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뫼비우스 그림 / 열린책들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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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일 없이 한가한 오후가 있어, 또 그 오후에 일 없이 한가한 친구가 놀러와 한담을 나눈다면 이와 같을 것이다. 적당히 재미있는, 그러나 너무 많이 먹으면 틀림없이 질리게 되는 땅콩 까먹기 같았다고나 할까.

'만약 ...이라면'의 전제 하에 (이것이 상상 속에서 일어나는 일임을 독자가 알고 있다는 전제 하에) 매번 새로운 상상력을 펼쳐보인 것은 흥미로웠지만, 다만 그 정도였다. 흥미 유발은 되었으나 그것이 감동이나 충격 같은, 나름의 감상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무미(無味)하게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인가, 책이 두껍기는 하지만 짤막한 단편들의 모음집이라 읽기 수월한데도 다 읽는데 며칠이 걸렸다.

다 읽고 나서도 크게 인상적인 감상은 아니었다. 친구와 마주앉아 재미있게 수다를 떨고 난 뒤의 기분이랄까. 혹은 동화적인 문체가 아닌데도 동화책을 한 권 읽은 것 같은 느낌이기도 했다. 아이의 것과도 같은 엉뚱한 상상력의 전개와 만화적인 삽화 인상이 그러한 느낌을 불러들였을 것이다.

베르베르가 책 서두에서 밝히고 있듯이, '두꺼운 소설'을 쓰는 데서 오는 긴장감을 해소시키는 동시에 빠르게 이야기를 구성하는 능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틈틈이 써놓은 이 글들은 그의 전작들에 비하자면 초벌구이에서 멈춘 그릇과도 같았다. 이 글들이 초벌구이 상태에서 용감하게 세상 속으로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아무래도 작가의 이름값 때문이었으리라.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읽은 시간과 정성이 아까울 만큼 형편없지는 않다. 별다른 기대 없이 읽어보면 의외의 즐거움, 색다른 것들을 상상하는 즐거움에 동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머리를 쉬고 싶은 이들, 답답한 현실을 잠시 잊고 싶은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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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잠, 일찍 재울수록 건강하고 똑똑하다
마크 웨이스블러스 지음, 김지현 옮김 / 아이북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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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엄마로서 읽어야 할 책은 수도 없이 많다. 교육, 인성, 놀이, 잘 먹이기에 관한 책 등 서점에만 가면 온통 육아 지침서로만 가득 차 있는 듯한 생각마저 들 지경이다. 다 읽으면 좋겠지만 시간과 여건이 늘 욕심을 따라주는 건 아니다.

이 많은 책들 중에서 이 책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우연히 손에 잡았고 우연히 읽게 되었지만 난 페이지를 넘기면서 무릎을 쳤다. '오호라... 이런 것이로군' '잠'이라는 것을 졸음이 오면 자는 것 정도로 이해하고 또 아이가 찡찡거리면서 잠투정을 하는 것도 아직 아기니까 으레 그러려니 했던 내게 이 책은 하늘에서 똑 떨어진 가르침이었다.

'일찍 자야 일찍 일어나고 그래야 건강하다'는 말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내게 그 말은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말처럼 듣기에 좋은 금언 이상은 아니었다. 게다가 어느 책에선가는 '우린 새벽 두 시까지 아이와 함께 책을 읽는다. 잠 안 오는 아이를 억지로 재우려 하기보다 차라리 그 시간에 아이와 생산적인 활동을 하라'는 식으로 적혀 있어 올빼미 족인 우리 부부에게 좋은 핑게거리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아이들 잠을 그렇게 쉽게 생각해선 안 될 일이었던 것이다. '졸리면 자고 안 졸리면 말고. 뭐, 제가 영 졸립고 지치면 자겠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얜 좀 까탈스러워서' 하고, 마치 우리 아이의 특성인 양 생각하던 잠 투정도 으레 하는 것이라 생각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나는 먹는 것이나 교구와 같은 놀이감, 책 같은 것에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정작 아이에게 너무나도 중요한 '잠'에 대해서는 무지몽매했던 엄마였다. 그러나 지금에라도 이 책을 읽게 되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책장은 조금 전에 덮었지만 나는 어제부터 아이에게 규칙적인 잠 습관을 들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 책에는 그 방법들이 구체적으로 나열되어 있다)

이 책의 효과에 대해 말하기는 아직 이르다. 그러나 '잠'에 대해 이해하고 규칙적인 잠의 중요성을 정확하게 확인하게 되는 것만으로도 내게 이 책은 충분히 고마운 책이었다. 다른 아이엄마들에게 꼭 읽어야 할 책을 열 권만 권해주라면 나는 그 중에 이 책을 포함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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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를 봤다 작가정신 소설향 8
성석제 지음 / 작가정신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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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덮으니 문득 만물상(萬物商)이 풀어놓는 이야기 잔치마당에라도 다녀온 느낌이다. 주인공들의 삶은 만물상이 짊어지고 다니는 보따리의 이리저리 기워붙인 천조각처럼 낡고 심란하며 뒤죽박죽이다. 가짜투성이, 헛것들과 버무려져 있는 어지러운 인생들.

작가의 거칠 것 없는 입담은 별달리 특별나 보이지도 않는 이 이야기들에서 우리의 시선을 떼지 못하게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고 난 뒤 그다지 인상적인 느낌은 아니었다. 이 책의 내용 자체만으로는 정말로 특별난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내용이 아니라, 내용을 모자이크처럼 잇는 구성력이었고 작가의 탁월한 표현력이었다. 그의 단어, 그의 표현들을 통해 나는 일상 속에서 뭐라 말하기 힘들었던 모호한 느낌을 정확하게 되짚어내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사실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들은 작가의 머릿글에 다 나와 있다. 내게는 본문보다도 훨씬 인상적인 머릿글이었다.

'인생은 반복이다. 오늘은 어제의 동어반복이며 나는 남의 반복이다. 달라지려고 해도 달라지려는 것 자체가 평범한 게 되고 말며 게다가 그게 힘들기까지 하다. 그런데도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 류의 동네 장기 같은 훈수라든가... '진주는 조개의 아픔 속에 태어난다' 같은 전통있는 가짜 사탕이 여전히 극성을 부리고 있다. 심심하고 평범하며 한심한 가짜투성이와 부딪치고 맞닥뜨리는 삶의 행로이지만 어느 구석에, 그래, 네 인생이 바로 '그것'이라는, 나아가 '그것'이 바로 인생이라는 존재의 오의(奧義), 삶의 비의(秘義)가 입을 굳게 다물고 있지는 않을까. 가까이 가게 되면 입을 쩌어억 벌리며 어흥, 소리치는 건 아닌지...'

머릿글을 이렇게 길게 인용한 것도 처음이다. 작가 자신의 말이 내 어설픈 감상문보다는 훨씬 정확히 이 책을 소개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머릿글 말미 '아득히 멀어져간 친구를 안경을 벗고 바라보는 느낌'이란 문구는 내 마음에 명징하게 와닿아 두고두고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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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뿔 - 이외수 우화상자(寓畵箱子)
이외수 지음 / 해냄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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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청개구리 기질이 있다. 분명 해야 할 일임에도 누군가 '이거 해!'하고 강압적으로 등을 떠밀면 그 일이 죽기살기로 하기 싫어진다. 그렇게 등 떠밀지 않고 슬쩍 내 의향만 물었더라면, 아니 조그만 목소리로 살짝 비추기만 했더라도 나는 순순히 그 일을 했을 것이다. 내 청개구리 기질이 책을 읽을 때라고 해서 발휘되지 않을 리 없다. 책을 읽어내려가다가 '이러한 것이 바로 깨달음이요'하는 식으로 말이 나올라치면 나는 그만 책장을 덮어버리고 싶어진다. (그래도 대개는 참을성 있게 마지막 장까지 확인하려 애를 쓰긴 한다) 은유가 아닌 직유법이 내겐 아무래도 매력이 없다.

이외수씨의 글 스타일을 대충 알고는 있었으나 이 책 '외뿔'은 기대 이하였다. '세상을 놀라게 할 수 없다면 나타나지도 마라'는 광고 카피가 있었던가. '외뿔'에는 놀랄 만한 것이 한 가지도 없었다. 삽화를 그리는 솜씨가 좋았고 또 글과 삽화가 보기 좋게 어우러져 있기는 했으나 그런 것이야 어린 작가들도 할 수 있는 일이다. 피통체(PC통신에서 쓰는 문체)라 하여 주의를 확 끈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 이상의 새로움이 없었다. 깨달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없어도 되는 그림과 글, 사족이 너무 많았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작가 자신이 한 말이 자신의 글에서는 적용되지 못하고 있었다.

'사랑은 직유가 아니고 은유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간이 은유된 사랑에 이르지 못하고 직유된 사랑에 머물러 있다.'(본문 p203) 맞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글'이라는 것도 그러해야 하지 않겠는가? 산을 말하고 싶으면 절대 '산'이라는 말을 입 밖에 내지 말라는 금언도 있다. 그런데 작가의 글은 어쩐 일인가, 깨달음을 설파하기에는 너무나도 직설적이다. 작가가 사용한 은유나 비유는 눈에 보이는 그대로, 그림에 그려져 있는 그대로여서 생각을 할 필요도 없었다. 게다가 물고기 베스(무차별로 수입되는 미국문물을 상징하는)를 공격하는 언변도 이외수씨의 것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경박하고 그 깊이가 얇았다.

나는 이 책에 별 두 개를 주었다. 그러나 만약 이 책이 다른 젊은 작가의 것이었다면 아마 충분히 별 세 개 이상은 주었을 것이다. 이외수씨 정도의 재능을 가진 글쟁이라면 이런 정도의 뻔하고 자족적인 글에는 미련을 떨쳐버려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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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없는 탄생 - 샘터유아교육신서 24
프레드릭 르봐이예 지음, 주정일 옮김 / 샘터사 / 198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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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를 낳기 전에 나는 '아가'라는 존재가 정말이지 낯설었었다. 임신을 하고 있는 중에도, 태동이 느껴지고 분명 내 뱃속에 한 생명체가 숨을 쉬고 있는 것이 엄연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도무지 실감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두려웠던 것 같다. 어떻게 이 새로운 생명을 대하고 느껴야 할지 자신이 없었다. 남들처럼 태담을 하고 좋은 음악을 듣고 수시로 아이와 교감을 느끼려 애썼지만 그것이 내게 자연스러웠던 것만은 아니었다. 내겐 무엇보다도 아이가 내 자궁에서 빠져나온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것은 지식으로써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이의 존재에 대한, 출산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떨칠 수 있었던 것은 이 책의 힘을 빌어서였다. 물론 전적으로 이 책의 덕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나는 여러가지 관련책들을 뒤적거렸고 그리하여 수술실에서 끄집어올려지는 핏덩이로서의 아기(아무래도 낯설게만 느껴지던)가 아닌 내 감정을 공유하고 같이 느끼며 세상에 처음 나와 내 배 위에서 숨쉬게 될 아기를 상상할 수 있었다. 그 아기는 웃는 아기였고 모든 감각에 아주 예민하게 반응하는 아기였고 행복한 아기였다. 이전에는 내가 중심이던 것이 이 책을 읽고난 뒤에는 내가 뱃속에 있는 아기인 양, 아기의 눈이 되어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은 지도 벌써 몇 년이 지났다. 내가 아이를 낳을 당시엔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르봐이예 분만법을 요구할 수 있는 병원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이젠 분만에 대한 인식도 많이 달라져, 당시 너무나 부러웠던 여러가지 분만법을 시행하는 병원이 많은 듯 하다. 어떤 방식을 취하든, 아이와 엄마의 정서적 유대감이 공고히 연결되고 또 아이를 받는 엄마의 마음이 지극한 경외감과 기쁨으로 채워져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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