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홍수 - 에릭 드루커의 다른만화 시리즈 4
에릭 드루커 지음, 김한청 옮김 / 다른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글이 없는 만화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글이 없다는 게 대수인가..... 그림책 중에서도 글이 없는 것이 종종 있는데 읽기에 별 무리 없이 읽지 않았는가 싶어 그다지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책을 처음 본 순간 ‘어, 이게 뭐지?’ 싶으면서도 어렵다는 느낌이 확 왔다. 명확하게 의미가 와 닿지 않는 글을 어떻게 해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일단은 책을 재빨리 덮어두었다. 그리고 짬짬이 책을 펼쳐보면서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가 메시지를 읽어내려는 노력을 해야 했다.

대 홍수에는 ‘집’, 'L', '대홍수‘ 세편의 단편만화가 실려 있다.
첫 작품인 ‘집’에서 주인공이 밖으로 나가는 첫 장면을 보면 주변을 살피고 있다. 발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밖으로 나가고 있다. 그러나 딱히 갈 곳은 없다. 술을 마시고 텔레비전을 보는 일 말고는 딱히 할 일이 없다. 어렵게 얻은 직장으로 가는 길은 멀고멀다. 마치 그의 고단한 삶을 암시하듯 말이다. 겨우 도착한 곳에서 그를 맞이하는 것은 어이없게도 공장폐쇄라는 딱지다. 일을 찾아 갈 때는 잰 거름으로 뛰어가는 듯한 풍이더니 돌아오는 길은 고개가 푹 꺾여 휘청대는 모습이다. 거리의 풍경 속에서 느껴지는 것은 세상은 나와 전혀 상관없이 여전히 잘 돌아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세상과 유리된 나는 몸도 지쳐있고 마음에도 비가 내린다. 미쳐 돌아가는 세상에 몸을 던져 보지만 돌아오는 것은 싸늘한 미소며 짙은 외로움이다. 지친 몸을 뉠 곳을 찾아 집에 돌아오니 집에는 주먹만 한 자물쇠와 집을 비우라는 쪽지가 붙어있다. 작은 프레임 속에 많은 사람들도 한 순간 거리의 걸인이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두 번째 작품인 ‘L’은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주인공이 지하철을 타고 있는 많은 사람들, 그러나 표정은 하나로 통일되어있다. 마치 한 판에 넣고 찍어 놓은 듯한 표정, 바로 무표정이다. 터널을 통과하면서 주변의 사람은 사라지고 주인공은 환상의 공간으로 접어든다. 그곳은 원시성이 살아있는 공간이며 우리의 욕망이다. 그러나 현실은 무서운 개가 으르렁대고 몽둥이를 든 경찰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세 번째 작품은 표제작인 ‘대홍수’다. 지하계단을 올라가니 비가 가득하다. 가득한 비 사이로 보이는 거리의 간판들은 향락이 가득하다. 비를 맞고 가는 남자에게 누군가 우산을 건넨다. 그 많던 사람들, 불야성을 이루던 향락적인 것은 어느새 자취를 감추었다. 목발을 짚은 걸인에게 동전을 건네고 쓰레기통을 뒤지는 사람을 뒤로하고 집으로 들어온다. 천정에서는 비가 새고 그릇으로 빗물을 받아내며 그는 푸른 색 잉크를 잔뜩 묻혀 에스키모 사냥꾼이 떠다니는 얼음덩어리 위에서 표류하다 구조되었을 때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그린다. 그 그림은 이전의 흑백톤이 아니라 푸른색이다. 주인공의 방에는 여전히 비가 새고 그 비는 그의 정강이까지 찬다. 그는 사내가 우산을 쓰고 외출을 하는 그림을 그린다. 거센 비바람에 우산이 뒤집히고 사내는 하늘로 떠오른다. 그리고 그가 도착하는 곳은 거대한 놀이동산에 도착한다. 가면을 페스티벌을 따라 갔던 쇼 장에서 온몸 가득 문신을 새긴 남자를 보게 된다. 그 남자의 몸에 새겨진 문신의 그림은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이래 그 땅에 자행되었던 약탈의 역사, 범죄의 역사를 담고 있다. 쇼 장 밖 현실 공간에서는 여전히 공포는 조성 되고 있음을 작가의 펜은 그리고 있다. 세 작품을 통하여 일관되게 주장하는 점은 인간의 욕망이 머무는 곳에 나타나는 우울한 현상이다. 만화라고 우습게보았다가 허를 찔린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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