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화 하는 일본 - 동아시아 ‘문명의 충돌’ 1천년사
요나하 준 지음, 최종길 옮김 / 페이퍼로드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제목부터 참 도발적이다. 중국화? 중국화가 뭐길래, 일본이 중국화라는 거지? 거기다가 책의 부제에는 '동아시아 문명의 충돌 1천년사'라는 정말 거창한 테마가 달려 있었다. 뭐지?? 문명사?? 사회사??? 어떤 주제를 다루는거지??

 

하루는 온라인 이웃 중 한분이 이 책을 읽어봤냐고 물어보셨고, 읽어보지 않았다...고 했더니 내 생각이 궁금하니 한번 읽어보라~는 것이었다. 검색했더니 이미 일본에서는 출간한지 몇년 됐는데, 그간 국내외에서 이 책 때문에 난리가 난 모양이다(인터넷에 검색해보면 블로그에 서평에 난리도 아니다). 도발적이면서 참신한 제목만큼이나 그 내용이나 저자의 史觀 또한 그러했으리라.

 

 

1979년생인 저자 '요나하 준'의 나이는 올해 36살. 이 책은 29살(2007년)에 동경대 총합문화연구과 지역문화연구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현재 아이치현립대학 일본문화학부 역사문화학과 준교수로 재직하면서 그 강의노트를 책으로 집필한 것이다. 국내에 번역 소개된 것은 2013년이지만, 2011년에 일본에서 출간되었기 때문에 이 책을 쓸 당시, 혹은 이 책의 저간을 이루는 강의를 한창 했을 당시의 저자는 30대 초반이었을 것이다. 그토록 젊은 학자가 바라보는 동아시아사가 대체 어떻길래 이렇게들 난리란 말인가. 기대 반, 흥분 반의 심정으로 책장을 한장한장 넘겼다.

 

저자는 친절하게도 서론에서 자기가 말하는 '중국화'라는 것이 어떤 개념인지 적지 않은 지면을 할애해 설명해주고 있었다. 저자가 창안한 개념인 '중국화'라는 것은 간단히 말해 중국처럼 하자, 중국처럼 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그런데 그 중국이 무엇인고 하니 바로 세계에서 가장 먼저 '근세'(중세와 근대 사이의 개념)에 돌입한 '중국 宋 왕조'를 대상으로 한 개념이었다(지금의 중국이 아니라). 이전 시기(唐 왕조)와 확연히 다른 송 왕조의 국가 · 사회적 시스템을 저자는 중국화라고 이해하고 있는데, 당과 꾸준히 교류하던 일본이 송대에 이르러 송 왕조의 근세문화를 받아들이지 않고 중국과는 전혀 다른, 독자적인 근세를 맞이하니 이것이 바로 에도시대[江戶時代]라고 적고 있다. 저자는 그런 일본이 기나긴 에도시대를 지나 최근에 다시 중국 근세로의 이행(자의든, 타의든), 즉 중국화하는 상태로 이해하면서 그럼 과연 이 중국화라는 것이 어떤 것이며, 일본사에 있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자세하게 서술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면서 저자는 일반적으로 익숙한 몇가지 화두를 던져준다.

 

어떻게 유럽과 같은 '후진지역'이 송나라 중국이라는 '선진국'을 기적적으로 역전시켜 산업혁명을 일으킬 수 있었던가?

왜 '근대화'도 '서양화'도 조금도 진척되지 않았던 저 중국이 이상하게 최근에 다시 대국의 자리로 되돌아온 것인가? 

 

요렇게 2가지인데, 평소에 많은 사람들이 생각해봤던 문제가 아닐까 싶다.

 

첫번째 문제의 경우,『1421-중국, 세계를 발견하다』『1434-중국의 정화 대함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불을 지피다』등에서 이미 중국과 유럽의 문화수준 차이를 언급한 적이 있으며,『리오리엔트』,『쾌락의 혼돈』등을 통해 중국의 경제적 수준이 당시 세계사적으로 어떤 위치에 있는지 밝혀진 바 있다. 더불어『총, 균, 쇠』에서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유럽 문명이 동양을 압도할 수 있었던 원인과 과정을 생동감 넘치는 필체로 해석하기도 했다. 하지만 2번째 주제에 대해서는 그렇게 명쾌한 답변을 줄 수 있는 책이나 연구성과가 많지 않았다. 물론 첫번째 문제와 연결시켜 과거 중국이 선진국이었고, 선진국이었던 기억과 경험을 갖추고 있으며, 그런 것이 최근의 경제 부흥 및 여러 사정과 맞물려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뭔가 명쾌한 답변을 제시하는 것이 없었는데, 이는 반대로 생각해보면, 과연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근대화'의 정의가 무엇인가? 라는 것과 연결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의 경우에도, 조선 후기~근대 이전의 '자본주의 맹아론'과 '식민지 근대화론'과 같은 경제사적 논쟁이 진행되고 있는 것도 여기에 연결시켜 이해할 수 있을텐데, 과연 저자가 말하는 중국화는 근대화랑 무엇이 다르며, 또 오늘날 중국화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를 곱씹어보게 된다. 그렇기에 저자가 서론 말미에 던진 한마디는 독자에게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왜 역사상 거의 항상 선진국이었던 중국에서 인권의식이나 의회정치만은 아직까지 자라나지 않는 것일까?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세계 최초로 '근세', 즉 '근대 전반기'를 시작한 송 왕조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저자는 '1장 끝나버린 역사-송나라와 고대일본'에서 당대 이후 송대에 중국사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설명한다. 그러면서 송대 이전과 이후를 구분하는 시대적 특징을 한줄로 설명한다. '경제와 사회를 철저하게 자유화하는 대신에 정치 질서는 일극 지배에 의해 유지하는 틀을 만든 것'이라고 말이다. 이는 귀족제도를 전폐하고 황제 전제 정치를 극도로 강화한 송대의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이러한 결과로 인해 송은 경제적으로 큰 부흥을 이뤘지만 중국사상 최약체 왕조를 유지해야만 했다는 비난을 받았지만, 저자는 이를 다른 시각으로 살펴보고 있는 듯 했다. 그러면서 동시대 일본에서 중요하게 취급받는 겐페이[源平]전쟁을 거론한다. 겐페이전쟁은 일반적으로 중세 헤이안 시대에 벌어진 내전으로, 전후 당시 조정을 장악하고 있던 다이라씨[平氏]가 관동지역의 강력한 지방군벌인 미나모토씨[源氏]와 기타 귀족+사무라이 연합 세력에게 패한 이후 가마쿠라 막부가 수립된 분기점이 된 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저자는 이 사건 이후 일본이 중국화와 정반대의 일본문명을 확립했기 때문에, 이후 일본은 기나긴 에도시대에 빠지게 되었다고 강변하고 있다. 그러면서 앞서 언급한 중국화에 살을 붙여 다시 한번 한줄로 설명한다. '가능한 한 고정된 집단을 만들지 말고 자본과 사람의 유동성을 최대한으로 높이는 한편, 보편주의적인 이념에 기초한 정치의 도덕화와 행정권력의 일원화를 통하여 시스템의 폭주를 제어하려고 하는 사회'라고 말이다.

 

이게 다소 추상적일 수도 있기에, 저자는 친절하게 중국화의 5가지 특징을 나열하고 있다. 그러면서 근세 중국의 5가지 특징을 뒤집으면 이것이 바로 '일본문화론'으로 잘 알려진 일본의 특징이라고 규정짓고 있다(일단, 저자의 이 주장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은 나중에 언급하기로 하고 계속 이 책에 대해 살펴보자).

 

1. 권위와 권력의 일체 - 황제가 명목상이 아닌 실권자로 등극

2. 정치와 도덕의 일체 - 황제가 정치적 · 도덕적 정당성을 획득

3. 지위의 일관성의 상승 - 과거는 '덕의 높이'와 일체화한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

4. 시장을 기초로 한 질서의 유동화 - 화폐 보급으로 인해 농촌공동체 해체+유목민적 세계 출현

5. 인간관계의 네트워크화 - 지역 중심의 공동체보다 혈족으로 대표되는 개인적 관계가 우선

 

그럼 왜 당대 이후 송이 들어서면서 일본은 중국화를 거부했을까? 중국은 송 이후 등장한 元이라고 하는 사상 초유의 거대 제국 덕분에 중국화가 극으로 발전하기 시작한다(저자는 원 제국과 비교하면서 오다 노부나가가 樂市樂座로 상업을 융성하게 했다고 말하는 일본인들의 역사관의 크기가 지극히 작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원은 일본을 2차례 쳐들어왔다가 패퇴한다. 이미 송대 중국 동전의 대거 유입으로 인한 중국화 압박이 있었고, 그 와중에 다이라씨를 몰아내고 미나모토씨가 막부를 설립한 바 있는 일본이 원의 침입까지 몰아냈으니, 중국화가 제대로 이뤄질리 만무하다. 게다가 원을 몰아내고 등장한 明은 저자가 말하길, 중국사에 있어 예외적으로 반중국화가 이뤄진 중국 왕조였다고 한다(중국사상 명이 조금 독특한 성격의 왕조인 점은 분명한데, 여기에서는 그 점에 대해 자세히 논하지 않겠다). 그런 주변 상황까지 맞물려 일본은 중국화와 반중국화가 대립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제대로 중국화가 이뤄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중국에서는 淸이 등장하는데, 저자는 청 왕조야말로 '중국화' 사회의 궁극적인 형태라고 말한다. 저자는 당시 사회를 마피아들간의 싸움으로 비교하고 있는데, 환태평양 무역권을 독점하려 했던 '일본 마피아'가 도요토미 히데요시라면, 조일 전쟁으로 동아시아 전체가 피폐해지자 이를 틈타 명을 무너뜨리고 손쉽게 천하를 장악한 것이 애신각라 일가의 '만주 마피아'였다고 보고 있다. 이보다 먼저 동남아시아의 은 유통로에 입각한 '대만 마피아'와 '이슬람 마피아', 새로운 참가자인 '남만(유럽) 마피아'까지 동남아시아에서는 여러 마피아들이 대규모 은의 대행진을 따라 활약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것들이 청 왕조의 등장 이후 사상 유례없는 호경기를 맞았다고 해석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본의 도쿠가와 막부는 중국과 정반대의 길을 걸어가게 된다. 영주의 성곽이라는 봉건적 환경이 유지되고(우리가 서양 중세사에서 흔히 배우는 장원제도를 떠올리면 쉬울 것이다), 장사나 혈족 네트워크로 이뤄진 중국과 달리 지역으로 인적 네트워크를 묶어두었다. 얼핏 보면 서적문화가 꽃피고 인쇄출판업이 성행하는 등 과거제가 보편화된 중국과 비슷한 사회적 환경을 가졌다고도 할 수 있지만, 여전히 일본은 철저한 신분제 사회로 돌아섰다. 이를 두고 저자는 도쿠가와 초기 100년간(1600~1700)에 걸쳐 전국에 보급된 이네(벼)이에(집) 때문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때 비로소 '자기 지역에서 자기 소유의 논만 잘 관리해도 먹고 살 수 있는 기본적인 환경이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이갑제를 통해 주민들을 땅에 속박시킨 명나라의 사례와 비교할만한 일이며, 최근 중국인 1명이 평생 발급받는 증명서의 개수가 평균 70개라는 뉴스(클릭)와도 비교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환경 속에서 중세의 '職의 체계'가 근세로 오면서 '役의 체계'로 계승하였으니, 일본에서는 한국과 달리 수백년간 가업을 잇는 장인가문이 많은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다. 중세~근세 일본의 사회 분위기와 경제력을 종종 조선과 비교하고, 그 뛰어난 성장세에 주목하는 연구는 왕왕 봤지만, 반대로 이런 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처음인지라 읽으면서 멍~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면서 저자는 분명히 언급한다. 중일을 어설프게 섞어서 부론효과가 나게끔 해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중국의 근세와 일본의 근세는 각각 다르게 발전하여 각각 완결체를 이뤘기 때문에, 이들의 장점만 섞어서 하나의 혼합된 체계를 이루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부론효과라는 것은 '메론과 같은 커다란 열매가 포토처럼 많이 열리도록 조합하여 부론이라는 신품종을 만들었는데, 오히려 포도와 같은 작은 열매가 메론처럼 조금밖에 열리지 않는 결과'로 끝나버릴 수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도쿠가와 초기에 어떻게든 독특한 일본만의 근세가 완성되어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저자는 이 시기 서서히 부론이 숙성되기 시작했다고 보고 있었다.

 

대대로 장남에게만 집안의 모든 것을 계승하고, 차님 이하는 내팽개치는 나라. 정해진 집안과 영토, 직업 내에서 대대로 세습이 이뤄지기 때문에 인구 증가는 바람직하지 못한 사회. 그러다보니 가직을 훌륭히 수행한 노인(장남 출신)에게는 엄청난 혜택을 주지만, 젊은 주제에 올바르게 사회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엄격하게 규제하고 어려운 삶을 부여하는 나라. 사회주의적인 성향이 강하게 배여든 세습직이 만연한 나라. 지위의 일관성이 극도로 낮은 신분제를 유지하는 나라. 이 시기의 일본을 저자는 북한과 비교하고 있어 다소 충격적이었다. 오히려 저자가 '에도시대 혹은 그 이후의 일본이 공산화나 개인숭배로 진행되지 않고 나름대로 의회제 자유민주주의와 다르지 않는 근대화의 길로 들어선 쪽이 어쩌면 기적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니 말이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메이지유신이 일어나게 된다. 중화의 황제처럼 천황이 실권을 갖고, 고등문관임용시험(과거제도)이 시작되면서 경쟁사회가 도래한다. 다이묘 가마다 끌어안고 있는 끌모없는 지방공무원, 즉 사무라이와 같은 세습귀족의 대량감원과 함께 과거제를 통해 합격한 관료를 통한 군현제도를 실시한다. 국가에 의한 일종의 보호정책이었던 에도시대의 신분제는 폐지되고, 장대한 규제완화정책이 실시된다. 메이지유신을 통해서 일본은 1천년 가까이 지연된 중국화를 실현하려는 중이었다.

 

여기서 저자는 한가지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어째서 중국 및 한국과 달리 일본은 서양화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라는 문제. 저자는 말한다. 중국은 중국 그 자체이므로 중국화가 필요없으며, 한국 역시 이미 옛날에 중국화가 끝났기 때문에 19세기가 되어도 중국화와 비슷한 서양화를 달성할만한 매력을 느끼지 못 했다고 말이다. 일본인의 경우, 기다리고 기다리던 '중국화'를 감행할 즈음에 발생한 세계사적인 거대한 흐름, 즉 '서양화'도 함께 완수할 수 있었지만 중국인이나 한국인은 일찍히 중국화를 달성했기에 서양화의 시점을 놓쳐버렸다는 것이다. 상당히 참신하면서도 독특한 시각이었다. 중국화와 서양화를 그렇게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암튼, 메이지유신으로 인해 중국화를 이루려는 찰나...일본에서는 다시 에도시대로의 회귀 요망, 즉 모랄 이코노미를 강조하는 경향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1천년 가까이 유지된 체계가 급변하는데 당연한 결과였다. 당시 사회는 중국화와 再에도시대화의 갈림길에 서 있었다. 전자가 '자유화를 더 철저히 밀어붙이고 지금은 패자 집단이라도 계속 분투한다면 언젠가는 자력으로 승리자 집단에 들어갈 수 있도록 보다 경쟁적이고 유동적인 사회'라면, 후자는 '진전되고 있는 한편의 자유를 억지로 되돌려서라도 승자독식 상태가 되어 버린, 일부의 인간이 자기 마음대로 하는 상황을 통제하고 다수의 약자도 그 나름대로 존중받고 있다는 실감을 가질 수 있는 사회'인 셈이다. 결국 쇼와 일본은 재에도시대화로 돌아서게 된다. 메이지유신 시절 일본의 자유경쟁과 무한 자기책임은 에도시대를 겪은 일본인에게는 분명 힘든 도전이었을 것이다. 저자는 분명히 얘기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과는 반대로 '메이지유신은 결국 실패하고 쇼와유신은 성공'했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창씨개명'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시작한다. 일제는 동아시아 전체에 '에도시대를 강매'하려고 했는데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창씨개명이라고 말이다. 창씨개명은 흔히 아는 것처럼 조선인이나 대만인을 일본인으로 흡수하여 동화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였다고 한다. 오히려 진정한 일본인에게는 많지 않은 성을 붙이게 해 개명 후에도 조선인 혹은 대만인임을 알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개명시킨 이유는 바로 중국이나 조선 전래의 친족체계를 새로운 성씨를 부여함으로써 깨뜨리고, 일본 전래의 이에(집안)를 단위로 하는 체계로 바꾸려고 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이후 일본은 만주와 몽골 등지를 중심으로 하는 블록경제 확립에 집착하고, 에도시대의 유산을 수출함으로써 이미 중국화가 이뤄진 지역을 제대로 경영하지 못 하게 되는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이는 마치 고려가 동북9성을 점령하고 제대로 경영하지 못한채 여진족에게 되돌려준 사례를 떠올리게 하며, 단순한 영토 확장이 갖는 폐해, 그리고 거대한 영토를 경영한 역대 帝國내 정책입안자들의 고민과 노력을 곱씹어보게 한다).

 

여하튼, 계속 살펴보면 일제는 만주(특이하게 동북아시아에서 일본과 비슷한 경제와 사회구조를 지닌 지역) 지배 경험을 토대로 자신들의 에도시대 수출이 성공하고 있음을 느꼈고, '에도시대의 머리'를 갖고 중화문화권 점령에 나섰다. 수도(장기의 왕)를 함락하면 이긴다, 유력정치가(장기의 포나 차)를 제쳐두고 괴뢰정권을 만들면(왕만 압박하면) 민중은 따라올 것이다(게임에서 이길 것이다) 등 바둑처럼 접근해야 하는 상황(바둑돌 하나하나는 큰 의미가 없고, 바둑돌 전체의 배치가 중요하다)에서 장기처럼 접근해버린 것이다. 그 대가로 일본은 도쿄대공습과 원폭투하라는 형태로 돌려받았다. 일본은 이후 난징을 점령함으로써 마치 전쟁에 승리한것마냥 만세를 불렀지만, 정작 중국 사회를 제대로 장악하지 못 했기 때문에 결국 전쟁에서 패한 것이다. 저자는 일제가 '중화의 전통이 되어버린 세계보편적인 도덕의 체현자'로서 행동하면서 중국으로 들어온 만주족처럼 했어야 성공했지만, 그렇지 못 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는 최근의 미국의 이라크 전쟁 후 과정과 비교하면서 살펴보면 흥미롭다. 더불어 일본 애니메이션을 논하면서 전쟁을 통한 일본인 스스로의 자성이 현재 好戰 국가 미국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언급하는 것 또한 문화의 흐름이라는 측면에서 되새겨볼만한 부분이었다.

 

戰後 일본에는 '재에도시대화'한 촌락사회적인 생계체계와 '중국화'한 보편적인 정치이념과 에토스가 남게 되는데, 다시 한번 이 2가지 시스템이 하나로 버무려지기 시작한다. 다시 한번 부론효과가 일본 사회를 강하게 뒤흔들고, 1970년대를 맞이하여 전세계가 '중국화'(신자유주의라고 말하는)의 물결 속에 몸을 맡기게 된다. 영국 보수당의 마거릿 대처 수상은 시장주도의 경제운영에 착수했으며,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뒤를 잇는다. 더불어 중국의 덩샤오핑 또한 개혁 · 개방정책으로 중국을 강대국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미영중 3국에 의해서 동시에 시작된 신자유주의를 토대로 중국이 비로소 일본을 다시 앞서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은 아직도 부론효과의 휴유증 속에 있는데도 말이다. 심지어 미야자키 이치사다라는 일본 학자는 '송나라 중국보다도 300년 이전에 이슬람 발흥기의 서아시아가 세계 최초로 근세에 들어갔다'고까지 할만큼 이제 서구인의 자위사관은 단순한 '이야기'에 지나지 않음을 저자는 다시금 언급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일본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간략하게 언급하고 있다. 일본의 미래가 북한화가 될 것인지(에도화), 중국화 3단계가 될 것인지, 혹은 일본 사회 내에서 남성 위주의 정사원제가 유지(여성에 대한 문제)되는 것에 대한 고민, 일본 노인을 지탱하기 위한 과도한 복지정책을 위한 활발한 이민제도의 개혁, 정치와 시장의 자치주의 등등. 여러 문제들은 일본만의 문제일수도 있겠지만 분명히 살펴보면 한국인이 고민할법한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저자가 본문 말미에 남긴 '이 책이 사실 지금부터의 국민국가 재건에 있어 역사학이 얼마나 필요한 학문인가를 조금은 증명할 수 있는 일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라는 대목은 필자에게도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역사학이 현재 우리의 삶에 어떤 현실적인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극명하게 알려주는 책이 아닐 수 없기에). 그럼 이제 이 책을 읽고 필자가 느낀 점, 주로 저자의 생각에 쉽게 동조하지 않는 부분을 중점으로 살펴보고 글을 마무리하도록 하겠다.

 

그럼 하나씩 살펴보자.

 

첫째, 중국화의 5가지 특징이라고 말하는 것의 반대가 일본문화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이미 말미에 한국은 일찍부터 중국화된(그리고 정체된)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일본과는 달리 일찍부터 중국화된 사회였다고 한다. 하지만 조선에서 중국화의 특징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권위와 권력이 일체된 것처럼 보이는 국왕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천황과 쇼군, 다이묘처럼 극명하게 나뉘지는 않았지만, 분명 명목상의 국왕과 이를 위시하는 외척세력, 혹은 집권세력들이 분명히 존재했으며, 조선 후기로 갈수록 그런 현상은 심각하게 드러났다. 더불어 정치와 도덕의 일체화, 지위의 일관성의 저하, 농촌 모델 질서의 정태화, 인간 관계의 공동체화 등 조선 전기에는 눈에 띄지 않았던 것들이 후기로 갈수록 점점 심하게 드러났다. 주자학은 더 이상 현실에 녹아들지 못 했으며, 쓸떼없이 현실과 괴리된 도덕성만 무의미하게 외쳐댔을 뿐이며, 과거를 본다 한들 관직에 나아가지 못하는 양반이 늘어나고 당파의 힘에 따라 관직이 채워졌다(마치 요즘 공천받아 나랏일을 하듯이). 화폐는 잘 보급되지 않아 현물이 거래되고 도로와 수레는 널리 보급되지 않아 국가산업에서 차지하는 상업의 비중은 극히 낮았다. 지역단위로 묶인 농촌공동체에서 농사를 통해 얻은 수확물이 국가의 주요 재산이었으며, 고려때와 같은 글로벌리즘을 조선에서 찾을 수는 없었다. 이쯤 되면 동아시아에서 중국과 밀접하게 교류했던 국가들이라 하더라도 중국화가 다양한 형태로 이뤄졌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싶다. 굳이 일본만 중국화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라고 단정지을 필요는 있을까 싶다.

 

둘째, 중국화와 서양화의 구체적인 기준과 상호간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한 분명한 명시가 없다. 저자는 신분의 자유로움과 시장경제의 발달 등을 기준으로 꼽으면서 한-중은 이미 오래전에 중국화를 이뤘지만 일본은 그러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화 및 서양화를 적절한 시기에 동시에 이룰 수 있었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 과연 그러할까? 신분제가 철폐되고 시장 주도의 자유경제가 활발히 이뤄졌다는 송대 이후 중국 사회(명을 제외한다고 하지만 명도 존속기간 내내 제외되어야 할까? 하는 부분에서 의문이다)와 중국화를 일찍이 경험한 한국 사회(고려와 조선이 이에 해당하겠지만, 양자는 분명 사회-경제적으로 큰 차이점이 있었다. 이를 그냥 하나로 묶을 수 있을까?)에서 과연 저자의 말처럼 이뤄졌을지 개인적으로 의문이다. 귀족과 평민의 구분은 없어졌을지언정 과거제로 인한 또 하나의 신분제(사대부와 평민)가 등장했으며, 농사는 동아시아 국가들에게 있어 시기를 불문하고 항상 가장 중요한 민본정책 중 으뜸으로 꼽혔다. 물론 국가 전체적으로 보면 상업의 비중이 차이나는 시기가 있지만, 요즘과 같은 글로벌 경제와 비교할 수는 없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부분에 대해 저자가 너무 거시적인 안목을 적용한게 아닌가 싶다.

 

셋째, 현재 일본 사회를 '중국화'와 '에도시대화'라는 일관되면서도 거대한 역사 담론으로 살펴보는 것은 분명히 의미있고 중요한 시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너무 거시적인 안목으로만 살펴보다 보니 미시적인 부분을 놓치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신자유주의 속에서 '가난한 것은 무능력해서'라는 식의 시각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시장경제체제를 너무나도 극단으로 해석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국가라고 하는 조직과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단순히 신분제 철폐와 시장경제체제 등으로만 해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개인의 부귀와 성공도 개개인의 입신양명(과거제 등을 통한)으로만 이뤄지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고(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요즘은 거의 쓰이지 않는다), 중국화=무한경쟁체제, 에도시대화=정체되고 좁은 틀의 복지사회 등으로 지나치게 도식화한 이분법적 시각도 다소 불편한 것이 사실이다. 중국화가 이뤄진 지역과 시기마다도 차이가 있을 것이며, 에도시대화가 이뤄진 일본 내에서도 지역과 시기마다 차이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너무 크게 묶어서 살펴보려다보니 중간중간 불편한 해석들이 보이는 것이 사실이었다.

 

넷째, 중국화를 이룩했던 송 왕조는 역대 중국사에서 최약체로 평가받는 왕조다. 백수십만의 상비군을 보유하면서도 매년 엄청난 금액의 세폐를 요-금과 서하에게 바쳐 평화를 돈으로 사야만 했다. 그런 송을 지금 저자와 같이 경제사적으로, 사회-문화사적으로 바라본다면 분명 중국화는 의미있는 담론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국가라는 입장에서 바라봤을때 과연 중국화라는 것의 조건과 의미는 무엇인지도 살펴봐야 할 것이다. 현재 미국 대통령이 과거 중화제국의 유일한 천자처럼 행동하고 있는 이때, 미국의 중국화가 이뤄져야 전세계가 평화로울 것인데 과연 그런 것이 가능할지(미국은 주자학이나 유교와 같은 보편적인 통치이념을 갖고 있지 않다. 오히려 최근의 분쟁사건을 보면 오직 실리만을 추구할 뿐이다), 중국이 G2로 부상하는 지금 과연 현재의 중국이 과거의 중화제국처럼 중국화의 길을 걸어 나갈지(티벳 및 소수민족에 대한 강압정책을 펴는 중국이 재에도화의 길을 걸으려는 일제의 전철을 밟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의문이다. 과연 오늘날 과거의 중국화를 제대로 실현할만한 의지나 조건이 맞는 국가는 존재할까? 좀더 다양하게 '중국화'에 대해 고민해볼 필요성을 새삼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현재 역사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에게나,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는 책임에는 분명하다. '중국화'를 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에 동조하고, 안 하고는 다음 문제인 것 같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현재 우리가 바라보는 세계사와 현재 사회를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라봤을때 어떤 것들이 눈에 보이는지를 깨닫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말 그대로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작금의 형태는 '중국화'의 여러 다른 버전일 수도 있고, 그 말은 각 버전마다 앞으로 다른 방향으로 발전되고, 다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한국은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 를 고민하는 것 또한 책을 읽은 독자라면 반드시 해봐야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재밌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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