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실 언니 - 반양장 창비아동문고 14
권정생 / 창비 / 200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어른 책이 아닌 동화(소년소설)로 분류되어 있다. '창비아동문고' 열 네번째인 이 책을 집어들어 읽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난 선생님이 권해주신 위인전을 읽는 아이의 심정이었다. '몽실 언니'라는 책 제목도, 몽실언니가 아이를 업고 있는 겉표지의 판화그림도, 대충 알고 있는 내용도 내 흥미를 끌게 하지는 못했다.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뒤따라오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 책을 절대 고르지 않았을 것이다. 요즘 나오는 그림책이나 동화책들은 얼마나 예쁘고 아기자기하며 재미난 이야기들로 꽉 차 있는가 말이다.

그러나 내가 그런 헐렁한 마음을 바로잡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는 자세를 바로잡았다. 이것을 과연 동화책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유치'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여전히 아이들 책이란 조금은 유치하고 귀엽고 엉뚱하고 재미있는 책이라는 선입견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몽실 언니>는 어려운 단어나 불필요한 수사를 사용하지 않았다 뿐이지 그 내용에 있어서는 아이에게 뿐만이 아니라 나 같은 어른에게도 충분히 감동적이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절대 절망하지 않고 꿋꿋하게 헤쳐나가는 몽실언니는 내게 바리공주의 이야기와 서양만화 '캔디'를 떠올리게 했다. 바리공주 이야기에는 낳아준 것 외에 어떤 덕도 베풀지 않은 부모가 (아비가) 그의 죽어가는 삶을 버린 딸에게 의지하여 회생하려 한다. 자신을 버린 아비를 위해 헌신하는 바리공주가 이 책 속의 몽실언니와 꼭같지는 않더라도 부모 덕이 없기로는 매한가지일 터이다. 또한 서양만화 캔디는 낭만적으로 그려진 몽실언니가 아닐지. (상황도 다르고, 몽실언니도 훨씬 안 이쁠지언정) 괴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몽실언니, 아무리 고통스런 상처를 입을지라도 몽실언니는 꿋꿋하게 다시 일어나 불쌍한 동생들을 품에 안는다.

작가 권정생은 스스로 어려운 시절을 지나오면서 이 책을 썼다. 전쟁의 고통과 전후 삶의 피폐함이 간략한 서술에도 그대로 묻어나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더우기 이 책을 집필하던 시기는 30분 이상을 앉아있지 못하는 몸의 지병까지 안고 있을 때였다. 문장들이 떠오르면 새기고 새겼다가 일어나 한꺼번에 쓰고 다시 다음 문장이 떠오르길 기다려 썼다고 한다. 그러니 불필요한 수사들이 끼어들 여지도 없었을 것이다. 편하게 앉아 이 글을 읽는 나로서는 그저, 우리 역사의 상처를 껴안고 살아온 많은 몽실언니들과 그들을 이렇게 애정어린 눈으로 바라다본 작가가 고마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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