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먼트
테디 웨인 지음, 서제인 옮김 / 엘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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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먼트>는 문학지망생인 두 청년 '나'와 '빌리'의 가장 뜨거웠던 시절에 관한 이야기다. 소설은 그 시절에 관계의 '형성''단절'이 남긴 균열의 흔적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 과정에서 가시적이고 의도된 폭력이 아닌 가시화되지 않은 무의식적인 폭력을 조명한다. ‘의 삶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은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자신의 작은 모서리를 쓰다듬어주고 지지해주는 빌리가 있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는 그 행복은 상대에 대해 또 자신에 대해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가능했음을 깨닫는다.

 


"우리가 글 쓰고 있는 거, 사진으로 한 장 찍자."

"증거로 남겨놔야지. 우리의 덧없는 청춘을. 언젠가 그리워하게 될 테니까." (p.147)

 


는 행복했던 순간을 박제화시킨 사진 속 순간처럼 영원을 꿈꾸지만, 그들의 관계는 프레임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는 초점 나간 사진처럼 불안정했고, 결국 영원이 아닌 멈춤과 단절을 향해 나아간다. ‘는 사람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행복이 얼마나 위태롭고 위험한 것인지, 또한 사람은 그런 식으로 쉽게 행복해질 수 없다는 사실을 관계가 남긴 흔적을 통해 깨닫게 된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이로움만을 건네는 관계가 성립할 수 있을까? 중력도 마찰력도 없는 세계에서 멈추지 않고 영원히 굴러가는 구와 같은 삶은 바람직한 삶일까? 우리는 관계의 미숙함으로 인한 상실의 경험을 아프게 회고하지만, 서로에게 무해한 존재라는 것은 때론 위안이 아닌 상처로 다가온다. 비록 부정적인 방향이지만 상대를 아직 요동치게 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그런 식으로라도 감정적인 교류를 나누며 관계에 아직도 피가 흐른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는 그 사실이 때론 우리에게 기쁨이 될 수 있다. 인간은 의도의 유무를 떠나 누군가에게 상처와 해를 끼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처와 균열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함께일 수 밖에 없다. 함께라면 타인의 고통을 느낄 수 있고 자신의 아픔도 진정시키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로의 고유한 존재 방식, 상실과 결핍의 기억들은 우리 각자를 섬으로 만들지만, 우리는 삶의 흔적, 아픔을 매개로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고 이해하고 위로하게 되는 것이다. 서로를 이해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이해는 마음이 구겨져 있는 사람 특유의 과시와 무시, 거부를 넘어서야 하고, 또한 어떻게든 살아보기 위해 세상 속으로 비집고 들어가기 위해 이해를 이용하는 위선을 극복해야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타인과 삶의 온도를 맞춰가는 일이며, 상대적 성숙의 시간을 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을 거치며 우리는 삶의 고통을 무조건적으로 거부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진정한 위로의 경험을 얻는다. 초월적인 존재를 통해서도 치유 받을 수 없는 오직 사람에게서만 구할 수 있는 마음이 존재하는 것이다. 밝은 곳에서는 어두운 곳이 잘 보이지 않지만, 인간은 서로 간에 존재하는 적당한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과 온기로 서로를 알아볼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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