쉿! - 꿈꾸는 나무 18
홀리 미드 그림, 민퐁 호 글, 윤여림 옮김 / 삼성출판사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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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태국의 작가 '민퐁 호'가 쓴 이 책은 확실히 이국적인 냄새를 풍풍 풍긴다. 엄마의 옷 차림새에서부터 등잔의 모양, 아기가 잠을 자는 그물침대, 천장 위를 기어다니는 긴꼬리 도마뱀, 물소와 원숭이, 코끼리에 이르기까지 마치 한 권의 작은 풍물 기행책을 보는 듯 하다. 그러나 실상 이 책은 귀여운 아기를 잠재우는 책, '태국의 자장가'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풍물은 다르다지만 엄마의 마음은 이곳이나 저곳이나 전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표지그림에서 잠자는 아이를 안은 엄마는 앵앵거리며 날아다니는 모기를 향해 '쉿!' 하고 손을 입에 대고 있다. 미소를 머금게 하는, 아이에 대한 엄마의 애틋한 마음이 단박에 읽히는 사랑스런 그림이다. 이 한 컷의 그림만 보아도 이 책에서 말하고 싶은 내용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잠자는 아이가 깨어날까 봐 소리 내는 모든 것들에게 '쉿!' 조용히 하라고 다독이는 엄마, 온 세상이 고요해진 뒤 엄마도 깜빡 잠이 든다. 그제야 홀로 잠이 깨어 눈을 깜박이고 있는 아기. ...이쁘고 정다운 느낌을 불러 일으키는 책이다. 아이들에게는 외국의 풍물을 재미있게 이해시킬 수 있으면서도, 아이를 생각하는 엄마의 마음을 잘 느끼게 해줄 것이다.

다만 하나 흠을 잡자면, 비슷한 어감의 말이 너무 되풀이되고 있어 읽어주기에 조금 지루하다는 것이다. '아기가 자고 있쟎니?', '아무 소리도 내지 말아라', '우리 아기가 자고 있단다' 등등. 이것은 엄마의 재량으로 적당히 줄여 읽어주면 될 것이다. 3천원도 안 되는 값으로 이 작고 사랑스런 책을 가질 수 있음이 놀라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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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피 아저씨의 뱃놀이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53
존 버닝햄 글, 그림 | 이주령 옮김 / 시공주니어 / 199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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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의 아이들 책 그림이 원색적이고 화려한 데 비해 이 책의 그림은 섬세한 펜화의 느낌이 살아있어 담백하고 이색적이다. 강가에 사는 검피 아저씨가 뱃놀이를 하는데 아이들과 동물들이 차례로 등장하여 함께 배를 타고 노는 이야기. 태워달라고 조르는 아이들과 동물들에게 아저씨는 주의사항을 일러두지만 결국 모두가 주의사항을 어겨 배가 기우뚱, 물에 빠지고 만다.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그림이 더욱 매력적인 책. 여러 동물들의 묘사며 풍경들을 그린 필치가 눈에 쏙 들어온다. 그림이 말을 하고 있다고나 할까. 마지막 장에서 검피 아저씨는 둥근 달빛 아래 서서, 그림자를 드리우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과 동물들의 뒷모습에 손을 흔든다. '잘 가거라, 다음에 또 배타러 오렴' 나도 그 아이들과 동물들 틈에 끼어 대답한다. 아무렴요, 또 오고말구요. 이 책을 읽으면 나는 아이를 데불고 전원 속에서의 평화롭고 유쾌한 나들이를 즐기고 있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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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자요, 달님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44
마거릿 와이즈 브라운 외 지음, 이연선 옮김 / 시공주니어 / 199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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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독자리뷰를 믿고 샀지만 직접 보기 전까진 솔직히 좀 불안한 마음이었다. 잠자리에서 읽어주는 책 치고는 색깔들이 너무 강한 것 같았고 (알라딘 검색창으로 보았을 때) 그림도 좀 유치하지 않을까 염려스러웠다.

그러나 책을 직접 받아보고 나니 기대 이상이었다. 방의 주조 색깔인 녹색은 톤 다운된 색감이라 눈에 거슬리지 않았고 흑백과 칼라 그림이 번갈아가며 나와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 방 안에는 아기토끼가 침대에 누워있고 할머니는 흔들의자에 앉아 뜨게질을 하고 있다. 작가는 방안에 있는 물건들을 하나하나 되짚어주면서 (여기 고양이 두 마리/ 벙어리 장갑 두짝/ 조그만 장난감 집 하나/ 생쥐 한 마리/ 빗 하나/ 솔 하나...) 어느 순간 우리를 이 방안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이어서 할머니가 "쉿!" 나지막이 속삭이고 나면 잘 자라는 인사가 반복되면서 녹색 방이 차츰 어두워진다. 벙어리 장갑아, 고양이야, 생쥐야, 그림 속의 암소야, 스탠드야, 빗아, 옥수수죽아, 별들아, 먼지들아, 잘 자. 소리들도 잘 자... 방안에 있는 모든 것들에게 하나하나 잘 자라는 인사를 건넨다는 설정이 정답고도 따스하다.

이렇게 모두에게 나직나직 인사하고 나면 우리 아이도 코- 잠들어 있다. 굳이 잠자리용이 아니라도 참 잘 만든 책이다. 아무리 잘 만들었어도 아이가 좋아하지 않는다면 소용없는데 아이도 좋아하니 금상첨화다. <벌레가 좋아>의 바로 그 작가, 마거릿 와이즈 브라운의 작품으로 선택함에 후회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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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별이 되어 돌아오다
현몽 지음 / 창해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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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끝까지 읽은 것에 내 인내심을 치하할 만 하다. 나는 오직 별 한 개를 주기 위해 끝까지 읽었다. 읽다 말고 독후감을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내가 읽기 싫으면 안 읽으면 그만일진대 왜 나서서 '이 책 읽지 마시오' 하고, 오는 사람 쫒아내고 싶었는지는 모르겠다.

저자인 현몽스님이 어떤 사람인지 나는 모른다. 안다 하더라도 더 이상 알고 싶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유명한 사람인가? 그 스스로가 그렇게 생각하니 그러려니 한다. 책 소개글에 적혀있는 대로 '만다라'의 실존인물인지는 모르겠으되, 파격과 일탈을 '멋'인 양 두르고 다니면서 만행을 수도 삼는 스님임에는 분명한 듯 했다. 파격과 일탈이 때론 격을 초탈한 것일 수도 있겠으나 내가 보기에 현몽스님의 것은 그야말로 '여성지 스타'에 걸맞는 것이었다.

예전에 잠시 절에 기웃거린 적이 있었다. 제대로 된 불교신자라 말할 수는 없고 그저 향 냄새와 주위에 흐르는 산 냄새가 좋아 다니던 절이었다. 어느 날부턴가 그 절에 새로운 스님이 얼굴을 비쳤다. 큰 절이라 오고가는 객승들도 많다지만 그중에서도 참 색다른 스님이었다. 듣건대 어릴 적부터 절에 몸담았다 했다.

그런데도 그 스님은 참아내기 어려운 속기(俗氣)를 풍기고 있었다. 스스로 굳이 차를 대접하겠노라 하여 가본 선실에는 시중에 한 때 나돌 뿐인 소설들과 TV가 있었다. 나는 정말 놀라웠다. 아무리 보아도 종교는 그 스님에게 몸에 익은 직업일 뿐이요, 여자와 술을 취하기 좋은 구실에 불과한 듯 보였기 때문이었다. (여자들이 스님을 좋아한다는 건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놀라운 일이다)

나는 도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그 뿐 아니라 사실 무엇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다만 나의 호오(好惡)일 뿐이다. 나는 이 책이 싫다. 자기의 외로움에 홀로 대취하여 그것을 도로 가는 지름길로 삼는 것이야 자신의 자유라 하더라도 그것을 공공연히 발설하고 다니면서 여자를 밝히고, 탁월한 언변을 무기삼아 그 연애담을 휘장처럼 내걸고 다니는 것은 보아주기 어렵다. 그 이상한 자아도취와 여자 밝힘증에 비해 그의 불교적 지식과 앎, 말을 이리저리 마음대로 부리는 재주가 아까울 따름이다. 기실 별 한 개의 감상이지만 여행기로서의 나름의 가치와 저자의 필력을 인정해 별 하나를 더 붙여주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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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실 언니 - 반양장 창비아동문고 14
권정생 / 창비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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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어른 책이 아닌 동화(소년소설)로 분류되어 있다. '창비아동문고' 열 네번째인 이 책을 집어들어 읽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난 선생님이 권해주신 위인전을 읽는 아이의 심정이었다. '몽실 언니'라는 책 제목도, 몽실언니가 아이를 업고 있는 겉표지의 판화그림도, 대충 알고 있는 내용도 내 흥미를 끌게 하지는 못했다.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뒤따라오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 책을 절대 고르지 않았을 것이다. 요즘 나오는 그림책이나 동화책들은 얼마나 예쁘고 아기자기하며 재미난 이야기들로 꽉 차 있는가 말이다.

그러나 내가 그런 헐렁한 마음을 바로잡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는 자세를 바로잡았다. 이것을 과연 동화책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유치'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여전히 아이들 책이란 조금은 유치하고 귀엽고 엉뚱하고 재미있는 책이라는 선입견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몽실 언니>는 어려운 단어나 불필요한 수사를 사용하지 않았다 뿐이지 그 내용에 있어서는 아이에게 뿐만이 아니라 나 같은 어른에게도 충분히 감동적이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절대 절망하지 않고 꿋꿋하게 헤쳐나가는 몽실언니는 내게 바리공주의 이야기와 서양만화 '캔디'를 떠올리게 했다. 바리공주 이야기에는 낳아준 것 외에 어떤 덕도 베풀지 않은 부모가 (아비가) 그의 죽어가는 삶을 버린 딸에게 의지하여 회생하려 한다. 자신을 버린 아비를 위해 헌신하는 바리공주가 이 책 속의 몽실언니와 꼭같지는 않더라도 부모 덕이 없기로는 매한가지일 터이다. 또한 서양만화 캔디는 낭만적으로 그려진 몽실언니가 아닐지. (상황도 다르고, 몽실언니도 훨씬 안 이쁠지언정) 괴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몽실언니, 아무리 고통스런 상처를 입을지라도 몽실언니는 꿋꿋하게 다시 일어나 불쌍한 동생들을 품에 안는다.

작가 권정생은 스스로 어려운 시절을 지나오면서 이 책을 썼다. 전쟁의 고통과 전후 삶의 피폐함이 간략한 서술에도 그대로 묻어나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더우기 이 책을 집필하던 시기는 30분 이상을 앉아있지 못하는 몸의 지병까지 안고 있을 때였다. 문장들이 떠오르면 새기고 새겼다가 일어나 한꺼번에 쓰고 다시 다음 문장이 떠오르길 기다려 썼다고 한다. 그러니 불필요한 수사들이 끼어들 여지도 없었을 것이다. 편하게 앉아 이 글을 읽는 나로서는 그저, 우리 역사의 상처를 껴안고 살아온 많은 몽실언니들과 그들을 이렇게 애정어린 눈으로 바라다본 작가가 고마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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