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 후안 데 파레하 - 신분을 초월한 사제지간의 우정과 예술이야기
엘리자베스 보튼 데 트레비뇨 지음, 김우창 옮김 / 다른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나의 의식은 속에는 <바로톨로메는 개가 아니다>-> ‘궁정의 시녀들’ -> 화가 벨라스케스 이런 도식이 자리 잡고 있다. <바로톨로메는 개가 아니다>를 읽으면서 나는 비로소 벨라스케스라는 화가를 알게 되었고 ‘궁정의 시녀들’이라는 그림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 후안 데 파라하>는 벨라스케스의 노예이자 친구인 후안 데 파라하의 전기라는 말을 듣고 나는 주저하지 않고 이 책을 읽게 되었다.
후안은 노예로 태어났다. 영리해 보였던 후안은 안주인에게 글을 배웠다. 안주인가족이 흑사병으로 모두 죽자 후안은 전 재산과 더불어 마드리드에 있는 화가 돈 디에고 로드리게스 이 벨라스케스에게 상속이 되었다.
새로운 주인 벨라스케스는 스페인 궁정화가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후안은 벨라스케스 옆에서 물감을 짜주고 붓을 씻어주는 등 주인이 그림을 그릴 때 그 곁에서 시중을 들어 주는 일을 맡게 되었다. 주인의 곁에서 주인이 그림 그리는 것을 지켜보던 후안은 그림이 그리고 싶었다.
후안은 벨라스케스에게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말을 하지만 벨라스케스는
“난 네게 그림을 가르칠 수 없어. 섭섭하지만” 이란 말을 듣게 된다. 후안은 주인이 왜, 어째서 자신에게 그림을 가르칠 수 없다고 말을 했을까 생각 한 끝에 주인이 자신에게 그림을 가르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고 슬퍼한다. 그 슬픔은 주인에 대한 애정까지도 좀먹으려 하고 있다.
문하생이 없었던 벨라스케스를 보면서 후안은 주인이 문하생을 가르치는 것을 싫어하는 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지 벨라스케스가 문하생을 받고 그 문하생들과 더불어 일을 하게 된 것을 알고 놀란다. 마님으로부터 궁정에 사람들에게 신세를 지고 그들이 부탁하는 바를 거절 할 수도 없었으며, 많고, 바쁜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도 사람들이 필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주인에게 그림을 그리기고 싶다는 의사표현을 했다가 거절을 당한바는 있지만 후안은 다시금 마님에게
“저도 그림을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며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다.
그러나 마님은
“그럴 수 있다면 나도 기쁘겠다. 하지만 스페인에는 노예가 예술에 종사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이 있단다.”-84쪽-
후안은 자신이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이유를 이제 분명하게 알았다. 후안은 인간으로 존중 받고 있으며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가치를 인정받고 있기에 주인네 부부와 사는 것이 행복했다. 주인이 자신의 뜻으로 후안에게 그림 가르치는 것을 거부 한 것이 아니라 법 때문에 할 수 없이 취한 행동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85쪽-
주인이 후안에게 보여준 신뢰와 애정은 후안이 자신이 그분들의 노예라는 사실을 잊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노예라는 사회적 신분은 후안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게 했다. 후안은 노예라는 자신의 처지를 원망하지는 않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는 슬픔마저도 없을 수는 없었다.
마님은 후안이 색채를 사알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이 때문에 수놓을 때 후안이 색실 고르는 것을 도와 달라고 했으며 벨라스케스가 화실에서 색체를 연구할 때 쓰는 비단이 들어 잇는 궤짝을 후안 혼자 관리 하게 해 주었다. 후안은 주인의 옆에서 주인이 하는 작업을 도우면서 주인이 하는 일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한편으로
“ 예술은 진실해야 한단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 중에서 가장 엄격히 진실에 기초하는 것이 바로 예술이다. 만약 예술이 진실하지 않으면 그건 값어치 없는 것” - 92 쪽- 같은 벨라스케스의 생각도 배웠다.
네덜란드 화가 루벤스가 방문을 했을 때 벨라스케스는 배울 기회를 얻는 것을 기뻐했고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을 배우려 노력을 했다. 예술에 더 잘 봉사하려면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자신이 그림 그림에 대한 자만심에 빠져 있던 한 문하생에게 벨라스케스는
“예술은 진실이야. 장식이 없는 진실, 감상이 끼지 않는 진실이라고. 그것이 바로 아름다움이야.” - 113쪽 -
“예술은 진실이다. 예술을 섬기고자 나는 절대로 속임수를 쓰지 않으리라.”-114쪽-
가르침을 주는 것도 후안은 보았다.
벨라스케스와 후안이 이탈리아를 방문했을 때 후안은 위대한 화가들의 그림을 베끼는 것에 대하여 물어 보았다.
“난 그 화가들에게서 배우고 싶단다. 베기는 것이 어떻게 공부가 되느냐고? 그건 마치 과거에 살았던 화가들에게 교습을 받는 거나 마찬가지야. 화가들의 색체를 골라 사용 한법, 그림자를 만든 방법, 헝겊 휘장을 그린 방법, 그 모든 것을 베기면서 배우는 거라고. 그건 마치 과거의 거장들이 내 어깨너머에 서서 나를 인도하고 가르치는 것과 같은 경험이지.” -141 쪽-
후안은 이 말을 들으면서 깨달았다. 화가의 그림을 베낌으로서 그림을 배울 수 있다면 나도 그럴 수 있을 것이다. 후안은 그림을 몰래 그리기 시작했다. 누군가 금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몰래하는 것은 짜릿한 기쁨이다. 그러나 그 짜릿함의 내면에는 수많은 갈등들이 도사리고 있다, 후안은 위대한 스승의 그림을 보아왔고 예술 형태를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었다. 주인과 다른 식으로 그림 그리는 무리요의 그림을 보고 주의 깊게 베꼈다. 또한 독자적으로 물감을 실험 했고, 빛과 그늘, 원근법에 대하여 연구했다. 후안이 그림을 그리는 것은 기쁨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했다.
어느 날 후안은 자신이 그린 성모 마리아상을 보고 놀랐다. 자신과 같은 흑인 마돈나를 그려 놓은 것이다. 자신의 그림을 보면서 후안은 혹시 자신이 스스로를 주인과 같은 자리에 갖다 세워 놓으려 한 것이 아닐까? 주인이 그의 종족인 스페인 사람들을 위엄 있고 기품 있게 그릴 수 있듯이 나는 나의 종족의 아름다움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을 증명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에 후안은 고통스러웠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법에 대한 죄지 하느님에 대한 죄는 아니라며 하느님을 찾아 위로 받으라는 바톨로메의 충고를 받고 후안은 신앙적으로 안정을 찾는다.
후안은 계속 그림을 그렸고 자기가 그린 그림을 스승의 그림 사이에 끼워두어 왕이 볼 수 있도록 했다. 왕은 그 그림을 알아보았고 왕이 후안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는 사이 주인 벨라스케스는 후안을 노예에서 해방시켜주는 문서를 써 줌으로서 후안이 그림을 그리는 것이 법에 위반되지 않게 해 준다.
후안은 이제 더 이상 노예가 아니다. ‘노예는 예술에 종사 할 수 없다’는 법은 더 이상 후안이 그림 그리는 것을 구속하지 않는다. 후안은 벨라스케스의 조수로 계속 벨라스케스의 곁에 머문다. 그리고 벨라스케스가 죽을 까지 그의 곁에서 그의 친구로 그의 조수로, 그의 동료로 머물다 자기의 길로 가는 것으로 이 책을 마무리를 하고 있다.
책을 보면서 후안과 벨라스케스가 보여주는 신뢰에 대한 생각이 많이 들어왔다. 벨라스케스는 노예인 후안을 노예로 대하지 않았다. 또 후안은 또 주인의 친절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다. 인간을 인간으로 볼 줄 알고대할 줄 아는 두 사람, 제대로 된 것을 줄 줄 알고 주는 것을 제대로 받을 줄 아는 두 사람 모두 멋진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후안의 입을 통하여 벨라스케스를 보게 되었다. 사람의 관계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으며 둘의 관계가 많이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