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한반도의 공룡>이라는 EBS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약육강식의 공룡 세계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점박이’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였다. CG와 시나리오가 훌륭해서 웬만한 영화보다도 훨씬 나았다. 돌이켜보면 인상에 남는 다큐들이 꽤 있다. EBS의 <명의>도 좋았고 MBC의 <타샤의 정원>도 좋았다. 우리나라 방송사들은 다큐멘터리만큼은 참 잘 만든다는 생각이 든다.

  커피를 사느라 상영시간에 딱 맞추다시피 입장했는데 예상보다 관객이 많아 깜짝 놀랐다. 극장 맨 구석의 비좁은 개봉관으로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old partner를 보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었다. <체인질링>이나 <워낭소리>를 볼 때 곁에 앉은 관객들은 서로 은밀한 공모라도 한 것처럼 반갑다.

  이 다큐에 대해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삶 그 자체로 말을 거는 작품에 대해서는 그저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아픈 머리를 싸매고 불편한 다리를 끌면서도 소 먹일 꼴을 베러 가는 할아버지, 9남매를 공부시키고도 모자라서 일어서지 못하는 그날까지 노부부를 위해 땔감을 잔뜩 실어다 준 소, 그리고 그 둘 사이를 질투하고 염려하면서도 할아버지 없으면 못 산다고 고백하는 할머니. 그렇게 동고동락한 40년의 세월 앞에서는 가타부타 어떤 말도 나오지 않는다.

  어릴 적에 우리 집에서도 소를 키웠었다. 중3때까지 살았던 고향집. 정면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편으로 우리 집이 있었고, 가운데 마당에는 누렁이집, 오른편에 외양간이 있었다. 외양간 안에는 조그맣게 토끼장이 있었고 그 옆으로 여물을 써는 작두와 사료포대들이 있었다. 그리고 안으로 좀 더 들어가면 큰 눈을 껌벅거리며 밥 달라고 음메 거리는 소들이 보인다.

  그때는 소를 키운다고 하지 않고 ‘소를 먹인다’는 표현을 썼다. 그 집은 소를 몇 마리나 먹여? 동네에 일소로 직접 논이나 밭을 가는 할아버지도 계셨지만 대부분의 집은 목돈을 마련할 목적으로 소를 먹였다. 암소는 송아지를 낳게 할 목적으로, 황소는 잘 먹여서 내다 팔 목적으로 키우곤 했던 것이다. 부모님이 집에 안 계신 날이면 학교에서 돌아와 점심을 챙겨 먹기 전에 소밥부터 주었던 기억도 난다. 어렸지만 어렴풋이나마 소가 얼마나 중요한 구성원인지 느꼈었나 보다.

  낮부터 긴장된 분위기가 감돌고 합기도장을 운영하던 아저씨가 우리 집에 오는 날이면 소가 송아지를 낳았다. 다큐 속 할머니처럼 우리 엄마도 소가 황송아지를 낳으면 더 좋아하셨다. 노루 새끼처럼 연약해 보이는 송아지는 몇 번 비틀거리다가는 벌떡 일어선다. 어미 소는 송아지를 핥아주며 모두를 경계하고 엄마는 솥에 정성껏 국을 끓이셨다. 동네 아저씨들이 마실을 왔다가 외양간에 들러 송아지를 구경했고 그땐 나도 왠지 뿌듯한 기분이었다. 그 송아지가 자라 어디론가 팔려가고 외양간의 한 자리가 텅 비었을 땐 막연히 슬프고 아쉽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올해가 마침 소띠해다. 돌아가신 할아버지도 소띠였다. <워낭소리>의 할아버지처럼 우리 할아버지도 평생 손에서 일을 놓지 않으셨다. 막걸리를 마시며 힘을 내는 소처럼 할아버지도 술기운으로 고된 농사일을 견뎌내시곤 했다. 내가 할아버지, 하고 부르면 항상 네가 선희냐? 하셨는데 할아버지는 물론 내가 선희가 아니란 걸 알고 계셨다. 선희는 나와 자주 다투던 이웃집 여자애였다. 할아버지식 애정표현이었다. 할아버지, 점심 드시고 하세요, 라고 말하면 먹고 싶어도 먹을 새가 없다, 라며 바쁘게 일하시던 모습. <워낭소리>의 할아버지가 머리가 아파 힘들어 하시는 모습을 보니 우리 할아버지가 떠올라서 조금 짠했다. 나는 사실 살아생전 할아버지의 모든 면을 다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쉼 없이 참 성실히 사신 분이라는 것은 잘 안다. 그리고 어른이 되고 난 지금, 그 무던한 성실함이 할아버지의 특별했던 손재주나 유머감각보다 훨씬 더 큰 재능이자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이 한 편의 엉성한 다큐는 이렇듯 나를 유년기로 천천히 몰고 가더니 가슴에 송아지 눈망울 같은 물여울을 하나 만들었다. 

  그나저나 소식을 듣자하니 다큐 속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찾아가 괴롭히는 몰상식한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하여간 요즘처럼 타인에 대한 배려나 죄의식이 없었던 시절도 드물 것이다. 무턱대고 남의 터전에 쳐들어가서는 말 시키고 사진 찍고. 그리고는 뭐 느리게 살자는 둥 식상한 수다를 늘어놓겠지. 제 손으로 폭우에 쓰러진 벼 한번 묶어보지도, 뙤약볕 아래서 콩밭 한번 매 보지도 않은 것들이 살아보지도 않은 삶에 대해 함부로 지껄이며 쌩쇼를 하는 것이다. 그렇듯 개인적으로 지분대는 것을 넘어서 이런저런 언론사가 작당을 해서 범국민적 지분댐으로 나아가면 그만한 꼴불견도 없을 것이다. 있는 듯 없는 듯 자연에 순응하며 열심히 사시는 분들을 괴롭힐 게 아니라, 사흘이 멀다 하고 열받게 하는 그치들한테나 가서 카메라를 들이대고 캐물어라. 왜 그렇게 사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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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9-02-05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만든 다큐 하나는 열 블럭버스터 부럽지 않는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준 다큐였어요..^^

깐따삐야 2009-02-06 17:08   좋아요 0 | URL
메피님 말씀이 아주 딱입니다요! ^^

L.SHIN 2009-02-07 0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전에 우연히 EBS의 공룡, '점박이'의 다큐를 재밌게 보았습니다.
이 영화의 제목이 <워낭소리> 였군요. 왜 제목이 워낭소리일까는 나중에 보면 알겠죠.
전에 이 영화가 제작되고 개봉된다, 내용은 이렇다..라고 들었을 때 눈물이 날 것 같았죠.
왠지 저는 보면 많이 울 것 같습니다. (웃음)

깐따삐야 2009-02-08 14:31   좋아요 0 | URL
'한반도의 공룡' 보셨군요. 참 잘 만들었더라구요. 한층 업그레이드 된 라이온 킹의 공룡 버전이랄까. 아주 흥미진진하게 봤습니다.

왜 워낭소리인지는...^^ 직접 보세요. 형님은 분명 우실 거에요. 저도 숨을 못 쉬었어요. 잠시.

순오기 2009-02-13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집 가까운 극장에서는 이런 영화를 안 걸어요~ ㅠㅜ

깐따삐야 2009-02-16 00:07   좋아요 0 | URL
안타까워요. 순오기님도 정말 좋아하실 영화인데 말이죠.ㅠ
 

  절기는 못 속인다고 입춘다운 날씨였다. 아침에 짙은 안개가 끼었지만 정오 무렵 안개가 걷히기 시작하자 하늘은 온화한 푸른색을 띄었다. 좀 더 가까이서 봄기운을 느끼고 싶어 근처 산성에 갔다. 평일인데도 산악회 사람들이 곳곳에 많이 보였다. 고사를 지내는 모습도 보이고 호일에 싸온 김밥을 먹는 모녀도 있었다. 등산 모자 아래 알록달록 곱게 화장한 할머니들이 남편과 나를 빤히 쳐다보며 지나갔다.

  남편은 자주 넘어지는 내게 걷는 법부터 가르쳐 주었다. 발끝으로 걷지 말고 뒤꿈치가 먼저 닿도록 또박또박 걸으라고 했다. 안개를 품은 능선과 산에 걸린 구름에 감탄하자 언젠가 지리산 노고단에 한번 가자고 했다. 구름이 내 발 아래서 휘몰아치고 다시 그 구름이 산봉우리에 부딪치며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모습을 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하얀거탑’ 이후로 다른 드라마들이 시시해졌듯 지리산을 한번 다녀오고 나면 다른 산들에 쉽게 마음을 줄 수가 없단다. 딴지를 걸 틈도 없이 지리산에 가고 싶어졌다.

  봄을 기다리는 산성은 고요하고 아늑했다. 내 목소리만 너무 큰 건 아닐까 싶어 목소리를 조금 낮추어야 했다. 명색이 산인데 아직 추울 거라 생각하고 챙겨 입었던 파카는 조금 덥게 느껴졌다. 평소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인데 등에 땀이 솟고 두 발이 더워지는 느낌이 참 좋았다. 코끝에 은은히 스미는 솔잎 향과 부드럽게 내리쬐는 햇볕이 나와 내 주변을 공평하게 품어주고 있었다.

  운동 부족으로 내리막길에선 자연스럽게 후들거리며 게다리춤을 추었고 남편은 손을 잡아주었지만 나는 그런 내가 재밌어 계속 게다리춤을 추며 내려왔다. 호젓한 숲속에 웃음소리가 퍼졌다. 입을 꼭 다문 봉오리들이 가냘픈 나뭇가지에 단단히 매달려 있는 것을 보고 너희들은 참 조용하고 성실하구나 싶었다. 그렇듯 단단하고 조용하고 성실한 것을 볼 때면 숙연해진다. 자연이 불러일으키는 당연한 심상인데도 요즘은 어째 더욱 그렇다.

  오랜만의 외식. 얼큰한 육수에 쑥갓향이 좋은 칼국수. 테이블엔 밥맛없는 중앙일보가 놓여 있고 보나마나 글들 참 자알 쓴다. 세계김치연구소 까지는 좋은데 이명박 아이디어라고 굵은 글씨로 박아놓았다. 하여간 툭툭 던지긴 잘한다. 새로운 것도 좋지만 당장 하라는 거나 잘했으면 좋겠다. 강호순이 사이코패스의 전형이라는데 우리나라 대통령은 자수성가한 아집쟁이의 전형을 보여준다. 둘 다 연구 대상이기는 매한가지이다.

  저녁엔 엄마가 끓여주신 냉이된장국을 가지고 왔다. 냉이국을 끓이고 달래무침을 하고 봄동으로 겉절이를 만들기 시작하면 봄은 시작된 것이다. 냉이, 달래, 봄동... 봄을 알리는 귀여운 이름들. 새삼 우리말이 참 예쁘단 생각을 한다. 이렇듯 귀엽고 예쁘고 좋은 것만 생각하기에도 하루가 짧고 계절 또한 순식간에 바뀌어 간다고 생각하니 아쉬운 마음. 자연은 인간이 깝치지 않는 한 항상 무자극의 위안을 준다. 잠깐 산에 다녀온 것뿐인데도 심신이 조금은 맑아진 기분이다. 이 기분이, 오래 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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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02-04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입을 꼭 다문 단단한 봉우리들이 곧 화알짝~~ 벌어지겠죠.
아름다운 신혼일기, 산행일기 되시것습니다~ ^^

깐따삐야 2009-02-05 19:33   좋아요 0 | URL
꽃이 피면 한번 더 가려구요. 한 시간 남짓한 코스라 걷기에 딱 좋더라구요.^^

Mephistopheles 2009-02-04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말라야를 가보는 겁니다 아자! 거기 가면 세게 어느 산도 다 시시해진다고 합니다.

깐따삐야 2009-02-05 19:33   좋아요 0 | URL
어랏. 그렇군요!

turnleft 2009-02-05 0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 본 사람들은 또 히말라야보다는 킬리만자로가 제 맛이라고..;;

깐따삐야 2009-02-05 19:33   좋아요 0 | URL
아이고. 그렇군요!! ㅋㅋ

레와 2009-02-05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먼지쌓인 배낭이랑 스틱을 꺼내놓고, 산에 갈 준비를 시작하렵니다!^^

봄동 겉절이 하나면 밥 한솥은 거뜬(?)하게 해치우는데..아항~ ㅎㅎ

깐따삐야 2009-02-05 19:35   좋아요 0 | URL
저는 깜빡하고 카메라를 안 들고 갔는데 레와님은 산에 가시면 좋은 사진 많이 찍어 오세요.^^

한솥이란 말에서 따듯한 유대감을 느낍니다. 쿡쿡~
 

  MBC 토크쇼에 나온 부활의 김태원이 그런 말을 했다. “학생 시절에 한 번도 차여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곡을 쓸 수 없습니다.” 3등은 괜찮지만 3류는 안 된다고 말해서 탄성을 지르게 만들던 김태원. 그는 노래만 잘 만드는 게 아니라 말도 참 잘한다. 이번에도 그의 말은 옳다. 네버엔딩 스토리 같은 명곡을 쓰지 못하는 범인들도 한 번 차여보지 않고 어른이 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있다 하더라도 별로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다.

  나와 남편은 목에 마구 힘줘가면서 소개팅만 나가면 백전백승이었다느니,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나한테 대쉬한 사람들이 수두룩하다느니, 한 번도 차여보지 않은 것처럼 구라를 치는 일이 빈번한데 물론 서로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는다. 남편은 성격 상 호되게 차였어도 조용히 집에 돌아와 발 뻗고 주무실 타입이고 나는 한 며칠 자학하다가 다른 사랑을 찾아 헤매는 타입. 듣자하니 그는 일찍이 대학 동기한테 차였었고 나는 동아리 선배한테 차였었다. 최초의 차임이었다.

  D선배. 과거에 좋아했던 사람을 떠올리면 얼굴이 훅훅 달아오르며 내가 왜 그런 사람을 좋아했을까 의문이 들 때가 있는데 그 선배만큼은 군계일학이다. 가끔은 그를 좋아했다는 사실이 뿌듯할 때까지 있다. 나의 안목은 그때가 최상급이 아니었을까. 남편은 내가 만나보았던 남자 중에 가장 착한 남자고 그 착함은 미덕이지만 갓 스물을 넘긴 그때. 내게 착해빠진 남자는 물에 빠진 남자만도 못했다. 닿을 수 없는 것들에 이끌리던 나이였다.

  동아리 현동인 중 최고학번이었던 D선배. 사실 그는 나를 아기 보듯 했었다. 문제는 나를 귀엽게 바라보던 그 눈빛을 내가 사랑으로 착각했다는 데 있었다. 나중에 깨달은 건데, 착각은 자유지만 그 자유에 매몰될 지경에까지 이르면 안 된다. 늘 스스로를 냉동실에 건냉보관 해두었다가 잠시잠깐 외출을 한 것처럼 보이던 그가 내게 시종일관 따듯한 태도를 보였을 때, 나의 므흣한 상상력은 무한정 나래를 펴기 시작했다. 그때는 그 설렘만으로도 벅차서 선배에게 닿기까지의 절차를 생각하거나 계획할 수조차 없었다. 별별 생각을 다하다가도 마주치는 순간 얼음! 하고 굳어버렸다. 결국 싹튼 연정을 되새김질만 하다가 선배가 졸업과 동시에 이 도시를 떠나고 나서야 고백이란 걸 했다.

  정확히 일주일 후 선배는 아주 공들여 쓴 메일을 보내왔다. 작품성 높은 거절 편지. 그는 장문의 메일 속에서 오히려 나의 생뚱맞은 고백을 칭찬해주고 있었다. 그 나이 땐 그래야 한다고. 다 쏟아버리는 것도 좋다고. 젠틀하게 차는 방법을 아는 남자였다. 내가 울지 않도록 여기저기 당의정을 발라놓아서 이런 메일을 받고 차였다는 것을 동네방네 떠들고 싶을 정도였다. 그는 나를 많이 아껴주었는데 그 글 속에서도 여전히 아끼고 있었다. 그 느낌이 전해져 오자 나는 나의 급작스런 고백이 오히려 미안해졌다. 그래도 거절은 거절이고 차인 건 차인 거고 아픈 건 아픈 거였다. 상처 입은 나는 읽고 난 즉시 메일을 삭제했다. 거절 편지는 작품성과 상관없이 소장가치가 없는 글 중 하나다.

  그 이후 몇 차례 그의 홈피를 들락거리고 휴대폰을 쏘아본 적은 있지만 단 한 번의 연락도 하지 않고 깨끗이 돌아섰다. 돌아서지 않으면 어쩌라고. 조바심이 날 때마다 스스로를 윽박지르며 위협했다. 네가 그만두지 않으면 어쩔 건데. 얼마 후 먼저 연락을 취해온 것은 선배였고 그 후로는 고백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착각의 자유가 함께 한 추억까지 매몰시키지 않아 다행이었다. 하지만 아픔은 깊어 한동안 오래도록 아무도 좋아할 수 없었다. 지금은 가까스로 안도의 한숨을 쉰다. 그쯤에서 그치길 잘했다. 짝사랑의 추억이 스토킹 전과로 변질되는 건 순간이다.

  가수 이소라는 실연 이후에 앨범을 한 장 씩 발표한다고 들었다. 김태원은 첫사랑의 기억을 떠올리며 ‘사랑할수록’을 썼단다. 나는 예술가가 아닌 탓에 수많은 일기를 쓰고 동아리에 나가 어줍은 시들을 발표했다. 친구들에게 가차없는 연애 상담도 해줬다. 절대 먼저 고백하지 마. 그리고 아니라고 생각되는 순간 깨끗이 돌아서. 그렇듯 뻣뻣하게 곧추세우기엔 목도 허리도 예전 같지 않지만 지금도 비슷하게 충고한다. 웬만하면 먼저 고백하지는 마. 그리고 아니라고 생각되는 순간 웬만하면 그냥 돌아서. 자존심도 뭣도 아니다. 정답도 아니다. 임상경험에 비춘 나름의 조언이다. 더욱이 내가 하라고 해도 안 할 사람은 안 하고 하지 말라고 해도 할 사람은 하고야 만다. 다만, 추해지면 안 된다. 자칫하면 내성이 생겨 습관된다.    

P.S. 이쯤에서 김석기 씨에게도 한 마디. 그렇게 뭉개고 있으니 추하다 못해 너절해지는 거다. 마치 부모 빽 믿고 돈으로 사랑도 살 수 있다며 징징거리는 막장 드라마 속 찌질녀 같다. 내가 차여본 사람으로서 충고하는데 국민들이 좋은 말로 거절할 때 떠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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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9-02-04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참, 본문은 아릿해서 좋고, P.S는 의외의 반전을 주어서 좋잖아요. 첫 차임이 언제인가 생각할새도 없이, 고2때... -_- 그땐 제가 왜 그랬나 모릅니다. 내가 그녀였어도 나를 찰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근데, 나중에 친구로 지냈는데, 그땐 그 아이가 여자로 보이지 않았어요. 고2때 스스로 많이 힘들었고나, 생각했어요.

"남편은 성격 상 호되게 차였어도 조용히 집에 돌아와 발 뻗고 주무실 타입이고 나는 한 며칠 자학하다가 다른 사랑을 찾아 헤매는 타입" 요고요고. 깐따삐야님이 어찌하고 있을지 막 떠올라요.

깐따삐야 2009-02-04 20:22   좋아요 0 | URL
저도요. 그땐 왜 그랬나 싶고 제가 선배였어도 저를 거절할 수밖에 없었을 거에요. 나중에 다시 만났을 땐 그 선배가 남자로 보이지 않더라구요.^^

흐음? 대체 막 뭘 떠올리신 거죠!!

Mephistopheles 2009-02-04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그러니까 본격적으로 연애를 하는 연인이였다가 차인게 아니였군요.
그럼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까요. 연인으로 잘 지내다가 갑자스런 절교선언..한달 고생하고 새출발 아자 했더니..너만한 애 없다며 다시 시작하자는...하지만 방긋 웃으며 한달 (델고 놀다) 장렬하게 뻥 차버린....

음...난 그냥 24부작 장편소설 써볼까해요..ㅋㅋ

깐따삐야 2009-02-04 19:57   좋아요 0 | URL
일년을 선후배로만 지내다가 사겨보지도 못하고 차인 경우죠. 흑!
저런저런. 메피님의 차임은 마치 삽질의 추억처럼 들립니다. 사랑하는 여인에게 만큼은 약하디 약한, 로맨틱한 마당쇠, 우리 메피님.^^

모든 것은 지나가고 과거는 아름다운 거에요. 정말 한번 써보세요!

Mephistopheles 2009-02-04 23:13   좋아요 0 | URL
저기...저기 장렬하게 뻥 차버린 사람이 전데요..

깐따삐야 2009-02-04 23:32   좋아요 0 | URL
헉! 메피님이 그래서 지금 마당쇠로 쐬빠지게 고생하고 계신 거여요. 세상은 공평한 거죠.

Mephistopheles 2009-02-05 09:40   좋아요 0 | URL
어머 깐따삐야님..제 연애사관은 '낙장불입'입니다. 지가 싫어 떠났다가 아쉬워서 돌아온다고 받아주진 않아요.^^

깐따삐야 2009-02-05 19:36   좋아요 0 | URL
델고 놀다, 델고 놀다, 델고 놀다... 그건 너무하잖아욧. ㅠㅠ

Mephistopheles 2009-02-06 02:18   좋아요 0 | URL
뿌린 대로 거두는 겁니다....^^(델고 놀다란 표현을 쓰긴 했지만..정확히 말하면 굉장히 무신경하게 대했다가 맞을 것 같네요..^^)

깐따삐야 2009-02-06 17:11   좋아요 0 | URL
음... 그렇다면 이해가 되요. 매우 진심으로 잘못했다고 해도 받아줄까 말까인데 너만한 애 없다며 다시 시작하자니. 그건 쫌 너무하네요. 감히 우리 메피님을 물로 보고 말이죠. 중얼중얼.

레와 2009-02-04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곤노곤 몽실몽실 홍홍 거리며 읽어 내려오다가,
PS에서 푸하하하하하 박장대소 했습니다!!
(저에겐 웃을 타이밍이였으니, 쌩뚱맞는 웃음이라 머라하기 없기. ^^;)


그래서 제가 마음이 힘들때는 가사있는 음악을 안들어요. ㅋ

깐따삐야 2009-02-04 20:25   좋아요 0 | URL
썩소 맞죠? ㅋㅋ

그쵸. 평소엔 들리지도 않던 가사들이 아주 콕콕 가슴을 후벼파죠. 가사를 못 알아듣는 샹송을 들어도 내 얘기로 자동 번안되어 들리는 신기한 경험. 크... 괴로워요.

순오기 2009-02-04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런 페이퍼는 막 추천해야 돼요. 피에스 너 때문이야~ ㅋㅋ

깐따삐야 2009-02-05 19:37   좋아요 0 | URL
강호순은 무섭고 김석기는 싫어요. 정말 싫어욧!
 

  운전할 때 보면 성격이 보인다고 나와 남편은 참 다르다. 남편이 옆에 탄 사람을 어느 순간 곤히 잠들 수 있게 하는 마일드한 드라이버라면, 나는 일주일 꼬박 불면으로 보낸 사람조차 절대 잠들 수 없게끔 만드는, 터프하기 짝이 없는 드라이버다. 아빠는 예전에 내게 운전을 가르치시다 포기할 지경에 이르러서는 얘는 면허를 야매로 딴 것 같다고까지 하셨다. 물론 나는 그 어렵다는(!) 국가고시를 필기, 실기 모두 한 번에 패스했다. 그러나 암기력으로 승부한 테스트란 실전에 직면해서는 힘을 잃기 일쑤다. 돌발 상황에서 잽싸게 비상 버튼을 누르는 일은 운전 학원에서나 가능한 일.

  예전에 한 번은 브레이크를 밟아야 할 순간에 엑셀을 밟았다가 스쿠터와 충돌할 뻔 한 적도 있었고 얼마 전에는 공사 현장에 쌓아놓은 모래더미 위로 차가 막 등산도 했다. 그뿐인가. 아파트 단지 내의 턱을 넘어보겠다고 부르릉거리다가 웬만해선 터질 일 없는 타이어까지 해먹었다. 덕분에 빨간 견인차가 와서 나와 내 차를 질질 끌고 가는 이색 체험을 했다. 급기야 면허 딴 지 몇 년씩이나 지난 마당에 남편은 굵고 진하게 프린트를 해서는 ‘초보운전’ 이라고 붙여주었다. 운전 초기에 그렇게 써 붙이고 다녔다가 빵빵거리며 놀려먹는 불량 운전자들 때문에 짜증이 났었다고 했더니 남편 왈. 요즘은 그런 사람들 별로 없어요. 그리고 저렇게라도 해놓아야 알아서들 피해가지. 남편은 이렇듯 나를 특별관리대상 드라이버로 낙인찍어 버렸다.

  사실 술을 마시고 운전한 적도 물론 없고 운전을 하면서 되도록 딴 생각을 안 하려고 하는 편인데 성격이 좀 급하다는 게 문제다. 처음 도로에 나왔을 땐 어차피 신호에 걸릴 텐데 속도를 내거나 추월하는 차들을 이해 못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그러고 있다. 연애 시절, 드라이브를 하던 중에 남편한테 왜 내 이야기를 듣고 있었으면서 못 들은 척 하는 거냐고 따진 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운전 중에는 봐야 할 것도 많고 조심해야 할 것도 많아서 그렇다고 변명 했었다. 나는 괜히 둘러다대지 말고 솔직하게 다른 생각 하고 있었다고 이실직고하라고 했는데 사실은 부러 억지를 써 본 것일 뿐. 운전할 때는 항상 긴장을 하고 주변을 잘 살펴야 한다. 특히 낯선 길을 갈 때는 더욱 그렇다. 또한 아무리 익숙한 길도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어쨌든 내 차를 타고 이동하는 날이면 남편 얼굴이 금세 핼쑥해진다. 내가 운전하니까 편하지! 편하지! 아무 걱정 말고 자요! 남편 왈. 잠이 와야 잠을 자죠... 만만한 길이 나왔을 때 언제 또 속도를 낼지도 모르는데다 무슨 말이라도 시키면 대답할 것을 생각하느라 좌회전해야 할 타이밍에 직진을 하는 등 마구잡이로 운전을 해대니 불안할 수밖에. 남편은 안전벨트를 꼭 쥐고 옆에 손잡이까지 붙든 채로 조심스럽게 말하곤 한다. 이러다 부산까지 가겠어요. 운전할 때는 제발 운전만 생각해요. 에이그~ 다 알아서 집에 모시고 갈 테니까 걱정 마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내가 고집을 부리지 않는 한 남편은 가급적 자기 차로 이동을 하는데 나는 하루빨리 능숙한 드라이버가 되어서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갈 수 있는 기동력을 갖추고 싶다. 조심 운전은 필수지만 너무 겁을 내다보면 아무 것도 배울 수가 없다. 범퍼를 긁히고 타이어를 교체하면서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 경험도 해봤지만 세상에 공짜 수업이 어디 있겠는가. 특히 운전은 많이 해봐야 는다. 그런 고로, 영화 상영 시간을 기다리다가 잠깐 오락실에 들러 하는 게임도 무조건 운전이다. 남편은 이러한 나의 질긴 의지에 공포 가득한 눈빛으로 응원을 보낸다. 나는 신나게 엑셀을 밟고 점점 커지는 남편의 목소리. 좀더! 좀더 밟아! 이러한 외침은 안타깝게도 오락실에서만 가능하다.

  나는 오늘도 베스트 드라이버를 꿈꾼다. 주변의 이야길 들어보니 운전에 익숙해지고 잘한다 싶을 때 사고가 생긴단다. 정말 그런 것 같다. 처음 핸들을 잡았을 때는 60 이상 속도를 내는 것도 겁이 났었는데 이제는 옆의 자동차들과 레이싱이라도 할 것처럼 밟아댄다. 이러시면 아니 된다. 아니 돼. 베스트 드라이버는 빨리 달리는 운전자가 아니라 안전에 주의하는 운전자라는 것을 늘 염두해야겠다. 험한 드라이버를 만난 탓에 거의 연습용 차량처럼 되어버린 가엾은 나의 꼬마자동차. 붕붕. 너와 함께 한 시간들이 헛되지 않도록 내 머잖아 너를 능숙하게 다뤄 줄지어다. 남편이 조수석에서 곤히 잠드는 그날까지. 고고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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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9-02-02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F1 레이서의 전설이라고 불리우는 마이클 슈마허도 공공도로에선 절대 과속 안하며 신호를 꼬박꼬박 지킨답니다..^^ 사고는 자신이 운전에 자신감이 붙었을 시기인 3~4년에 제일 많이 일어난데요 아무쪼록 운전할때만큼은 남편분 말 잘듣는 순한 깐따삐야님이 되시길..^^
(그나저나 운전하는 남편에게 따지는 모습을 보니..모뙤꾸나 깐따님!!=3=3=3)

깐따삐야 2009-02-02 12:04   좋아요 0 | URL
역시 달인은 달려서 달인이 아니라 달라서 달인이구나. 이제 운전할 땐 고분고분하겠사와요. 과연? ㅋㅋ
(아녜요. 진짜 딴 생각하는 줄 알고 승질이 났던 거에요. 가끔 그럴 때 있다니깐요. 중얼중얼.)

레와 2009-02-02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처음 운전을 시작했을때 이런 질문을 했더랬습니다.
'언제쯤이면 운전에 익숙해질까요?'
'운전은 절대 익숙해지지 않아요. 조심 또 조심해야 합니다.'
우문현답, 부끄러웠습니다.으..;;

안전운전하세요! ^^

깐따삐야 2009-02-02 18:43   좋아요 0 | URL
'운전은 절대 익숙해지지 않아요' '당황하면 가끔 후진합니다' 이래로 가장 와닿는 명언이네요.

레와님도 안전운전이요! ^^

웽스북스 2009-02-02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깐따삐야님~ 벼랑위의 포뇨에서 소스케 엄마같아요 ㅋㅋㅋ

깐따삐야 2009-02-02 18:44   좋아요 0 | URL
앗! 꼭 보고 싶었던 애니인데. 그나저나 소스케 엄마도 좀 막무가내인 모양이네염.ㅋㅋ

Mephistopheles 2009-02-03 00:47   좋아요 0 | URL
푸하하하하하..이렇게 적절한 비유라니..!!!

웽스북스 2009-02-03 01:23   좋아요 0 | URL
제가 쫌 한비유 ㅋㅋㅋ
 




  일제히 개봉한 오락물에 끼어 야간 타임 딱 한번. 지역의 모든 영화관을 훑어보았지만 내가 원하는 시간에 이 영화를 볼 수는 없었다. 점점 짜증이 밀려왔다. 더 기다렸다가 나중에 dvd로 출시되면 볼까, 잠시 망설였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재미는 있지만, 극장을 채 나서기도 전에 스멀스멀 날아가 버리는 영화들에 물린 참이었고 이 영화를 꼭 보아야 했다. 오후에 미스터 빈의 <쟈니 잉글리쉬>를 보고난 참이라 <체인질링>에 나오는 존 말코비치와 마주치면 쿡, 하고 웃음부터 터지지 않을까 우려했었다. 하지만 두 시간 남짓의 러닝타임 동안 나는 단 한 번도 웃지 못했다.

  처음에 예고편만 보았을 때 주목했던 것은 세 가지였다. 모성, 실화, 안젤리나 졸리. 영화를 보고 난 이후엔 새로운 두 가지가 보였다. 거대 공권력 앞의 왜소한 개인, 그리고 클린트 이스트우드라는 위대한 거장. <체인질링>은 단지 아이를 잃은 어머니의 절규나 모성에 관해 말하는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그저 하나의 발단이자 예화일 뿐. 영화는 그 이상의 것을 고발하고, 비판하고, 분노한다. 거짓 권위를 위해 진실이 조작된다, 조작된 진실을 위해 희생되지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반기를 든 자는 희생되어야 마땅하다. <체인질링>은 한 마디로 ‘두 번 죽이는’ 영화다. 첫 번째는, 진실을, 두 번째는, 진실을 믿는 개인을. 나는 꼭 쥔 주먹을 펴지 못한 채 문득문득 쌍시옷을 날려가며 이 영화를 보아야만 했다.

  2, 30년대의 LA. 교환원을 통해 전화를 걸고, 거리에는 느릿느릿 전차가 다니고, 긴 치마에 모자를 쓴 여인들이 오가는, 지금으로부터 수십 년 전, 먼 도시의 이야기. 그 고릿적 얘기가 요즘을 사는 내 눈 앞에서도 벌어지고 있기에 더욱 공감하고 화를 내며 보았는지도 모르겠다. 꼭 현 정부를 지목하지 않더라도 공권력에 의한 억압과 횡포는 공공연히, 또는 암암리에 벌어지고 있다. 어느 면에서는 과거에 비해 더 불행한지도 모른다. 진실을 밝히고 정의를 구현하는 당연한 일에도 자본과 연줄이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기에 말이다. 정부에 대들다가 기둥뿌리 뽑힐까, 쥐도 새도 모르는 사이 불이익으로 돌아올까, 사사로운 불만부터 숨 막히는 분노까지, 그저 침묵으로 삼킬 수밖에 없는 이들이 영화나 소설 같은 픽션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힘은, 견고한 개인주의의 틈을 유유히 비집고 들어와 남의 일에 분노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대개의 사람들은 내 일에는 쉽게 열을 내도 남의 일에는 무심한 편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인파 속에 내 머리 하나 더 보태고 싶은, 분노와 열정을 불러일으킨다. 왜 아이가 사라졌는지, 그 아이의 생사는 어떠한지, 영화의 발단과 결말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라는 솜씨 좋은 감독은 showing truth에 충실하되 영화적 재미와 긴장을 결코 떨어뜨리지 않을뿐더러, 불의만 보면 인내심이 용솟음쳤던 나 같은 이들을 이토록 자극시키니 단연 거장이랄 수밖에. <밀리언 달러 베이비>도 참 훌륭한 영화였지만 여기저기 권하고 다니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부디 많은 사람들이 보았으면 좋겠다. 아니, 모든 사람들이 보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연기변신을 시도한 안젤리나 졸리에 대한 첨언. 나름 극심한 다이어트를 한 것 같은데 상대를 똑바로 노려볼 때만 역시 졸리구나, 싶었다. 그녀의 명성 덕분에 개봉 전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인기몰이는 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이를 잃고 절규하며 분노하는 싱글맘의 역할은 안젤리나 졸리 외에 다른 배우가 연기했어도 그 정도는 했겠지, 싶다. 모자를 씌우고 붉은 립스틱을 발라 놓는다고 해도 내 눈의 졸리는 졸리였을 뿐. 오히려 외유내강형의 분위기를 지닌, 보다 아담한 사이즈의 여배우에게 이 역할을 맡겼더라면 어땠을까, 하고 상상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어르신이 어련히 잘 알아서 캐스팅 하셨을라고, 쓸데없이 이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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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9-01-30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린트 이스트우드 어르신 덕분에 졸리가 그 정도의 연기를 하지 않았을까 생각도 듭니다. 사실 최상의 톱스타를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는 감독은 몇 안될꺼라고 보고 싶어요..^^
'그랜 토리노' 도 꼭 보도록 하세요 전 아직 체인질링을 안봤는데 그랜 토리노...좋은 영화 였습니다. 역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주연"인 영화입니다. 연세로 봐서는 아마도 마지막 출연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깐따삐야 2009-01-30 11:49   좋아요 0 | URL
메피님 말씀이 정답이네요. 훌륭한 감독과 좋은 시나리오는 배우에게 든든한 뒷백이 되겠지요.^^
'그랜 토리노'는 말씀 듣자마자 바로 찾아봤어요. 감독에 주연까지 했다니 기대를 갖고 보겠습니다!

Alicia 2009-01-30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찜해놨는데, 예고편만 봤어요 :)저도 약간 미스캐스팅이란 생각은 들어요.
졸리는 워낙 생김생김이 굵직하고 화려해서 외유내강 스타일하곤 거리가 좀 있지요,
클린트이스트우드 할아버지 좋아요-
어휴 예전에 밀리언달러베이비 보고 한시간은 운거 같아요.

깐따삐야 2009-01-30 11:54   좋아요 0 | URL
알리샤님, 조만간 꼭 보셨으면 좋겠어요. 영화 보는 내내 팝콘 부스럭거리는 소리 한 점 들리지 않을 정도로 고요했어요. 아마 대부분의 관객이 영화 속으로 완전 몰입했기 때문일 거에요. 심장을 쿵쿵 두드리는 몇 안 되는 영화일 거에요.
졸리의 연기는 특별하지 않았고 어쩌면 그녀에게 주목할 겨를이 없었어요. 영화 그 자체로 충분했으니까요. <밀리언 달러 베이비>가 좋으셨다면 이 영화 또한 분명히 마음에 드실 거에요.^^

마늘빵 2009-01-30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현 시국에 딱 어울리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 어떤 블로거에 의하면, 이 영화와 앞으로 개봉될 - 내용은 잘 모르겠는데 - <블루>가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다락방 2009-01-30 10:54   좋아요 0 | URL
블루는 재개봉이구요, 아프락사스님. 스폰지하우스 광화문에서 01.29인 어제, 개봉했답니다. 제가 아는 그 블루가 맞다면 말이지요.

Mephistopheles 2009-01-30 11:11   좋아요 0 | URL
그게 키에스로프스키 감독의 영화라면....
아프님은 블루만 보지 마시고 레드와 화이트도 보셔야 할지 몰라요..^^

찾아보니 맞군요...아프님 같은 감독의 3연작인 레드와 화이트도 보셔야 하겠군요..으흐흐.

마늘빵 2009-01-30 11:25   좋아요 0 | URL
아 이런 제가 착각했어요. 그거 말고 <밀크>와 <체인질링>이 현 시국에서 정부가 싫어할 만한 영화라고 하더라고요. 그 블로거는. 다락방님이 알려준 사이트의 그 블로거인데. ^^ <블루>와 <밀크>를 헷갈렸군요.

깐따삐야 2009-01-30 12:11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현 정부가 저지르는 갖가지 만행들이 오버랩되기도 하고 군포 여대생 살인사건의 범인이 떠오르기도 하고. 공포와 분노가 뒤섞인 긴장 상태로 영화를 보아서 그런가. 영화관을 나설 땐 머리도 아프고 피곤하고 그렇더라구요.
앞으로 이런 영화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언젠가 이 모든 불행들이 영화 속 과거로만 그칠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그나저나 <밀크>도 꼭 보고 싶은데 개봉관이 있을지 걱정되네요.-_-

레와 2009-01-30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토당토 않은 정말 말도 안되는 터무니 없는 일이 비단 영화속에서 뿐만아니라 (설사 실화라도 영화속)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시간에도 일어나고 벌어진다는 사실이, 질리더군요.

윽..!!! 숨막혀..

깐따삐야 2009-01-30 12:09   좋아요 0 | URL
그쵸? 영화 보는 내내 화도 나고 부끄럽기도 하고 그랬어요. 정부를 상대로 싸우는 일을 골리앗에게 덤비는 하찮은 몸부림 정도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는 자각. 주변의 계속적인 응원과 지원이 없었다면 크리스틴도 실성한 여자로 영원히 묻혀버렸을 가능성이 크니까요.
저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분노할 수 있는 감각을 잃지 않았음 좋겠어요.


비로그인 2009-01-30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영화를 니콜 키드먼이 했다면 어땠을까, 싶었어요. 권위에의 도전, 모성의 재현이라기 보다는 이 영화는 어쩌면 자기 자신의 용기와 맞서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더랬습니다. 권위와 모성으로만 보기에는 이야기가 계속 뭔가 어긋나는 듯한 느낌이 들었거든요.

깐따삐야 2009-02-01 12:31   좋아요 0 | URL
저도 여배우 여럿을 떠올렸어요. 수잔 서랜든, 줄리안 무어 등등을 생각했다가 나이가 넘 많아 탈락시키곤 혼자 안타까워하고.^^
Jude님은 저보다 영화를 한층 깊게 보신 것 같네요. 저는 주로 화만 내다가 나온 것 같아요. 졸리가 의사에게 정면으로 욕을 퍼부을 땐 끌려가겠군, 뒷일을 염려하면서도 어찌나 통쾌하던지요.

라로 2009-01-31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영화를 아직 보지못했어요, 남편왈,"잔인한 부분이 나올텐데 너 볼 자신이 있어?"라고 하기에,,,
모성과 연관된 어떤 끔찍한 장면이 나올까봐 두려워서요~.
그런데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보고싶잖아요!!!!!

비로그인 2009-01-31 07:03   좋아요 0 | URL
지다가다가]for nabi님
저도 봤는데요, 아마 그 잔인한 장면 아주 많이 힘드실 거여요. 꼭 보고싶으시다면 저처럼 그 잔인한 장면에서만 눈을 감는 것이 어떨까 싶군요. 그런데 음향효과가 너무 뛰어난지라 그 소리 하며 제가 상상한 장면, 조금이라도 본 잔인한 장면 암시효과가 겹쳐서 아직도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깐따삐야 2009-02-01 12:31   좋아요 0 | URL
nabi님- 저는 한 장면도 놓치지 않고 두눈 똑바로 뜨고 봤는데... 담이 커서가 아니라 뭐랄까. 고개 돌리기 아까워서랄까. 완전 몰입해서 보느라 나중에 일어날 때 온몸이 뻐근하고 그랬어요. Jude님 말씀처럼 어느 장면에서 눈을 꼭 감을지언정 이 영화, 꼭 보셨음 좋겠네요.^^

개츠비 2009-01-31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고싶은 영화입니다. 올해는 영화와 친해지고 싶네요. 친해지고 싶어도 언제나 마음뿐이라서...깐따삐야님, 영화평으로 살짝 맛보고 갑니다.

깐따삐야 2009-02-01 12:38   좋아요 0 | URL
책은 시공간의 제약을 덜 받는데 영화는 직접 가서 표 끊고, 기다리고, 꼬박 두 시간 동안 정면주시하며 봐야 하고. 아무래도 소요되는 것들이 많죠. 저도 개학하고 바빠지면 영화 보러 나서느니 그냥 쉬는 쪽을 택할지도 모르겠어요. 그래도 <체인질링>은 나중에라도 꼭 보세요. 요즘 살짝 유감스러운 영화들이 많은데 그 중에 단연 일품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