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고고학
키스 윌킨스.크리스 스티븐스 지음, 안승모.안덕임 옮김 / 학연문화사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책 구입한지는 2년이 넘었고, 그 와중에 책을 폈다, 닫았다 한지도 역시 2년이 넘었다.

예전에 테르모필레 전투가 벌어진 戰場을 고지형 분석과 연결해서 소개한 글을 간략하게 쓰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어떠한 내용이 실려 있으며, 구체적으로 이 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정리하지는 못 했다(당연한 말이다. 완독하지 못 했으니까 -.-;). 어쨌든, 이번 기회에 큰 맘 먹고 완독한 후에 서평을 쓰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그간 책을 꾸준히 읽지 못 한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책의 내용이 어려웠고, 또 생소한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뭐 조금 안 좋게 말하면 비전공자나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쓸데없는 소리로만 들릴 내용들이 많이 나왔기 때문으로 해두자(실제 책 뒷부분 ‘역자의 변’ 부분을 보면 역자도 막상 번역을 해 보니 책 자체가 지질고고학으로 많이 편중되었으며, 자연과학적 배경이 없는 일반 고고학도에게는 여전히 어려운 느낌이 들은 책이었다는 심정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필자도 근 20여일에 걸쳐 조금씩 조금씩 읽었으니 뭐 할 말은 없다.

먼저 목차 한번 간단하게 살펴보자. 

1장. 환경고고학 입문
머리말
'환경고고학' 정의
환경고고학의 발달
환경고고학자의 연구자료
프럭시 자료에 대한 해석
생태학과 고생태학
고대 생물유체의 잔존
요약 

2장. 고환경 : 고고학적 경관의 연구
'환경'의 의미
고지형에 대한 이해
암석학과 광물학
구조
해수면 변화
하천은 무엇인가
과거 생물상의 복원
비해산 연체동물 기록에 대한 해석
요약

3장. 고경제 : 생물학적 증거로 복원한 고대 생업과 생산
머리말
경제의 본질
생산과 소비
농업의 집약화
고경제의 생물학적 증거
식물고고학
동물고고학
분자생물학적 연구
경제적 질문에 적용된 생물학적 증거
요약 

4장. 환경고고학과 이데올로기
자연환경과 사회적 이데올로기 및 경제와의 통합
환경에 존재하는 자연계의 정령과 신
신화, 은유 그리고 자연의 순환
신을 위한 공물과 의식
소비 이데올로기 

5장. 환경고고학 : 이론가 없는 이론
과학으로서의 환경고고학
패러다임의 창조와 구체화
과학적 고고학
과학인가 과학적 소설인가
이론으로 본 환경고고학의 미래 

6장. 환경고고학의 계획, 해석과 집필
머리말
환경고고학의 계획
텔 엘-아마르나 근로자 마을
환경고고학의 집필

딱 봤을 때 이 책은 ‘환경고고학이 뭔지 소개하기 위한 개론서’라는 것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목차를 한번 훑어봤을 때 크게 재밌겠다~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근 국내 고고학계에서도 이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고, 필자가 몸담고 있는 연구소에서도 이런 환경고고학적인 측면에 대해 심도 있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필자 역시 이에 대한 관심은 적지 않았다. 물론 심각하게 공부해 본 적은 없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 책을 통해서 환경고고학이 뭔지 좀 자세하게 알고 싶기도 했고, 환경고고학을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도 좀 알고 싶었다. 그리고 책을 다 읽은 지금, 필자는 굉장히 만족하고 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했던가?’ 어쨌든 다소 어렵게만 여겼던 환경고고학에 대해 대강이라도 알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추후에 공부하듯이 2번, 3번 계속 읽어봐야 할 것 같지만 일단은 이번에 1번 완독한 대강의 느낌만 적어보고자 한다.

 

솔직히 ‘1장. 환경고고학 입문’은 그닥 재미가 없었다. 어떻게 보면 가장 기본적인 내용을 서술하고 있기에 환경고고학을 알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자세히 읽어봐야 하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불라 불라’ 교과서적인 내용이 많아지게 되었고, 재미가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눈여겨볼만한 부분들은 분명히 있었다. 환경고고학이 신고고학의 이론적 배경 속에서 탄생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거나, 환경고고학이 과학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전통고고학적인 입장에서 봤을 때 신뢰하기 어려운 학문적 위치를 지녔다는 내용 등은 흥미로웠다. 또한 필자가 수업시간에 배우거나, 책(물론 관련 전공서적)에서 읽었던 것 이상으로 환경고고학의 범위가 넓고, 오늘날 여러 연구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환경고고학이 일반적으로 고대의 경관, 즉 사람이 먹고 자고 생활했던 입지 혹은 경관에 대한 내용만 다룬다고 알고 있었지, 고경제를 분석하는데 중요한 목적이 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솔직히 후자는 전자를 연구하면서 따라오는 부수적인 부분으로만 이해한 것이 사실이다).

 

그 다음 ‘2장. 고환경 : 고고학적 경관의 연구’는 전반적으로 재밌게 본 부분이다. 그만큼 익숙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학교 수업 시간이나 기존의 고고학 서적에서도 접했던 내용들이 나온 만큼 이 부분은 복습하는 차원에서 차근차근 읽어봤다. 하지만 ‘과거 생물상의 복원’부터 끝부분까지는 조금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았다. 고식생 연구, 꽃가루 분석, 화분분석을 위한 시료채집, 꽃가루 아시료의 실험실 분석 등등 111~185쪽에 해당하는 내용은 관심분야도 아니었고 단순히 지식의 전달을 위한 내용 전개여서 필자의 독서 의지를 꺾어놓기에 충분했다. 물론 관련 전공자가 보면 개설서로서 잘 정리된 내용을 접할 수 있겠지만 일반 독자들이나 비전공자들에게는 지루한 내용임에 분명했다.

하지만 딱정벌레를 중심으로 하는 고고곤충학에 대한 내용은 흥미로웠다. 딱정벌레는 곤충 중에서 가장 다양하며, 다른 목의 유체보다 고고학적 퇴적층에 더 잘 보존되며(외골격이 갑옷처럼 딱딱해서), 현대의 딱정벌레 생태가 다른 곤충 목보다 더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주요 연구대상으로 취급된다고 한다. 이와 더불어 각다귀과에 대한 연구도 증대되고 있다고 한다. 이들 곤충들을 갖고 기후와 서식지를 복원하는데, 일부 곤충 종은 매우 한정된 특정의 서식지에만 서식하기 때문에 인간의 활동 영역 복원에 특히 효과적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딱정벌레 중 Tipnus unicolor는 인간의 오물과 섞인 부패 중인 밀짚 속에서만 사는데, 중세시대의 도시 환경에서 흔했다고 한다(하수처리 방법의 변화로 오늘날에는 드물단다). 이를 우리나라에 적용한다면 화장실 유구의 흔적을 찾는데 유용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저자는 환경 복원을 위한 시료 내에 존재하는 모든 곤충분류군의 기원을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서술하고 있다. 즉, 발견된 종이 저장 농산물의 해충인지, 인간 또는 동물의 기생충인지, 주거 쓰레기에서 기원한 것인지, 또는 날려들어 온 배후 곤충군인지 말이다. 암튼 고고학적 유적에서 발견된 준화석 곤충에 대한 연구는 주거, 생업, 기술 활동 복원을 위한 매우 강력한 도구라고 역설했는데 필자 역시 이에 적극 동의하는 바이다(150쪽의 도 45를 보면 인간생활과 곤충이 얼마나 밀접한 관련성이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저자들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멋진 말을 남기기도 했다.

곤충만이 생활 상태를 이렇게 상세하게 복원할 수 있게 해주며, 장인으로 구성된 부유한 사회를 암시하는 멋진 유물과는 상반된 인상을 제공해준다.

이 책에서 필자가 굉장히 주의 깊게 본 부분이 바로 ‘3장. 고경제 : 생물학적 증거로 복원한 고대 생업과 생산’이었다. 왜냐하면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환경고고학이 고경제를 복원하는데 주목적이 있다는 사실을 잘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어려운 내용들이 많았다. 일단 ‘분자생물학적 연구(Biomolecular studies)’에 대한 내용은 지루한 설명뿐이어서 읽는데 힘들었다. 하지만 ‘경제적 질문에 적용된 생물학적 증거’ 부분은 재밌게 읽었던 것 같다. 농업활동을 각 과정별로 분류하고 그에 걸맞은 고고학적 연구사례, 방법론 등을 나열한 것이었는데 굉장히 이채로우면서도 흥미로웠다. ‘경작에 의한 생산, 경작지 입지, 이전의 토지 이용과 경작지 개간, 거름주기, 경작과 제초, 작물의 파종, 수확’으로 각 과정을 분류한 저자들은 굉장히 세세한 부분까지도 구체적으로 거론하고 있어 읽는 내내 ‘와아~대단하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예를 들어 거름주기의 최상의 증거는 어떤 것이 있는지, 극젱이와 쟁기로 땅을 갈았을 때 그 안에서 어떤 시료들을 채취해야 하며 어떤 결과들이 나타나는지 뭐 이런 것들 말이다. 심지어 수확에 대해서도 이삭을 손으로 따는 법, 도구로 따는 법, 작물 전체를 뿌리째 뽑는 법, 낫으로 줄기를 베는 법 등으로 세분화하여 설명하고 있었다. 이런 부분은 국내에서도 연구 사례가 있지만 이처럼 자세하게 언급된 것은 본 적이 없어서 그 점이 또 흥미로웠다. 물론 이외에도 작물 가공과 동물 생산에 대한 부분도 이처럼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었는데, 현장에서의 조사가 보다 세분화되고 디테일해져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왜냐하면 이 책에서 저자들이 말하는 것은 하나같이 ‘현장에서 조금만 더 신경 쓰면 정말 많은 사실들을 알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하니 말이다.

4장부터는 인지과정주의 고고학적인 내용, 학사적인 내용, 이론적인 측면 등이 서술되어 있는데 전반적으로 책의 1/3 정도를 차지하고 있지만 읽는데 큰 부담은 없었다. 왜냐하면 고고학도라면 학교 수업 시간에 한번쯤은 다 들었을 법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4장. 환경고고학과 이데올로기’는 전체적으로 인지과정주의 고고학적인 부분이 많았는데, 인류학이나 민속학적인 내용도 많아서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해석의 범위’이기 때문에 한국 고고학계와의 시각 차이나 수준 차이는 분명히 있었다. A로도 해석할 수 있지만, B로도 해석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고고자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여러 자료들을 그냥 가장 일반적으로 해석하는 수준으로 소개하고 있어서 딱 이것이 正論이다, 하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재밌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암튼 환경고고학을 통해 어떤 사실들을 추론하고, 어떤 것들을 밝혀낼 수 있는지 서술한 부분이어서 비전공자라 하더라도 이 부분은 전반적으로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그 뒷부분은 전체 고고학사 중에서 환경고고학과 관련된 학자들과 이론들에 대해 총괄적으로 정리를 하고 있어 1번 더 공부한다는 생각에 읽으니 괜찮았다. 특히 ‘과학인가 과학적 소설인가?’라고 하는 부분은 우리가 하는 고고학의 성격이 무엇인지 스스로 생각하게끔 했다. 또한 실질적으로 환경고고학을 공부하기 위한 연구계획서(예시)가 서술되어 있었는데 우리나라에서 적용하기는 좀 어렵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뭐 일단은 관련 전공자뿐만 아니라 연구자도 적고, 디테일하게 발굴조사가 이뤄지기 어려운 현장 여건도 있고 하니깐 말이다. 진짜 작정하고 환경고고학적인 연구를 처음부터 시도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북미와 영국에서는 완전하고 설득력 있는 사업 계획서 없이 고고학 조사가 진행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사업 계획서는 흔히 외부 전문가의 정밀한 심사를 받는다고 하는데...우리나라는 언제쯤 이런 시절이 올까 싶다. 하지만 고고학이라는 학문이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지금은 전통고고학적인 입장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있지만 과도기라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우리나라에서도 환경고고학이라는 것이 보편화되고 관련 전공자들이 많이 생겨날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보는 바이다.

책 후반부에서는 ‘텔 엘-아마르나 근로자 마을’과 ‘차탈휘익’ 유적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정말 유적에서 확인된 수많은 시료들을 갖고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을 할 수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단순히 유적에서 수습한 토기편과 각종 유물들, 그리고 여러 유구들을 조사하는 것만으로는 그 유적에 대해서 50% 정도밖에 설명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책에 거론된 대부분의 사례들이 국내 사정과는 맞지 않는 것들도 있지만, 방법론적인 측면, 그리고 인식의 측면에서 배울 점이 많았던 것 같다. 아마 우리나라에 위에서 언급한 2개의 유적이 확인되었을 때, 과연 이 책에서 언급하는 것처럼 다양한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책을 덮었다.

전반적으로 책에 대한 소감을 말하라면 어렵다. ‘역자의 변’에서도 뭐 이런 비슷한 얘기들이 나오는데 그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우리가 평소 쉽게 접하지 않는 부분인지라 이는 저자들의 책임도, 역자들의 책임도 아닌 것 같다. 또한 책에 나오는 내용 대부분이 유럽 일부분에 국한되어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유적 일부가 포함되어 있어 그 사례가 국내 사정과 적합하지 않은 것들도 많이 있었다. 이는 아마도 동양의 고고학계와 서양의 고고학계가 학풍이 많이 다르기 때문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한편, 이 책 뒷부분에 환경고고학과 관련된 참고문헌들이 죽 나열되어 있는 것처럼(그뿐만 아니라 관련 연구소의 웹사이트까지 기재되어 있다), 역자들이 책 중간 중간에 원서의 내용과 상관있는 국내 연구들도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어 그 점이 아주 좋았던 것 같다.

나중에 필요한 부분은 또 찾아보겠지만, 두고두고 읽으면서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책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이 책을 읽는 다른 독자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책 전부를 다 읽어보라고는 권하지 못 하겠고, 관심이 있는 부분은 이 책에서 찾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말을 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