곁에 있는 동화처럼 동심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모든 “어른 아이”들을 위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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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왕 형제의 모험 -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장편동화 재미있다! 세계명작 4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김경희 옮김, 일론 비클란드 그림 / 창비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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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아동문학의 기틀을 닦았다고 평가 받는 안데르센은 사실 다방면에 걸쳐 활동한 문학가였다. 『 미운오리새끼 』,『 인어공주 』, 『 성냥팔이소녀 』 등 빛나는 그의 동화들은 그의 수많은 작품 중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시와 소설, 기행문을 남겼고 작가이기 이전 연기자를 꿈꿨던 자신의 청년시절을 대변하듯 극작가로서도 재능을 드러냈다. 안데르센이 자신이 아동문학가로만 인식되는 것에 불편한 기색을 드러낸 일화는 유명하다. 말년에 자신이 아이들과 함께 있는 동상을 세우려는 사람들에게 안데르센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내가 쓴 이야기들은 어린이를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어른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어린이들은 단지 내 이야기의 표면만을 이해할 수 있으며, 성숙한 어른이 되어서야 온전히 내 작품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화를 단순하게 정의한다면 동심을 바탕으로 어린이를 위하여 지은 산문문학의 한 종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광범위하게 본다면 동화가 지향하고자 하는 바는 어린이들만을 위한 이야기를 넘어 인간 보편의 진실을 상징적으로 표현하여 인생의 의미를 전달하는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안데르센이 아동문학가라는 평가에 불편한 기색을 드러낸 이유도 동화의 의미를 좁게 보는 당대 사람들의 인식 때문이 아니었을까? 어른을 위한 동화와 표면적 의미를 넘어선 동화의 재해석을 언급한 것은 비단 안데르센만이 아니다. 생떽쥐베리의 어린 왕자는 친구 레옹 베르트를 위한 헌사로 시작된다. 이 유명한 헌사를 통해 작가는 이 책을 어른에게 바치는 것에 대해 어린이들에게 용서를 구하며, 그 나름의 헌정의 이유를 밝히고 있다. 그것은 그가 작가에게 있어 최고의 친구라는 것, 이해심이 깊어 아이들을 위한 책도 이해한다는 것, 또한 현재 그가 위로가 필요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만약 이런 모든 이유들로도 부족함이 있다면, 한때는 어린 아이였을 자신의 친구에게 이 책을 헌정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있다. 모든 어른들은 처음에는 어린이였기 때문에 작은 소년이었을 때의 자신의 친구 레옹 베르트에게 자신의 책 『 어린 왕자 』를 헌정한 것이다.


"평범한 동화책이 아니다. 어느새 해가 져서 캄캄해진 내 방의 서늘한 벽에 기대앉아 오래 울었던 것을 기억한다."


이는 노르웨이 오슬로 문학의 집 행사 강연 당시 한강 작가가 <사자왕 형제의 모험>에 대해 언급한 서평이라고 한다. <사자왕 형제의 모험>은 가슴이 뛰는 모험, 형제애와 인류애, 자유롭고 용감한 삶에 대한 희망을 그린 린드그렌의 대표작이다.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으로 잘 알려진 린드그렌의 작품들은 아동문학의 고전으로 일컬어지고 있고, ‘어린이책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 스웨덴 아카데미 대상 등 많은 상을 수상했으며, 영화와 TV 드라마로 제작되어 세계 여러 나라에 방영되었다. 린드그렌은 <사자왕 형제의 모험>에서 두려움과 용기, 상처와 치유라는 삶과 문학의 영원한 화두를 다루고 있다. <소년이 온다>, <흰> 등의 작품을 쓴 한강 작가가 평범한 동화책이 아니라고 언급을 한 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도 동화에서 쉽게 다루기 힘든 삶과 죽음, 희망과 절망, 상처와 치유 등을 다루고 있고 이를 아름다운 문체로 표현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사자왕 형제의 모험>은 자유를 위해 악에 맞서는 용감한 형 '요나탄'과 착하고 유약한 동생 '칼'이라는 맑고 선한 심성을 가진 형제가 현실세계의 죽음을 넘어 판타지 세계에서 이어지는 긴장김 넘치는 모험이 아름답고 절절하게 그리고 있다. 이를 통해 린드그렌 작가는 죽음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가는 매혹적인 삶의 시작임을 말하고 있다. 린드그렌 작가가 작품 속에서 언급하고 있는 두려움과 용기, 억압과 자유, 상처와 치유 등은 현실의 삶과 문학 모두에 있어 영원한 화두로 언급되고 있는 것들이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빛을 향해 나아가야한다는 것,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용기를 가지고 세상에 맞서야 한다는 것. 이는 자라나는 아이들 뿐만 아니라 성숙한 어른들에게도 의미가 있는 메시지다. <사자왕 형제의 모험>은 시대를 거슬러 우리 곁에 있는 동화처럼 동심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모든 “어른 아이”들을 위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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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여자의 여덟 가지 인생
이미리내 지음, 정해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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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일, 그 공포, 피로, 당황, 놀람, 좌절의 연속에 대한 인생 현장 보고서“

 


이는 조남주 작가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뒷 표지에 쓰여있는 문장이다. 소설은 82년생 여성 중 가장 흔한 이름을 가진 주인공 '김지영씨'가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30대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직간접적으로 경험했을 법한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소설의 주인공이 '김지영'이 아닌 '김지영씨'인 이유는 '김지영씨'가 한국의 에코세대 여성들을 대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지극히 평범한 “김지영씨”의 평균적인 삶을 각종 기사와 통계자료를 통해 객관적으로 재현해냄으로서 독자들이 이를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보편적 체험이자 삶이었음을 비로소 인식할 수 있게 한다. 그럼으로서 그 보편적인 일상이 얼마나 차별적이고 불합리한 것이었는지 깨닫게 해준다. 이 소설이 많은 이들에게 지지와 공감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 주위에 보편적인 평범한 삶을 살아가며 아픔과 상처를 겪었던, 또 겪고 있는 수많은 ‘김지영’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한국사회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일, 그 공포, 피로, 당황, 놀람, 좌절의 연속에 대한 인생 현장 보고서"라고 한다면, 이미리내 작가의 <이름 없는 여자의 여덟 가지 인생>은 “일제 강점기, 해방, 한국전쟁과 분단으로 이어지는 엄혹한 시절을 거치는 동안 살아 남기 위해 여덟 가지 형태로 삶의 모습을 바꿔가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세상을 향해 온기 어린 손을 건냈던 한 여성의 삶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인간의 삶이란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다. 정말 그렇지 않은가? 안정된 상태라고 느끼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미지의 것이 느닷없이 닥친다. 이렇게 질서가 무너진 혼돈 속에서 우리 삶은 현실부정과 절망,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잠식되어 간다. 삶은 질서와 혼돈으로 점철되어 있다. 안정된 질서 속에 갑자기 혼돈이 찾아오기도 하는 반면, 모든 것을 상실한 듯한 절망적 순간에 새로운 질서가 나타나기도 한다. 삶의 길을 걸어간다는 것은 질서와 혼돈의 경계 위에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삶에서 인생의 의미가 빛을 잃어가고, 절망과 두려움이 고개를 드는 순간과 마주칠 때 우리는 무엇에 의지하며 세상을 살아가야 할까?


이미리내 작가는 그 어느 시대보다 변곡점이 많았던 한국 현대사의 큰 물줄기 속에서 주변부로 밀려나 희생과 착취를 강요 받았던 여성들을 무대 위로 올려 그들의 삶을 조명하고, 이를 통해 삶의 다양한 형태를 조망하면서 우리는 삶을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독자들과 대화를 시도한다. 소설은 인생의 노년기를 보내고 있는 요양원의 노인들을 대상으로 부고 쓰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화자로부터 시작된다. 어느 날 그녀는 괴상한 외모와 '묵'이라는 생소한 성을 가진 할머니를 만난다. 인생을 대변할 수 있는 단어 세개를 골라달라는 요양사의 요구에 '묵 할머니'는 자신의 인생을 설명하기에 세 개의 단어는 너무 적고, 요양사가 지적했듯이 아홉개는 너무 많은 듯 하니 여덟로 타협하자고 말한다. 그녀의 인생을 채우는 단어들은 '노예, 탈출 전문가, 살인자, 테러리스트, 스파이, 연인, 어머니"였고, 그 단어들이 내포하고 있는 삶을 설명하기 위해 '묵 할머니'는 긴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그녀의 삶은 역사의 주변부에서 이방인으로 차별과 억압을 받았던 삶이었고, 수많은 부조리와 불합리를 경험한 삶이었다. 역사적 굴곡이 없었다 하더라도 남성중심주의 문화 속에서 ‘거인’의 어깨 위에서 인류의 지적 전통을 자연스레 체득하며 세계를 조망해온 남성에 비해 그 혜택의 범주에서 벗어난 채 끊임 없이 자신을 단속해야 했던 것이 그 시절 여성들의 삶이었다. 하지만 두 번의 전쟁과 분단된 조국이라는 역사적 소용돌이를 거치며 그녀의 삶은 삶의 기반 자체가 무너지고, 주체적인 삶이 불가능한 절망적인 상황에 놓이게 된다. 작가는 한 인간이 자신이 가진 아이덴티티로부터 일방적인 추방과 부정을 겪으며 정체성이 분열되는 과정, 나아가 이로 인해 빚어진 세대에 걸친 삶의 일그러짐을 세밀하게 그려내었다. 작가가 최고령 탈북자 중 한 명인 이모할머니, 고(故) 김병녀 님의 인생에서 영감을 밝힌 이 소설은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어 더 실감 나게 느껴진다. 하지만 다시 조명된 그녀의 삶은 피해자, 희생자로 점철된 삶이 아니었다. '묵 할머니'가 제시한 단어들처럼 그녀는 때로는 살인자, 테러리스트, 스파이로 살았고, 때로는 평범한 한 가정의 배우자이자 한 아이의 어머니로 살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빨갱이 사냥과 반역자 사냥이 반복되었고 날마다 날선 전쟁의 칼날을 양쪽에서 휘둘러 마을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도륙했다.나는 무력한 희생자가 되기를 거부했다. 나는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살아 있는 엄마와 여동생과 상봉하겠다는 철없는 꿈을 꾸며 남으로 향했다." (p.86)


거스를 수 없는 역사의 물줄기 속에서도 인간은 자신이 믿는 사상과 신념에 따라 저마다의 속도와 방향으로 걸음을 내딪는다. 그렇다면 '묵 할머니'는 이념 갈등 속에서 자신의 신념에 따라 삶을 선택하고, 그 선택의 대가로 기구한 삶을 살았던 것일까? 이념은 현실의 순수한 열망이 빚어낸 결정체다. 각각의 사상에는 열망의 실현을 약속하는 희망의 메시지가 담겨져 있다. 욕망을 꿰뚫고 있는 시대적 사상들에 인류가 매혹 당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다. 사상의 발전사는 인류의 욕망과 희망의 변천사이기도 하다. 사상은 ‘인류를 위해서’, ‘인류에 의해’ 탄생하였지만, 사상 중에서는 ‘인류의 사상’이 되지 못하고 스러져간 것들이 많았다. 사상이 ‘현실’의 일면만을 반영하거나, ‘인간’을 담지 못하고 변질되고, 때론 시대의 흐름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묵 할머니'는 이념이나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기 위함이 아닌 사랑하는 연인, 가족과 함께 하는 평범한 삶을 위한 선택을 했다. 분단을 가져온 정치나 이데올로기 따위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고, 설령 적이라 해도 '얄루'의 안녕을 바랬던 소년의 마음처럼 그 시절의 많은 민중들이 이러한 평범한 삶을 택했다.


"가난허고 무식헌 것들이 믿고 의지헐 디 웁는 판에 빨갱이 시상 되먼 지주 다 처웁애고 그 전답 노나준다는디 공산당 안헐 사람 워디 있겄는가요. 못헐 말로 나라가 공산당 맹글고, 지주들이 빨갱이 맹근당께요." (소설 태백산맥 中)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은 사상의 생몰(生沒)을 잘 표현하고 있다. 태백산맥의 무대인 벌교는 당시 오만의 읍민들 중 팔할이 농민이었고, 그 농민들 중에서 구할이 소작인이었다. 벌교뿐만이 아니라 해방 당시 한국은 전 농가의 86%가 소작농이었고, 전농지의 64%가 소작지였을 정도로 농업은 핵심적 경제기반이었고 인구의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갑오농민혁명, 일제하의 소작쟁의에 이어 토지제도의 모순이 당시 주요 사회갈등의 원인으로 등장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민중의 대다수를 구성하는 농민들은 지식을 통해 현실의 모순구조를 인식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삶을 통해, 체험을 통해 그 문제상황의 핵심을 꿰뚫고 있었고, 시대 상황 속에서 이데올로기 대립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개인적 동기는 사회갈등으로 구체화되었고 이는 다시 집단적 이념으로 확장되었다. 소설 속 문서방의 한 맺힌 외침은 이를 잘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묵 할머니”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우리 주변의 수많은 ‘김지영들’은 일상의 부조리 앞에서 눈을 감고 입을 닫고 살아야 했다. 기득권 가해자들이 작은 것 하나를 잃을까 전전긍긍할 때 피해자인 여성들은 삶의 전부를 잃을 각오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한다고 하더라도 세상은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피로와 보복, 무력감 속에서 괴로워해야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가 지나온 과거와 현재 속에도 “묵 할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인물은 존재한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시대에 체념하거나 순응하지 않고 다양한 형태로 자신의 목소리를 그러한 삶을 지향했던 이들은 분명 있었다. 세상이 변하지 않는 이유는 어쩌면 가시화되고 권력화된 악 때문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악의 없는 무심함, 선의로 포장된 무례가 누적된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앞으로 딸이 살아갈 세상은 여성들에게 더 많은 기회와 선택지가 주어지길 바란다. 딸이 성장해나가면서 가장 많이 받게 될 질문 중 하나는 꿈과 장래희망에 대한 것일 것이다. 아이에게 꿈이 무엇인지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은지 묻는 건 상당히 흔하고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질문이 담고 있는 의미는 딸이 성장해가면서 '너는 도화지와 같아서 어떤 그림으로든 완성될 수 있단다. 너의 무한한 가능성을 맘껏 펼쳐보렴'에서 "이제는 무슨 일을 하며 살 것인지 정해야 하지 않겠니?"로 바뀌어 갈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여자인 네가 그걸 한다는 게 가능할까?"로는 변질되지 않길 바란다.


“그리하여 우리는 조류를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 가면서도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So we beat on, boats against the current, borne back ceaselessly into the past.)” - <위대한 개츠비> 中에서 –


소설 속에서 '얄루'의 안녕을 진심으로 바랬던 소년은 잿빛 실안개에 감싸인 달을 지그시 바라본다. 분단국가, 이념갈등 등 인간들의 드라마에는 관심도 없이 고요히 떠 있는 보름달을 바라보면서 소년은 자신이 사라지고 서로에게서 멀어지거나 혹은 그냥 변하는 동안 달은 항상 똑같이 아름답고 무심할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미리내 작가의 <이름 없는 여자의 여덟 가지 인생>을 읽으며 <위대한 개츠비>의 마지막 문장이 떠올랐다. 상실과 결핍, 몰이해라는 인간의 한계와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없다는 듯 무심하게 흘러가는 세계 속에서 저마다의 속도와 방향으로 한 조각의 진실과 삶의 의미를 구하려 애쓰는 '인간'과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를 조망하는 시선이 서로 닮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통해 거스를 수 없는 역사의 물줄기 속에서 차갑고 어두운 현실을 견뎌내며 자신이 믿는 지향점을 따라 뜨거운 발걸음을 내디뎠던 삶들, 그리고 이념의 소용돌이 속에 매몰된 이념과 상관없이 평범한 삶을 지향했던 수많은 삶들이 다시 조명 받고 위로 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그들의 삶을 집어삼킨 이념이란 것의 탄생도 결국 인간에 대한 지극한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에서 위안을 받을 수 있길 바래본다. 그들의 삶을 기억하는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유령'의 삶이 아닌 삶의 온기가 느껴지는 '인간'으로 살아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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