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 로드: 사막을 넘은 모험자들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4
장 피에르 드레주 지음 / 시공사 / 1995년 2월
평점 :
품절


네 번째 총서의 주제는 실크로드다.
이제는 다들 아시겠지만, 또 한 번의 예비군 훈련과 함께 이 책을 완독했다.
마침 다리를 다친 덕분에 오후 훈련 열외를 할 수 있었고, 겸사겸사 책도 읽었다.
더운 날씨에 사막에 대한 내용이 나오니 더 더워졌다고나 할까?
암튼, 이 책에 대해서 몇 마디 적도록 하겠다.

일단 이 책의 원제목에 비해 번역된 제목이 너무 거창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사막을 넘은 모험자들...이라고 제목을 지었는데, 사실 원제를 보면 그게 아님을 알 수 있다. 이 책의 저자가 프랑스 사람이기 때문에 제목은 당연 불어다.『Marco Polo et la route de la Soie』. 야후 바벨피쉬로 번역해보니『Marco Polo and the silk route』라고 한다. 즉, 이 책의 내용은 마르코 폴로와 실크로드(실크루트?)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옮긴이가 왜 이렇게 제목을 정했는지 모르겠다. 뭐 출판사에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책의 내용과 맞지 않는 제목, 마치 독자의 관심을 확 끌만한 제목을 찾아 넣은 것만 같아서 책을 읽기 전부터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뭐랄까...독자를 기만하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

책의 목차를 보면 제 1장은 중국에서 로마로, 제 2장은 순례자의 시대, 제 3장 상인의 시대, 제 4장 마르코 폴로, 제 5장 선교사의 시대, 제 6장 항해사의 시대로 구분되어 있다. 언뜻 목차만 보면 상당히 재밌을만한 내용들이 담겨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지금까지 실크로드에 대한 서적들이 국내에 적지 않게 소개되었지만, 순례자, 상인, 마르코 폴로, 선교사, 항해사 등 직업群으로 구분해서(물론 어느 정도 시기적인 구분도 이뤄졌지만) 이야기를 전개한 것은 보지 못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흥미도 잠깐, 책의 내용을 들여다보니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여담을 잠깐 하자면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는 항상 일관된 편집구성을 보이고 있어 상당히 눈에 익다. 맨 앞장은 컬러 도판과 함께 독자의 흥미를 끌만한 문학작품 등을 선보이고, 뒤이어 본문에는 화려한 도판들이 수도 없이 선보이고 있다. 마지막으로 맨 뒤에 가면 흑백으로 몇몇 테마에 맞춰 문학작품이나 신문기사, 칼럼, 간단한 연구보고서 등을 자료형식으로 나열하고 끝을 맺는다. 이 책도 마찬가지였는데, 맨 앞에 표지에서부터 몇 페이지를 잡아먹는 부분이 모두 마르코 폴로의『동방견문록』중 일부를 인용한 내용이었다. 물론 이게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충분히 이 책을 제대로 소화하기 전 애피타이저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다 했다. 하지만 앞서 말했지만, 이 책은 마르코 폴로를 소개하기 위한 책이었다. 그걸 제대로 밝히지 않은 점은 분명 잘못이라 하겠다.

제 1장에서 저자는 중국 문헌과 고대 그리스, 로마의 문헌을 인용하여 아주 이른 시기 동-서양의 뜨뜻미지근한 교류 현황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었다. 로마제국(大秦國이라고 불린)과 한 왕조와의 간헐적인 교류에 대해서는 이미 웬만한 실크로드 책에서 소개가 되어 있으니 스킵. 제 2장 역시 큰 차이가 없었다. 다만, 순례자의 시대라고 쓴 만큼 이 부분에서는 종교와 관련된 내용이 많이 담겨 있었다. 불교나 네스토리우스교, 조로아스터교, 마니교 등등 오히려 실크로드 보다는 ‘초원의 길’을 통해 유목민족 사이에서 확산된 종교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더 많았다. 엄밀히 말해 동-서양의 종교문화 교류에 있어 실크로드가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을지도 솔직히 의문이었다. 현장의『대당서역기』내용이 간간히 언급이 되었지만, 혜초의『왕오천축국전』역시 당시의 종교문화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문헌인데(저자는 이 책은 언급도 안 하고 있다. 분명 이 책은 꼭 봐야할 텍스트라고 생각하는데 왜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 그것들이 모두 실크로드와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이때까지도 몰랐다. 그냥 제 1장과 제 2장의 내용이 조금 어설프다? 아니면 조금 모자란다? 라고 느끼고 말았다.

하지만 제 3장을 보면서 알게 모르게 짜증이 좀 났다. 저자는 신드바드의 모험과 천일야화 얘기를 살짝 언급하면서 이슬람 상인의 해상활동, 그리고 중국 남반구를 중심으로 한 대대적인 무역활동에 대해 약간의 지면을 할애했다(물론 중간에 십자군 얘기도 나오고 했지만 큰 의미는 없어 보였다). 하지만 내용은 곧 마르코 폴로 이야기로 넘어갔다. 왜냐하면 이 책은 마르코 폴로에 대한 책이었으니까. 몽고 제국과 마르코 폴로에 대한 이야기가 뒤이어 제 4장에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세계를 통일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몽고 제국 얘기가 계속 나오면서 마르코 폴로와 관련된 언급들이 계속 나오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마르코 폴로의 책보다 덜 알려지긴 했지만, 기욤 드 뤼브록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하다(104쪽)’이라든가, ‘카타이는 중국과 다른 왕국이 아니다. 마르코 폴로가 얘기하는 大帝는 중국의 왕과 다른 것이 아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중국은 다른 이름을 갖고 있는데도 타타르와 페르시아로 알려져 있다. 마테오 리지, 7세기 초(111쪽)’ 등과 같이 이야기의 주된 기준은 마르코 폴로였다.

아마 이 책에서 저자는 마르코 폴로에 대해 재조명(너무 거창한가?)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는 마르코 폴로가『동방견문록』을 쓸 때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전부 다 싣지 못 했으며, 기억나는 것만 전했기에(직접 경험했든, 보고 듣고 간접경험을 했든) 이 내용들의 신빙성에 대해 의심하면 안 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오히려 마르코 폴로가 원나라에서 성공적으로 활약한 것에 주목하면서, 그가 일개 상인임에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까지 원나라에서 활동했을까? 에 의문을 품었다. 물론 저자가 직접 이런 의문을 품고, 이의제기를 하면서 논지 전개를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뒷부분(흑백으로 처리된 부분)을 보면 156~161쪽에 걸쳐 마르코 폴로에 대한 재조명을 의미하는 내용의 글들을 편집해서 싣고 있었다. 즉, 그는 단순한 상인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교황의 사절단이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든다는 내용들을 말이다. 그렇게 마르코 폴로에 대해 얘기를 하려다 보니 앞뒤로 시대적인 개괄이 조금씩 들어갈 수 밖에 없었고, 위와 같은 목차와 구성을 갖게 된 것이었다. 여기까지 읽고 나서 원제목을 다시 보니 맨 처음 언급했던 것처럼 역시나였다. 책 제목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책을 읽은 필자 자신에게 한심스러움을 보내면서 책장을 마저 넘겼다.

개인적으로는 유진 오닐이라는 사람이 마르코 폴로를 대상으로 쓴『백만장자 마르코』라는 책의 내용이 기억에 남는다(162~167쪽). 마르코 폴로와 그의 아버지, 형이 교황의 서신을 들고 쿠빌라이 칸을 면담하는 내용인데, 쿠빌라이 칸 앞에서 당당히 할 말 다 하는 마르코 폴로를 영웅적으로 그려내고 있었다. 실제 불가능한 일을 서양인의 눈으로 신기하고 재미있게 꾸며냈으니 당연히 인기도 많았으리라. 동-서양을 넘나드는 이야기임에도 결국에는 자기들이 보고 싶은 대로, 자기들 구미에 맞게 이런 내용들을 각색해 널리 유행시켰다는 것 자체가 조금 웃겼다. 개화기 일본에서도 포루투칼 사람들을 마치 코 큰 괴물처럼 묘사했었다는데, 고정관념 혹은 폐쇄적인 시각이 다른 문화를 얼마나 배타적으로 이해하게끔 하는지 다시금 느꼈다.

마지막으로 둔황 석굴의 고문서에 대해 간략하게 언급하고, 실크로드를 중요시 하면서 대규모 국제학술조사가 이뤄졌다는 내용의 글을 싣고 있었는데 이 부분은 차라리 蛇足같아서 뺐으면 더 좋았을 뻔 했다. 심지어는 국내 출판사에서 임의로 집어넣은 내용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별로 필요 없는 부분이었다. 번역된 제목이야 어떻든 저자가 마르코 폴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서술하려고 했다면 필요 없는 부분이었을 것이라 생각됐기 때문이다.

그럼 마지막으로 정리 한번 해 보자.
저자는 마르코 폴로를 두고 당시 가장 많이, 가장 멀리까지 여행하면서 그 견문을 넓힌 사람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원의 관리로서 오래도록 활동하면서 쿠빌라이 칸의 신임을 얻었기에 그가 남긴『동방견문록』은 정말 주옥같은 자료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가 동-서 교류사에서 독특한 위치에 있으며, 그가 남긴 영향이 적었다고 할 수도 없다. 아마 저자는 마르코 폴로를 실크로드, 아니 엄밀히 말하면 동-서 교류사에 있어서 한 획기를 나눌만한 시점에 서 있는 사람으로 이해한 듯 하다. 즉, 마르코 폴로 이전의 동-서양과 이후의 동-서양으로 말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필자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고 말이다. 물론 당시 몽고 제국(대원울루스와 四汗國)이라는 전대미문의 거대한 제국이 존속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다시금 역사가 되돌아간다고 해도 마르코 폴로라는 사람이 또 있었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기에 필자 역시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는 바이다.

전체적으로 처음에는 멋모르고 읽었다가 중간쯤 짜증이 좀 났지만, 마지막에는 저자의 의도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어서 그 내용을 곱씹으며 즐길 수 있었던 책이었다. 실크로드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이 책은 그리 추천해주고 싶지 않지만, 국내에 마르코 폴로에 대한 책이나 논고가 별로 없다는 점에서, 마르코 폴로를 통해 본 당시 동-서 교류사를 가볍게 알고 싶다면 이 책이 적절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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