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기간이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하면 그래도 뱃속에 있을 때가 편하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하지만 무엇이든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대개 흘려듣게 마련인 법. 나는 어서 아기와 만나고 싶었다.
어허, 아직도 안 돌아왔네. 39주째 초음파를 보던 중 의사 선생님의 반응. 당연히 자연분만을 생각하고 있던 내게 우리 아기는 자신이 얼마나 고집 있는 성품인지 시위라도 하듯 머리를 내 갈빗대 밑에 단단히 받치고 똑바로 서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수술 날짜를 잡아놓고도 도는 아기도 있다면서 여러 번 나를 안심시켰지만 예정일이 코앞으로 닥치니 수술을 권해왔다. 아기가 왜 이러고 있는 건가요? 어쩌면 어리석은 내 질문에 의사 선생님은 아기는 지금 그 자세가 편한 거에요, 라고 말했다. 네 마음이 그렇다니 우리 편하게 마음먹자.
날짜를 잡았는데 며칠 더 일찍 진진통인지 가진통인지 허리 부근에 뻐근한 통증이 시작되었다. 병원에 전화를 해서 상태를 고하니 당장 오란다. 가는 비가 보슬보슬 내리던 오후, 분만대기실에서 아기의 심장박동을 들으며 졸다 깨다를 반복했다. 이상하리만치 평온했다. 그때는 난생 처음 수술대에 오른다는 두려움보다는 드디어 우리 아기를 만난다는 설렘이 더 컸던 것 같다.
시간이 되었고 수술대에 오르자 긴장을 풀어주려는 듯 간호사 몇몇이 말을 걸고 농담을 했다. 나도 이 병원은 얼굴을 보고 간호사를 뽑는 것 같다고 그들을 추켜세우며 너스레를 떨었다. 잠시 후 의사 선생님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고 왼팔이 뻣뻣해지는 통증이 밀려왔다. 그렇게 스르르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 운 기억이 없는데 내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꺼진 배 부근에 쓰린 통증이 느껴졌고 엄마, 남편, 간호사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기는 건강한가요? 손가락, 발가락은요? 아주 건강하고 예쁜 공주님이에요. 얘, 3.53kg이나 나간단다. 자기야, 고생했어. 그런데도 나는 안심이 되지 않아 다시 물었다. 목에서 그르렁 거리는 소리와 함께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우리 아기가 거꾸로 있었는데 머리는 안 찌그러지고 동그란가요? 건강해. 걱정하지 마. 많이 아프지? 남편의 대답이 들려왔다.
곧 회복실로 이동했고 빨간 옷을 입은 분만실 간호사가 산모님, 우리 아기 보셔야죠, 라며 안고 있던 아기를 내게 보여주었다. 급작스럽게 눈물이 왈칵하는 것을 꼭 참았다. 울어도 되는 건데 왜 참았을까. 신생아들은 다 못생긴 줄 알았는데 어머, 우리 아기 예쁘네. 나는 팔불출 엄마처럼 감격에 겨워했다. 이미 뱃속에서 많이 자란 덕분인지 뽀얗고 눈동자가 또랑또랑한 아기였다.
저녁이 되자 서서히 마취가 풀리면서 고통이 시작되었고 무통주사를 맞아도, 아마 맞았으니 그 정도였겠지만, 끙끙 소리가 절로 나는 통증이 밤새 계속되었다. 그래도 아무 탈 없이 건강한 아기를 낳았다는 기쁨에, 내가 무슨 몹쓸 병을 고치려고 이 통증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소중한 아기를 얻었다는 위안에, 견딜만한 밤이었다.
한편, 시간이 흐르면 괜찮아지거나 잊혀지는 고통은 고통도 아니다. 그러니까 나는 앞서 우려했던 것보다 훨씬 더 서툰 엄마였던 것이다. 세상엔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사무치게 알려주려고 이 아기가 세상에 나온 건 아닐까 싶을 만큼.
정말 아기를 안는 것부터 시작해서 젖을 물리고 달래주는 일까지 모든 것이 힘들고 어설펐던 한 달이었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아기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는 엄마, 아기를 울리는 엄마라는 자책감과 괴로움으로 지난 한 달을 보냈다. 밤마다 가위에 눌렸고 입맛이 돌지 않았다. 아기가 신생아실에 있을 때나, 내 곁에 있을 때나 불안하긴 매한가지. 전문가들의 손에 맡기자니 왠지 건성일 것 같고, 내 곁에 두자니 나 자신이 너무 서툴러서 잘해줄 수 없음에 미안했다. 그런 상황에서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고 몸조리는 뒷전이었다. 오죽하면 조리원 실장님이 하루 동안은 아기한테 신경 쓰지 말고 잠만 자라고 나한테서 아기를 떼어 갔을까.
그렇게 우왕좌왕 순식간에 한 달이 흘렀고 요즘은 친정집에서 지내고 있다. 노련하고 부지런한 친정엄마 덕분에 아기는 점점 안정을 찾아가고 있지만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나 스스로가 짜증나고 이런 엄마를 둔 우리 아기가 안타까워서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모자란 엄마 때문에 평화롭지 못하고 극성스런 아기로 클까봐 노심초사 하면서. 친정엄마는 우리 아기가 보통내기가 아니라면서 엄마가 아기 머리 꼭대기에 있어야지 그렇게 여리기만 해가지고 어떻게 하냐고 꾸지람을 하신다. 그런데 나는 아기 울음소리만 들리면 마음이 한없이 약해져서 그저 우리 아기가 하자는 대로 하고 싶을 뿐이다. 우리 아기가 이따금 배냇짓을 하면서 씩, 하고 웃는 것은 이런 바보 같은 엄마를 눈치 챘기 때문일까.
내일은 두 번째 예방접종을 하러 가는 날. 무엇을 원하는지도 잘 모르고 스트레스만 주는 엄마 품에서도 우리 딸은 쑥쑥 자라 그새 4kg이 넘었다. 신생아실 간호사 이모가 수유일지에 우리 아기 얼굴 보며 소원 빌어도 되겠다고 써놓았지. 엄마가 아직 부족하고 서툴러서 미안해. 우리 아기 울리지 않으려고 애쓰는데도 늘 안절부절 하는구나. 너는 엄마에겐 생애 가장 큰 선물. 엄마가 앞으로 더 노력할게. 우리 아기는 그저 잘 먹고 잘 자며 잘 크는 일이 효도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