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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뿔 - 이외수 우화상자(寓畵箱子)
이외수 지음 / 해냄 / 200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내겐 청개구리 기질이 있다. 분명 해야 할 일임에도 누군가 '이거 해!'하고 강압적으로 등을 떠밀면 그 일이 죽기살기로 하기 싫어진다. 그렇게 등 떠밀지 않고 슬쩍 내 의향만 물었더라면, 아니 조그만 목소리로 살짝 비추기만 했더라도 나는 순순히 그 일을 했을 것이다. 내 청개구리 기질이 책을 읽을 때라고 해서 발휘되지 않을 리 없다. 책을 읽어내려가다가 '이러한 것이 바로 깨달음이요'하는 식으로 말이 나올라치면 나는 그만 책장을 덮어버리고 싶어진다. (그래도 대개는 참을성 있게 마지막 장까지 확인하려 애를 쓰긴 한다) 은유가 아닌 직유법이 내겐 아무래도 매력이 없다.
이외수씨의 글 스타일을 대충 알고는 있었으나 이 책 '외뿔'은 기대 이하였다. '세상을 놀라게 할 수 없다면 나타나지도 마라'는 광고 카피가 있었던가. '외뿔'에는 놀랄 만한 것이 한 가지도 없었다. 삽화를 그리는 솜씨가 좋았고 또 글과 삽화가 보기 좋게 어우러져 있기는 했으나 그런 것이야 어린 작가들도 할 수 있는 일이다. 피통체(PC통신에서 쓰는 문체)라 하여 주의를 확 끈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 이상의 새로움이 없었다. 깨달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없어도 되는 그림과 글, 사족이 너무 많았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작가 자신이 한 말이 자신의 글에서는 적용되지 못하고 있었다.
'사랑은 직유가 아니고 은유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간이 은유된 사랑에 이르지 못하고 직유된 사랑에 머물러 있다.'(본문 p203) 맞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글'이라는 것도 그러해야 하지 않겠는가? 산을 말하고 싶으면 절대 '산'이라는 말을 입 밖에 내지 말라는 금언도 있다. 그런데 작가의 글은 어쩐 일인가, 깨달음을 설파하기에는 너무나도 직설적이다. 작가가 사용한 은유나 비유는 눈에 보이는 그대로, 그림에 그려져 있는 그대로여서 생각을 할 필요도 없었다. 게다가 물고기 베스(무차별로 수입되는 미국문물을 상징하는)를 공격하는 언변도 이외수씨의 것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경박하고 그 깊이가 얇았다.
나는 이 책에 별 두 개를 주었다. 그러나 만약 이 책이 다른 젊은 작가의 것이었다면 아마 충분히 별 세 개 이상은 주었을 것이다. 이외수씨 정도의 재능을 가진 글쟁이라면 이런 정도의 뻔하고 자족적인 글에는 미련을 떨쳐버려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