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홍범도 - 송은일 장편소설
송은일 지음 / 바틀비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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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너스 (Cygnus)는 여름밤 한가운데에서 빛나며 여름철 별자리의 기준이 되는 백조 모양의 별자리다. 두 날개를 활짝 편 채 거대한 십자가를 그리며 우아하게 날아가는 새의 모습과 유사하다는 의미에서 지어진 이름이다. 2021815일 대한민국의 영공에는 초저녁임에도 불구하고 시그너스가 찬란하게 빛났다. 청산리·봉오동 전투 101, 서거 78년만에 고국의 품으로 돌아온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실은 수송기 '시그너스'를 대한민국 공군이 운영하는 6개 전투기종이 총출동하여 양쪽에서 호위하는 모습은 밤하늘의 시그너스 보다 더 아름답게 지켜보는 국민들의 마음을 수놓았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신 홍범도 장군님의 귀환을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지금부터 대한민국 공군이 안전하게 호위하겠습니다. 필승!"


 

간절한 의지와 불굴의 용기로 싸워 끝내 끝끝내 이김으로서 우리 손으로 해방과 자유를 누리고야 말겠다고 전의를 불태운 홍범도 장군이었지만 날로 거대해지는 현실의 적 앞에서 초인의 의지로 지탱해야하는 독립군의 삶이 얼마나 두렵고 외로웠을까? 하지만 종합군사력 세계 6위의 군사 강국이 된 조국으로 공군의 첨단 장비를 동원한 호위를 받으며 귀환하는 장군의 모습을 보면서 그에 대한 부채감이 조금이나마 해소되는 느낌을 받았다. 후손들이 이루어 놓은 현재의 대한민국은 그가 없었다면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들이 살아갈 세상을 위해 우리가 이리 사는 게지. (P. 374)'라는 소설 속 홍범도 장군의 말과 하늘에서 이를 흐뭇하게 지켜볼 그가 떠올라 가슴이 벅찼다.

 


한편으로는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다. '우리는 그를 제대로 아는가?'라는 <나는 홍범도>의 저자 송은일의 질문을 마주하면서부터였다. 평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한 홍범도 장군이었지만 나는 봉오동 전투의 승장이었다는 것 외에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그가 어떻게 독립군의 삶을 택하게 되었는지, 어떻게 전투를 치루고, 어떻게 승리를 이끌어냈는지, 종국적으로 그는 인간으로서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그동안 역사적 사건의 연표로서 피상적으로만 기억했던 그의 삶에 대해 내가 관심을 갖고 찾아보게 된 이유이다.

 


홍범도 장군은 타인의 모범이 되라는 아버지의 소망이 담긴 이름 '범도(範圖)'에 걸맞는 삶을 살았다. 머슴의 아들로 태어나 출산 후 7일 만에 어머니를 여의었고, 9살에는 아버지마저 떠나보냈다. 그는 머슴, 군인, 제지공장 노동자. 승려, 포수였고, 독립군이 된 이후에도 군자금이 필요할 때는 솔선수범하여 광산과 부두 등 노동의 현장으로 향했다. 스탈린의 강제집단이주 정책에 의해 카자흐스탄으로 옮겨간 그는 극장 수위로서 말년을 보냈다. 이 수많은 삶의 형태 중 그의 삶을 가장 잘 대표하는 것은 독립군일 것이다. 그는 군림하지 않는 리더였다. 대의를 위해서는 직위를 구분하지 않았다.

 


독립군으로 살면서 그는 아내와 두 아들을 모두 잃었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오랜 시간 외롭게 삶을 이어왔던 그였기에, 가족을 이루고 남편과 아버지로서 느끼는 평범한 행복은 그가 절실하게 지키고 싶은 것이었을 것이다. 또한, 가족들의 헌신적인 희생이 독립군으로서의 그를 있게 했다.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그의 부인 단양 이씨는 적의 회유와 고문에 스스로 혀를 끊어내어 벙어리가 되었고, 굴복 보다는 죽음을 택했다. 장군의 두 아들도 독립전쟁 중 목숨을 잃었다. 한국 정부는 20213.1절 기념식에서 장군의 부인 단양 이씨와 장남 홍양순 선생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봉오동 전투는 평범한 사람들이 함께 만든 '승리와 희망의 역사'입니다. 나라를 되찾겠다는 의기 하나로 모여든 무명의 청년들과 동포들이 승리의 주역이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추모사에서 밝힌 것처럼 우리는 시대의 요구를 외면하지 않고 응답했던 사람들, 그들의 투쟁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음까지도 기꺼이 감수한 그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현장의 지도자뿐만 아니라 가족과 동료로서 그들의 삶을 지탱했던 이들이다. 독립운동의 진정한 주역은 어쩌면 민족과 국가를 위한 진심을 보이고 사라져간 민중들, 이름 없이 사라져간 수많은 '단양 이씨들'인지도 모른다. 독립운동이 가지는 의미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하나의 그림이 있다. 바로 윌리엄 터너의 명화 <전함 테메레르>.



1805년 넬슨 제독이 이끄는 영국 해군은 나폴레옹의 유럽제패를 저지하고 자국을 수호하기 위해 트라팔가 해전에 임한다. 전장에서 테메레르는 위기에 처한 영국의 기함 빅토리호를 구하는 전적을 올린다. 이를 기반으로 한 트라팔가 해전의 승리는 19세기 영국을 '해가 지지 않는 제국'으로 만들었다. 윌리엄 터너의 그림에 표현된 테메레르는 찬란하게 빛났던 트라팔가에서의 모습이 아닌 시대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구시대의 유물로 쇠락한 모습이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빛낸 존재였지만 더 이상 자신의 힘으로 동력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덩치 큰 범선은 그림 속에서 작은 증기선에 의해 예인되며 해체되기 전 마지막 항해를 하고 있다.



트라팔가 해전 승리후 런던에는 트라팔가 광장이 조성되었고 광장의 중앙에는 승장 넬슨 제독의 동상이 세워졌다. 넬슨이 승선했던 기함 빅토리호는 포츠머스 해군기지에 영구 보존되고 있다. 반면 1838년 영국 해군은 테메레르호를 런던의 운수업자에게 팔아넘겼고 배를 산 운수업자는 배를 해체하기로 결정했다. 템즈 강가로 산책을 나간 터너는 이 위대한 선박의 마지막 항해를 그림으로 남겼다. 윌리엄 터너는 시대를 빛내고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는 영웅에 대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찬사를 보냈다. 모두가 기억하는 넬슨 제독, 빅토리호도 있었지만 우리에겐 테메레르도 있었다고그것은 자랑스러운 우리의 과거였고 우리의 현재를 있게 한 또 하나의 영웅이라고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존재에 대한 최대의 찬사는 그를 오래도록 기억해주는 것이다.



역사의 뒤안길로 스러져간 이름 없는 민중들,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을 역사는 어떻게 기록하고 있을까? 우리는 윌리엄 터너가 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그들을 기억해주어야 한다. 그들의 숭고한 희생은 <전함 테메레르>가 되기 충분하다. 그들은 자랑스러운 우리의 과거였고 우리의 현재를 있게 한 또 하나의 영웅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자신의 삶을 희생해가며 세상의 진보를 위해 고독한 걸음을 내디딘 이름 없는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홍범도 장군의 유해 귀환이 중대한 기점이 되어 이름 없이 스러져간 영웅들의 삶이 다시 조명 받고, 국민들의 마음속에서 빛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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