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산으로 동아리 친구 H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후배가 쓰고 있는 소설을 노트북에 담아와서 심심하지 않게 갈 수 있었다. 영화 원스에 대한 이야기에선 안타깝게도 공감대 불일치. 남자가 그 여자를 더 사랑한 것 같아요. 맘에 안 들어. 여자만 피아노를 받다니. 너 밀루유 떼베가 뭔지 모르지? ....... 당신을 사랑해요, 였다. 인마! 아직 연애경험이 없는 스물넷의 완고한 젊음이니 무조건 두 사람이 이루어지는 happily ever after만을 기대하는 지도. 붕어빵을 팔아 등록금을 모으고 있다는 녀석은 어제는 오만이천원 어치를 팔았다며 이제 단골도 생기고 할만하긴 한데 다른 알바도 골고루 해보고 싶다며 열의를 보였다. 마른 버짐에 겨울볕에 그을린 꾀죄죄한 몰골을 하고 있었지만 녀석의 수줍은 미소가 건강해 보였다.

 평소 안경을 착용하던 우리의 신부는 한 마디로 뵈는 게 없는 채 대기실에 곱게 앉아 있었다. 급기야는 오랜만에 모인 동아리 선배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불상사가 일어나고 나는 일일히 누가누가 왔다고 전해야만 했다. 눈부신 신랑신부 앞에서 분위기 잡고 축시도 낭독했다. 지난번에 K에게 건넸던 축시를 재활용 하려다가 두 친구의 아우라가 많이 다른 까닭에 고민고민. 그분이 오시는 타이밍에 맞춰 새벽에 눈 비비고 일어나 다시 썼다. 써놓고 보니 전체적인 분위기는 비슷한데 나중에 쓴 시가 더 좋아서 K에게 살짝 미안했다는. H는 예의 그 생글거리는 웃음을 지으며 시가 너무 이쁘다며 좋아했다. 흰 모니터 화면을 노려보며 머리를 쥐어뜯던 시간이 보람차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짓궂은 선배들은 시는 잘 썼네. 시는! 시 낭송하고 머 그럴 땐 네가 아닌 것 같다? 이렇듯 진심 어린 농담들로 나를 갈궈댔다.

 결혼식 일정이 끝나고 근처 커피숍에서 사람들과 이야길 나눴다. 우리 동아리엔 커플이 많다. 졸업 이전에 이미 사귀고 있던 커플도 있지만 대개는 졸업 이후에 간간히 연락하며 지내다가 가까워진 경우다. 철없는 말괄량이 같았던 나는 눈치가 젬병이라 모 선배랑 모 선배가 낌새가 심상찮다, 는 이야기가 들려와도 오늘의 술안주는 뭘까, 오랜만에 먹으면 스프 뿌린 날라면도 별미인데. 그런 것만 생각하고 있었다는. 어쨌든 커플이 많은 덕분에 행사가 있을 경우 선배들을 한꺼번에 세트로 보게 되니 그건 좋은 것 같다. 눈 위로는 여자 선배. 눈 아래로는 남자 선배. 오묘하게 두 사람을 반반씩 닮은 아기를 보는 것도 참 신기했다. 이십대 초중반 즈음 처음 만났던 나와 그들이 이제는 서로 나이 먹어가는 것을 걱정해주고 있다는 게 재밌기도 하고.

 돌아오는 길엔 선배 커플과 함께 왔는데 알고보니 신혼살림을 바로 옆동네에 차렸더라는. 소심하고 깐깐한 Y선배는 역사 교사고 항상 여기저기 벌려놓은 일 때문에 머리 아파 하시는 J선배는 공무원이다. 두 선배 모두 나름의 방식으로 내게 잘해주었다. 처음 동아리에 발을 들여놓은 건 J선배의 부추김 때문이었고, 그 동아리에 발을 끊지 않았던 건 Y선배의 배려 덕분이었다. 졸업 이후 바쁘게 살아왔던 탓에 한참 잊고 지냈지만 내겐 참 고마운 사람들이다. 학부 때 전공을 포기해가며 진로를 완전히 바꿨던 Y선배는 거의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공부했다며 힘들었던 시간을 회상했다. 나와는 같은 직종에 있기 때문에 그만큼 공통화제가 많았고 그간의 불합리한 에피소드들을 이야기하며 흥분하기도 했다. J선배는 연초라서 너무 바쁘고 정신이 없다며 비효율적인 공직 시스템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고, 결국 MB정부를 비판하는 쪽으로 화제가 기울다가는, 나의 대학원 생활과 선배들의 애매한 신혼생활에 관한 소소한 수다로 맺음했다. 이야기를 나누며 새삼 Y선배를 '남편'이라는 타이틀을 씌워 바라보니 대략 괜찮더라는. 그때 그 시절엔 왜 안 보였을까?

 사실 지난날의 우리는 서로의 대책없음을 걱정해주기는 커녕 어느만치 부추겨주며 지냈던 위인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향해 어떤 대책없는 신뢰 같은 게 있었던 듯 싶다. 아무리 침 튀기며 독설을 퍼부어도 속정은 깊은 사람이란 걸.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알콜을 들이부어도 남다른 밥그릇을 차고 나와 저러는 거라고. 담배로 해장을 하는 모습에 기함하면서도 설마 죽기야 하겠어, 하는 믿음? 쿠쿠. 소식을 모르는 그리운 사람들이 있기에 조금 안타깝지만 이렇듯 가끔 모이는 사람들이라도 건강하고 밝아 보여 참 다행이었다. 오랜만에 만났을 때 오늘처럼 또 환하게 웃을 수 있으려면 더욱 건강하고 성실하게 살아가야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눈에 뵈는 게 없이 결혼식을 올린 H 덕분에 나는 보이는 게 아주 많았던 하루였다. 그녀를 포함한 모두에게 속닥속닥. Happily Ever Af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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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8-01-12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는 렌즈를 착용하지 않고 그냥 뵈는 것 없는 상태로 결혼한 거에요? 신기하네요 ㅎㅎ
대책없음을 걱정해주기는 커녕 부추기는 사이, 하니 친구 c양과 나의 관계
서로 대책없이 철없이 깨는 짓 한번 할 때마다 역시 그래서 난 니가 좋아 막 이래요
그러고보면 그녀와 내 사이에도 대책없는 신뢰 같은 게 있나봐요 ^^
그나저나 오산이면 경기도네!!!

깐따삐야 2008-01-13 10:48   좋아요 0 | URL
눈에 뵈는 게 없을 정도로 좋은가 봐요.^^
생각해보니 저랑 친구들은 '네가 좋아' 이런 말을 잘 안 하네요.
오산은 수원 갈 때 잠깐 들르기만 하다가 이번에 처음 가봤는데 도시 분위기가 영 심란하더라구요.

Mephistopheles 2008-01-12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랑 친구 중에 건질만한 사람은 없던가요?
축시까지 낭독하셨다면 결혼식 때 주목 받으셨을텐데 말입니다.

깐따삐야 2008-01-13 10:51   좋아요 0 | URL
저는 눈에 뵈는 게 없는 것도 아니었는데 안 보이던데요.
저희 동아리 사람들만 주목한 것 같아요. ㅋㅋ

순오기 2008-01-13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깐따님, 축시 전문이구낭! 깐따님 결혼에는 누가 축시 써주나요?
아무리 콩깍지가 씌었어도 뵈는 것 없이 결혼식을 하다니~~~헉!!
나도 안경 빼면 뵈는 거 없는 사람이라 그날만 렌즈 끼고 했는데~ 신혼 여행 갔다온 나를 본 조카가 경악했다는 슬픈 전설이... ^^

깐따삐야 2008-01-16 11:54   좋아요 0 | URL
저도 결혼 축시는 이번에 처음 써봤습니다.
제가 결혼할 땐 유리상자나 성시경이 축가를 불러주면 좋겠는데 말이지요.
최근에 들어본 전설 중에 가장 슬프네요.^^;


이게다예요 2008-01-13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나저나 그 H라는 친구는 정말 눈에 뵈는 게 없이 결혼한 거예요? 저도 소문난 안경잽이라... 결혼을 결심하고 처음으로 렌즈를 장만해서 결혼식 땐 사람들에게 제 눈이 얼마나 이쁜지 다 보여줬는데 말이죠. ㅋㅋ
근데 시를 직접 지어서 읽어주셨나요? 멋지네요. 한번 올려줘보세요. 궁금해요~

깐따삐야 2008-01-16 11:57   좋아요 0 | URL
눈이 아주 나쁜 건 아니고 대충은 보이니까 그냥 렌즈를 끼지 않은 모양이에요.
퇴고하던 시가 페이퍼 어딘가에 있을텐데 완성된 시는 친구한테 선물한 것이어서 공개 페이퍼로 올리기가 좀 그렇네요.^^

2008-01-13 2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16 1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14 18: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16 12: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계의 문학 2007년 겨울호. 올해 김수영 문학상을 받은 문혜진 외 이문재, 강기원 시인의 시들도 함께 실렸다. 시나 소설 보다도 특집으로 실린 '우리 시대의 서사'와 평론가 이광호가 요즘 젊은 소설들에 두루 엿보이는 초연함에 대해 '너무나 무심한 당신'이라는 타이틀로 쓴 기획 평론을 더 재미있게 읽었다.

 서점에 들렀다가 문학동네가 가을호 밖에 남지 않은 것을 보고 그냥 나오려다가 그래도 오랜만에 계간지를  읽고 싶어서 구입한 책이다. 계간지는 파편적인 구성 때문에 밀도 있는 독서가 되진 못하지만 '흐름'을 읽을 수 있는 게 미덕이다.

 

  스누피를 읽더니 이젠 에코다. 잘 쓰고 싶은 '진심'만으로는 아무것도 되지 않더라는. 확실히 읽고 났을 때 도움이 되는 책이긴 한데 번역이 심하게 엉터리다. 거듭 읽어도 의미가 모호하고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곳곳에 눈에 띈다. 그냥 에코에게 전화하고 싶어지더라는.

 방법보다는 자세에 대해 조언하는 책. 그래서 읽고나면 마음가짐은 달라지는데 눈앞에 놓인 백지는 여전히 새하얗다. 아까 내리던 비는 이제 눈으로 바뀌었고 머릿속도 하얗다. 이를 어쩌면 좋을꼬.

 

  작년에 '마음'과 함께 읽었던 나쓰메 소세키의 책. 막무가내 청년이 시골학교의 수학교사로 발령받으며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을 보여준다. 오쿠다 히데오 식의 적나라하고 시끌벅적한 유머보다 소세키의 유머가 훨씬 더 내 취향에 맞는 것 같다. 능청스러운 무대뽀. 하지만 알고보면 착하고 정의로운 우리 도련님. 초임 발령을 받고 엉망진창으로 첫해를 보냈던 과거 내 모습과 오버랩되어 더 재밌는 소설. 칙칙한 날씨에 꺼내 읽으면 기분이 한결 좋아진다.

 나쓰메 소세키는 타고난 작가인 것 같다. '마음'을 쓴 그와 '도련님'을 쓴 그가  같은 사람이라는 게 신기하다. 두 작품이 너무 다르지만 둘 다 훌륭하다.

 

 기독교인들이 성경책을 꺼내 보듯 짬날 때마다 보고 있다. 잠언집이라서 아무 페이지나 펼쳐들고 마음 속으로 시 낭송하듯 읽으면 된다. 차를 곁에 두고 읽으면 승방에 온 것처럼 고즈넉해질 때도 있다.

 요즘 살펴보니 내 책장엔 러셀의 '행복론'도 있고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도 보이고 쇼펜하우어의 '인생론'도 꽂혀 있더라는. 아마도 무진장 잘 살아보고 싶었나 보다. 이젠 더 이상 그런 책들은 안 사고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무진장 잘 살고 있지는 않다.

 

  베스트 아카데미 수상작 컬렉션. '로마의 휴일'을 다시 보고픈 마음에 구입한 DVD 컬렉션이다. 그 외에도 '무기여 잘 있거라', '아가씨와 건달들' 등 좋은 고전영화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소장 가치가 충분하다. 영화를 보면서 새롭게 깨닫게 된 점. 나는 선하고 풍만해 뵈는 여배우보다는 깜찍하거나 청초한 여배우를 애호하더라는. 일례로, 잉그리드 버그만<비비안 리. 

 10편 중에 6편 봤다. 그 가운데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보다가 껐다. 잉그리드 버그만 때문일까. 지루했다. 다음엔 재밌는 장면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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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8-01-11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진장 잘 사는 사람이 있을까요?

깐따삐야 2008-01-11 12:50   좋아요 0 | URL
깜딱이야! 있으면 어디 댓글 달아보라구 합시다.^^

깐따삐야 2008-01-11 13:22   좋아요 0 | URL
모가지가 없어 슬픈 살청이여.
언제나 산만한 편 댓글이 많구나.
- 깐천명

깐따삐야 2008-01-11 13:29   좋아요 0 | URL
싸구려만 입으시니까 그렇죠. 신축성이 좋은 걸 입으셔야지.
삐쳐야 할 사람은 저라구요. 잉크님한테 살청제나 투약하구 말이죠.
같은 야양청스교끼리 상부상조하지는 못할 망정. 미워요!

치니 2008-01-11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쓰메 쏘쎄키 작품 중 젤 좋았던 건 <그 후>. 안 읽어보셨으면 추천입니다 ~ ^-^

깐따삐야 2008-01-11 12:56   좋아요 0 | URL
아, 서점에서 봤어요. S양이 그 책 보고 그러더라구요. 언니! 언니가 좋아하는 소새끼야 소새끼! -_-
보관함에 넣어두었답니다.^^

마노아 2008-01-11 15:01   좋아요 0 | URL
소 새끼.. 어쩜 좋아요..ㅜ.ㅜㅋㅋㅋ

깐따삐야 2008-01-11 23:16   좋아요 0 | URL
마노아님- S양도 제 덕분에 유식해지는 거죠. ㅋㅋ

다락방 2008-01-11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놔.)
제가 하루만 참았으면 여기에 땡스투 할수 있었던거잖아요. 그쵸? OTL

깐따삐야 2008-01-11 13:23   좋아요 0 | URL
(아 놔.)
괘안습니다. 괘안치 않으면 머? ㅋㅋ

미미달 2008-01-11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와 도넛과 커피 ! 굿 !!!

깐따삐야 2008-01-11 23:18   좋아요 0 | URL
갈피접기라는 카테고리를 우리 미미달님이 잘 이해를 못했구나. ㅋㅋ
그래도 영화와 도넛과 커피는 굿!!!

2008-01-12 13: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곳에 가고 싶었다. 전에 보관증을 끊어두었던 가게에 들러 엄마의 겨울 슬리퍼를 하나 샀고 조그만 리본장식이 달린 구두가 마음에 들었지만 그냥 나왔다. 키가 작고 인상이 좋은 점원은 매우 친절했고 그런 몸에 밴 친절마저 반가워서 나도 모르게 상냥해졌다. 점원은 엄마에게 따님을 너무 알뜰하게 키우시는 것 아니냐고 너스레를 떨었는데 엄마는 그럼 알뜰하게 키워야지, 안 알뜰하게 키우면 쓰겠냐고 되받아쳤다. 아치 모양의 곡선이 들어간 숙녀화를 신어본지가 무척 오래되었고 요즘은 어쩐 일인지 그런 구두에 눈길이 많이 가는데 엄마는 그 곳에 있는 구두들이 별로였는지 아무 말씀도 안 하셨다. 가끔 내 욕구가 묵살당할 때마다 나에게도 주관과 안목이란 것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블랑슈는 스탠리의 폭력에는 겁을 먹고 도망치지만 의사의 친절에는 얌전한 강아지처럼 순종한다. 그녀의 마음을 알 것 같다. 나는 강아지 같은 사람일까.

 시장에 가면 내가 살만한 것들은 많지 않다. 엄마가 반찬거리를 흥정하는 모습을 흥미있게 지켜보거나 무거운 짐을 대신 들어줄 뿐. 지저분한 앞치마를 두르고 떡볶이나 순대를 파는 아줌마를 보면 몸은 고되어도 쓸데없는 허영에 시달리지 않으니 마음은 편하지 않을까 싶다가도, 그것마저 부러워하는 스스로의 허영심에 코웃음을 치게 된다. 수많은 상인들은 오늘도 북적대는 시장통에서 목청을 높이고 추위에 몸을 웅크려가며 열심히 물건을 팔고 있었다. 다른 이들이 휴식을 취하는 공휴일에 이 곳은 더 바빠지겠지. 문득 내가 참 사치스럽게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대학에 가고, 스무살이 되고,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하고, 돈을 벌고, 연애를 하면 아주 행복해질 것 같았다. 그 행복을 믿고 많은 욕구들을 외면하거나 참아왔다. 물리적인 조건과 환경이 변하면 내 의식도 변할거라는, 다분히 유물론적 가치관을 고수했다. 그리고 나는 원래부터 구상해오던 궤도에서 크게 이탈하지 않은 채 지금껏 지내오고 있다. 그런데 과연 행복해졌는가, 행복한가, 라고 물으면 그렇다, 고 대답하기 어렵다. 크게 불행하지도, 크게 행복하지도 않다. so-so. 한편 마음은 잿빛인 상태. 쨍, 하고 볕이 드는 것은 아주 짧은 순간. 때로는 태생적이라는 느낌도 든다. 이렇게 생겨먹었기 때문에 그 어떤 변화에도 이렇게 되어버리는.

 법정 스님의 책을 한 권 읽고 있다.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 그간 부지런히 채워오기만 하는 삶을 살아온 것 같다. 이력서의 공란을 메우기 위해 시험을 보고, 자격을 얻고, 토익 문제를 풀고, 대학원에 오고... 정작 마음이 허해지는 것은 돌보지 못한 채 고작 A4 한장의 이력을 채우기 위한 삶. 이젠 그렇게 쫓기듯 초조해가며 살지 않기를. 성실해야겠지만 마음은 비우겠다. 쉽게 비워지지 않을테지만 그러한 노력도 습관이 되면 분명히 언젠가는 달라질 것이다. 물리적 행복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것처럼 이젠 마음의 행복을 위해서 다시 노력해야 할 때. 무엇보다 집착하지 말 것. 나의 모든 번뇌는 그것으로부터 출발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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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8-01-10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페이퍼 하나에 득도의 깨달음이 마구마구 느껴지는 이 분위기는?

깐따삐야 2008-01-11 10:17   좋아요 0 | URL
제 장래희망이 사실은 김태희 '도사' 입니다.

2008-01-10 23: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11 10: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11 14: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12 0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로 2008-01-10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그는 집착이여라~.ㅎㅎ
엉뚱한 댓글이지만 전 지금까지 되돌아 봤을때
30대가 가장 이뻤다지요,,,^^;;;(외모상)
가장 이쁠 깐따삐야님,,,,,화이팅!!

깐따삐야 2008-01-11 10:22   좋아요 0 | URL
결국 저의 번뇌는 태그로부터 출발했군요. ㅎㅎ
전 아직 스물아홉이라서 덜 이쁜가 봅니다. 내년엔 얼굴도, 마음도, 더 이뻐지리라 기대할래요.

미미달 2008-01-11 0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법정스님좋아여 ♡
하트 뿅뿅

깐따삐야 2008-01-11 10:23   좋아요 0 | URL
꽃미남이 지나가시는 수녀님한테 휘파람 부는 것 같네요. 어째. ㅋㅋ

웽스북스 2008-01-11 12:49   좋아요 0 | URL
프하하하하하!!!! ㅋㅋㅋ

2008-01-11 1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11 1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웽스북스 2008-01-11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실해야겠지만 마음은 비우겠다"
클리어한 명문, 공감이에요. 이력서 한 줄을 위한 삶이란, 참 허망하고, 이력서 한 줄도 없는 삶이란 더 허망하고.

깐따삐야 2008-01-11 13:01   좋아요 0 | URL
'성실'은 항상 강조하는데 또 항상 의심스러워요. 이게 성실 맞나? 그러고. 이런 의심 자체가 불성실이야! 이러고. -_-
그냥 빨리 적응해 버린 다음 너무 힘들고 지겨워지면 조금 짬내서 방황하고... 그러면서 세월이 흘러갈 것 같아요.

비로그인 2008-02-03 0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어떤가요?
중앙도서관에 희망도서신청해놓구 아직 안읽어봤는데.
왠지 마구 끌리는 제목예요.^^
저두 폭력에는 겁을 먹고 도망치지만 제가 혹시나 아파할까봐 살살 정성스럽게 치료해주시구 마지막에 코에서 나온 피흔적까지 솜으로 살살 닦아주시는
이비인후과 의사선생님 앞에서는 토끼처럼 얌전해요. ㅎㅎ 저두 강아지과인가봐요. ㅎㅎ ^^*

깐따삐야 2008-02-03 02:26   좋아요 0 | URL
그 작품은 호오가 많이 엇갈리더라구요. 저처럼 좋아하는 사람은 아주 좋아하고, 싸이코 드라마 같다고 싫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책도 좋지만 비비안 리와 말론 브란도가 주연한 영화는 책보다 더 재밌답니다. 영화에서 비비안 리는 완벽한 블랑슈를 연기하죠.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우리가 날카로와지고 방어적이 될 때는 주변환경이나 사람들이 그래서이겠죠. 본래 타고난 성격도 있겠지만요. 저도 강아지과에요. 순하게 대해주면 한없이 착한데 까칠한 사람들 앞에선 저도 대단히 까칠해져요. 아니면 피해버리든가. ㅎㅎ
 

 아카데미 컬렉션 dvd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게리 쿠퍼나 몽고메리 클리프트 같은 클래식 꽃미남들, 배역에 모든 몸짓과 대사들이 그대로 녹아있는 듯한 명연기, 고전 작품을 재현한 탄탄한 스토리 구성, 오래된 도시처럼 나른한 흑백 화면... 화려한 디테일을 자랑하는 요즘 영화들보다 오히려 더 인상적이고 매력적이다. 여유가 있을 때 좋은 영화를 많이 봐야겠다. 공을 들인 리뷰도 좀 써보고.

 

 

 카사블랑카의 험프리 보가트는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거짓말을 한다. 머리가 좋기까지 한 로맨틱한 사나이, 현실에서도 과연 가능할까. 어딘가 이율배반적인 뉘앙스를 풍긴다. 영리한 로맨틱 가이라니.

 고전 영화 속 로맨스는 키스로 말하지 않고 눈빛으로 말한다. 잉그리드 버그만의 치열은 너무 고르고 단단해서 웃을 때마다 다소 아둔해 보였지만, 단정하고 감성적인 눈매와 촉촉한 눈빛 만큼은 최고였다. 

 말하지 않는 말은 여전히 강력한 포스를 발휘하는 것 같다. 시대가 바뀌어도 사랑은 구태의연한 방식이 가장 멋진 건지도.

 

 

 


 로마의 휴일. 로망의 그레고리 펙.
깜찍한 오드리 햅번과 수려한 그레고리 펙의 매력을 한껏 발산하는 영화.

 사람과 사람이 만나 정드는 건 순간이라지. 그 순간에 매몰되지 않고 미소로 간직한 채 돌아서는 두 사람.
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
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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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8-01-10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사블랑카는 대단히 매력적인 영화에요..제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이기도 하고요.주옥같은 명대사가 엄청 많이 나와요.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를." "내가 여자였다면 자네하고 결혼했을 거네." 등등.. 네거티브 필림은 그만큼의 세월만큼 그만큼의 매력이 존재합니다.^^

깐따삐야 2008-01-10 20:29   좋아요 0 | URL
잉그리드 버그만에게 썩 잘 어울리는 대사에요. 전 그녀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청순한 눈매와 빛나던 눈동자 만큼은 아직도 눈앞에 선해요.
요즘은 옛날 영화들이 좋아져요. 점점.

살청님, 이상하다뇨. 전 진지하신 메피님도 좋아요. :)

다락방 2008-01-10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깐따삐야님.
저 이거 볼래요, 볼래요.(캬~ 상품 넣기 하셨으면 완전 땡스투인데 말이죠.)
알라딘에 디비디 판매하나요, 이 두 영화?
예전부터 봐야지, 하고 맘만 먹었었는데 이 페이퍼 보고 완전 맘 굳혔어요.
볼래요, 볼래요!!

다락방 2008-01-10 17:51   좋아요 0 | URL
방금 주문했어요~~

(아, 행동 너무 빨라!)

깐따삐야 2008-01-10 20:30   좋아요 0 | URL
저는 '베스트 아카데미 수상작 컬렉션 (10disc)'으로 구입했어요.
좋아하는 영화들, 다시 보고 싶은 영화들이 잘 선별되어 세트로 나왔더라구요. 가격도 저렴했구요.
혹시 따로따로 주문하셨나요? 일찍 알려드릴걸.

다락방 2008-01-10 22:17   좋아요 0 | URL
아니요, 아카데미 수상작 컬렉션으로 구입했어요. :)

깐따삐야 2008-01-11 10:03   좋아요 0 | URL
그러셨구나. :)

비로그인 2008-01-10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현대 여성보다 예전의 여성들, 저 고전 미인들이 더 좋습니다.
기품 있고 우아한 천연적인 미를 느낄 수 있달까. 게다가 다들 얼굴의 개성까지.
요즘같이 '이 사람이 저 사람 같고, 저 사람이 이 사람 같고' 같은 성형 미인들이 아닌.

깐따삐야 2008-01-10 20:32   좋아요 0 | URL
엘신형님은 역시 눈이 높으시군요! 성형해도 그냥 이쁘면 돼, 이런 남자들이 훨씬 더 단순한 거라니까요. ㅋㅋ

다락방 2008-01-10 22:16   좋아요 0 | URL
앗. L-SHIN님.
그럼....


절 좋아하시겠군요!!

깐따삐야 2008-01-11 10:06   좋아요 0 | URL
일단 선글라스를 벗어보시죠. 다락방님. ㅋㅋ

다락방 2008-01-11 11:26   좋아요 0 | URL
그...그....그건..... OTL

비로그인 2008-01-11 11:41   좋아요 0 | URL
아쿵- 다락님같이 멋지고 아름다우신 분을 어찌 마다하겠습니까.( >_>)
게다가 어찌 잊겠습니까, 우리의 상콤살벌한 죽음의 백세주를.ㅋㅋ

깐따삐야 2008-01-11 12:55   좋아요 0 | URL
어므낫. 두 분이 백세주도 같이 마셨단 말예요오?
저랑은 요구르트 한 병을 같이 안 마셨으면서 말이지요. 너무들 하신다.

다락방 2008-01-11 13:18   좋아요 0 | URL
앗, 깐따삐야님!
그 유명한 만남의 사건을 모르시는군요. 죽음의 백세주릴레이, 였던가요, L-SHIN님? 후후훗.

어딘가 뒤져보면 아프락사스님, L-SHIN님의 후기가 있을텐데 말여요. 훗 :)

깐따삐야 2008-01-11 13:27   좋아요 0 | URL
재밌었겠어요.^^
하지만 과거를 돌아보기 보다는 현재를 만들어 가야지요. 흠흠!
저랑 보리차라도 한 잔 하시죠. 다락방님.

프레이야 2008-01-10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에 그런 컬렉션이 있었군요.
언능 담아야겠어요.
전 잉그리드 버그만도 좋지만 오드리 햅번이 더 좋아요^^

깐따삐야 2008-01-11 10:08   좋아요 0 | URL
컬렉션도 몇 가지 종류가 있는 것 같던데 로마의 휴일이 포함된 것을 찾아서 골랐지요. 저도 깜찍발랄 공주님, 오드리 햅번이 더 좋아요.^^

Mephistopheles 2008-01-10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 컬렉션에 "지상에서 영원으로"은 있지만 "젊은이의 양지"가 없군요..
몽고메리 클리프트란 배우의 매력이 물론 지상에서 영원으로 에도 잘 묘사되지만 그 우수어린눈빛만큼은 젊은이의 양지가..압권인데..아쉽네요.

깐따삐야 2008-01-11 10:10   좋아요 0 | URL
'지상에서 영원으로'에서 몽고메리 클리프트 연기를 처음 봤는데 미남이기도 하지만 아주 단단한 배우란 느낌이 들더라구요. '젊은이의 양지'도 보고 싶어요. 아마 다른 컬렉션 세트에 포함되어 있을 것 같아요.

라로 2008-01-10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편 다 제가 좋아라하는 영화에욥!!
전 옛날에 샀어서 다 비싸게 샀는디~.흑
암튼 것보다
저런 흑백영화에는 품위가 있었는데,,,,-.-*

깐따삐야 2008-01-11 10:13   좋아요 0 | URL
나비님은 왠지 로버트 테일러 같은 배우를 좋아하실 것 같아요. :)

순오기 2008-01-11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우리 학창시절엔 흑백으로 방송되는 '명화극장'을 보고 월요일마다 매니아들끼리 토론이 활발했어요. 그땐 정말, 내노라하는 명화만 하는 '명화극장'이었는데......이 영화들도 여러번 봤지요. 꿈속에도 그려지는 영화. 그레고리 펙, 너무 좋아요!

깐따삐야 2008-01-11 10:16   좋아요 0 | URL
저도 어릴적에 MBC명화극장, KBS토요명화로 봤던 영화들도 많아요. Once upon a time in America 같은 영화는 러닝타임이 무지 길어서 새벽까지 혼자 담요 쓰고 보기도 하고 그랬어요.^^
저도 그레고리 펙 완전 좋아해요. 왜 요즘은 그런 배우가 없는 걸까요. -_-
 

가면우울증

- 강기원


나는 즐겁다
(즐거워야 한다)

나는 너그럽다
(내 심장은 퀼트처럼 조각나 있다)

나는 웃는다
(울음은 멈춰지지 않으므로)

나는 늘 기도한다
(십계명의 '하지 말라'가 '하라'로 읽힌다)

나는 노래한다
(내 귀를 막고)

나는 아픈 적이 없다
(병명을 모른다)

얼굴 위에 얼굴을 덧씌운다
(버릇이 되면 숨 막히지 않는다)

나는 나다
(나는 내가 아니다)


- '세계의 문학' 제32권 4호(2007 겨울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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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8-01-08 0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덧글아래 덧글을 덧씌운다
(버릇이 되면 잠도 오지 않는다)

살청님 스페셜 버전
입 안에 수건을 덧씌운다
(버릇이 되면 웃음소리가 새나가지 않는다)

깐따삐야 2008-01-08 02:13   좋아요 0 | URL
이 방이 좀 한가하죠?
패로디 이벤트 해야겠다. 웬디양님이 따논 당상일세. 넘 웃겨. ㅋㅋㅋㅋ

웽스북스 2008-01-08 0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 이제 자러 갈거에요

깐따삐야 2008-01-08 02:17   좋아요 0 | URL
옹! 좋은 생각이에요. 언능 자요. 언능! 명동교자칼국수 기대기대.^^

웽스북스 2008-01-08 02:19   좋아요 0 | URL
나는 잠든 적이 없다
(입술을 깨문다 ㅠㅠ)

나는 하품한 적이 없다
(눈물이 흐른다 ㅠㅠ)

깐따삐야 2008-01-08 02:22   좋아요 0 | URL
웬디양은 잔다
(자야 한다)

깐따삐야는 졸린 적이 없다
(낮밤을 모른다)

Mephistopheles 2008-01-08 0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보시요들 설교시간 다가오는데 교인들이 안보이오..

깐따삐야 2008-01-08 12:19   좋아요 0 | URL
진심으로 경의를 표합니다.

프레이야 2008-01-08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십계명의 하지말라가 하라로 읽힌다.
이거이 확 땡겨요 ㅎㅎ

다락방 2008-01-08 10:14   좋아요 0 | URL
십계명의 하지말라가 하라로 읽힌다.
이게 땡기는 두번째 人 이로군요, 저는. 훗 :)

깐따삐야 2008-01-08 12:21   좋아요 0 | URL
저두요! ㅎㅎ

Mephistopheles 2008-01-08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오면우울증은 뭔가요?? (시비돌이님 성대묘사가 아닌 댓글묘사)

깐따삐야 2008-01-08 22:17   좋아요 0 | URL
그건 저한테 묻지 마시구요.
우울증 전문가이신 로쟈님께 자문을 구하시길! ㅋㅋ

웽스북스 2008-01-09 00:54   좋아요 0 | URL
아 나 그거 하려다가 참았는데 ㅋㅋ

비로그인 2008-01-08 1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거 좋네. ^^
그런데 요즘 이게 유행인가...글은 감동~ 댓글은 코메디...=_= ㅋㅋ

깐따삐야 2008-01-08 22:19   좋아요 0 | URL
형님이 좋으시다니 저두 기뻐요.^^
살청님도 저러다 마시겠죠 머.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