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떠나며 - 제5회 푸른문학상 수상집 책읽는 가족 60
최금진 외 지음, 이영림 외 그림 / 푸른책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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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최근에는 여러 사람의 작품을 함께 묶는 작품집 형태가 많이 눈에 띈다. <지구를 떠나며>도 제 5회 푸른 문학상 수상작들을 함께 묶은 책이다. 보통 문학상 수상작을 묶어 낼 경우는 수상 작품만을 묶어 출판을 하는데 이 책의 경우는 역대 수상 작가 초대석이라는 형식으로 3작품을 더 해서 총 9편의 동화를 한데 묶었다. 그렇게 책을 출판하게 된 데는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까? 내용상으로 보았을 때 어차피 중학년이상 고학년을 대상으로 한 것 같기는 하지만 너무 많은 작품을 수록함으로서 어른인 내가 보기에도 좀 부담스러웠는데 아이들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 본다.

 

'책읽어주는 아줌마'는 맞벌이를 하는 집 기범의  무료한 일상 속에 어느 날 아랫집에서 누군가를 향한 책 읽어주는 소리에 기범이 빠져 드는 이야기로 시작을 한다. 처음에는 이야기에 빠져들다가 읽어주는 사람에 궁금증을 느껴 우편함을 뒤진다. 출판사에 자신들이 원하는 이야기를 출판 해 달라고 하는 아이들의 적극적인 모습도 볼 수 있다. 작가가 하고 싶은 말 내지 보여주고 싶어 하는 세상은 알겠지만 그렇다고 결과를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을 동화의 형식으로 보길 원하지 않는다. 나는 이 작품을 통하여 자신의 호기심을 채우기 위하여 남의 우편물을 함부로 열어보는 설정과 친구들을 동원하여 출판사에 그 작품을 출판해 달라고 요구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예쁘게 보이질 않는다. 출판사 관계자 또한 독자신이 거절한 작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의 변화는 없이 독자의 요구라는 힘에 의하여 출판하겠다는 책 만드는 이의 철학의 부재에 심한 우려를 한다. 잘못된 단추는 처음부터 다시 끼울 수밖에 없다. 과연 작가가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세상은 어떤 세상인지 묻고 싶은 작품이다.

 

'지구를 떠나며'의 아이들은 스스로 '나쁜 녀석들'이라고 한다. 스스로를 나쁜 녀석들이라고 칭할 정도면 주변 사람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비난과 질책을 받았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팠다. 그들이 지구를 떠날 생각을 하면서 하는 말들을 들어보면 그들은 결코 나쁜 아이들은 아닌듯하다. 다만 그들의 삶을 이루는 환경에 그들의 장난을 덧붙여 편견으로 아이들을 대하지 않았을까 생각하면서 그들에게 주변이 '조금만 더 관심을 가져 주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한다. 작품에서의 어른들의 모습은 많이 실망스럽다. 우리 작품에서 아이들은 비교적 잘 그리고 있는데 아동문학에서 어른들의 모습은 지나치게 왜곡된 모습으로 그리고 있어 어른 독자로서 부끄럽지만(작가가 그린 어른도 분명 존재한다.) 작가들에게 불만이 없을 수 없다.( 작가가 그린 어른들 모습과 다른 어른들이 분명 더 많이 존재한다.) 작가들이 어른들의 모습을 좀 더 극단으로 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 본다.
'바보 문식이'의 문식이는 작품명에서 보여 주듯이 조금은 얼뜬 아이다. 정신 지체아, 엄마의 가출, 아버지의 음독자살 이런 단어들을 볼 때 문식이가 사는 모습이 눈에 훤히 그려진다. 다리가 부러져 병원에 입원했다 이제 퇴원을 했음에도 병원에 계속 나타는 것을 두고 사람들은 '돈맛'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작가는 손가락질을 받기만 했던 문식이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는 할머니를 등장 시키면서 따뜻한 관심과 사랑이 있다면 문식이처럼 정신 지체아 일지라도 나름대로 자기 구실을 하면서 살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고 배려하며 함께 살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바래보지만 막상 그것은 내 생각의 일부분일 뿐 몸에 밴 것이 아니라는 것에 딜레마를 갖게 된다.


'할머니의 남자친구'에 나오는 할머니 할머니의 남자친구는 젊은 날엔 주변에서 원하는 삶을 열심히 살았지만 정년퇴임 후에는 자신이 살고 싶은 대로 살고 있는 분이다. 오토바이를 타고, 키타를 치고,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록밴드 오디션에..... 기존에 우리가 할아버지에게서 갖았던 이미지와는 정말 다른 이미지의 할아버지다. 이 할아버지를 영민이 할머니의 남자친구로 받아들여야하는 영민이 부모님의 당혹스러움은 충분히 공감이 간다. 아무리 튀는 할아버지지만 오토바이를 태워달라는 영민의 말에 그 복장으로는 무리라며 한 행동은 작가가 무리했다는 생각을 한다. 또 폭주족을 바라보면서 할아버지가 한 말은 작가의 말(어른들의 잔소리)가 너무 날것으로 들어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튀어도 너무 튄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었다.


'달리기'의 주인공 나는 전국 어린이 마라톤 대회 연속 우승하는 마라톤 신동이다. 그러나 나는 마라톤 보다 단거리를 뛰고 싶다. 막연히 마라톤이 싫어서라기보다 단거리를 해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연속 우승', '마라톤 신동'의 굴레는 나의 종목 전향을 허락하지 않는다. 반면, 같은 육상부에서 단거리를 가장 잘 뛰는 준호는 마라톤이 하고 싶다. 그러나 준호 역시 마라톤으로의 종목 변경은 허락되지 않는다. 다른 것을 꿈꾸는 아이들, 그것이 단순히 이것이 싫어서 다른 것을 탐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또 다른 것을 하고 싶은 아이들의 의지를 받아들이지 않는 우리의 현실을 작가는 이야기 하고 싶었다고 보인다.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다른 누군가 판단하여 적당하다고 생각 되어 씌운 굴레를 쓰고 갈 때까지 갈 수밖에 없는 아이들의 현실을 그리고 싶은 것이었다면 참으로 잘 쓰여 진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준호가 육상부를 그만두고 일반인 자격으로 마라톤대회에 참가하여 주인공과 마라톤을 하면서 주고받는 말과 하는 행동을 보면서 아이들에게는 희망을 느끼지만 아이의 미래를 위한 선택을 생각한다면 난 어찌해야 할까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는 게 솔 찍한 심정이다.-부디 내게(어른인) 이런(선택의) 시련이 없기를..... -


'친구'의 정애는 외톨이다. 어느 날 다가온 친구 보영이로 인하여 정애는 변해가기 시작하던 중 정애는 선생님이 보영에게 정애와 친하게 지내라는 부탁을 듣고 가까이 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보영이를 친구로 생각 했던 정애로서는 당황스럽다. 보영이로 인하여 느꼈던 따뜻함은 아픔으로 변했다. 우리가 가장 범하기 쉬운 우에 대하여 작가는 이야기하고 있다. 친구란 동정으로 맺어질 수 있는 관계도 아니고 우정이란 강요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외톨이에 대한 섣부른 접근보다는 만남을 통하여 서로가 서로를 발견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함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이다.

여기까지가 제 5회 푸른 문학상 수상 작품이다. '짬뽕, 미키마우스, 그리고.......', '아버지와 함께 가는 길' 은 역대 수상 작가의 초대 작품이다. 이 세 작품에서 나는 '짬뽕, 미키마우스, 그리고.......' 이 작품이 좋다. 어른들의 이혼으로 아이들이 상처를 받는다는 것을 전제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어 좋다. 상처 받은 아이들을 위하다고 과장되게 행동을 하지 않아서 좋다. 작가가 어른들의 모습을 일그러뜨리지 않아서 좋다. 또 자신의 삶을 통하여 아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좋다. 그동안 아동문학 작품을 읽으면서 느꼈던 답답함을 이 작품은 충분히 해소 해 주었다. 이 작품으로 인하여 우리 아동 문학의 희망을 보았다.

(사족: 단편은 각 작품마다 색깔을 달리한다. 더욱이 이번처럼 여러 작가의 참여 작품집이라면 더욱 그렇다. 각기 다른 성격의 작품을 읽고 소화하기에는 무리한 편집이었다는 생각이다. )

-------------- 이 책은 리더스 가이드 서평 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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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들지 않는다는 것 - 하종강의 중년일기
하종강 지음 / 철수와영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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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을 보면서, 책을 읽으면서 내 마음속에 아름다운 사람으로 인식이 되는 경우는 그 사람이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는가 하는 것보다 '그가 서 있는 자리를 어떻게 인식하고 하고 있는 일을 어떤 자세로 임하는가' 하는 게 가장 큰 기준점이 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수고로움을 대가로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수고로움은 형태상으로 일정하지 않다. 어떤 이는 육체적 노동을 하고 어떤 이는 정신적 노동을 한다. 그런데 우리는 노동이라고 하면 육체적 노동을 먼저 떠올린다. 그리고 노동자들이라고 하면 경제적으로 가진 게 별로 없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나만의 생각일지 모르지만 노동운동의 현장이라고 하면 격렬함이 먼저 떠오른다.

하종강은 30년이 가까운 세월을 노동 상담일을 해왔고 1년에 300회 이상을 노동 교육을 다닐 정도로 열정적으로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들과 호흡을 같이 해 온 사람이라고 한다. 그럼 그 사람의 주변을 돌아 볼 때 그 사람이 어떤 사람임은 미루어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직접 망치를 들고 삽자루를 들지는 않았는지 모르지만 하종강이 생각하는 노동은 신성한 것이며 노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존경과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30년 가까이 노동 상담일을 해 온 것을 보면 노동자들의 삶과 상당히 가까이 다가가 있고 그들이 노동 현장에서 당하는 불이익에 그대로 눈 감을 수 없는 양심을 가진 사람으로 비춰진다. 그 안에 격렬함이 그대로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가 쓴 산문집 <철들지 않는다는 것>을 보면 하종강은 일적으로는 치열하게 열심히, 그리고 고집스럽게 살아왔지만 인간 하종강으로 돌아오면 우리네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평범한 인간임을 느낄 수 있다. 아니, <철들지 않는다는 것>이란 글을 통해서 보면 치열함 속에서 더 여유로움을 잃지 않았고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철들지 않는다는 것>을 읽으며 인상이 깊었던 장면은 '돌아온 탕자' 편이었다. 누가 복음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에서 절정에 달하는 부분을 묻는 것에서 본인(하종강)은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아들을 맨발로 맞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노동자는 '재산을 탕진한 아들이 돼지먹이로나 쓰이는 쥐엄나무를 먹으려다 이제 아버지에게 돌아 갈 때'라고 인식하는 순간이 절정이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자신과 전혀 다른 시각에서 사물을 보고 인식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이 가장 인상이 깊었다.

또 하나. 오랜 강사 생활을 하다가 결국은 칼국수 집을 하게 된 친구가 '멀쩡한 말을 망아지로 만들려고 해서 10년 이상 걸어 온 자신의 길을 포기하고 새 길을 찾았노라'는 말이 인상이 남는다. 우리는 자신이 오랫동안 공 들여 해 온 일을 접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다. '가야할 때를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아름답다.'고 했다. 바라보는 뒷모습은 아름다울지 모르지만 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 너무 아팠다. 한 때는 치열하게 노동 현장에서 일하다가 일을 그만둔 사람들이 "아직도 그렇게 사니?"라는 물음도 참 가슴이 아팠고, 한때는 동지였다가 제도권에 빌붙어 사는 사람에게 술을 얻어 마시고 싶어 하지 않는 모습도 가슴이 아프다.

'철이 없다'는 말은 일반적으로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을 말한다. 하종강씨가 책 제목을 '철들지 않는다는 것'으로 붙인 이유는 무엇일가 궁금해 졌다. 순수하게 열정적으로 살고 싶다는 의지표현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아무튼 <철들지 않는다는 것>을 보면서 치열함 속에서도 자기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을 보아 기분이 좋다. 오랫동안 순수하게 열심히 살길 바라며.

                   -------이 책은 리더스 가이드 이벤트 도서로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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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지기 쉬운 깨지지 않을 - 바람단편집 3 반올림 11
김혜진 외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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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간 아이들에게 젤 처음 하는 말은 '이제 여러분은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닙니다. '라는 말이 있다.  어제까지 허용이 되던 것이 더 이상 허용이 되지 않는다.  새로운 무언가 허용이 되느냐? 아직은 어려서 안 된단다. '어린이도 아니다. 어른도 아니다. 
또박또박 너는 청.소.년이야!' 말을 하는데 청소년이란 과연 무엇인가 말이다. 학기 초라면 상급학교에 진학을 했고 교복을 입었다는 것 외에는 어제의 그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  "어린이도 아니잖니? 그럼 한 단계 높여 책도 읽어야지." 비록 상급학교에 진학을 했다고, 교복을 입었다고 아이들이 갑자기 크는 것도 아닌데 주변에서 보내는 눈총은 따갑다.
갑자기 크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청소년들이 읽을거리를 생각해 보니 없다. 아동문학 쪽은 이미 포화 될 대로 된 상황이고..... 그렇게 틈새시장으로 한국의 청소년 문학은 시작을 했다. 사계절 출판사가 가장 선두에 섰고...... 지금은 너무나도 많은 출판사가 너도 나도 청소년 문학에 손을 대고 있다. 어떤 출판사는 특정의 주제만 놓고 그 주제를 따라 책을 펴내고 있는가하면 또 어떤 출판사는 외국의 한다하는 작품을 싹쓸이 하다시피 독점 수입하고 있다. 또 어떤 출판사는 그래도 새로운 작가군의 발굴에 의미를 두고 있는 곳도 있다.

최근에 바람의 아이들 출판사에서 나온 <깨지기 쉬운 깨지지 않을>이란 작품은 우리 작가의 청소년 문학이라서 매우 반가웠다. 작품을 끝까지 읽기는 읽었는데 아무것도 머릿속에 남지 않아 당황스러웠다. '언제 어디서, 어느 상황에서나 배운다.'는 장점을 가진 내 안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왜 이러지? 너무 평범해서? 작가가 글을 못 써서? 내 독해력이 떨어져서? 도대체 뭐지?' 그렇게 작품들은 책장 안에 다시 갇히게 되었다. 그래도 뭔가 찝찝함을 지울 수 없었다.

 

작품에서 빠져나와 출판사에서는 왜 이런 책을 냈을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아마도.....

그래, 이 작품에 나오는 아이들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있는 아이들이구나. 너무 흔해서 그 아이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구나. 특별한 아무개가 아닌 평범한 아이들의 삶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구나. 그렇게 출판 의도를 이해하고 작품들을 다시 보게 되었다.

<깨지기 쉬운 깨지지 않을>에는 총 7편의 작품이 수록이 된 단편집이다. 대부분 새롭게 청소년 문학 작가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젊은 작가들이다.

박정애씨의 '정오의 희망곡'은 아버지와 학습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홍홍이의 사연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홍홍이가 받는 스트레스는 이해를 충분히 하겠다. 그러나 홍홍이는 스스로 그 문제를 해결하려하지 않고 어른들의 뒤에 숨어 누군가 문제 해결을 해 주기만을 바라는 점이 많이 아쉬웠다.

이경화씨의 '쥐포'의 소재는 전교조를 다루고 있어 8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그것은 한갓 소품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어느 순간에 운명을 바꾸어 놓을 어떤 사건이나 인물을 만나기도 한다. 주인공 재삼이가 만났던 선생님이 하필이면 전교조 선생님이고 그것이 발단이 되어 자기의 삶을 돌아보고 올바른 가치를 찾아가는 이야기일 뿐이다. 우리 주변에서, 언제나 있을 수 있는 평범한 이야기 속에 재삼이의 성장과 선생님의 성장이 아울러 보이는 작품이다.

이경혜씨의 'Reading is sexy'의 주인공 연저는 작품에서 가슴에 Reading is sexy라는 다소 선정적인 문구가 쓰여 진 티셔츠를 입고 있다. 연저는 별반 내세울 만한 외모를 가진 아이는 아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Reading is sexy라는 문구가 쓰여 진 옷을 입었다는 것은 자신의 내부에 sexy 하지 않음에 대한 욕구의 반대적 표현이 이다. 연저 엄마가 경영하는 분식집에 민기를 데리고 가서 보인 행태들은 연저의 가난하지만 당당함이 아니라 가난으로 인하여 이룰 수 없는 것들을 포장한 것처럼 느껴진다. 때문에 연저의 당당함 이면에 진한 슬픔이 느껴진다.

이상운의 '내가 왜 그랬지'의 현서는 '착한 일을 하고 그 행동이 착하다고 생각하는 논리적인 이유를 써 보라'는 과제를 받음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행동 뒤에 '왜?'라는 의문 부호를 달지는 않는다. 현서는 과제를 위하여 자신의 행동에 의문 부호를 달면서 진짜 '선행'이란 것에 대하여 생각을 한다. 그러다 우연히 만난 노점하시는 할머니를 만나게 되고 착한 일이라고 생각하여 많은 마늘을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온다. 마늘을 산 이야기를 듣게 된 현서의 부모님은 많은 칭찬을 했고 용돈도 두둑하게 주었다. 자신의 선행을 자랑하고 싶었던 현서는 친구를 증인으로 세우고 다시 한 번 노점상 할머니의 마늘을 전부 사려고 하지만 할머니는 화를 내면서 거절을 한다. 지금 현서는 할머니가 왜 화를 냈는지 모른다. 그러나 현서는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할머니가 화를 낸 이유를 생각하고 선행이란 과연 무엇인가 생각하고 또 생각할 것이다. 선이라고 의식하는 그 순간을 냉정하게 생각 해 보면 이면에 자시과시 내지는 동정이 깔려 있다. 또 누구에게는 선이 또 다른 누구에게는 선이 아닐 수도 있음을 이작품은 이야기하고 있다. 현서가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는 한 현서는 성장을 할 것이다.

박상률씨의 '세상에 단 한권뿐인 시집'은 회고조다. 또한 작가는 사춘기의 첫사랑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러나 작품속의 어떤 인물도 살아있지 못하다. 또한 작품의 의도를 알 수 없다.

임태희씨의 '학습 된 절망'은 무엇 하나 딱 부러지게 잘하는 것 없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이걸까 싶어 하다가 보면 '이게 아닌가벼." 이건? 이것도 아니네....... 그렇게 자신의 적성을 찾아 방황하는 우리 모두에 대한 이야기다.

한번씩 '이게 아닌가봐!'할 때마다 삐꾸는 위축된다.  남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놓고 힐난하고 무시한다. 거듭된 실패, 거듭된 힐난과 무시 속에 나는 소심해지고 절망한다.

"걷지를 못하면 기기라도 해야지"하는 매형의 말에  "기기를 잘하면 어디에 쓸모가 있을까?"를 삐꾸는 생각한다. 삐꾸는 매번 실패하고 매번 절망하지만 "아직은 기는 걸 잘 하고 싶지 않다"-175쪽는 것으로 보아 비록 오늘도 실패하고 힐난을 받을지라도  또 다시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움직일 것이다. 하루 빨리 삐꾸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으면 좋겠다.

김혜진씨의 작품'깨지기 쉬운 깨지지 않은'은 이 단편집의 표제작이다. 주인공 시은이는 고3이다. 수시로 대학에 합격을 하고 지금 유리공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중이다. 시은은 상천에게 무심결에 한 거짓말로 인하여 둘의 관계가 깨어질까 두려워한다. 유리는 아름답지만 결코 막 다룰 수 있는 물건은 아니다. 늘 어린애 달래듯 조심하지 않으면 언제 깨질지 모르는 것이다. 그렇다고  깨질지 모른다고 유리를 한갓 장식물로 취급할 수도 없다. 유리는 잘 깨진다. 그렇지만 재활용도 얼마든지 가능한 게 또 유리다. 유리가 깨진다는 것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변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관계 또한 소멸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관계 맺음이 존재 할뿐이라는 것을 작가는 이야기 하고 있다.

세상에는 많은 평범함이 존재하고 그중에 극히 일부만이 특별하다. 평범함은 드러나지 않는다. 드러나지 않지만 존재한다. 특별함은 전체를 선도한다. 그러나 평범한 것은 특별함을 도드라지게 하고 특별함이 존재하게 하는 그 자체다. 그런 의미에서 바람의 아이들 출판사에서 나온 <깨지기 쉬운 깨지지 않는>은 의미가 있다.

 

우리의 청소년의 삶을 보살피는 우리 청소년 문학이 발전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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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올림 8
이경화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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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으니 글을 참 잘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후반에는 힘이 좀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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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시게마츠 기요시 지음, 고향옥 옮김 / 양철북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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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게마츠 기요시의 작품을 처음 읽은 것이<나이프>라는 작품이다. 이후 그의 작품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작가는 '현대 사회의 가족, 청소년'에 대하여 진지한 고민을 하고 있고 우리에게 그 화두를 던지고 있다. <졸업>도 이제까지의 작품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졸업>에는 표제작인'졸업'과 '행진곡', '아버지의 마지막 수업', '추신' 이렇게 네 작품이 들어 있다. 네 작품 모두 죽음이라는 소재를 매개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졸업'은 자신이 죽은 친구 이토의 딸 아야가 찾아오는데서 이야기는 시작 되고 있다. 이토가 자살 한 이후 이토에 대한 것은 기억의 저편으로 밀려 나 있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나타나 이토를 '그 사람'으로 표현하며 '그 사람'과 함께 한 추억을 내 놓으란다. 머뭇대는 와타나베에게 친한 친구라며 그것도 아닌가 보다고 몰아 부친다. 이토, 이토...... 와타나베는 기억의 저편에 물러 앉아있던 친구를 반추하여  이야기 하는 가운데 아야가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야는 생부인 이토의 자살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단 한번이래도 곧 태어 날 아기와 남겨진 부인을 생각하면 어떻게 자살을 할 수 있느냐. 그것은 이토가 아기와 엄마를 사랑하지 않은 것이며 무책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죽은 생부에게 많이 화가 나 있다. 그런 사람의 피를 받아 자신도 자살을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한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생부의 피를 받아 자신이 자살을 함으로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줄 것을 두려워한다. 이토에 대한 추억을 아야가 만든 사이트에 써 가던 와타나베는 어느 날 자신의 글에 오랫동안 댓글을 달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겨 아야의 집을 찾아 갔다가 아야가 옥상에서 투신, 병원에 입원 해 있는 상태임을 알게 된다. 와타나베를 통하여 아야 주변의 이야기를 듣던 아야의 엄마와  새 아빠는 아야에게 자신의 어렸을 때의 기억들을 이야기하며 새로운 관계맺음을 시작한다. 아야는 불안, 고통의 시기를 넘어(졸업하고) 새로운 관계맺음으로 나머지 인생을 살게 될 것을 믿는다.

'행진곡'은 말기 암을 앓고 있는 어머니의 병실을 지키면서 자기 주변을 돌아보는 이야기다. 그동안 자신은 도회지 생활을 하면서 고향을 돌아보지 않았다. 자기가 잘났는지 알고 자신의 삶만 중한 줄 여기고 살아왔다. 아버지가 쓰러지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제 엄마마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다. 여동생과 둘이 앉아 아버지가 쓰러진 이후의 이야기, 여동생이 적응장애를 앓았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면서 엄마와, 아버지를 반추한다. 그리고 현재 자신의 아들이 안고 있는 문제를 생각하면서 자신이 얼마나 이기적인 인간이었나, 자신이 얼마나 가족들과 불통했는가 생각한다. 자신의 부모와 부모가 된 나를 돌아본다.  자신의 부모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도 아들에게 무한한 인내와 사랑으로 기다려 줄 것을 이야기한다.

'아버지의 마지막 수업'또한 죽음을 소재로 한다. 평생 교사로 살아온 아버지,  그 아버지가 지금 죽어가고 있다. 아버지는 자신의 교육관, 철학에 따라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아 온 것은 인정한다. 열심히 살아 온 것은 인정하지만 아이들에게 존경을 받지 못하는 교사였던 아버지. 아무도 아버지를 찾아오지 않는다. 같은 교사로서 아들은 그런 아버지가 안쓰럽다. 아버지를 이해 할 수 있는 제자 단 한 사람이 그립다. 당신의 삶이 헛된 것에 아니었음을 인정해 줄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함이 절절하게 와 닿는다. 아이에게 죽음을 보이는 것은 정서상 해롭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결국 자신의 제자와 아버지의 임종을 지킨다. 아버지의 마지막 수업의 제자가 되어. 아들이 마련한 마지막 아버지의 수업에는 숭고함 마저 느껴진다. '스승의 은혜는~' 하고 울려 퍼지는 장송곡. 아버지를 행한 진한 사부곡에 눈물이 울컥 난다.

'추신'이란 말이 뭘까 상당히 궁금했었다. 물론 편지의 말미에 많이 쓰는 문구이긴 하지만 딱 떼어 내 '추신' 하니 생소 했다. 글을 다 읽고 났을 때 '어떤 글에 덧붙임'이란 의미임을 알았다. 작품은 어린 날 돌아가신 엄마의 일기장을 마음에 품고 새 엄마를 거부한 채 살아가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어린 날 돌아가신 엄마를 마흔이 넘은 작가는 자신이 만든 가상의 엄마에 대한 에세이를 쓰게 된다. 이를 지켜보는 아내는 불안하다. 고향의 새 엄마, 동생이 어떻게 생각할까? 거짓임을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어떻게 할까. 그렇지만 작가는 개의치 않는다. 있을 법한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이야기 하는 자들이 작가가 아니냐면서.

타의에 의하여 온 고향에서 작가는 새엄마가 엄마의 일기장을 필사한 것을 받게 된다. 엄마의 일기장을 필사한 새엄마의 일기장 맨 마지막에 덧붙인 말 ' 추신- 케이치 군 나도, 천국에 가서도 쭉 케이치 군 어머니란다.' 두~둥!! 새 엄마가 느꼈을 심적 고통을 한 순간에 느낄 수 있다. 아들에게 인정받지 못한 어머니의 자리, 그래도 어머니는 늘 자신의 자리를 만들고 자신을 당신의 가슴에 담아 두셨다는 말.

 

작품 전체의 주제는 현대인들이 이런저런 이유를 대면서 자기중심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가운데 서로가 멀어져 있어 소통하지 못함을 보여주고 있다. 각자의 고통도 결국은 막힘에서 오는 과부하 현상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소통만이 우리가 살 길임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보여 진다. 오랜만에 나 아닌 주변을 생각해 보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졸업>은 리더스 가이드의 이벤트 도서로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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