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고학 개설 - 제3판
김원룡 지음 / 일지사 / 2001년 3월
평점 :
절판


오늘은 고고학을 전공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었을 법한, 아니 읽어야만 하는『한국고고학개설』을 소개할까 한다. 사실 나름 고고학도라고 자칭하는 필자가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여지껏 단 한차례도 쓰지 않았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후배들에게는 늘 이 책을 꼭 읽어보라고 권유(?)하면서도, 정작 나 스스로는 이 책에 대한 어떠한 피드백도 하지 않았다니...암튼, 오늘은 더 이상 미루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이렇게 몇자 적으려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먼저 이 책에 대한 몇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하려고 한다. 대학교 1학년때 처음 이 책을 읽을 때 저자 이름을 무심코 '김원룡?' 이라고 읽은 적이 있다. 그랬더니 선배 한분이 '야! 김원용이지, 어떻게 룡이야?' 했던 기억이 난다. 생각해보니 맞다. 그런데도 아직껏 필자의 입에는 '김원룡 선생님'이라는게 더 익어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또 한 번은 수업시간에 <원삼국시대>라는 용어에 대해 배우면서 김원룡 선생님때 문에 이런 용어가 생겼구만~하면서 미워했던(?) 적이 있었다. 막 역사를 공부하는 그 시점에는 원삼국시대라는 용어가 정말 후대에까지 악영향을 끼쳤다! 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물론 책을 읽으면서 그런 애초의 생각은 바뀌었지만 말이다). 암튼, 이 책은 대학교 1학년때부터 정말 꾸준히, 심심할 때마다 펴보는 책인데, 그때마다 생각하고 느끼는 바가 다른 것 같다.  

그럼 책에 대해서 간단하게 몇자 적어보자(이 책에 대한 리뷰가 인터넷상에 거의 올라오지 않았더라. 아마도 이 책이 학술서적이라기보다는 개설서로서 학교에서 수업 교재로 많이 쓰이다보니 리뷰가 올라올 일이 별로 없을 뿐더러, 일반인들에게 크게 어필할 수 있는 재밌는 책이 아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책의 목차를 보면 크게 다음과 같다.

제1장. 서론
제2장. 구석기문화
제3장. 신석기문화
제4장. 청동기문화
제5장. 초기철기문화
제6장. 낙랑군의 문화
제7장. 원삼국문화
제8장. 삼국시대 묘제 및 부장품
제9장. 통일신라시대

부록 1. 근대한국고고학연표

어떤가? 약간 독특하다. 아마 책을 읽는 여러 독자들도 느꼈겠지만, 뭐가 독특하지?? 하고 넘어갈 법도 하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 짚어보겠다.

1. 우리가 흔히 쓰는 '시대'라는 용어 대신에 '문화'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시대'라고 하면 '역사적으로 어떤 표준에 의하여 구분한 일정한 기간'이라는 의미인데, 문화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을 보면 당시에는 확인된 고고자료를 갖고 시대라는 용어를 붙이기가 조심스러웠던 것은 아니었나 싶다. 고고학에서 문화라고 한다면 단순히 유물복합체뿐만 아니라 그 안에 포함된 사람들의 행위와 의식까지도 언급하는데(http://cafe.daum.net/yeohwicenter/5s83/18), 엄밀히 말하면 시대라는 용어와는 다소 다르게 사용되긴 한다. 그리고 현재의 고고자료는 충분히 문화에 대해서 언급해주고, 그것을 기준으로 시대를 구분할 수 있을 정도라고 생각한다. 이는 최근에 나온 고고학 개설서인『한국 고고학 강의』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 초기철기시대(편의상 필자는 요즘 쓰는 시대라는 명칭을 사용하겠다)와 원삼국시대는 요즘 동일한 시기를 지칭하는 용어로도 쓰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서는 시기적으로 초기철기시대가 더 먼저 온 것으로 이해하고 다른 장을 마련하고 있다. 이는 요즘으로 치면, 청동기시대 후기에서 점토대토기 시대로 이어지는 그 기간에 해당하는 문화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는 저자 스스로 원삼국시대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구분한 것이라 생각한다(저자의 원삼국시대에 대한 생각은 후술하도록 하겠다).

3. 삼국시대 문화라고 하지 않고, 딱 묘제와 부장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는 그 당시 삼국시대에 해당하는 생활유적이나 관방유적과 같은 다양한 성격의 유적이 제대로 발굴 조사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에야 원삼국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 경작유구와 제철유적과 같은 생산유적, 각종 주거지 및 건물지가 포함된 생활유적 등이 많이 조사되었지만 과거에는 확실히 그런 자료들이 별로 없었다. 이 책에서도 상당 부분의 내용이 '고신라 및 가야' 묘제에 집중되어 있는 것만 봐도 그런 상황을 여실히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4. 통일신라시대가 목차의 마지막이다.『한국 고고학 강의』(초판)에서 처음으로 통일신라시대와 동시대에 있던 발해를 목차에 집어넣고,『한국 고고학 강의』(개정 신판)에서 부록으로 '중근세 고고학의 현항과 전망'이라 하여 고려~조선까지를 연구범위로 고려해서 넣은 것과 비교하면 참 시간이 많이 흘렀구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고고자료가 자꾸자꾸 많이 나옴으로써 고고자료만으로도 시대 구분이 가능한 시기가 되었구나, 라는 것과 함께 앞으로 더 많은 고고자료가 확인됨으로써 기존의 역사연구에 더 많은 활기가 불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뭐 목차를 얘기하다 보니깐 벌써 많이 흘렀다. 솔직히 이 책은 개설서인데다가 시간이 많이 흐른 책이기 때문에 내용 자체에 대해 잘잘못을 짚어내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꾸준히 읽혀지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필자 또한 그 점에 착안해서 몇몇 부분에 대해서 적어보도록 하겠다.


첫째, 이 책은 앞으로는 다시 나오기 힘든 책이다. 왜냐하면 고고자료가 하루 하루 엄청나게 급증하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은 학자 1명이 한국 고고학을 전부 다 기술하기란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나온 내용만으로도 시대와 전공을 넘나든 고고학계의 대석학이 아니면 쓸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혹자는 이 책이 옛날에 나왔고, 내용이 많지 않은 데다가 여러 자료들을 단순히 나열한 것 뿐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아니다. 오히려 중간중간 저자가 개인적인 사견을 집어넣은 부분이 많이 있고, 그런 내용들이 책의 전반적인 내용을 이해하는데 적절한 기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에 필자는 이를 좋아한다. 왜냐하면 저자 1명이 책을 쓰게 되면 일관된 편집원칙 및 주관에 의해 논지를 전개하는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까 얘기했지만, 이런 책은 다시 나오기 힘들 듯 싶다. 또 김원룡 선생님같은 분이 나오지 않는 이상...

둘째, 서론을 보면 저자는 이렇게 쓰고 있다(1~3쪽).

고고학은 사람의 행동이 남긴 물질적 흔적(유적과 인공 및 자연 유물)을 통해서 그것을 남긴 사람들의 문화 · 역사를 밝히는 학문이다. 고고학이 역사학의 한 분과이면서 독립적 ·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자료의 특수성에 의한 것이며, 같은 역사과학이면서 기록만을 자료로 하는 좁은 의미의 역사학과는 그 연구 방법이 크게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미국에서는 소위 신고고학(New Archaeology)이라 하여 유적 · 유물을 단순히 역사적 · 문화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문화조직체로서 파악하고, 그것을 움직이고 거기에 작용하고 있는 인간행동 · 문화변동의 법칙을 발견해야 한다는 새 학풍이 일어나 큰 반향을 일으켰으나 고고학 자료의 성격상 고고학의 능력에는 한도가 있는 것이어서 그러한 학풍은 미국 인디안문화 연구에서처럼 민속학적 傍證이 가능한 지역에서 생길 수 있는 문화인류학적 고고학이며, 우리나라처럼 고대와 현대가 거의 단절되다시피한 오랜 역사의 나라나 지역에서는 고고학이란 역시 역사과학이고, 고고학의 궁극 목적은 문화변동 법칙의 발견이 아니라 역사의 복원과 설명이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문화내용의 서술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은 공간적인 것이면서 시간성이 요구되는 것이며 … (후략)
 

한국 고고학계의 특수성에 대해 잘 표현한 것 같다. 확실히 신고고학이 발원한 미국과 우리나라는 학풍이 다를 수 밖에 없는 환경에 놓여있다. 하지만, 고고학이 단순히 역사학의 한 분과라고 보는 것에는 반대한다. 왜냐하면 역사고고학 분야에 있어서도, 문헌에 남아있지 않는 고고자료들은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록이라는 것이 위정자가 남긴 것이라는 점을 상기했을 때, 더더욱 고고자료의 중요성은 강조되어야만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전통고고학적인 학풍이 강해 과거사의 복원과 설명이 우선시되고 있지만, 더 많은 고고자료가 축적되고, 더 많은 방법론이 개발되다 보면 신고고학에서 말하는 그러한 목적도 달성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런 것만 봐도 한국 고고학 초창기의 상황이 어떠했는지 잘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셋째, 낙랑군에 대한 저자의 인식은 과거의 인식이라고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너무 고정관념이 강하게 반영된 생각이라는 것을 언급하고 싶다. 단순히 옛날 연구성과라고 보기에는 낙랑군을 인식하는 접근법 자체가 필자가 생각하는 바와 많이 다르기 때문이리라. 저자는 낙랑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운을 떼고 있다(119쪽).

낙랑군은 漢의 식민지로서 그 묘제, 문물은 거의 모두 중국 한대의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비록 우리나라 안에 있었다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고고학이나 미술사에서는 제외하여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러나, 낙랑군의 문화가 실질적으로 우리나라의 초기 철기시대나 원삼국 문화는 물론 그 뒤의 삼국시대 문화에도 큰 영향을 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며, 낙랑문화의 이해 · 지식없이는 우리 고고학의 올바른 이해는 바랄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 고대 문화와의 관련에 주안점을 두면서 낙랑문화의 개관을 하여 두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먼저 요즘은 낙랑군을 단순히 漢의 식민지로만 인식하지 않기 때문에, 김원룡 선생님의 인식은 재고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이는 고고자료가 양적 · 질적으로 많이 늘어난 데다가 그와 관련된 연구성과도 이전보다 많이 늘어났기 때문에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중국 것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안에 있다 하더라도 우리 역사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것에는 선뜻 동의하지 못 할 것 같다. 그렇게 따지면 프랑스나 독일, 영국, 스페인, 이집트 역사에서 로마의 역사는 제외해야 할 것인가? 로마사는 오직 이탈리아의 역사란 말인가? 더군다나 낙랑군은 모두 중국의 것이며, 그 영향을 받아 한국 고대사가 크게 발전했다는 인식 또한 재고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이것이 식민사관 혹은 타율성론 등과 연결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한국 고고학계 초창기의 현실이라고 생각하면 될 듯 싶다. 지금의 고고학도들은 無에서 有를 만들어내는 학문을 하는 것이 아니다. 다 이런 선학들의 연구성과를 발판삼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을 반드시 읽어봐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고 싶다.

넷째, 논란이 되는 '원삼국시대'라는 용어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좀 정리해보자(128~129쪽).

원삼국시대라는 것은 서력기원 개시 전후부터 서기 300년경까지의 약 3세기를 말하며, 이 시기는 국사에서는 삼한시대, 부족국가시대, 성읍국가시대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려 왔고, 고고학에서는 김해시대, 웅천기, 또는 초기 철기시대 등 이름으로 불리는 시기이다.

그러나,『삼국사기』에 의하면 이 시기는 엄연한 삼국시대이며 실지로 삼국시대라면 누구나 삼국사기의 편년을 그대로 적용하면서 내용적으로는 위에 든 것 같은 갖가지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삼국시대라고 해 놓고 다시 그것을 삼국시대에서 제외하는 것은 근본적인 모순이고, 또 북쪽에는 엄연히 고구려라는 나라가 있었기 때문에 이 시기를 삼한시대라는 남한 중심 이름으로 부르는 것도 적당치 않다. 한편, 부족국가라는 말은 이제는 사용되지는 않으나 처음부터 부족이라는 개념을 잘못 파악한 것으로서 문제가 되지 않으며, 성읍국가시대라는 용어도 국가의 성격을 뜻하는 설명어로는 괜찮으나 삼국시대라는 왕조 기준 시대구분과는 설정기준이 맞지 않는다. 또, 고고학에서 말하는 김해기는 지금까지 신석기, 청동기, 철기 등 문화단계를 따르다가 갑자기 유적 이름으로 바뀌어 역시 설정 기준에 통일성이 없을 뿐 아니라 문화사에서 엄밀히 삼국시대로 넣고 있는 시기를 고고학적 시대명으로 二重 명명하는 것도 잘못이라 하겠다. 또, 그런 뜻에서 이 시기를 초기 철기시대라고 부르는 것도 잘못이거니와 완전 철기 단계인 이 시기를 초기 철기시대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착오인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삼국시대의 原初期, 또는 原史 단계의 삼국시대라는 뜻으로 원삼국시대(Proto-Three Kingdom Period)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를 주장하여 온 것이며, 이것은 문화사, 고고학에서 모두 함께 쓸 수 있는 합리적 이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 김원룡 선생님은 원삼국시대를 삼국시대의 이른 시기를 구분하는 용어로 원삼국시대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즉, 고대 국가의 시작을 서기 300년 경으로 봤기 때문이다. 국사학에서 인식하는 실질적인 삼국시대의 시작도 서기 300년이요, 고고학에서의 신라토기의 발생, 高塚의 출현의 편년과도 대체로 일치하기 때문에 서기 300년을 원삼국시대와 삼국시대의 획기로 나눈 것인데, 이것에 대한 비판적인 수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고대 국가 형성의 필요조건으로 위의 것들이 문제가 된다면, 이제는 이에 대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물론 고대 국가 형성에 필요한 요구조건에 대해서 현 학계의 생각에 꼭 동의하지는 않는다. 또한, 과거에 비해 요구조건에 충족될만한 고고자료가 더 많이 발견되기도 했지만). 만약 김원룡 선생님도 저 당시에 고고자료가 충분히 갖춰졌다면 원삼국시대라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했을까? 아니면, 그 시기를 서기 300년으로 잡았을까? 싶다.

다섯째, 삼국시대 묘제에 대해서 이 책에서는 고신라 및 가야에 대한 내용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데, 오히려 최근 나온『한국 고고학 강의』를 보면 백제 묘제 관련된 新자료들이 많이 서술되어 있다. 그만큼 과거에 비해 고고자료가 엄청나게 많이 증가하고 있음을 새삼 느꼈다. 개인적으로 원삼국시대라는 용어가 수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백제사가 제대로 연구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이 책의 내용은 그야말로 한국 고고학 초창기의 모습을 반영하는 것인데, 연구사 정리라는 측면에 있어서도 반드시 읽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이상이다.

아마 예전에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썼다면, 이런 내용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몇년간 이 책을 읽고, 다른 연구성과들을 접하다보니 이런 글이 나온 것일 것이다. 하지만 몇년 뒤에라도 또 서평을 쓰면 이 글과는 또 다른 내용의 서평이 쓰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만큼 이 책은 고고학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많은 부분에서 시사점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이 책이 시대를 초월할 정도로 잘 쓰였고, 꼭 읽혀야만 하는 책임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고고학을 이해하고 싶고, 고고학을 막 공부하려고 하는 학생들에게 이 책을 다시 한번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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