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황 평전 - 위대한 폭군 미다스 휴먼북스 4
천징 지음, 김대환 외 옮김 / 미다스북스 / 2001년 11월
평점 :
절판


 오랜만에 재밌는 책을 봤다. 고속도로 휴게실 할인코너에서 운 좋게 좋은 책을 하나 건짓 듯 하다. 처음에는 할인코너를 미처 못 보고 돌아섰는데 동생이 "오빠, 진시황 평전이라는 책 있어?" 라고 물어보길래 잽싸게 가서 구입한 책이다. 물론 50% 할인가에 말이다. 어쨌든, 진시황에 대한 몇몇 책들을 읽어봤지만 대부분은 진시황, 인간 그 자체보다 그의 치적과 연결된 정치사적인 부분에 대해 다룬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만리장성과 흉노 정벌, 뭐 그런 것들 있지 않은가. 물론 주인장은 아직 쓰루마 가즈유키가 쓴『중국 고대사 최대의 미스터리 진시황제』라는 평전을 읽어보지 않았기에 오늘은 위에 소개한 책에 대해서만 언급하도록 하겠다.

일단 이 책은 그다지 어려운 내용이 없다. 우리가 대개 알고 있는 내용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놓았기 때문에 어려운 내용이 있다 하더라도 두어번 읽으면 이해하는데 크게 어려운 일은 없을 듯 싶다. 게다가 책 뒷부분에는 전국시대 6국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도 나와 있어서 당시 6국에 대한 정보를 얻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주인장이 무엇보다도 흥미롭게 생각한 부분은, 저자가 분명 관련 분야의 전공자로서 관련 분야의 연구성과들을 소개하면서도 어렵지 않게 흥미를 잃지 않고 이야기를 전개해 나갔다는 점이다. 독자들이 궁금해할만한, 혹은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주제들을 한두개 던져두고 이를 자문자답(自問自答)하는 형식으로 논지를 전개하고 있어서 그 점이 좋았던 것 같다.

이전에 주인장이 한번 언급했듯이 진시황 출생의 비밀(어찌보면 상당히 널리 알려져있는 진시황 관련 의문들 중 하나일 듯 싶다)을 책 초두에 꺼내놓으면서 그는 관련 연구자들의 여러 견해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나중에 자신의 생각을 게재했다. 읽으면서 내심 '이거 중국 학자들이라고 진시황의 출생에 대해서 일부러 정통성을 부여하는 쪽으로 해석하고자 여불위와 관련된『사기』의 기록을 무시하는거 아니야?!'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관련 문헌과 연구자료들을 뒤적거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주인장이 몰랐던 부분도 많이 알게 되었고 진시황 출생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주인장은 그간『사기』의 기록이 사실일 것이라는 전제하에 이런저런 생각을 했었는데 이 책에서는『사기』의 기록 자체를 의심할 필요가 있다는 언급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주인장이 지금껏 생각했던 것들을 재고할 필요가 생겼다. 

이런 것부터 시작해서 저자는 차근차근 진시황에 대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주인장이 또 흥미롭게 본 부분으로는 여불위와 진시황의 정치 스타일에 대한 내용도 있었다. 치세기간이 짧은 장양왕과 집권 초반 중부(仲父)에게 정치를 일임했던 진시황 시절, 여불위는 수년간 진나라를 제국으로 만들고 다듬기 위해서 부던히 노력했다. 그리고 그 노력의 결실은『여씨춘추(秋)』로 세상에 빛을 선보였는데 여불위가 빈객 3,000명을 모아 만든 책이라고 한다. 그만큼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학자들이 내놓은 지식들이 총체적으로 들어있는데 이 책의 내용을 한글자라도 고칠 수 있으면 천금을 주겠다 했으니 그 자부심이 대단했으리라. 

그러면서 저자는『여씨춘추』의 정치 스타일은 진시황과 달랐다고 적고 있다. 알다시피『여씨춘추』는 패도(覇道)에 어울리는 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덧붙여 그는 일부에서『여씨춘추』를 두고 너무 틀에 맞춰 쓰다보니 내용의 헛점이 있다는 비평도 하지만 그것은 모두 여불위의 뜻이 그러했기 때문이라 적고 있다. 즉, 그는『여씨춘추』라는 책을 만들면서 일종의 '사상 통일'을 꾀했던 것이다. 즉, 글의 형태만 스탠다드한 표준을 만든 것이 아니라 그렇게 틀을 맞춤으로서 그 안에 들어가는 내용에 대해서도 통일성을 강조했다는 소리였다. 그간『여씨춘추』에 대해서 막연히 그러한가 보구나~라고만 생각했지, 이런 깊은 뜻이 있는지는 미처 몰랐다. 순간, 진시황이 행했던 수많은 정책들이 떠올랐다. 분명 그 정책들은 진시황이 혼자서, 당대에 갑자기 천재적으로 떠올려 만든 것들이 아니다. 무수히 많은 학자와 정치가들이 수백년간 서쪽 변방의 진나라에서 고생하면서 이룩한 것이다. 그리고 여불위는 그것들을 통일하려 하였고.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실제 책 뒷부분에 가면 저자는 진시황의 업적을 말하면서 '왜 사람들이 진시황의 정치 · 군사 · 경제적인 통합 정책은 언급하면서 사상적인 통합 정책은 얘기하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반문했다. 그렇다. 어찌보면 이 사상 통합이라는 것이야말로 가장 공들여야 하며 가장 오랜 시간에 걸쳐 철저하게 이뤄져야 할지도 모른다. 정신세계에 대한 개혁적인 정치변화를 어찌 그동안 무시했을까. 흉노를 정벌한 것은 조나라 무령왕도 호복기사를 통해 행한 적이 있었고, 만리장성을 쌓은 것 역시 북쪽에 적을 두고 있는 위나라, 조나라, 연나라 등에서 행했던 것이다. 화폐와 글자가 다양했지만 그 또한 특정 국가 혹은 지역을 중심으로 몇개의 화폐와 글자로 구분되어 사용되어 있었다. 하지만 사상 통일은 아무도 해내지 못 했다. 물론 패도에 입각한 정책 아래 법가사상이 중시되었지만 여불위의『여씨춘추』에서 알 수 있듯이 진나라는 사상 통합을 이룩한 나라가 분명했고, 그것은 분서갱유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도 잘 나타났다. 이 또한 주인장이 간과했던 부분이었다.

전체적으로 저자는 진시황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당시 시대상에 대해서 서술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마 이 부분때문에 이 책을 두고 일반적인 전국시대를 소개한 역사책과 다를 바 없다고 평한 독자들도 몇몇 봤다. 하지만 분명 주인장이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몇몇 부분에서 저자는 흥미로운 주제들을 던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주제들은 자뭇 지루할지도 모를 스토리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그렇게 흥미로운 주제들은 위에 언급한 것 말고 더 있었다. 

책 막바지에서 저자는 진시황이 어떻게 천하를 얻을 수 있었는가? 라는 아주 원론적이면서도 기초적인 화두를 던졌다. 그러면서 이내 '그럴 수 밖에 없었다'라는 결론을 먼저 꺼내놓고 이야기를 풀어놨다. 법가사상에 치중해 수백년간 내공(?)을 쌓아가며 빡쎄게 나라를 운영했던 진시황 이전의 군주들 덕분에 진시황은 그런 힘을 모아 거의 2년마다 일국을 멸망시켜 천하통일을 할 수 있었다고 말이다. 덧붙여 그는 중국은 통일될 수 밖에 없었던 운명이며 진시황이 뭐 새롭게 천하통일을 한 것도 아니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중국은 주나라 이래로 주욱 중국(中國)이라는 명칭 아래 하나의 통일된 존재였으며, 봉분된 국가들이 여럿 있었지만 여전히 하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춘추5패와 전국7웅의 시대를 거쳐 진시황이 진(秦)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모은 것 뿐이니 천하통일이라는 용어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고도 했다. 이 부분에서 '역시 중국 학자라 어쩔 수 없구나~'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필시 진시황은 과거 6국의 영토보다 더 많은 영토를 차지했으며 그 영향력도 더 많이, 더 넓은 지역까지 행사했었다. 그럼에도 이미 중국이라는 테두리 안에서의 변화라는 식의 서술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그는 만리장성을 두고 북방에 대한 방어적인 의미도 있지만 화이(華夷)를 구분하는 의미도 있다고 언급하였다. 이 역시 앞의 논리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리라. 

몇몇 부분에서 다소 작위적인 해석이 눈에 띄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진시황에 대해 객관적으로 평가하고자 했던 책이라고 생각한다. 보다 전문적인 내용이 추가되고 보완될 부분만 수정된다면 진시황 관련 연구서로 손색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확실히 진시황은 수천년 중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군주 중 한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너무나 패도적으로 통치했고 6국의 정복된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자국의 백성에게도 가혹한 통치를 부여했다. 그렇기에 그의 꿈은 만세황제가 아닌 2세 황제로 끝이 날 수 밖에 없었다. 6국을 정복하고 천하통일에 매진할 때라면 그의 패도적인 정치는 그 위력을 발휘하겠지만 일단 제국이 완성되면 제국은 더 이상 '말 위에서 다스릴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만다. 진시황을 보면 아스라이 스러져간 고구려의 모본왕이 생각난다. 분명 군사적으로 뛰어난 재능을 지녔지만 장기적인 고구려의 국가정책상 그의 의지는 엇나갔었다. 하지만 그가 남긴 치적은 이후 중국사에 그대로 남아 근간을 이루었다. 한대 정치제도가 대부분 진의 그것을 본땄으며, 한 역시 진의 패도를 부정하고 들고 일어나 진의 유물을 그대로 받아먹어 강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대외적으로 고구려의 후계자로 자처하던 고려가 신라 정치제도의 상당부분을 계승한 것처럼 말이다. 

오랜만에 좋은 책을 하나 읽어 이렇게 소개하고자 몇자 적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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