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5기 신간 평가단을 모집합니다.

* 신간평가단 활동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책과 그 이유
: 임영태 - 아홉 번째 집 두 번째 대문 (오랜만에 욕심 없고 사심 없는 소설을 만난 것 같아 즐거운 독서가 되었다. 큰 목소리를 내지 않고도 독자로 하여금 사랑이 무엇인지, 그리움이 무엇인지 절절하게 느끼게 해주었던 좋은 작품이었다.)

* 신간평가단 도서 중 내맘대로 좋은 책 베스트 5
: 한낮의 시선, 창비세계문학세트(독일편-어느 사랑의 실험), 아홉 번째 집 두 번째 대문, 테헤란의 지붕, 아이들이 뛰노는 땅에 엎드려 입 맞추다

* 신간평가단 도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 마음은 슬픈데 쓸쓸하지가 않다. 그 새벽의 마지막 풍경들이 따뜻하게 가슴으로 들어온다. 그날, 모든 것이 좋았다. 꿈결 같기만 한 그날 새벽 거리. 바람도, 가로수도, 불 꺼진 창들도, 모든 것이 정갈했었다. 그래서 기억은 쓸쓸하지 않다.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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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에 안녕이어도 저녁 일을 모른다는 나라에서 살고 있지만 이번 사태 역시 참담하다. 오열하는 실종자 가족들을 보고 있자니 예전 철원 물난리 때 생각이 났다. 오빠가 그곳에서 군복무 중이었고 뉴스가 나오자마자 여기저기서 오빠의 안부를 묻는 전화가 왔다. 군대와는 연락이 되지 않았고 무서운 소식들만 연일 들려왔다. 가족들은 거의 초죽음 상태였다.

  그런데 얼마 후 웬 낯선 사람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오빠가 직접 연락을 할 수 없어 밖으로 나가는 누군가에게 집으로 대신 연락해줄 것을 부탁한 것이었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산사태가 휩쓸고 가기 단 몇 분 전에 기지를 철수해서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오빠는 위험천만한 상황에서 살아났고 엄마는 그 잠깐 사이 얼마나 속을 태웠는지 정수리가 하얗게 새었다. 군대에서의 죽음은 개죽음이란 말이 헛말이 아니라는 걸 실감했던 때였다.

  학부 때 여성학 시간에 강사가 예비역 학생들에게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당장 3억을 준다면 군대에 다시 가겠는가? 웅성거리던 강의실. 그렇다고 말한 예비역은 한 명도 없었다. 남자들이 꾸는 악몽 중의 악몽이 다시 훈련소로 끌려가는 꿈이라던가. 실종자들 나이를 보니 88년생, 89년생, 참 아까운 나이다. 학구열, 체력, 패기 등 청춘이 다다를 수 있는 최고조의 순간에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으로 무작정 끌려간다는 건 참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같은 과 후배의 남동생은 한참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군대 총기 난사 사건으로 희생되었다. 내 주변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다니 놀랍고도 안타까웠다. 물론 옳은 일은 아니지만 힘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든 아들 군대 안 보내려고 용쓰는 것도 부모 입장에서 생각하면 전혀 이해 못할 일도 아닌 것이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매번 지지부진한 변명과 유언비어만 난무하고 뚜렷한 원인 규명이나 대책이 없으니 실종자 가족이나 지켜보는 국민들 입장에서는 얼마나 화가 나고 안타깝겠는가. 오빠 소식을 기다리던 그때, 뼈와 살이 타들어가는 것 같던 그 심정은 말로 다 못한다. 가족과 똑같은 마음이기를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항상 반복되는 늑장 대처와 책임 회피로 빈축을 사는 일이 좀 없었으면 좋겠다.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군과 정부의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들로서는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법이 없기에 답답하고 불안해지는 것이다. 깜깜한 망망대해일지라도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붙들고 싶은 가족의 마음을 이해한다. 간간히 특보가 들려오는 지금, 반가운 기적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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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윤대녕. 오랫동안 기다렸던 신작이다. 처음엔 책 제목이 낯익어서 언젠가 읽었던 작품인가, 했는데 최승호 시인의 시 제목에서 따왔단다. 『제비를 기르다』이후 이따금 검색창에 작가 이름 석 자를 넣어보며 혹시라도 나 몰래 신간이 나왔나 궁금해 했었는데 이 오락가락하는 봄을 예상하기라도 한 듯 『대설주의보』란 제목으로 돌아왔다.

  “‘다시는 안 만나겠지’라고 생각하다가도 또 만나게 되는 그런 경우들을 경험하면서 ‘삶은 이런 거구나’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어요. 남녀 관계 뿐 아니라 모든 관계가 다 그래요. 사람이 사는 데 있어 인위적으로 안 되는 일들이 존재하는 거고, 또 그런 걸 받아들이면서 역동적으로 살아나가는, 그런 게 삶인 것 같아요.”

  “인간에겐 누구나 일상의 질서 안에서 살아가는 외부적 삶과 욕망으로 가득한 내부적 삶, 두 가지가 있어요. 어느 게 진짜 삶인지는 모르는 거죠. 이런 속에서 폭넓은 진실을 발견해가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고립적 인물에서 벗어나 다채로운 등장인물을 만들고, 더 세밀하고 깊이 있는 시각으로 생을 들여다보려고 해요. 등단 20년이 되기도 했고, 앞으론 좀 더 절박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국민일보 쿠키뉴스, 2010/03/19)

  항상 다른 소설들을 손에 들고, 혹은 다른 책들을 뒤적이면서도 변함없이 그리워했던 작가이다. 지난 청춘의 갈피에 랜드마크처럼 우뚝 서 있는 알베르 카뮈와 윤대녕을 빼놓고는 나도 나 자신을 읽을 수 없다. 카뮈의 사상서들은 그 열정적이고 단호한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뇌리에서 희미해져가지만 『안과 겉』에서 느껴졌던 노곤한 슬픔과 윤대녕의 단편들은 방금 만나고 헤어진 연인처럼 또 다시 그립다. 아마도 이것이 문학의 힘인 것 같다.

  # 며칠 전, 그는 장문의 메일을 보내왔다. 광고 메일을 정리하다 낯익은 이름에 조금 놀랐다. 뜻밖이었다. 벌써 오래 전 만남. 내 소식을 궁금해 하는 것 같기도 했고 자신이 얼마나 잘 살고 있는지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엿보이기도 했다. 나도 나이를 먹다보니 남자들의 유치한 허영심에 대해서는 대충 파악하게 되었지만 그는 기본적으로 순수하고 의젓한 사람이었다. 비록 나의 견고한 자의식 때문에, 혹은 그냥 인연이 아니어서, 결코 아무 일도 일어날 수 없는 담백한 관계에 머물렀지만 그와의 기억은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의 세세한 기억력에 비하여 -나도 기억력이 나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듬성듬성 좋은 추억쯤으로 뭉뚱그리는 것을 보면 나 자신 생각만큼 다정한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윤대녕의 인터뷰를 찾아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변명을 하지 않아 좋다. 작품으로 자기변명을 하는 작가들이 없지 않은데 그는 항상 수줍은 듯 당당하고 무심한 듯 치열하다. 그리고 그것을 거북한 위장이 아니라 고상한 멋으로 승화시킨다. 엊그제 도착한 그의 책을 조금씩 아껴가며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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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5 06: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27 14: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해한모리군 2010-03-25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는 항상 수줍은 듯 당당하고 무심한 듯 치열하다

아 제 느낌을 이리 콕 찝어서 말해주는 깐따삐야님이 좋아요.

깐따삐야 2010-03-27 15:04   좋아요 0 | URL
오! 휘모리님도 윤대녕 팬이시군요. 반가워요.^^

2010-03-26 17: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27 15: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27 21: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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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들통에 무언가를 자꾸 삶고 있다. 내의, 양말, 행주 등. 이불 빨래를 하고 베갯잇을 벗겨 세탁하고 베란다 수납장도 정리하고. 알라딘의 K님은 남편으로부터 죽으러 가느냐는 말을 들었다는데 나 역시 마지막 신변정리를 하는 사람마냥 세탁하고, 정리하고, 치우고, 버린다. 남편의 겨울옷들을 정리하며 봄 티셔츠를 하나 샀고 붙박이장 손닿는 곳에 새 내의들도 챙겨 놓았다. 없으면 알아서 사 입으련만 혼자 쇼핑하는 남자의 모습이 어쩐지 처량 맞을 것 같아 수선을 떨었다. 하지만 아무리 쓸고 닦고 환기를 시켜도 일상의 먼지와는 매일 겨뤄야 하고 마치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청소를 해봤자 아직 시간은 남아 있다.

  올 겨울 한 번도 입지 않은 겨울 코트들이 마치 아동복처럼 작아 보였다. 코트를 몸에 대고 거울 앞에 섰는데 좀 놀라기까지 했다. 과연 다시 입을 수 있을까. 남편은 새 옷을 사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기필코 저 옷들을 다시 입으리라.

#
  남편은 올해도 고3 담임을 맡아 정신없이 바쁘다. 그는 밀실 행정이란 말을 했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저녁을 먹으러 집에 잠깐 들렀다가 다시 밤늦게 돌아오는 일상. 눕자마자 곯아떨어지는 모습을 보면 내 몸 버거운 건 둘째 치고 참 안쓰럽다. 아이들도 해갈이를 한다고 올해 고3 아이들은 작년과는 달리 좀 터프한가 보다. 어떤 임신부는 허리와 골반 통증으로 아침마다 남편이 침대에서 일으켜 세워주어야만 일어날 수 있다던데 나 역시 막달 증상이 없는 건 아니지만 텔레토비마냥 버둥거리면서도 일어나기는 한다. 부은 얼굴로 국을 데우고 계란프라이를 하고. 그나마 속이라도 든든해야 덜 지칠 것 같아 아침을 차리는데 남편은 황송해 하면서도 싫지 않은 기색이다. 조리원과 친정에서 산후 조리를 하게 되면 당분간 홀아비 신세를 면할 수 없으니 있을 때만이라도 챙겨 주어야겠다. 그는 아기의 아빠이고 건강해야 하니까.

#
  서울 사는 Y가 이따금 전화를 하는데 요즘 들어 유달리 결혼을 하고 싶어 한다. 그녀의 성향을 알기에 섣부르게 부추길 수도 없는 노릇. Y는 정해진 길을 마다하고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케이스다. 나와는 사범대 동기이자 동아리 동기인데 어느 날 갑자기 휴학을 하더니 손목을 그었다. 위풍이 찬 자취방에서 꼬물꼬물 애벌레처럼 몸을 말은 채 세상을 내치더니 기어이 자퇴를 하고 타 대학의 문예창작과에 입학했다. 그 이후로 꾸준히 글을 써왔고 지금은 작은 잡지사에서 일을 하고 있다. 얌전한 아이들이 무섭다는 말을 Y를 통해 아주 제대로 깨달았던 것 같다. 나는 그녀가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고 할 때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싶다고 할 때도, 항상 만류하는 쪽이었다. 그러고 보니 요새 결혼을 하고 싶다고 하는데도 역시 말리고 있다. 그래, 네가 원하는 대로 해봐. 좋은 친구라면 그렇게 말해야 하는 거 아닐까. 하지만 나는 지금도 Y가 그냥 나처럼 익숙한 도시에서 평범한 선생으로 살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 조그만 몸집에 악다구니 같은 서울에서 쓰고 싶지 않은 글을 써가며 사는 모습을 보면 남 보기에 빤한 삶이 그리 나쁜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Y의 고집과 열정을 사랑하지만 바로 그것 때문에 앞으로 더 많은 것을 무릅써야 하지나 않을까, 우려가 들기도 한다. 그녀는 나의 이런 잔소리를 재밌어 하는데 우리는 둘 다 엄마 속을 너무 많이 썩힌 딸들이라는 자기반성으로 대화의 끝을 맺곤 한다. 더 확실히 알게 하려면 Y를 기필코 시집 보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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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0-03-12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깐따삐야님, 보고싶었어요..

^^

깐따삐야 2010-03-13 11:07   좋아요 0 | URL
저두요.^^

무스탕 2010-03-12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톱 깍기가 참 어려웠었어요 ^^
날이 많이 따듯해 졌으니 운동다니시긴 좋지요?

깐따삐야 2010-03-13 11:09   좋아요 0 | URL
아, 정말 그래요. 이런 날이 오다니.ㅠ
이제 눈도 다 녹았으니 밖으로 나가볼까요.^^

hnine 2010-03-12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을 차려주는 아내에게 황송해하는 착한 분을 남편으로 두셨네요.
양말도 기꺼이 신겨주실 것 같은데요? ^^
언제가 예정일인지 모르지만 건강한 아기 나으시길 바라겠습니다.
그 무겁던 몸이, 아이 나아서 키우다 보면 금새 가벼워진답니다.

깐따삐야 2010-03-13 11:13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임신 전에 아침상을 차리는 것과는 좀 다르게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해요.
봄 기운을 가득 받아 건강하게 나와줬으면 좋겠습니다.
아, 그렇게 될까요?

알라딘K 2010-03-13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살, 빠집니다. 모유수유만 했더니 17키로가 빠졌어요! 라고 하는 연예인처럼 매끈하게 되지는 않습니다만, 빠지긴 빠집니다. 아동복 같은 옷도 다시 입을 수 있답니다. 그러니, 그런 걸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둘째를 낳으러 갈때는 남편에게,
'당신이 다 청소해놔!' 이러고 홀연히 떠났다 왔다는--v )
잘 지내시는 것 같아 반갑네요^^



깐따삐야 2010-03-13 11:20   좋아요 0 | URL
엄마가 몸무게 스트레스나 받고 말이죠. 아기한테 미안하게스리.
하핫! 둘째 때는 훨씬 여유로워지셨군요. 하기사 내가 안 해도 다 할텐데 말이죠.
이런저런 걱정이 많지만 마음을 편하게 먹으라고 해서 노력 중이에요.^^

세실 2010-03-13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분 만나 결혼하는 것도 좋을듯. 외로울수록 의지할 사람이 필요하죠.
님 와 막달이시군요. 조금만 더 힘내세요. 화이팅!

깐따삐야 2010-03-13 11:22   좋아요 0 | URL
그런 생각도 들기는 하는데 워낙에 한 고집하는 친구라서 결혼했다가 갑자기 안 산다고 할까봐 염려스럽기도 해요.
고맙습니다. 지루한 열 달도 다 채워 가네요.
 

  오랜만에 학교에 다녀왔다. 전출입 시기라 그런지 어딘지 어수선했다. 선생님들께 인사를 드리고 출산휴가를 냈다. 예정일로만 보면 채 두 달이 안 남았다. 며칠 전, 친구 둘이 하루 터울로 아기를 낳았다. 우리 아기가 태어나는 4월에는 남편의 친구 둘이 아빠가 된다. 백호랑이띠 아이들이 복작복작 세상에 나오고 있다.

  시누이가 물려준 출산용품들 이외의 목록을 슬슬 생각하고 있다. 아기 커가는 걸 보면서 차차 구입하려고 일단 최소한의 물품들만 적어보는 중이다. 그 동안 이곳저곳 온라인과 오프라인 매장을 둘러보면서 요즘 엄마들은 참 편해졌구나 싶었다. 필수용품이라기 보다는 편의용품이 종류며 가격대며 천차만별로 나와 있다. 임신부 카페에 보면 출산용품 준비하느라 백만 원이 넘게 들었다는 엄마들도 있던데 나는 우리 아기에게 좀 인색한가 보다. 올해 말까지 육아휴직을 받을 것이지만 미숙한 나보다야 친정엄마 손길이 더 많이 갈 테니 잘 상의해서 구입을 해야겠다.

  조리원을 예약하니 만삭사진과 함께 아기 기념앨범을 선물로 준다는데 만삭사진은 거절했다. 남편은 나중에 아기한테 보여주면 좋지 않겠느냐고 하는데 아직도 내 모습이 편치 않은 나로서는 둥근 배를 드러내고 찍는 사진이 그저 민망할 따름이다. 나중에 후회할까, 잠깐 망설이기도 했지만 앨범에 아기 사진이나 더 많이 넣어달라고 이야기했다. 아무래도 나는 아기를 낳는 순간까지도 스스로의 모습에 끝내 익숙해지지 못할 것 같다.

  몸이 조금 피곤한 날이면 태동이 너무 격해져서 그럴 때 소리 내어 읽어주려고 태교동화책을 한 권 샀다. 9개월이 다 되도록 태교다운 태교를 한 기억이 없는데 이제 엄마 목소리, 엄마 냄새까지 기억하고 감지한다니 지금쯤이면 귀 기울이며 옛날이야기를 들어줄 것도 같다. 그렇기는 해도 제 아빠, 제 엄마를 닮았을 그 기질이 어디 가랴 싶다. 나는 어릴 때 뭐든지 빨리 깨친 편이었고 남편은 그 반대인 경우인데 둘 다 삼십대를 사는 요즘, 대체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아기와 만날 날을 기다리면서도 문득문득 차오르는 우울이나 불안이 없지 않다. 악몽과 소화불량, 몸의 불균형에서 오는 피로감 등 임신부로서 대개들 겪는 일들을 나도 거치고 있을 뿐인데 낯선 심신을 받아들이는 일이 여전히 불편하다. 그래서인지 정서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잘 자란 아이들을 보면 그 부모의 모습까지 경이롭다. 결국 건강한 부모가 되는 일이 우선인데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할까. 닥치면 다 하게 되어 있다는 말이 자식 교육에는 통용되지 않는 것 같아 참으로 부담백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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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0-02-16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조롭게 아기마중날을 기다리시는듯해 마음이 놓입니다.
저역시 부모가 된다는 부담감을 이겨냈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분들에게 존경심을 품게되는 요즘입니다.

깐따삐야 2010-02-18 11:33   좋아요 0 | URL
휘모리님에게도 아주 먼 이야기는 아니죠? ^^ 부모로서의 부담감은 평생 가는 것 같아요.

비로그인 2010-02-16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닥치면 다 하게 되긴 하는데요, 문제는 `어떻게' 하느냐 겠지요. 그 `어떻게'가 전 늘 궁금했답니다.

깐따삐야 2010-02-18 11:35   좋아요 0 | URL
직업이 직업인지라 정말 별별 부모들을 많이 봐왔는데 '어떻게'를 몰라서 그렇게들 헤매고 있나 싶어요. 참 어려운 문제에요.

L.SHIN 2010-02-16 1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째로, 깐따님이나 아기님이나 건강하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위인들을 훌륭히 키워낸 어머니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책을 읽으면 안개처럼
앞을 뿌옇게 가로막던 '아이 키우기'에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현대의, 이 자본주의와 학벌주의가 만연해 있는 한국의 어머니들 모임에서는
오히려 좋은 영향을 받을 거 같지는 않습니다만.

깐따삐야 2010-02-18 11:40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좋은 조언이에요. 갖가지 매체에서 교육과 관련된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그래도 큰 줄기는 변하지 않는 것 같아요. 옛날 방식이 더 나은 것도 많구요.

순오기 2010-02-16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깐따삐야님, 벌써 출산일이 가까워졌군요.
음~ 마음 편하게 가지면 최고의 태교죠.^^

깐따삐야 2010-02-18 11:41   좋아요 0 | URL
그새 시간이 많이 흘렀어요. 마음을 편히 가져야 하는데 부쩍 예민해져서 심신이 피로하네요. 얼마 안 남았으니 힘을 내야죠.^^

Mephistopheles 2010-02-16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모는 힘든 시기이지만 그때 그 만삭의 모습이 생애 가장 아름다운 모습의 한 단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종종 들긴하네요. (마님도 만삭사진 찍자에 아주 불편함 심기를 노골적으로 보여줬던터라...므흐흐)

깐따삐야 2010-02-18 11:43   좋아요 0 | URL
남편도 메피님처럼 말하는데 남자들이 보기엔 그런가 봐요. 저는 아기 낳고 어떻게 다이어트를 해야 하나, 고민인데 말이죠. 요즘은 만삭사진을 안 찍는다고 하면 더 이상하게 보는 것 같아요.

웽스북스 2010-02-16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삭사진 거절한 건 깐따삐야님답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때가 되면 제 생각이 달라질지 모르겠지만, 저도 그렇게 찍고싶지는 않아요.

그나저나 어떤 아가가 태어나려나. 엄마 닮았으면 좋겠네. ㅎㅎ

깐따삐야 2010-02-18 11:46   좋아요 0 | URL
아기한테는 미안하지만 배 나온 제 모습이 그렇게 예뻐 보이지를 않아서.ㅠ
저를 닮으라고 하는 건 거의 악담이에요. 아주 극성스런 꼬마였거든요. 순한 남편을 닮았으면 좋겠어요. 키우기 수월하게.^^

웽스북스 2010-02-20 13:24   좋아요 0 | URL
음. 그러니까요.
실은 만삭사진이 아름답다, 라고 하는 것도
어찌보면 모성의 신화를 강조하는건가,
라는 생각이 좀 들었거든요.

이래놓고 몇년후에 제가 찍어서 올리더라도 슬쩍 눈감아주세요. ㅋㅋㅋ
사람일은 어찌될지 모르는 법 ;;;;

깐따삐야 2010-02-22 09:18   좋아요 0 | URL
아마 남자들 생각일 거에요. 저는 임신 전에 배부른 임신부를 보면 아름답다기 보다는 얼마나 힘들까, 부터 생각했으니까요.

하핫. 알겠어요. 웬디양님은 키가 커서 안젤리나 졸리 분위기가 나지 않을까요.

레와 2010-02-17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깐따삐야 2010-02-18 11:47   좋아요 0 | URL
^^ 오늘은 햇볕이 아주 짱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