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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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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김훈 작가의 <하얼빈>을 읽으며 나는 인간이 걸어 온 ‘길‘, 또 새롭게 만들고 걸어갈 ‘길’에 대해 생각했다. 소설에서 ‘힘이 길을 만들고, 길은 힘을 만드는 것‘이라는 이토의 말에 순종은 ‘세상의 땅과 물을 건너가는 길도 있지만, 조선에는 고래(古來)로 내려오는 충절과 법도와 인륜의 길이 있다.’고 답한다. 이에 대해 이토는 그것은 일본도 마찬가지이며, 고래의 길이 현재에 닿아서 미래의 길로 나아가고 있고, 쇠로 만들어진 이 철길이 그에 대한 방증(傍證)이라 말한다. 이토는 조선이 존망의 위기를 벗어나 평화와 독립을 추구하는 길은 제국의 틀 안으로 순입하는 길 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이는 ‘동양평화’와 ’문명개화‘라는 허울로 그 안에 도사리고 있는 약육강식의 ‘폭력’과 ‘야만’을 애써 감추려는 모순과 부조리를 담은 말이었다. 이토의 주장에서 나는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는 프리드리히 하이예크의 말을 떠올렸다.
추구하는 길은 다르지만 종국적으로 만인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정의로운 세상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종교와 정치는 그 결을 같이 한다. 완전하지 못한 인간의 근본적 속성 그리고 상실과 결핍으로 얼룩져 있는 인간의 삶 속에서 우리는 종교에 귀의하거나 국가 등의 정치체제에 의지하게 된다. 하지만 역사를 되돌아보면 그 어떤 종교나 정치도 완전하지 못했고, 어느 시대나 세상이 공정하고 정의롭게 작동하지 못한다는 것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채우려는 세력들이 존재했다. 이러한 안타까운 역사가 반복되는 이유는 인간의 불완전함을 이용하여 현실적인 이득을 보는 집단은 계속 양산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허상을 제시하거나 공포감을 조성함으로서 자유의지를 포기하고 절대권력에 복종하는 길만이 정의를 만든다고 주장한다. 정말 그렇지 않은가? 지옥으로 가는 길은 늘 선의로 포장되어 있었다. 소설 속에서 안중근은 천주교의 교리와 제국주의가 잠식한 현실 사이에서 커져가는 절망감을 느끼며 괴로워한다.
우월한 물리력을 기반으로 일본은 대륙으로 영토확장의 야욕을 드러냈고, 철도는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이었다. 이토는 제국주의 팽창의 길을 따라 한반도를 가로질러 하얼빈으로 향했다. 제국주의는 당시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었고, 조선의 지배층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이 폭력 앞에서 현실의 부조리에 침묵하며 저마다 살길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조선의 독립과 평화를 위한 길이 보이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시대가 내포한 모순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범세계적으로 넘실대는 폭력의 물결을 몸으로 부딪치고 막아서며 새로운 길을 열어간 사람이 있었다. 총구의 흔들림은 멈추지 못했지만, 격발로 인한 반동은 몸안으로 받아들여 오롯이 홀로 삭여내야 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의 목숨을 총알에 실어 이토의 목숨에 박아넣은 그는 말을 붙일 수 없는 세상을 향해 말을 건 안중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