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학교에 다녀왔다. 전출입 시기라 그런지 어딘지 어수선했다. 선생님들께 인사를 드리고 출산휴가를 냈다. 예정일로만 보면 채 두 달이 안 남았다. 며칠 전, 친구 둘이 하루 터울로 아기를 낳았다. 우리 아기가 태어나는 4월에는 남편의 친구 둘이 아빠가 된다. 백호랑이띠 아이들이 복작복작 세상에 나오고 있다.

  시누이가 물려준 출산용품들 이외의 목록을 슬슬 생각하고 있다. 아기 커가는 걸 보면서 차차 구입하려고 일단 최소한의 물품들만 적어보는 중이다. 그 동안 이곳저곳 온라인과 오프라인 매장을 둘러보면서 요즘 엄마들은 참 편해졌구나 싶었다. 필수용품이라기 보다는 편의용품이 종류며 가격대며 천차만별로 나와 있다. 임신부 카페에 보면 출산용품 준비하느라 백만 원이 넘게 들었다는 엄마들도 있던데 나는 우리 아기에게 좀 인색한가 보다. 올해 말까지 육아휴직을 받을 것이지만 미숙한 나보다야 친정엄마 손길이 더 많이 갈 테니 잘 상의해서 구입을 해야겠다.

  조리원을 예약하니 만삭사진과 함께 아기 기념앨범을 선물로 준다는데 만삭사진은 거절했다. 남편은 나중에 아기한테 보여주면 좋지 않겠느냐고 하는데 아직도 내 모습이 편치 않은 나로서는 둥근 배를 드러내고 찍는 사진이 그저 민망할 따름이다. 나중에 후회할까, 잠깐 망설이기도 했지만 앨범에 아기 사진이나 더 많이 넣어달라고 이야기했다. 아무래도 나는 아기를 낳는 순간까지도 스스로의 모습에 끝내 익숙해지지 못할 것 같다.

  몸이 조금 피곤한 날이면 태동이 너무 격해져서 그럴 때 소리 내어 읽어주려고 태교동화책을 한 권 샀다. 9개월이 다 되도록 태교다운 태교를 한 기억이 없는데 이제 엄마 목소리, 엄마 냄새까지 기억하고 감지한다니 지금쯤이면 귀 기울이며 옛날이야기를 들어줄 것도 같다. 그렇기는 해도 제 아빠, 제 엄마를 닮았을 그 기질이 어디 가랴 싶다. 나는 어릴 때 뭐든지 빨리 깨친 편이었고 남편은 그 반대인 경우인데 둘 다 삼십대를 사는 요즘, 대체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아기와 만날 날을 기다리면서도 문득문득 차오르는 우울이나 불안이 없지 않다. 악몽과 소화불량, 몸의 불균형에서 오는 피로감 등 임신부로서 대개들 겪는 일들을 나도 거치고 있을 뿐인데 낯선 심신을 받아들이는 일이 여전히 불편하다. 그래서인지 정서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잘 자란 아이들을 보면 그 부모의 모습까지 경이롭다. 결국 건강한 부모가 되는 일이 우선인데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할까. 닥치면 다 하게 되어 있다는 말이 자식 교육에는 통용되지 않는 것 같아 참으로 부담백배다.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무해한모리군 2010-02-16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조롭게 아기마중날을 기다리시는듯해 마음이 놓입니다.
저역시 부모가 된다는 부담감을 이겨냈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분들에게 존경심을 품게되는 요즘입니다.

깐따삐야 2010-02-18 11:33   좋아요 0 | URL
휘모리님에게도 아주 먼 이야기는 아니죠? ^^ 부모로서의 부담감은 평생 가는 것 같아요.

비로그인 2010-02-16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닥치면 다 하게 되긴 하는데요, 문제는 `어떻게' 하느냐 겠지요. 그 `어떻게'가 전 늘 궁금했답니다.

깐따삐야 2010-02-18 11:35   좋아요 0 | URL
직업이 직업인지라 정말 별별 부모들을 많이 봐왔는데 '어떻게'를 몰라서 그렇게들 헤매고 있나 싶어요. 참 어려운 문제에요.

L.SHIN 2010-02-16 1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째로, 깐따님이나 아기님이나 건강하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위인들을 훌륭히 키워낸 어머니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책을 읽으면 안개처럼
앞을 뿌옇게 가로막던 '아이 키우기'에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현대의, 이 자본주의와 학벌주의가 만연해 있는 한국의 어머니들 모임에서는
오히려 좋은 영향을 받을 거 같지는 않습니다만.

깐따삐야 2010-02-18 11:40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좋은 조언이에요. 갖가지 매체에서 교육과 관련된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그래도 큰 줄기는 변하지 않는 것 같아요. 옛날 방식이 더 나은 것도 많구요.

순오기 2010-02-16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깐따삐야님, 벌써 출산일이 가까워졌군요.
음~ 마음 편하게 가지면 최고의 태교죠.^^

깐따삐야 2010-02-18 11:41   좋아요 0 | URL
그새 시간이 많이 흘렀어요. 마음을 편히 가져야 하는데 부쩍 예민해져서 심신이 피로하네요. 얼마 안 남았으니 힘을 내야죠.^^

Mephistopheles 2010-02-16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모는 힘든 시기이지만 그때 그 만삭의 모습이 생애 가장 아름다운 모습의 한 단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종종 들긴하네요. (마님도 만삭사진 찍자에 아주 불편함 심기를 노골적으로 보여줬던터라...므흐흐)

깐따삐야 2010-02-18 11:43   좋아요 0 | URL
남편도 메피님처럼 말하는데 남자들이 보기엔 그런가 봐요. 저는 아기 낳고 어떻게 다이어트를 해야 하나, 고민인데 말이죠. 요즘은 만삭사진을 안 찍는다고 하면 더 이상하게 보는 것 같아요.

웽스북스 2010-02-16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삭사진 거절한 건 깐따삐야님답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때가 되면 제 생각이 달라질지 모르겠지만, 저도 그렇게 찍고싶지는 않아요.

그나저나 어떤 아가가 태어나려나. 엄마 닮았으면 좋겠네. ㅎㅎ

깐따삐야 2010-02-18 11:46   좋아요 0 | URL
아기한테는 미안하지만 배 나온 제 모습이 그렇게 예뻐 보이지를 않아서.ㅠ
저를 닮으라고 하는 건 거의 악담이에요. 아주 극성스런 꼬마였거든요. 순한 남편을 닮았으면 좋겠어요. 키우기 수월하게.^^

웽스북스 2010-02-20 13:24   좋아요 0 | URL
음. 그러니까요.
실은 만삭사진이 아름답다, 라고 하는 것도
어찌보면 모성의 신화를 강조하는건가,
라는 생각이 좀 들었거든요.

이래놓고 몇년후에 제가 찍어서 올리더라도 슬쩍 눈감아주세요. ㅋㅋㅋ
사람일은 어찌될지 모르는 법 ;;;;

깐따삐야 2010-02-22 09:18   좋아요 0 | URL
아마 남자들 생각일 거에요. 저는 임신 전에 배부른 임신부를 보면 아름답다기 보다는 얼마나 힘들까, 부터 생각했으니까요.

하핫. 알겠어요. 웬디양님은 키가 커서 안젤리나 졸리 분위기가 나지 않을까요.

레와 2010-02-17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깐따삐야 2010-02-18 11:47   좋아요 0 | URL
^^ 오늘은 햇볕이 아주 짱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