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취향이라고 해서 꼭 멋들어질 필요가 있나! 그저 내가 좋아하는 사소한 것들로 행복과 만족을 찾아나가는 것도 충분히 즐거운 인생일 수 있다.
오늘도 나의 작은 우주, 책상 위 아끼는 수많은 문구들 틈에서 작은 행복을 찾으며 생각한다. 문구도 꽤좋은 취향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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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어클리벤의 금화 1
신서로 지음 / 황금가지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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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피어클리벤의 금화>라는 소설에 대해서는 출간 전부터 익히 알고 있었다. 황금가지 출판사가 만든 온라인 소설 플랫폼 브릿G에서 독자들의 성원을 한 몸에 받으며 인기리에 연재중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브릿G의 애독자로서 항상 이 작품에 관심은 있었지만, 연재중인 작품 몇 편만 훑어보고 지나가는 것만 몇 차례 반복했던 이유는 작품의 방대함도 방대함이지만 솔직히 톨킨의 <반지의 제왕>이나 르 귄의 <어스시의 마법사>를 읽으며 한껏 높아져 있는 기대수준을 과연 이 작품이 충족시킬 수 있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종이책 출간을 계기로 작품을 본격적으로 읽어볼 기회가 생겼고, 그 동안의 망설임은 모두 기우에 불과했다는 걸 깨달았다. <피어클리벤의 금화>는 여러면에서 새로운 판타지 소설이다. 중세시대라는 어느 가상의 공간을 배경으로 인간을 비롯한 이종족과 용과 트롤 등의 마수들, 마법과 검, 기사 등이 등장하는 판타지 소설의 문법과 세계관을 따르면서도 기존의 판타지 소설과는 차별화되는 흥미로운 요소들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작품의 서장을 읽으면서 좀 실망을 했었다. "너를 먹겠다."는 소설의 첫 문장이 보여주듯 소설은 용이 영주의 딸을 한 끼의 식사 거리로 납치하면서 시작된다. 너무 식상하지 않은가? 용에게 납치된 영주의 딸이라니... 그 영주의 딸은 분명 천하의 절색일 것이고, 그녀를 구하기 위해 영주는 용감한 기사를 모집할 것이고, 어찌어찌해서 용기 있고, 무예도 뛰어난 데다가 인성도 바른 한 기사가 용을 무찌르고, 그 둘은 그 사건을 겪으며 사랑에 빠져서 그 이후로도 쭉 행복하게 살았다는 보지 않아도 읊을 수 있는 스토리가 눈 앞에서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90여매에 이르는 서장만으로 여타의 판타지 소설과 차별화되는 점을 보여준다. 먼저 영주의 딸은 손에 물한방울 안 뭍히고 곱게 자란 부유한 집안의 인형 같은 외모를 지닌 딸이 아니다. 또 영주의 딸을 구할 용감한 기사는 애초에 등장하지도 않는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우리네 속담처럼 용에게 물려간 그녀는 타고난 식견과 언변으로서 스스로의 힘으로 용의 한끼 식사거리라는 위기에서 벗어나 오히려 피어클리벤이라는 자신이 속한 가난한 영지의 부흥을 위한 기회로 만든다.

 

 

또한 서장에서는 이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재미의 요소가 드러난다. 바로 교섭이다. 교섭 판타지라고 표현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서장에서 영주의 딸 울리케 피어클리벤이 보여준 교섭 능력은 이 소설을 끌어가는 핵심 동력이다. 사실 수많은 등장인물이 얽히고 설킨 이야기지만 소설의 줄거리는 단순하다고 표현하면 단순하다고도 이야기할 수 있다. 이야기의 큰 맥은 가난한 영주의 팔녀인 울리케 피어클리벤이 용의 한 끼 식사로 잡혀왔으나 교섭과 협상을 통해 숱한 위기를 넘기고 마을을 구할 방법을 찾아나가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설의 큰 재미이자 원동력은 교섭과 대화의 시작과 어떻게 상대의 마음을 얻고, 내가 원하는 걸 관철시키는지 지켜보는 것이다.

 

 

소설은 총 8권 완간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들었다. 아직 1권만을 읽어본 독자로서 이후에는 어떤 교섭과 협상이 있을지, 작품의 제목처럼 피어클리벤의 부흥을 어떠한 형태로 이루어질지 기대가 된다. 또한, 독자로서 고민이 생겼다. 이대로 한권씩 출간될 때마다 바로 읽어볼 것인가, 아니면 8권 출간을 기다려 한꺼번에 읽을 것인가가 그것이다.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했지만 독자로서 나름 행복한 고민이라 생각한다.

 

 

#피어클리벤의금화, #판타지소설, #한국판타지, #피어클리벤, #브릿G, #황금가지, #신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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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 하룻밤 - 서재에서 방까지 네 시간
이안수 글.사진 / 남해의봄날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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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문명화 과정을 거쳐 성장해왔지만 현실의 삶에서 항상 괴로움을 느껴왔다. 인간의 낙원에 대한 갈망은 현실의 고통에 대한 반증이다. 낙원에 대한 열망은 현실의 삶의 고통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이상향에의 갈망은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형태로 표출되었다. 서양에 '유토피아', '아르카디아'가 있었다면 동양에는 태평성세의 상징 '요순시대', 홍길동의 '율도국'이 있었다. 이상향은 '인간의 의지'의 유무를 기준으로 유토피아형과 아르카디아형으로 나눌 수 있다. 유토피아형은 토마스 모어의 구상처럼 인간의 의지가 실현되는 인공적 이상사회를 의미한다. 플라톤의 '폴리테이아', 베이컨의 '노바 아틀란티스', 캄파넬라의 '태양의 도시' 등이 이에 해당한다. 아르카디아형은 산과, , 초원에서 자연과 함께 평화롭게 사는 목가적 이상향을 의미한다. 아르카디아형에는 인류 최초의 고향 '에덴동산', 요정들의 낙원 '아발론', 축복 받은 이들이 사는 땅 '엘리시움' 등이 있다.

 

그렇다면 현대인의 현실적 이상향은 어떤 형태에 가까울까?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단조롭고 지루한 일상을 반전시켜줄 수 있는 희망이자 꿈과 같은 것… 문명화가 진행된, 일과 삶의 조화 (Work & Life Balance)가 중요시되는 현대인들에게 현실적인 이상향의 모습은 아르카디아형 보다는 유토피아형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일은 현대인들이 가정과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불가결한 것이 되어버렸고, 이러한 현대 문명사회에서는 목기적 이상향 보다는 인간의 의지가 반영되고 실현되는 사회가 이상향의 모습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 이안수씨는 모티프원 (motif#1)의 주인이다. 모티프원은 예술마을 헤이리에 최초로 생긴 게스트하우스의 이름이다. 여행을 좋아하던 저자는 자신이 여행을 하는 이유가 지구 반대편 어딘가의 지리적 풍경 때문이 아니라 여행 도중 만나는 사람들의 마음속 풍경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고 모티프원에 대한 구상을 시작하였다. 모티프원이라는 이름은 이곳에 머무는 모든 사람들이 이 공간 안에서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화두인 '살아갈 이유'에 대해 답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붙인 이름이다. 2006년 오픈 이후 약 10년 동안 80여개 나라의 2 4천여명의 사람들이 모티프원에서 휴식과 충전, 창조와 나눔을 경험하였음을 고백하고 있다. 이 책은 세계 곳곳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모티프원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나눈 각자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현재라는 시간에 지구라는 공간을 공유하며 세상을 살아가는 여행자라는 점에서 모두 동일하다. 이 책에는 세상을 살아가는 여행자의 입장에서 각자가 깨달은 삶에 대한 통찰이 담겨있다. 노년학 전문가 프랜츠 콜랜드 박사는 운동, 레드와인, 일과 물, 사회관계, 유머라는 건강하게 나이드는 법 6가지를 공유하고 있다. 하지만 콜랜드 박사의 진정한 통찰은 삶의 기준은 언제나 동일한 것이 아니라 나이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현재에 만족하라는 것은 저처럼 나이든 사람이 아닌, 젊은이에게도 해당되나요?"

", 이 말은 노인들에게 해당되는 말이예요. 젊은이들은 미래를 지향하고 모험할 필요가 있지요. 삶의 기준은 나이에 따라 달라야 해요." (p.62)

 

저자의 아들이 유학생활 동안 머물렀던 한 미국 가족의 생활방식을 보며 행복의 비결을 엿보았던 사례도 흥미로웠다. 한국인 하숙생 한명을 차로 픽업하기 위해 왜 매번 다섯 명의 가족 전원이 차로 같이 이동하는지에 대한 매튜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낮 동안 흩어졌던 가족들이 모두 이렇게 차 안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니 좋지 않아?" (p.283)

 

효율을 기준으로 보면 시간 낭비일수도 있지만 좁은 차 안에서 온 가족이 함께 한다는 것에서 행복을 찾는 것, 매튜네 가족의 행복의 기준은 효율성이 아닌 참여와 공유였다. 매튜 가족의 사례는 모든 삶에는 각각 다른 형태의 행복의 씨앗이 숨겨져 있고, 꽃을 피우는 방법도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부산에서 서점을 운영하는 부부 여행객은 아이들과 함께 나이 드는 서점을 꿈꾼다. 산골서점에서 책을 읽던 어린이가 성장하여 결혼을 하고 자녀를 둔 어른이 되면 아이와 함께 어린 시절의 서점을 다시 찾는... 그 서점의 이름은 "책과 아이들"이다. 책이라는 공통의 관심사를 통해 책나라 군포 출신의 아내와 만나 결혼을 하고 이제는 아이와 함께 추억할 서점을 꿈꿔온 나는 이들 부부에게서 미래의 삶에 대한 영감을 받았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은퇴 후 인생의 후반기 삶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한다. 저자도 이 땅에서 생을 마치는 것에 대한 회의와 지구 어딘가에 존재할지도 모를 유토피아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품었음을 고백한다. (p.247) 모티프원은 현대인의 유토피아가 될 수 있을까? 삶에 지친 이들이 일상에서 벗어나 리프레쉬할 수 있는 짧지만 달콤한 휴가는 유토피아형 이상향의 하나의 형태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모티프원을 세상이라는 격랑에 지친 항해자들이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는 피항지로 만들고 싶다는 저자의 소망은 현실적 유토피아에 대한 기대감을 높인다.

 

질문을 만들어낸 사고방식으로는 그 질문의 답을 찾을 수 없다는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이상향은 우리가 원하는 객관화되고 정형화된 형태로는 존재하지 않고, 우리가 접근하는 방식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은 즐기는 자와 사랑하는 자의 것이라는 말처럼 이상향은 삶의 순간순간을 빛나는 것으로 만드는 우리의 태도에 달려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해서 설령 이상향을 찾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세상의 주인이 된 우리에게 삶은 여전히 가슴 뛰는 여행이 될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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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에 가장 빛나던 순간 - 39명의 작가 쓴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야기
안도현.유강희 외 지음 / 모악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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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서문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말로 시작한다. "삶은 한 사람이 살았던 그 자체가 아니라, 현재 그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며, 그 삶을 얘기하기 위해 어떻게 기억하느냐 하는 것이다." (p.4)

 

 

기억이란 사람이나 동물이 경험한 것을 특정 형태로 저장하였다가 나중에 재생 또는 재구성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저장과 재생은 기억이라는 현상을 만들어내는 두 가지 요소다. 과거 경험에 대한 기억은 마치 동식물이 퇴적, 암석화 과정을 거쳐 화석이 되듯이 사건의 잔상과 흔적, 진실의 파편 속에서 원형만이 남아 개인의 의식 속에 퇴적되고 암석화된다. 이것이 경험이 저장되는 과정이다. 또한 기억의 결과물은 저장된 경험의 원형들이 어떤 상황 하에서 어떠한 형태로 재생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동일한 체험이 재생, 재구성된 시점에 따라 행복한 기억이 되기도 뼈아픈 추억이 되기도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마르케스가 삶을 구성하는 것은 삶 그 자체가 아닌 기억에 있다고 한 이유는 우리는 경험이 아닌 기억을 통해 현재를 살아가기 때문이다. 행복은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는 것이라는 오스카 레반트의 말도 동일한 견지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개인은 자신이 지나온 삶을 고찰하는 역사가이자 고고학자라고 할 수 있다.

 

여기 찬란하게 빛나던 삶, 그 기억 속으로 답사를 떠난 역사가들이 있다. 전북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39명의 작가들은 각자의 삶에서 가장 빛났던 순간들을 모아 한권의 책으로 만들었다. 그들의 삶 속에서 반짝이며 빛난 순간들은 그들 각자가 살아온 삶만큼이나 다양하다. 순수했던 유년, 열병을 앓던 청년기 등 지난 시절에 대한 회상이 있는가 하면 그 시절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거나 잊고 지낸 따뜻한 인연에 대한 고마움도 있다. 또한 떠올리기만 해도 자신만의 추억이 재생되는 특정 장소와 사물에 대한 그리움도 있다.

 

 

기억은 세상에서 가장 강한 마법이다. 기억은 우리를 한정된 시공간을 초월할 수 있게 한다. 기억은 한 그릇의 자장면을 시공간을 넘어 영원히 존재하는 천리향, 만리향으로 만든다.

 

"자장면은 단순히 맛있는 한 그릇의 음식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상함과 배려였고, 인정이고 따뜻함이었다. 어른이 내게 사 주신 자장면 한 그릇은 내 마음에 인정으로 새겨져 향기처럼 머물러 있다. 단순한 향기가 아니라 천리향 만리향처럼 오랜 세월이 흘러도 그 향이 좀체 그치질 않는다. 사람이 남기고 간 향기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오래오래 남아 맴돈다." (p.130)

 

또한 기억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안에서 고동치는 두 번째 심장이기도 하다. 과거의 추억을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는 인생의 최대치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의 최대치를 매일 산다는 것, 몇 시간을, 몇 분을, 몇 초를 그런 시간들을 의식적으로 맞이하는 순간에 우리는 심장이 특별하게 잘 뛰어서 특별하게 다른 시간을 경험하게 된다. 이 장소에서 지금 나와 나 속의 너, 거기 그곳을 다 지나오면 그때는 미처 못 본것들도 보게 되는 순간이 온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기억의 주머니에 담아갈 것을 만지고 겪으며 최대치의 순간을 살아야 한다. 나중에 꺼내 먹을 수 있게, 그러면 그때는 몰랐지만 이제야 말 할 수 있는 시간들이 반드시 딸려 나온다." (p.138)

 

우리는 행복했던 시절의 추억들을 기억하며 현재를 살아간다. 이는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행복한 기억들을 화석화하여 영원과 불멸의 세계에 편입시키고자 하는 욕망이 있기 때문이며 이는 현실을 살아가는 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기억은 불완전한 것이고 객관화된 진실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살아가다보면 우리는 사실 (事實) 보다 사연 (事緣)이 중요해지는 순간들을 만나게 된다. 라쇼몽 (羅生門)의 대사처럼 진실이란 어차피 그 사람이 진실이라고 생각하고 싶은 것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저장된 원형이 기억으로 재생되기 위해서는 계기가 필요하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작가들의 삶 속 반짝이는 순간들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 스스로가 자신의 삶에서 빛났던 순간들을 떠올려보는 하나의 계기를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나도 삶에서 빛났던 순간들을 떠올려보았다. 가장 먼저 미소를 짓게 한 아주 최근의 기억이 떠올랐다. 재작년 오랜 시간 기다리던 딸이 태어났다. 새 생명 탄생의 경이로움과 부모가 된다는 막중한 책임감 속에서 우리 부부는 새로운 식구를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였고, 온 가족과 친척, 지인들도 딸의 출생을 축하해주었다. 딸의 탄생을 기점으로 나는 누군가의 자식으로 태어나 누군가의 부모로 성장해간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 아이가 눈을 뜨고 나와 처음으로 눈을 마주친 순간, 처음으로 지은 미소, 첫 걸음마, 처음으로 말을 한 순간, 이는 내가 자식으로서 부모님과 공유한 것이기도 하고 동시에 내가 부모로서 앞으로 내 딸과 공유해갈 기억들이기도 하다. 앞으로 나와 내 가족은 삶의 어떤 순간순간들을 공유하며 추억을 만들어나갈까? 퇴근 후 집에 돌아왔을 때 나를 보며 방긋 웃어주는 딸의 미소, 안아서 이마를 포갯을 때 전해오는 따스한 감촉, 말없이 내 손가락을 감아쥐던 앙증 맞은 작은 손, 이는 분명 내 삶 속에서 찬란히 빛나는 순간들이다.

 

 

이제 이 서평을 읽고 있는 당신이 답할 차례다. 당신의 삶에서 유난히 반짝이며 빛났던 순간들은 언제인가? 이는 당신을 위한 질문이다.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하며 미소를 지을 사람은 내가 아닌 당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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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킹 소사이어티 - 록음악으로 듣는, ‘나’를 위한 사회학이야기
장현정 지음 / 호밀밭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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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밴드 출신의 사회학자라는 재미난 이력을 가진 저자는 <록킹 소사이어티>에서 존레논, 핑크 플로이드, 라디오헤드부터 신중현, 들국화, 김민기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관통한 음악들을 통해 현대사회를 바라보는 통찰을 보여주고 있다. 사회학은 과학적 합리성, 시민혁명으로 이룩한 국민국가, 산업혁명을 통해 자리를 잡은 자본주의라는 세 가지 거대한 사회적 변화로 탄생한 새로운 사회에 대한 이해를 위해 탄생한 학문이다. 이는 중세, 근대, 현대를 거치며 발전해온 인간 진화의 역사이기도 하다. 사회적 진화는 불합리와 차별, 낙후된 현실에서 출발하여 이를 개선하기 위한 무수한 실패와 시행착오를 거치며 이루어진다. 이러한 과정에서 벌어지는 시대적 통념을 무너뜨리기 위한 용기 있는 도전은 자유, 저항, 도전을 노래하는 락음악과 닮아 있다.

책을 읽어 가면 갈수록 현대 한국사회의 모순과 아픔을 상징하는 세월호가 떠올랐다. 세월호 사건을 바라보는 대표적인 프레임은 신자유주의이다. 세월호는 우연히 발생한 해양사고가 아니라 사회시스템의 구조적 모순이 집약된 예견된 사고라는 것이다. 이윤 극대화를 위한 증축과 개축, 과적과 평형대 부족이 그렇고, 선원들 대부분이 비정규직이었다는 점이 그렇다. 또한, 절대 타협할 수 없는 안전을 담보하고 관리해야 할 국가기관이 구조적 유착으로 탈규제에 이르게 된 정황이 그렇다. 세월호는 국가와 사회의 부재 속에 약육강식의 원초적 본능과 무질서만큼 존재하는 정글에서 잉태되었다. 이는 원자화된 개인의 처절한 몸부림만 남아있는 2000년대 대한민국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핑크 플로이드는 빛나는 달의 앞면이 아닌 어두운 뒷면 (The Dark side of the Moon)에 주목하였다. 이는 인간 이성에 기반한 합리성이 종종 비인간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 그리고 사회 구조적 차원의 문제를 개인 차원의 문제로 축소, 왜곡시키는 근대성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밥딜런의 통찰처럼 과학과 삶의 논리는 다르다. "삶은 과학처럼 논리정연하고 각이 잡힌 네모의 형태가 아니라, 오히려 여기저기 부딪치면서도 끊임없이 구르는 돌멩이 (rolling stone)처럼 둥근 형태에 가깝다." (p.59) 저자의 주장처럼 과학으로 대표되는 실증주의는 현대인의 나약함에 대한 반증일 수 있다. 이는 비록 선명하지 않더라도 전체로서 사회를 조망하려는 시도를 포기하고 눈앞에서 통제 가능한 미시적 개별 요소만 신경 쓰겠다는 허무주의적 선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과학이란 좁은 틀을 넘어 인간의 삶 자체로 보면, 칼 폴라니의 말처럼 진정한 진리는 만유인력 법칙이 아니라, 오히려 중력에도 불구하고 새는 하늘 높이 날아오른다는 것이 될 수 있다.

락키드 출신답게 이 책에 대한 서평도 음악으로 마무리를 해야겠다. 책에서 차세대 영국록의 선두주자로 저자가 소개한 밴드 콜드플레이 (Cold Play)의 노래 'Yellow'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 별들을 . 위해 얼마나 반짝이는지.

  너의 모든 행동은 전부 노란 빛이었어."

"Look at the stars. Look how they shine for you.

And everything you do. Yeah, they were all yellow."

 

콜드플레이는 데뷔 19년 만에 처음으로 올해 내한공연을 하였고, 그 날은 세월호 참사 3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공연에서 'Yellow'를 열창하던 밴드의 리더 크리스 마틴은 갑자기 노래를 멈추고 관객들에게 오늘이 세월호 3주기임을 상기시키며 희생자들에게 사랑과 위로를 보내는 의미에서 10초간 묵념을 할 것을 제안했다. 그들이 관객과 함께 만들어낸 정적과 어둠을 밝힌 노란 불빛의 향연은 상처 받은 이들에게 전하는 우리의 진심이었다.

“사회적 불평등과 차별은 개인의 우울 및 권태와 함께 현대사회를 움직이는 두 바퀴였다. 따라서 오늘날은 함께 하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혁명인 시대다. (p.183)

2016 10월 광화문을 밝힌 촛불은 17 4월까지 이어졌고, 촛불은 전국 150여개 시군으로, 전세계 31개국 71개 도시로 퍼져나갔다. 누군가는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고 했지만, 1,700만여개의 빛은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첫 대통령 파면을 이끌어내며 찬란하게 빛났다. 독일의 공익정치 재단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은 박근혜 퇴진을 위한 촛불집회에 참여한 우리 국민을 2017 '에버트 인권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특정 국가의 국민이 수상자로 선정된 것은 상이 제정된 이래 최초의 사례였다. 재단은 민주적 참여권의 행사와 평화적 집회의 자유는 생동하는 민주주의의 필수적 요소이기 때문에 집회에 참여한 모든 분들을 대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쉽사리 변하지 않는 사회에 절망하지 않고 신뢰하고 연대하며 협력과 공생의 질서를 만들어나가는 것, 그것이 비록 사소하고 미약한 성공에 불과하다고 할지라도 '사람' ''이 빛나는 사회로 나아가는 동력은 그러한 곳에서 나온다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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