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주몽
최항기 지음, 한동주 그림, 김용만 감수 / 함께읽는책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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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보려던 책을 이제야 보게 됐다. 처음에는 이런 책이 나온지도 몰랐다. 저번 휴가때 김용만 선생님에게서 선생님이 감수한 책이 있는데 한번 보라는 얘기를 듣고 이제야 보게 된 것이다. 일단, 책을 처음 접한 소감은 '재미있다'는 것이다.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역사, 누구나 쉽게 저할 수 있는 역사에 대해서 썼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저자는 책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 고주몽을 기억하며 잃어버린 강토를 언젠가 수복하자는 3류 극우주의를 부추기자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 우리의 역사를 딱딱하지 않게 얘기하고 토의해 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

솔직히 이 책을 보는 사람들 중 일부는 미리 알고 있겠지만 일부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역사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주인장이 이 책을 두고 부대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고주몽'이 뭔지 아냐고 말이다. 고구려의 시조라고 답변하는 사람들도 몇 있었지만 모르는 사람들도 엄청나게 많았다. 후임병 중 한명은 혹시 술 잔뜩 취한 '고주망태'를 말하는게 아니냐고 했다가 주인장의 분노섞인 역사 얘기를 꽤 오랫동안 들어야만 했었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 책이 고구려사를 알리는데 더 한층 일조하기를 바란다.

전체적으로 스토리는 기본 역사에 충실하게 전개된다. 부여에서 탈출한 왕자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하고 유리명태왕에게 왕위가 넘어가는 순간까지 흔히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나온 기존 사실을 토대로 전개된다. 물론 역사 소설이라는 점때문에 작가 특유의 사관도 엿볼 수 있었으며 참신한 해석도 주목할만 했다. 또한 삼국사기에 나오는 인물들의 특징을 최대한 살려 등장시킨 자체가 보기 좋았다. 삼국지연의에만 재미있는 영웅들의 이야기와 역사가 살아 숨쉬는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다 하겠다. 정사(正史)에 한줄 혹은 몇단어로 설명이 끝나는 인물들을 수십쪽에 걸쳐 살과 뼈를 붙여 하나의 인간상으로 만드는 작업은 언뜻 보면 쉬워보이지만 상당히 어려움을 요하는 작업이 아니라 할 수 없다. 그런데 저자는 이 책에서 극히 자료가 희박한 고구려 건국기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을 뼈와 살이 있는 인간으로 재생시킨 것이다.

삽화까지 그려넣은 이 책은 한편으로는 동화책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동화책은 아니다. 이 책은 단순히 보는 이들로 하여금 재미만을 주는 책이 아니다. 저자는 중국이 고구려를 자신의 역사로 편입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는 지금! 이 책을 썼다고 강조하기까지 한다. 이처럼 고구려 초기사를 조명한 소설 자체가 출판됬다?것이 큰 의의를 지니고 있고 그게 어렵지 않고 쉽게 접할 수 있게끔 구성되어 있어서 더욱 괜찮은 것 같다. 아무래도 일반인들이 보기에 역사라는 분야는 아직까지 딱딱하고 고리타분한 학문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역사 해석에 있어서 주인장과 생각이 다른 면도 있겠지만 이건 아니다~싶은 것도 있었다. 먼저 월군녀와 소서노라는 명칭 중에서 월군녀를 택한 부분이다. 그는 전자가 이름이고, 후자는 부족명으로 봤지만 삼국사기를 비롯한 각종 사서를 보면 오히려 소서노가 이름으로 더 잘 어울린다. 월군녀는 월군 지배자의 딸이나 여식 정도로 이해하는게 옳을 것이다. 또한 대부분의 기록들은 추모왕이 고구려 건국시 연합한 세력을 두고 소서노, 졸본부여의 둘째 딸, 월군녀 이렇게 3명으로 적고 있는데 보다 비중있는 기록들은 소서노를 지칭하고 있다는 것도 주목할만 하다. 고대 여인들의 이름이 사료를 통해서 확인되는 길은 극히 드문데 국조태왕의 어머니가 단순히 부여 출신 여자라고만 적혀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소서노는 고구려, 백제 2국 건설에 지대한 공을 세운 이 시대 최고의 여걸이었기 때문에 그 이름 3자 정도는 충분히 남을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딱히 이 정도를 제외하면 내용적인 면에서는 아쉬운 부분이 없다. 부분노와 부위염 등 인물 설정에 있어서 주인장의 생각과 맞지 않는 부분도 간혹 있지만 그것은 각자의 주관적인 입장 차이일 뿐이기에 넘어가고, 그 밖에 부분에 있어서는 대부분 실제 사료를 바탕으로 재구성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역력함을 확인할 수 있다. 그만큼 내용면에서는 충실하다고 자신있게 말하고 싶다. 아울러 저자는 책을 쓰면서 앞부분에 이렇게 밝혔다.

- 우리나라 최초의 벤처 창업가 고주몽,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을 막는 것은 물론이고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인간경영을 배운다 -

동명성왕의 벤처 창업가적 면모, 무에서 유를 창조해낸 능력에 대해 말하려고 했지만 그런 면의 묘사에 대해서는 부족한 것만은 사실이다. 딱딱한 역사 기록을 대화체로 바꾸고, 살을 붙여 내용을 만들어내는 데에 자료 부족의 한계가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자료가 허락하는 한, 그 시대 인물들의 입장이 되어 그 느낌을 최대한 살리는데는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소설적 재미와 역사적 사실 전달이라는 두가지 중에서 결국에는 소설적 재미 부각에 치중한 흔적이 강하다.

이처럼 책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민할 2가지 소재가 바로 이것이다. 소설적 재미를 추구하다보면 자연히 책의 무게는 가벼워질 수 밖에 없으며 역사적 사실 전달을 원하는 독자들에게는 자연스레 아쉬움을 남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대표적인 책이 유현종의 '연개소문'이 아닐까 한다. 역사적인 사실과는 거리가 먼, 오직 재미를 위해 만들어진 책이 바로 이것이다. 물론 보는 이들로 하여금 이 책은 고구려에 대해서 무한한 상상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갖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 소설의 내용을 곧이곧대로 믿었다가는 역사를 잘못 알게 되는 더 큰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양자는 병행할 수 없는 양날의 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주인장이 부대 안에 있으면서 글을 쓴게 하나 있다. 제목은 '유리명태왕과 초기 고구려에 대하여 - 유리명태왕과 그의 친족, 외척을 중심으로 본 지배계층 고찰' 이다. 마침 이 글을 쓸때 이 책을 봤기 때문에 더욱더 주인장이 쓴 글과 비교했던 면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주인장이 이 책을 읽고 부족했던 점, 추모왕의 인간적인 면과 경영적인 면에 대해서 적은 부분을 간략하게 여기에 옮겨볼까 한다.

- 개인적으로 주인장은 추모라는 인물에 대해서 대단하다고 느낀다. 그가 고구려의 시조라는 사실을 떠나서 객관적으로 봤을 때 그는 정말 대단하다.
우선, 그는 젊은 사람이라고 보기에는 대단히 치밀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부여에서 지낼 때 대소를 비롯한 다른 왕자들의 시기와 질투, 견제에도 불구하고 그는 꿋꿋히 자기 세력을 키우며 겉으로 표시내지 않았다. 물론, 그가 마굿간에서 일하며 지낼 때도 마찬가지다. 흡사 유비가 유황숙으로 불리며 皇都에서 지낼 때 조조의 눈길을 피하려고 야채나 기르며 悠悠自適, 지내던 것과 비슷하다. 그렇게 지내면서 유화부인의 지혜를 빌려 名馬를 골라내고 훗날을 기약하며 지내는 그의 인내심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대단하다고 느끼게끔 한다. 그가 부여를 탈출할 때 집안 기둥 밑에 부러진 칼조각을 묻어놓고 떠나는 대목에서 그의 치밀함은 극에 달한다. 반드시 훗날 大成하겠다는 결심과 후계자를 위한 배려까지. 목숨이 위급한 상황에서도 추모는 앞날까지 생각해둔 셈이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부여를 떠난 그의 곁에는 3명의 충신이 함께 하는데 이들은 아마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재능을 가지고 있던 추모를 믿고 모든 것을 맡겼을 것이다. 그렇게 추모는 자신을 따르는 일행을 데리고 남하하는데 중간에서 여러 소규모 세력을 흡수하기에 이른다. 그의 정책 수립에 있어 衆臣들의 힘도 컸겠지만, 그 본인의 능력이 그만큼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했다고 주인장은 생각한다. 이미 부여를 떠날 때 후계자에 대한 생각까지 해 뒀던 그가 재혼을 했다는 사실은 그 혼인이 政略的이었음을 암시한다. 하물며 자기보다 8살이 더 많은 자식이 하나 딸린 과부와 혼인했다는 사실은 더욱 그런 확신을 뒷받침한다 하겠다. 그렇게 고구려를 건국하고 왕좌에 오른 그는 젊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과감한 팽창정책을 실시한다.
건국하자마자 주변에서 말썽꺼리였던 말갈을 정복해 굴복시키고, 비류수 상류의 터줏대감이었던 비류국과 오랜 기간동안 대립한 끝에 결국은 비류국마저 고구려의 발 아래 무릎 꿇리는데 성공한다. 그러면서 비류국을 제후국으로 삼고, 졸본 세력을 견제하는데 이용한 것을 보면 과연 그가 23세의 청년이 맞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 정도다. 오녀산성이라는 거대 성곽 도시 건설을 주도한 때의 그의 나이가 25세임을 감안한다면 그의 놀라운 지도력에 혀를 내두르고 싶다.
마지막으로 어린 나이에 남이 오르지 못할 높은 지위에 오른 그가 각 정벌지에서 얻은 부인과 재물이 산더미처럼 쌓였을텐데, 부여에 두고 온 부인과 자식을 잊지 않고 죽기 직전까지 후계자를 위한 배려를 해가며 初心을 잃지 않는 것 자체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여기까지 살펴보면「高句麗本紀」에 적혀있듯이 유리와 예씨 부인이 고구려로 왔을 때 추모가 기뻐하며 그를 태자로 맞이하는 당시 상황이 눈에 선하다. 얼마나 기뻤을까? 주인장은 설사 그의 기록들이 과장되고 신격화되었다고 해도, 그가 살면서 보여준 치밀함과 인내심, 끈기, 놀라울 정도의 지도력, 문무를 겸비한 뛰어난 재능, 먼 앞날까지 예측하는 銳智力 등은 분명 그가 한시대의 英雄이었음을 다시 한번 刻印시켜준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

위의 내용이 바로 주인장이 추모왕에 대해 간략하게 묘사한 부분이다. 아마 최항기도 그의 책에서 이런 부분들을 강조하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이미 역사 소설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집필에 임하면서 이런 부분이 쉽게 묘사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약간의 사론을 더 붙여보도록 하자. 당시 동명성왕과 유리명태왕은 오늘날로 치면, 최고의 벤처 창업가로 CEO에 오른 거물이다. 치밀함과 끈기, 과감한 결단력, 뛰어난 정세 판단 능력과 수많은 참모진들을 적절히 활용할 줄 아는 리더쉽과 안목. 정말 지도자로서의 모든 것을 갖췄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그게 불과 20대 중반의 두 사람이 보인 능력이라는 점이다. 그런 두 사람이 고구려를 차례대로 다스리면서 이후 고구려는 1세기초, 동북아시아의 패자로 군림할 수 있었다. 벤처 창업가로서의 동명성왕을 부각시키고 싶었다면 그런 세밀한 부분에 대한 묘사가 더 있었어야 하는데 아쉽게도 그런 부분이 부족했던 것이다.

하지만 고구려 건국사를 배경으로 쓴 최초의 역사 소설이라는 점에서 봤을때 그런 아쉬운 부분들을 제쳐두고서라도 충분히 가치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덮으면서 이런 책 더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램뿐이었다. 주인장도 늘 말하지만 오늘날 국가 위기를 맞이해 우리는 선조들에게서 삶의 지혜를 얻어야만 한다. 그리고 그 선두에 고구려가 있음을 항시 명심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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