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를 찾아서 - 환인.집안.심양.단동.고구려 천리장성.수도 방어성
동북아역사재단 엮음 / 동북아역사재단 / 2009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난 한 주간 논문 막바지 작업을 끝내고 오랜만에 리뷰를 쓰는 것 같다.

이 책은 최근에 구입한 고구려 관련 서적인데(요즘에는 고구려 관련해서 어린이용 책들은 봇물 터지듯이 나오는데, 전공서적이나 교양서적은 딱히 눈에 띄지 않는 것 같다. 논문이야 계속 나온다한들 일반인들이 쉽게 접하기는 어렵고 말이다), 딱히 책을 읽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참고할만한 것이 없나~하는 마음에 구입한 것이다. 이렇게 화려한 칼라사진과 간략한 글 몇 줄이 들어가 있는 답사기(?) 같은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많이 갖고 있지도 않고(전선영의 『천리장성에 올라 고구려를 꿈꾼다』도 있지만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잘 구입하지도 않는데 고구려 답사를 갈 때 참고할만한 책이라는 누군가의 추천을 받아 구입하게 된 것이다. 뭐 내용면에서는 역시나 딱히 새롭게 볼만한 부분이 없었다.

아! 그나저나 왜 이 책이 필요하게 됐는지를 얘기 안 한 것 같다. 이번에 필자가 몸담고 있는 연구소에서 5년 프로젝트로 중국 답사를 가게 됐는데, 그에 따른 답사코스를 체크하고, 답사자료집(이후 책으로 발간할 예정임)을 작성하기 위한 가벼운 정보를 얻을 수 없나 해서 이 책을 추천받아 사게 되었다. 매년 2차례씩(아마 봄과 가을쯤) 답사를 나가야 해서 거의 1년 내내 자료집을 만들고, 답사 후 자료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텐데 벌써부터 걱정이긴 하다. 암튼 필자도 다른 책들을 보고 대강 답사코스를 작성한 뒤에 이 책을 받아봤기 때문에 일단 겹치는 부분도 많이 있었고, 참고가 된 부분도 많이 있었다.

이 책은 기존에 동북아역사재단에서 나온 『고구려 문명기행』과 『高句麗城 사진자료집-遼寧省 · 吉林省 東部』을 저본으로 삼아 뺄 것은 빼고, 더할 것은 더해서 가볍게 만든 책이다. 목차는 역사적 중요도에 따라 먼저 1부에서는 환인과 집안에 대해 소개하고, 뒤이어 심양과 단동을 소개하고 있으며, 2부에서는 천리장성 루트와 고구려 수도 방위성들을 소개하고 있었다.

뭐 환인-집안이야 고구려 초기 중심지인데다가 중국에서도 꽤 공을 들여 개발해놨기 때문에 한번쯤 꼭 가봐야 하는 거고, 심양과 단동은 한국에서 비행기타면 내리는 공항 둘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집어넣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즉, 1부의 내용은 일반적으로 중국 경내의 고구려 유적 답사를 갈 때 갈 수 있는 코스와 지역들을 소개한 내용들이 많았다. 이 책에서는 환인 지역에서 볼만한 것으로 오녀산성, 오녀산 박물관, 상고성자 무덤떼(하고성자 성터) 등을 소개하고 있고 더불어 미창구 장군묘까지 소개하고 있었다. 미창구 장군묘는 그다지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고분은 아닌데, 필자도 예전에 보고 신기해했던 기억이 난다. 내부에 연화문이 빼곡히 그려진 벽화고분으로서 장천 2호분에서 확인되는 ‘王’자형 도안으로 멋을 부려놔서 독특했었다. 아마 왕족의 고분으로 판단되는데, 책에서는 신대왕의 장남 발기가 반역을 꾀하고 실패한 뒤 그 후손들이 이 곳에 살면서 남긴 것이라는 설을 소개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발기의 반란 이후 그 후손들이 이 정도 규모와 이러한 벽화를 남길만한 勢를 유지했을지는 의문이다. 그리고 남도와 북도를 가볍게 소개하고 있는데, 태자성만 달랑 소개하고 있어서 뭐 큰 의미는 없었다.

집안은 2일 코스로 소개하고 있었는데, 성곽보다는 고분에 많이 치중한 것 같았다. 기본적인 코스는 집안 박물관, 국내성, 환도산성, 산성하 무덤떼, 오회분 5호묘, 태왕릉, 광개토태왕릉비, 장군총, 우산하 무덤떼, 국동대혈, 모두루총, 칠성산 무덤떼, 마선 무덤떼 등이다. 개인적으로 이걸 제대로 살펴보려면 2일 갖고는 좀 무리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왜냐하면 일단 위에서 소개한 산성하 무덤떼, 우산하 무덤떼, 칠성산 무덤떼, 마선 무덤떼 등은 거리상으로도 상당히 넓게 분포해 있는데다가 그 안에서 봐야하는 적석총이 한 두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필자도 2008년 여름에 6박 7일 코스로 중국에서 ‘고구려 왕릉’으로 비정한 고분 전부를 보고 온 적이 있는데, 2일만으로 이것들을 다 소화하려니 정말 빡쎘던 기억이 난다. 당시를 회상해보면 일부는 답사 도중 GG치고 버스에서 쉬기도 했고, 단순히 내려서 사진 몇 장만 찍고, 휙~ 다음 장소로 이동한 적도 꽤 많았다(경주에 가서 짧은 기간 내에 시내에 있는 고분들을 보게 되면 아마 이렇게 이동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많은 지역을 소개해놓은 것 치고는 내용이 부실한 부분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108쪽에 백암산성 사진과 함께 소개한 사진은 왜 여기에 들어가 있는지 아직도 의문이다. 심양 고궁 같기는 한데...뒷부분에 들어가야 맞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심양이나 단둥은 앞서 말했지만, 비행기를 타고 환인-집안 지역을 보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다. 직항이 없으므로. 그래서 환인-집안 지역을 답사할 때면 왕복 이틀은 꼭 여기에서 잡아먹는데, 다행이 고구려 유적도 좀 있어서 적적하게 보내지만은 않는다. 먼저 심양에는 요령성 박물관이 있는데, 규모도 클 뿐더러 중국 동북방의 고고자료들을 많이 전시하고 있어서 정말 한번쯤 꼭 가볼만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예전에 갔을 때 1시간 30분이라는 시간 동안 홍산유적과 고구려-삼연 문화만 보고 나올 수 밖에 없었던 가슴 아픈 기억이 떠올랐다. 또 하나 안 좋은 점(?)이라면 요령성 박물관에는 통합적으로 소개한 박물관 전시도록이 없고, 각 전시실마다, 각 기획전시마다 도록이 따로 있어서 주머니 사정을 고민해야 하는 연구자들에게는 별로 친절하지 못 했던 기억도 났다. 그리고 책에서는 심양 고궁과 신락 유적 박물관, 서탑 거리 등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 책의 주제와는 좀 맞지 않아서(이 책이 단순히 심양 지역 관광지를 소개하는 책이 아니지 않는가) NG였다. 공간 메우려는 蛇足같다고나 할까? 백암산성이야 워낙 많이 알려진 것이므로 Pass하고.

단동은 박작성(호산산성)과 애하첨고성, 오골성(봉황산성) 등이 위치하고 있는데, 요동반도의 대흑산성(비사성), 위패산성(오고산성), 성산산성, 낭랑산성, 득리사산성(용담산성) 등으로 구축된 해안 방어선(2부에서 언급됨)과 연장선상에서 압록강 하구를 방어하는 성들이라 할 수 있다. 필자도 한 번도 안 가봐서 모르겠지만, 여기에 소개된 대부분의 성들이 현재 출입 불가 지역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번에 답사를 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긴 한다. 암튼 각 성들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을 잘 담고 있어서 괜찮았던 것 같다.

2부에서는 먼저 고구려 천리장성 루트를 따라 여러 성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역사상 안시성, 건안성, 요동성, 신성 등으로 기록되어 있는 성들을 비롯해 길림 합달령산맥과 천산산맥 능선 상에 위치한 북동-남서 방향의 성들을 주로 소개하고 있었다. 예전에도 느낀 거지만, 이 일대의 성들은 높은 산지에 위치하는 것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요동성은 뭐 이제 시가지와 완전히 겹쳐져서 흔적조차 찾을 수 없고, 국내성처럼 성벽 쪼가리도 찾아볼 수 없다), 상당수가 보존이 이뤄지지 않은데다가 경작지로 훼손된 지역도 많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지역에는 볼만한 성들이 수십 곳이기 때문에 한번에 다 보겠다는 생각은 접어야 한다. 책에서도 이들 지역을 소개하면서 모두를 답사할 수는 없으니, 주요 성 몇 곳 위주로 답사하기를 권하고 있었다.

뒤이어 소개하는 나통산성, 흑구산성, 구노성, 오룡산성, 고검지산성 등은 환인-집안 지역을 環形으로 방어하는 성곽들인데, 고구려 초기부터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오녀산성, 국내성, 환도산성처럼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아서 일반인들이 답사를 자주 가지도 않는다. 역시 천리장성 루트에 있는 성들처럼 훼손된 부분이 상당히 많았으며, 이번에 답사를 가게 되면 어느 정도나 남아 있을지 걱정이기도 하다.

책의 전반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일반인들의 고구려 유적 답사를 위해 내놓은 책이라고는 하지만 뚜렷하게 노력한 흔적(?)이 보이지는 않는다. 즉, 중국에 답사를 가게 되면 흔히 그 곳에서 답사 가이드 팀이 짜주는 일반적인 일정에 충실히 따른 면모가 보였다. 물론 전문가도 아닌 일반인들이 산간 벽지의 산성이나 고분들을 찾아가지는 않겠지만, 너무 간단하게 소개한 면이 없지 않나 싶다. 아까도 말했지만 명색이 고구려 유적 답사가이드를 표방한 책이면서, 오히려 관광 소개서 정도밖에 내용을 담고 있지 않으니 말이다. 그래서 필자 개인적으로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혹여나 아직 중국 답사를 가보지 않은 분들에게는 기본적인 자료를 제공하는 책으로 적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성균관대학교 박물관에서 이 책에 수록된 사진의 상당수를 제공받았는데, 성균관대학교 박물관에서 무슨 연유가 있어 이런 사진들을 많이 갖고 있는지가 좀 의문이었다. 고구려 관련 전공자가 많은 것도 아니고, 고구려 연구기관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도 아닌데. 암튼...소소한 생각을 하면서 이만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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