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안녕이어도 저녁 일을 모른다는 나라에서 살고 있지만 이번 사태 역시 참담하다. 오열하는 실종자 가족들을 보고 있자니 예전 철원 물난리 때 생각이 났다. 오빠가 그곳에서 군복무 중이었고 뉴스가 나오자마자 여기저기서 오빠의 안부를 묻는 전화가 왔다. 군대와는 연락이 되지 않았고 무서운 소식들만 연일 들려왔다. 가족들은 거의 초죽음 상태였다.

  그런데 얼마 후 웬 낯선 사람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오빠가 직접 연락을 할 수 없어 밖으로 나가는 누군가에게 집으로 대신 연락해줄 것을 부탁한 것이었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산사태가 휩쓸고 가기 단 몇 분 전에 기지를 철수해서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오빠는 위험천만한 상황에서 살아났고 엄마는 그 잠깐 사이 얼마나 속을 태웠는지 정수리가 하얗게 새었다. 군대에서의 죽음은 개죽음이란 말이 헛말이 아니라는 걸 실감했던 때였다.

  학부 때 여성학 시간에 강사가 예비역 학생들에게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당장 3억을 준다면 군대에 다시 가겠는가? 웅성거리던 강의실. 그렇다고 말한 예비역은 한 명도 없었다. 남자들이 꾸는 악몽 중의 악몽이 다시 훈련소로 끌려가는 꿈이라던가. 실종자들 나이를 보니 88년생, 89년생, 참 아까운 나이다. 학구열, 체력, 패기 등 청춘이 다다를 수 있는 최고조의 순간에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으로 무작정 끌려간다는 건 참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같은 과 후배의 남동생은 한참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군대 총기 난사 사건으로 희생되었다. 내 주변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다니 놀랍고도 안타까웠다. 물론 옳은 일은 아니지만 힘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든 아들 군대 안 보내려고 용쓰는 것도 부모 입장에서 생각하면 전혀 이해 못할 일도 아닌 것이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매번 지지부진한 변명과 유언비어만 난무하고 뚜렷한 원인 규명이나 대책이 없으니 실종자 가족이나 지켜보는 국민들 입장에서는 얼마나 화가 나고 안타깝겠는가. 오빠 소식을 기다리던 그때, 뼈와 살이 타들어가는 것 같던 그 심정은 말로 다 못한다. 가족과 똑같은 마음이기를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항상 반복되는 늑장 대처와 책임 회피로 빈축을 사는 일이 좀 없었으면 좋겠다.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군과 정부의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들로서는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법이 없기에 답답하고 불안해지는 것이다. 깜깜한 망망대해일지라도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붙들고 싶은 가족의 마음을 이해한다. 간간히 특보가 들려오는 지금, 반가운 기적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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