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랑캐의 탄생 - 중국이 만들어 낸 변방의 역사
니콜라 디코스모 지음, 이재정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7월
평점 :
품절


걸작의 반열에 올릴 학술적 성과. 아시아 역사를 이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책.

- 《하버드 대학교 아시아 연구 저널》추천사 -

책 겉면을 감싸고 있는 종이에 써 있는 말이다. 그리고 주인장 또한 이에 동의하는 바이다.

최근 흉노사에 대한 책들을 한권 두권 보고 있는데 이 책 역시 처음에는 단순히 흉노사에 대한 책들 중 하나겠거니~하는 생각으로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책장을 한장씩 넘기면서 주인장은 그간 흉노사에 대해 몰랐던 부분들을 알게 된 것 이상으로, 아시아사 더 나아가 역사를 이해하는 거시적인 안목 혹은 합리적인 안목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얼마전『배틀, 전쟁의 문화사』를 보고 기존에 갖고 있던 전쟁에 대해서 재고(再考)해보게 되었는데 이 책으로 인해서 다시 한번 기존에 갖고 있던 이런저런 생각들에 대해서 재고해보게 되었다. 그만큼 주인장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해준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일단 책의 내용 중 주목할만한 부분을 언급하기 전에 이 책의 장점과 단점을 거론해보기로 하겠다. 이 책의 장점이라고 한다면 먼저 고고자료 언급의 비중이 상당히 높다는 것이었다. 전체 책은 1~4부라는 큰 틀 속에 1~8장까지의 텍스트를 갖고 있으며 그 중 1부는 고고학을 통해 얻은 성과들을 소개하고 있었다. 그리고 주석 기타 등등을 제외한 순수 내용이 412쪽인데 그 중 123쪽이나 고고학 관련 내용이 차지하고 있어 전체의 29.8%임을 알 수 있다. 즉, 흉노를 비롯한 흉노 이전의 유목민족에 대해서 문헌이 알려주지 못하는 내용들을 대부분 고고자료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방대한 분량의 고고자료 제시는 저자의 주장을 한껏 돋보이게 해 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그간 소위 북방사(北方史) 연구서적 중에서 고고자료를 제시하지 않은 것은 없지만 이처럼 집중적으로 정리한 것은 보질 못 했다.

그리고 굳이 단점을 꼽자면『춘추』나『좌전』등의 중국 고전을 인용하는데 있어서 문헌 자체에 대한 비판보다는 문헌을 그대로 재해석하는데 주력한 점을 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역자는 오히려 이 부분을 두고 유교의 대표적인 경전쯤으로 치부하는 이런 책들을 이 책의 저자는 전혀 다르게 해석하고 그 안에서 중화문명과 북방문명의 대결구도라는 도식을 이끌어내고 있어 대단하다는 식으로 얘기하고 있다. 물론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지만 이 부분은 보다 비판적으로 언급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또한 서술의 시간적 범위가 흉노 이후로 넘어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저자는 북방문명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언급하고 있는데 그러다보니 동방 · 남방문명에 대해서는 다소 간과하는 듯하고 있어 그 부분 역시 비판적으로 봐야할 부분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이 책은 주인장에게 상당히 많은 부분들을 알게 해 주고 있다. 그 중 거의 쇼킹에 가까운 깨달음을 얻고 재고의 여지를 얻은 부분을 언급하자면 다음과 같다.

1. 한제국은 흉노제국의 중앙집권화를 원했다.

얼핏 보면 무슨 우스운 소리냐~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저자는 위의 주장을 하고 있다. 흉노의 월등히 강한 군사력을 감당하지 못 했던 한 무제 이전의 역대 한제국의 황제들은 흉노에게 방대한 양의 물적자원을 바치면서 국경의 안정과 국가의 평화를 얻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흉노는 끊임없이 한제국의 국경을 침범하고 물자를 약탈해갔다. 이 부분에 대해서 저자는 흉노의 선우가 한제국의 황제와 똑같은 중앙집권적인 권력을 보유하지 못 했기 때문이라고 적는다. 즉, 한제국의 황제는 자기들의 권력구조와 흉노 선우의 권력구조가 같다고 보고 흉노 선우와 협상하고 그에게 약속한 물자를 보내줬지만 흉노는 선우 이외에 각지에 지방 군벌이 존재하던 구조였고 이는 한제국과는 전혀 다른 권력구조였다. 그렇기 때문에 한의 황제와 흉노의 선우가 맺은 협정은 선우 휘하의 각 세력가들에게 절대적인 강제력을 발휘할 수 없었던 것이다. 즉, 이런 상황에서 한의 황제는 흉노의 선우가 자신처럼 막강한 중앙집권적 권력을 보유하길 바라면서 막대한 물자를 보내줬다는 것이다. 쇼킹했다.

2. 만리장성은 중국세력이 북방을 정복하고 안정시키기 위해서 쌓은 것이다.

애초 만리장성은 북방세력에 대한 방어의 성격이 강한 인공 구조물이었다. 그러면서 북방세력은 늘 배고프고 가난하기 때문에 약탈을 해야만 했고 그걸 막기 위해서 중국세력은 만리장성을 쌓았다고 해석해왔었다. 하지만 만리장성이 실제 방어적인 성격이 그다지 높지 않았다는 점에서 만리장성은 북방문명과 중화문명을 구분짓는 경계선의 성격이 강하다는 해석이 높은 설득력을 얻었다. 실제 만리장성은 그런 의미가 강한 구조물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저자는 더 나아가 만리장성이 중국세력이 북방 진출을 위해 쌓은 구조물이라고 적극적으로 해석했다. 기존의 여러 견해들과 상당히 상반된 부분이기 때문에 이 부분은 주인장도 주의깊게 봤었고 차후 이 책을 읽는 사람들 역시 주의깊게 읽어봐야 할 부분이라 생각한다.

3. 사마천은 흉노를 미지의 대상에서 현실의 대상으로 끌어내렸다.

사마천의『사기(史記)』에 대해서 주인장은 그간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냥 중국 25사의 첫번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동양 역사학의 기틀을 마련한 고전 정도로만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춘추』나『좌전』등에서 북방 세력에 대해 피상적으로만 인식하고 문화적으로 열등하다든지, 사상적으로 미개하다든지 하는 식의 비합리적인 서술만 일삼았던 것에 대해 사마천은 보다 거대하고 강력하게 통합된 흉노를 그런 식으로 바라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흉노를 한제국과 동등한 문명체이자 한제국의 라이벌로 인식하고 흉노를 중요하게 취급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흉노에 대해 합리적이고 사실적이며 객관적인 내용을 담기 위해서 노력했고, 흉노를 미지의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 한번 붙어볼만한 현실적인 존재로 재창조했다는 것이다. 역사의 무서운 힘과 사마천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두려움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상 3가지가 주인장이 이 책을 읽으면서 꼽은 최고의 쇼킹한 내용들이 아닐까 싶다. 필시 저자의 이러한 접근법은 비단 흉노사 뿐만 아니라 다른 부분에 대한 연구에 있어서도 많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주인장 또한 중국과 흉노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면서 고구려와 중국에 대해서, 고구려와 기타 세력, 중국과 단군조선, 흉노와 단군조선 등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러자 이전에는 당연하다는 듯이 여겨졌던 부분들이 새롭게 인식되곤 했던 것이다.

그래서 일단 한번 정독을 하긴 했는데 워낙 띄엄띄엄, 3일에 걸쳐 읽다보니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부분들이 있을까 염려되어 다시 읽어보고자 한다. 주인장은 역사를 바라보는 방법론적인 면이라든가, 기존의 논지를 비판하면서 자신의 논지를 합리적으로 서술하는 저자의 글솜씨도 일품이지만 다양한 분야의 연구성과(고고학, 역사학, 금석학, 언어학 등)를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일관되게 서술한 노력 또한 높이 쳐줘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말하면 이전에 소개했던『흉노 : 지금을 사라진 고대 유목국가 이야기』는 흉노사에 대한 개설서이자 비전공자들이 부담없이 볼 수 있는 대중서적의 성격이 강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흉노의 시작과 끝(흉노계 집단의 행보)까지 포괄적으로 언급하고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이 책은 그것과 달리 전문서적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대중서적이라는 표딱지를 달고 나왔지만 이 책은 결코 쉽게쉽게 읽는 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정확히 흉노 세력이 어떻게 발흥하고 어떻게 쇠망해가는지를 정치사적인 관점 뿐만 아니라 문화사, 경제사적인 관점에서도 맥을 짚어내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그들에 대해 기록한 각종 문헌에 대한 통찰이 필요했음은 물론 방대한 고고자료 역시 동원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암튼 주인장이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는 것보다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직접 한번 이 책을 읽어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읽고 나면 아마도 주인장과 같이 쇼킹한 부분들을 많이 접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럼 즐거운 독서를 기대하며 이만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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