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의 역사 역사 명저 시리즈 12
찰스 바우텔 지음, 박광순 옮김 / 가람기획 / 2002년 10월
평점 :
품절


흥미로운 책을 하나 읽었다. 처음에는 무기의 역사~라고 해서 표지를 보고 서양 무기의 역사인가 보다, 했는데 제목을 보니 보다 세분화된 주제를 다루고 있었다. 고대와 중세시기 서양의 무기와 갑옷 등을 다룬 연구보고서(?)의 성격을 지닌 책이었기 때문이다. 유명한 프랑스의 고물애호가 'P. 라콤'의 책을 '찰스 바우텔'이 영어로 옮기고 라콤이 잘 다루지 않았던 부분이나 주관적으로 빠뜨린 점 등을 주석으로 달고, 서문을 집어넣은 뒤에 영국 무기의 역사에 대해 독립적인 장을 추가한 내용이 들어있었다. 19세기 학자의 눈으로 본 19세기까지의 서양 무기의 역사와 그 이후에 발전될 무기의 역사에 대한 내용이 주로 들어있는데 지금 보면 물론 잘못된 해석도 있지만, 당대 학자의 눈으로 당대 무기의 변천사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책이라고 생각했다. 19세기라면 한창 고고학이라는 학문이 발전해가는 시기(프랑스에서 이 시기 이미 석기시대의 편년, 개념정리가 이뤄지고 있었다)였고, 고물애호주의가 학문적인 관심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시점인데 책에 실린 도판을 보면 자세하게 갑옷이나 무기, 문장 등을 실측해놓고 있어 시대적인 학풍을 느낄 수도 있었다.

일단 이 책을 볼때 여러 서양 무기 변천사를 다룬 책 중 하나이겠거니~하는 생각에 큰 기대를 안 하고 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목차부터 주욱 살펴보면서 '흠~상당히 재밌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석기시대 무기들을 다루는 것부터 청동기시대 아시리아, 갈리아, 영웅시대 그리스의 무기를 다루고 철기시대로 넘어오면 그리스와 페르시아, 에르투리아의 무기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그 다음으로 서양 전쟁사 혹은 무기발달사에 일대 획을 그었던 로마를 다루고 고대 무기와 갑옷의 장식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그 다음으로 야만족들(이는 지극히 로마시대적 관점을 차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 중에서 프랑크족만은 독립적인 장을 두어 다루고 있는 점이 독특했다)과 프랑크족의 무기에 대해, 마지막으로 중세시대 유럽의 무기와 갑옷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었다. 일단 아시리아나 갈리아의 무기를 따로 다루고 있는 것도 독특했고, 에트루리아나 프랑크의 무기에 대해 다루고 있는 것도 흥미로웠다. 특히나 21세기 학자의 눈이 아닌 19세기 학자의 눈으로 고대 무기나 갑옷의 변천사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당시의 시각을 살펴볼 수 있어 좋았다.

석기시대 무기부터 주욱 살펴보면 저자의 다양한 삽화가 실려있어 보기 좋았다. 출토된 유물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그렇다고 정확한 치수를 재고 정확한 비율로 삽화를 실었던 것은 아니다) 그것을 토대로 무기의 각 부분을 설명하고 있어 인상적이었다. 19세기면 사실주의가 대두되어 역사적이고 연대기적인 문학작품이 등장하고, 회화 작품에서도 이전과는 전혀 다른 화풍이 등장하는 시기인데 아마 이런 분위기에 발맞춰 그런 삽화를 다수 남긴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쨌든, 나름 편년까지 해 석기시대 무기를 다루고 있는 것을 보고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제국주의 학자의 연구성과물이라 그런지 여러 식민지의 민족지적 사례를 기준으로 논리를 전개하고 있는 것도 눈여겨볼만했다. 특히 석기시대 무기를 만들때 나무에 생채기를 내고 무기를 꽂아두면 나무의 자연 치유력으로 석기를 꽉 조이게 되고 그 뒤에 도구를 만들어 썼다는 내용은 분명 참고할만 했다. 아직 이런 식으로 석기시대 무기에 대해 해석한 연구성과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심지어 일본측 연구에서도).

그 밖에 아시리아나 페르시아의 무기 및 갑옷을 거론하면서 유럽의 무기 체계와 비교 설명한 것도 재밌었다. 십자군 전쟁 당시 아시아와 유럽의 서로 다른 무기 체계가 전투 결과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설명한 것도 흥미있었다. 그리고 로마사를 언급할때 등장하는 에트루리아의 무기에 대해 따로 장을 두어 설명한 것도 독특했다. 11개의 장 중에 중세시대 무기를 다룬 장이 4개 (영국의 무기를 설명한 장도 포함해서)인데 반해 고대 무기를 다룬 장이 5개나 되어서 처음 생각과는 달리 상당히 재밌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특히 야만족이라고 표현된 고대 로마영토 밖에 거주했던 민족이나 프랑크왕국을 세워 유럽을 제패한 프랑크족에 대해 설명한 부분도 좋았다. 인디언이나 프랑크족은 투척용 도끼를 잘 활용했는데 마치 활이나 투창을 사용하는 것처럼 능숙했다는 대목 등이 주목됐다. 이처럼 당시 여러 민족의 무기 체계와 갑옷 체계를 설명하고 그것을 통해 전투 양상이나 전쟁 등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19세기 학자의 학문적 수준으로 완성한 연구성과가 오늘날의 시각으로 봐서도 전혀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삽화나 설명에 있어 훌륭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마치 일제강점기때 고유섭이 이뤄놓은 연구성과가 오늘날 학계의 그것에 비해 전혀 부족함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한동안 멍~했던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특히 저자는 비록 야만족이라 하더라도 석기를 이용한 원론적인 무기 제작 기술은 오히려 그들이 뛰어나다는 평까지 하고 있어 제국주의 학자의 평가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렇다. 석기를 사용한다고 해서 무식하거나 문명이 덜 떨어지는 것이 아님에도 우리는 오늘날 그런 생각을 서슴없이 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상당히 오랜 시간 석촉은 중요한 무기로서 활용됐고(심지어 5세기 고구려 군사기지인 홍련봉 2보루에서도 잘 만들어진 석촉이 출토됐었다) 선사시대 사람들이 쓰던 석부나 석창, 석검은 오늘날 봐도 감탄을 자아내게 할 정도다. 그리고 그런 군사문화의 전통을 계승한 후대의 사람들 역시 갑주나 무기를 만들던 재료만 바뀌었을 뿐이지 계속 새로운 무기를 만들고 더 발전된 무기를 만들어 사용했었다. 그리고 저자는 청동기시대에서 철기시대로 넘어가는 그리스를 두고 기존의 군사문화는 계승하되 다른 세계의 군사문화를 받아들이면서 더 발전했다는 말도 적고 있다. 그렇다. 전쟁은 서로 다른(물론 같을수도 있지만) 두 군사집단의 충돌이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군사문화의 직접적인 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19세기 제국주의 사회의 배경 아래서 지배받는 식민지의 역사와 군사문화를 무시하는 경우가 많았는데(처음에 프레이저의『황금가지』를 보면서 그 참신한 해석과 시각에 놀랐던 기억이 났다) 저자는 그런 부분에서 많이 관대한(?) 것 같았다. 그래서 더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연구성과가 완성된 것이고 말이다.

그리고 벌써 그때 중세시대 갑옷에 대한 세세하고 정확한 편년이 완성된 것도 놀라웠다. 찰스 바우텔이 모든 시대의 문장(紋章)에 관한 권위자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중세 영국 갑옷을 크게 몇개의 시기로 편년하고 다시 각 시기별로 세분화해서 설명한 부분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우리나라에서 조선시대 갑옷을 그렇게 편년해서 연구한 결과물을 주인장은 본 적이 없다. 유럽의 경우 고대 왕조에서 만들어낸 동전이 곳곳에서 발견되기 때문에 이 동전에 대한 권위자들이 상당수 있었고 이를 통한 연구성과 또한 엄청나게 많다(물론 동양의 경우, 동시기 동전이 그리 활발하게 쓰이지 않았고 그 연구성과가 상대적으로 활발하지도 않다). 그처럼 각 왕조의 문장이나 장식품, 깃발에 그려진 문장 등을 무기 변천사에 활용한 면도 독특했다. 주인장이 종종 갖는 의문이지만 한국은 서양이나 다른 나라에 비해 군사문화 부분의 예술작품이나 기록 등이 거의 없는 편이다. 그렇기에 그림에 그려진 기사의 모습이나 문양에 새겨진 기사의 모습을 토대로 당시의 갑주 및 무기 체계를 복원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역시나 이 책에서는 중세시대 다양한 고고자료를 통해 갑주와 무기의 변천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상당히 부러움을 자아내게 했다. 아마 앞으로도 이런 책은 더 나오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지막으로 소총과 권총, 대포 등에 대해 따로 장을 마련해서 미래의 전쟁양상에 대해 평을 가한 내용이 눈에 띄었다. 그렇다. 화약을 매개로 한 원거리 무기가 마련되면서 더 이상 두꺼운 갑옷의 의미는 사라졌다. 하지만 저자는 대포와 권총 등 화약화기의 위력이 강해지면서 두꺼운 갑옷은 두꺼운 철판으로 옮겨가면서 큰 전함 등에서 그 의미를 찾게 되었다고 평했다. 물론 이는 미사일이나 기뢰 등 현대적인 무기를 예상치못한 얘기겠지만 분명 일리있는 해석임에는 틀림없었다. 여러 종류의 총이 개발되면서 전쟁 양상은 이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졌고, 19세기를 넘어서면서 저자는 그 과도기적인 상황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미래전을 예상하는 당시 저자의 모습이 절로 상상됐다.

상당히 세분화된 주제를 다루고 있었고, 2세기 전의 학자의 시각으로 완성된 연구성과라는 점에서 굉장히 가치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안 그래도 찰스 바우텔의 이 책 초판본은 상당한 희귀본으로 사랑받고 있다니, 그 인기가 여전하다는 점에서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한국 무기 변천사를 서술한 제대로 된 연구성과도 없으니 뭐 어쩔 수 없지만, 차후에 이런 세분화된 주제에 대해 다룬 연구성과도 나오길 바라마지 않으며...이만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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