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 무렵까지 sbs에서 하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보았다. 제목이 '21세기 유아교육의 현재'였던가.
잠을 자다 목이 말라 깨었고, 거실로 나와 앉아있다가 그냥 한번 TV를 틀어보았는데 그 프로그램을 하고 있었다. 일본과 중국, 대만의 유아교육 현장들을 소개하고 있었는데, 이런 프로그램만 보면 늘 그렇듯이 몽롱하던 정신이 금세 또렷해졌다.
프로그램이 다 끝나 TV를 끄고 누웠는데도 도무지 잠이 오질 않았다. 30-40여 분을 뒤척이다가 결국 컴 앞으로 왔다.
우리 아이는 3월부터 놀이방이나 어린이집에 보낼 계획이다. 올해 꽉 찬 네 살. 비록 반나절 동안만이지만 집밖으로 내보내기는 이게 처음이다.
시설 속에서 키워지는 게 아니라 가능한 한 자연 속에서, 흙을 밟고 커가길 바라지만 그런 공간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이전에 한참 동안 '공동육아'에 대해 알아보기도 했지만 그건 맞벌이 부부에게 적당한 듯 보였고 게다가 사적인 부담이 너무 컸다. 별 수 없이 근처의 놀이방이나 어린이집을 알아보고 있지만 마음이 썩 개운하지는 않다.
오늘 그 프로그램에서 소개되었던 일본의 '플레이 파크' 같은 곳이 바로 내가 원하는 그런 곳이었다. 나라의 두뇌로 키운다는 웅대한 목표 아래, 유아 때부터 통합된 교육을 받고 있는 다른 곳들은 놀랍고 대단해보이기는 했으나 왠지 걱정스런 생각이 들었다. 기숙사 생활, 영어 수업...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다섯살짜리 아이가 저렇게 영어로 말할 수 있다니. (그러나 두뇌 교육에만 치중하지 않고 체력 단련이나 예절, 예능 같은 것에도 열심인 것은 부럽긴 했다)
하긴...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나 역시 쫒기는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다. 같은 또래의 옆집 아이가 "연필도 잘 잡고 글(그림)을 쓰네" 어쩌고 하면, 겉으로야 아무렇지 않은 척 하지만 속내로는 아직 주먹 안에 연필을 쥐는 우리 아이가 돌아다보이고 누가 몇 살에 한글을 읽네... 해도 역시 그렇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고 되뇌이곤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아이교육에 있어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 명확히 알 수가 없다. 연필을 잘 잡는 것, 젓가락질을 잘 하는 것, 또 글자에 관심을 가지는 것... 다 중요할 것이다. 중요하지 않은 게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내가 지금까지 살아본 결과로는, 결코 무엇에도 쫒길 필요는 없다. 나 역시 지금까지, 그리고 지금도 쫒기는 마음으로 살고 있지만 그것은 어떤 것도 가져다주지 못했다. 아니 무엇보다도 나쁜 것이 바로 이 쫒기는 마음이었다. 열려있는 바깥 세상을 열린 마음으로 들여다보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네살박이 첫 애를 키우고 있는 지금의 상황도 어쩌면 똑같을지 모른다. 아이와 놀 때, 쫒기지 않고 느긋하게 그 시간을 같이 즐기고 있을 때면 나는 아이와 내가 분명 교감하고 있음을 느낀다. 확실히 뭔가 통하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런데 '놀아줘야 한다'는 데 급급하여, 또는 해야 할 다음 일들에 밀려 정신없이 놀아줄 때면, 놀아주고 나서도 텅 빈 느낌이 든다. 아마 아이도 그럴 것이다. 단 한가지를 해도 마음을 다하여 한다면 그로부터 얻어지는 충족감이 모든 것을 채우고도 남는다는 사실을 늦게 늦게 깨닫는다. (진짜 깨달음이란 실천으로부터 오는 것이니 사실 아직 깨달았다고 말할 순 없지만)
그리하여 나는 다시금 적는다.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첫번째, 무엇에든 쫒기지 말 것이며
두번째, 책을 가까이 하게 할 것이며 (나 스스로 본을 보일 것이며)
세번째, 늘 주변에서 흙냄새를 맡을 수 있도록 하자.
그리고 그 모든 것에 앞서, 아이가 놀이방에 다니게 되거나 집에 있거나간에 늘 아이의 눈동자를 잘 들여다보도록 하자. 그러면 가장 좋은 길이 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