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은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 기록없는 역사 발굴기
이인숙 외 지음 / 푸른역사 / 2000년 9월
평점 :
품절


무더운 날씨면 현장에서 쉬는 시간에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진다. 보고서라도 뒤적거리고 논문이라도 좀 봐야 하건만 그럴 시간에 잠을 잔다거나 아무것도 안 하고 쉬는 편이 많다. 너무 덥고 힘들기 때문이다. 그럴때 가볍게 읽은 책이 이 책이다. 예전에 읽어보려고 했다가 말았는데 이번 기회에 슬슬 시간도 보낼 겸 들춰봤다. 

25명의 고고학자가 자신들의 경험담을 담은 책인데 독자들이 얼마나 쉽게 고고학을 접할 수 있을까~하는 부분에 촛점을 맞췄다. 주인장이 이 책의 장점으로 꼽는 것은, 고고학을 하는 사람이라면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선생님들이 자신들의 초창기 모습을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말은 곧 논문이나 보고서에서 볼 수 없는 여러 선생님들의 발굴체험기와 성장기를 볼 수 있다는 소리다. 책의 부제가 '기록없는 역사 발굴기'인 것만 봐도 이 책의 내용이 어떤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 발굴장을 보면서 자라 고고학에 대한 꿈을 키운 이야기, 우연히 발굴현장에 참가해 고고학에 큰 뜻을 품게 된 이야기, 발굴현장에서 겪었던 어려웠던 일들과 기뻤던 일들, 외국에서 보다 많은 공부를 할 수 있던 뜻깊은 이야기, 고고학 현장조사를 할때 가져야 할 자세들, 현재 한국 고고학의 발전 상황 정도...고고학계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이 책에 담겨있다. 일반적으로 '고고학(考古學)'이라고 하면 '역사학(歷史學)'보다도 더 폐쇄적이고 딱딱하고 어려운 것으로 인식하기 마련인데 이 책을 읽으면 고고학이 상당히 매력적인 학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책 제목을 보면 알겠지만『유물은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이다. 이는 땅 속에 파묻힌 옛날 사람들의 유물과 유적을 대하는 조사자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렇다. 땅 속에 파묻혀 있는 유적과 유물은 자칫하면 포크레인의 움직임 한번에 날아갈 수 있다. 그리고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사라져버릴 수도 있으며 실제 그러한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비단 고고학자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문화재와 유적 · 유물에 애착을 갖고 주의를 기울여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 의도에서 이 책을 쓴 25명의 선생님들도 사람들에게 고고학이 얼마나 가깝고 중요한 일인지 알려주려고 했던 것이다.

아직 한국 고고학계는 외국에 내놓을만한 연구서적을 내놓지도, 한국 고고학계를 총정리한 개설서를 내놓지도, 뛰어난 고고학 이론서를 내놓지도 못 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고고학의 역사가 불과 반백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현재까지의 발전 정도는 결코 부족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와중에 사람들이 어렵게 여기고 꺼려워하는 고고학을 이해할 수 있도록 이런 책들이 출간되는 것은 분명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은 여러 선생님들의 에세이 성격을 띤 책들만 나오고 있지만 이런 학문적 성과가 하나둘씩 쌓이게 된다면 분명 외국 고고학계 못지 않은 연구성과들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 고고학에 뜻을 품게 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할 수 있으니 한번쯤 고고학이 무엇인지 궁금한 사람들은 이 책을 읽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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