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흐림 - 네 추락을 낙화로 기억하는 일
강은우 지음 / warm gray and blue(웜그레이앤블루)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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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책방에서 만난 책. 어떤 장소는 그 시간과 사람을 기억하게 한다. 어떤 책은, 어떤 문장은 조용히 마음 속으로 흘러들러와 폭죽처럼 터져버린다. 그래서 마음은 무참히 찢어져 순식간에 무너지고 만다. 울지않고는 버틸 수 없다. 그렇게 만난 문장으로 위로받기도 한다. 이제는 다시 일어나는 일만 남게 되니까. 언제나 상처를 주고도 내가 더 상처받은 것처럼 주저앉곤 했다. 나는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다시 제자리. 더 나은 사람, 더 좋은 사람이 되지 못했다. 이럴 때 나를 다독여주고 어루만져 주는 책을 만났다. 한없이 우울해지게도, 조용히 안아주기도 하는 그런 책을 만났다.

한 줄 한 줄 정렬되어있는 글이 온통 어지럽던 마음을 차분하게 하기도 했다. 강박처럼 맞춰진 글들이 답답해지기도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멈추지 않고 읽기란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밑줄을 긋고 필사하고 하면서 위로의 시간을 보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니 조금만 더 있어
아주 잠시만 같이 있어
_ 투정

나는 두려워서
조용히 너를 당겼다
그러자 당겨지는 것이 두려웠다
_ 중력

모래밭에 절여진 손 밑동만 홀로 남아서
축축하고 짠 글만 쓸 수 있다면 좋겠지
그리고는 흔적없이 지워지면 좋겠지...

가지마, 무슨 일이 있어도 없어지지마
_ 허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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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계절 - 일본 유명 작가들의 계절감상기 작가 시리즈 2
다자이 오사무 외 지음, 안은미 옮김 / 정은문고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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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같이 사계절이 뚜렷한 일본의 작가들에게 계절을 받아들이는 마음은 어떨까. 작가에 대한 동경이 있고 계절의 냄새를 좋아하는 나로선 책 소개부터 흥미를 끌었다. 계절이 지나가는 것을 눈으로 코로 귀로 느낀다. 그리고 가을만 타는게 아니라 계절 자체를 타는 것 같은 기분이다. 작가들은 계절을 글로 표현하겠지. 아름다운 문장으로.

생각했던 것보다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워낙 모르는 작가가 많기도 했고 문체가 마음을 울리지 않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계절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우리나라 작가들의 계절에 대한 글도 읽어보고 싶다.



여름 안에 가을이 몰래 숨어 이미 찾아왔는데도 사람은 불볕더위에 속아 알아채지 못한다. 귀 기울여 들어보면 여름이 오자마자 벌레가 울고, 정원을 유심히 둘러보면 도라지꽃이 피어 있다. 잠자리도 원래는 여름벌레이고 감도 여름 동안에 착실히 열매를 맺는다.

가을은 교활한 악마다. 여름 사이 모든 단장을 마치고 코웃음을 치며 웅크리고 있다. 나만치 날카로운 눈을 가진 시인이라면 그 기색을 눈치챈다.

아, 가을_다자이 오사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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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긴밤 - 제21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83
루리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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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마지막 하나 남은 흰바위코뿔소와

코뿔소 품에서 태어난 어린 펭귄.

그땐 기적인 줄 몰랐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것이 다른 우리에게 서로밖에 없다는 게.



노든은 코끼리 고아원에서 코끼리들과 자란 코뿔소다. 지구상의 마지막 하나가 된 흰바위코뿔소 노든은 소중한 가족을 잃고 친구를 잃으면서 매일 악몽을 꾸고 살아남은 것이 운이 좋은 것인 알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인간들을 코뿔소의 뿔을 얻기위해 쉽게 코뿔소들을 사냥하며 코뿔소를 멸종직전에 이르게까지 만든다. 그러다 전쟁으로 노든이 있던 동물원이 파괴되면서 노든은 다시 한 번 세상밖으로 나서게 된다. 치쿠와 버려진 알을 데리고. 치쿠는 죽는 순간까지도 펭귄알을 품었고 노든은 그렇게 태어난 펭귄과 함께 바다를 찾아떠난다.



책을 읽는 내내 자꾸만 눈물이 나는 걸 멈출 수가 없었다. 훌륭한 코뿔소가 되는 일만 남은 노든이 코끼리 고아원을 나와 가족을 만들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 아내를 잃는 그 순간은 터져나오는 울음에 책을 계속 이어갈 수 없었다. 상처입은 채로 동물원에 가게 된 노든이 앙가부를 만나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힘을 얻었지만 또다시 친구를 잃게 된다.



하지만 노든은 살아남은 것이 정말 운이 좋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p.40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고통스럽고 후회와 자책으로 가득찬 노든은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포기할 수가 없어. 왜냐면 그들 덕분에 살아남은 거잖아. 그들의 몫까지 살아야 하는거잖아. 그러니까 안간힘을 써서, 죽을힘을 다해서 살아남아야 해.”



그들의 몫까지 살아야 한다는 노든과 스스로 살고 싶어서 악착같이 살아낸 어린 펭귄. 너무도 다른 둘이 바다를 찾아떠나는 여정이 자꾸만 먹먹해져서 혼났다. 노든을 지키기 위해 할 줄 아는 거라곤 똥뿌리는 것뿐인 펭귄의 모습에도, 나도 그래라고 대답한 노든의 모습에서도, 복수하지 말고 같이 살자고 말하는 펭귄의 말에도 눈물은 시도때도 없이 흘러내렸다.



“그치만 나한테는 노든밖에 없단 말이에요.”

“나도 그래.”

눈을 떨구고 있던 노든이 대답했다. 그때 노든의 대답이 얼마나 기적적이었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것이 다른 우리가 서로밖에 없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그때는 몰랐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기적이었다. 윔보와 치쿠가 버려진 알을 품어 준 것부터, 전쟁 속에서 윔보가 온몸으로 알을 지켜 내 준 것, 치쿠가 노든을 만나 동물원에서 도망 나온 것, 마지막 순간까지 치쿠가 알을 품어 준 것, 그리고 그 마지막 순간에 노든이 있어 주었던 것……. 그 모든 것이 기적이라는 단어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었다. p.94



안전하다 생각했던 동물원에서 나와 홀로 나아가야 할 수많은 긴긴밤이 무척 두려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길로 두렵지만 긴긴밤을 견디며 찾아갈 것이다. 긴긴밤 하늘에 반짝이는 별처럼 빛나는 무언가를 찾아서.

우리를 지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게 하는 것은 내 옆을 지킨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이 나에게 힘을 줄 것이고 나 역시도 그들에게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저 혼자라고 생각하지 않고 함께하는 삶의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고, 그렇게 긴긴밤을 보내며 반짝이는 무언가를 찾게 될 거라고 말이다.



나는 세상에 마지막 하나 남은 흰바위코뿔소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가족을 위해 목숨을 걸고 뛰어나간 노든의 아내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직 죽지 않은 연인을 뒤로하고 알을 데리고 도망쳐 나오던 치쿠의 심정을, 그리고 치쿠와 눈이 마주쳤던 윔보의 마음을, 혼자 탈출하면 무슨 재미가 있겠느냐던 앙가부의 마음을, 코끼리들과 작별을 결심하던 노든의 심정을 이해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p.124



노든의 이야기와 함께 아름다운 그림들이 있었다. 슬프지만 아름다운 이야기였고 앞으로 이어질 긴긴밤을 살아갈 용기를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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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3-06-09 21: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그래도 예전에 독서괭 님 서재에서 감동적이었다는 글을 읽고 한 번 읽어보려고 찜했었던 책이네요.^^
아...병렬독서!!! 한 권 곧 추가될 것 같네요ㅋㅋㅋ
근데 잉크 글자색도 이쁘군요?^^

하리 2023-06-09 21:33   좋아요 1 | URL
오래오래 여운이 있는 책이었어요 추천추천🥰 제가 파랑계열을 좋아해서 잉크가 파랑쪽이 많더라고요 히히 쨍한 파랑 좋아요💙
 
사랑하고도 불행한 (리커버 특별판)
김은비 지음, 무라야마 도시오 옮김 / 디자인이음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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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문고 다른 책들은 작은 판형인데 이 책은 크다. 신기하게 일본어번역이 같이 있다.

그저 행복하고 좋기만 한 사랑이 있을까.
사랑하고도 불행할 수 있고
사랑때문에 아프기도 할테지.

온세상 꽃밭같이 행복하면 좋겠지만
사랑때문에 울고 괴롭고 좌절하고
그래서 아프기도 하다.
언제나 사랑은 어렵다.

■ 내 사랑은 매번 극단적이야.
그래서 시작됐고, 그래서 끝났지.
이런 내 사랑도 괜찮다면
나는 지금 네게 당장 달려갈 거야. p.37

■ 사랑이 무엇인지 잘은 모르지만
그래도 나는 당신을 쓴다. p.46

■ 나의 행복과 불행의 이유가 모두 당신이 될 수능 없겠지만
그래도 우리 이 모든 걸 함께하기로 해.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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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안개 - light and fog
최유수 지음 / 도어스프레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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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안개, 최유수


빛이 기억을 빚는다. 어둠은 감정을 빚는다. 문틈 사이로 눈빛이 닫히고 나면 과거는 멀어진다. 그리움보다 더 멀리. 밤이 지나간 자리에 빈 괄호들이 남겨져 있다. 안개 속에서 빛들의 목소리를 받아 적었다.
#책소개



최유수를 좋아하는 사람 덕분에 최유수를 알게 되었고 나 역시도 최유수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래서 사랑의 몽타주와 무엇인지 무엇이었는지 무엇일 수 있는지를 거쳐 빛과 안개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 사람이 읽고 있던 책은 아무도 없는 바다라는 책이었고 아직 그 책을 읽지는 못했다. 좋아하는 작가가 생기고 그 작가의 책을 하나씩 읽어나가는 일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뭉클해지기도 하고. 애틋하고 뭉클하고 먹먹해지는 그런 문장을 사랑한다. 최유수의 글에게는 그런 문장들이 많은데 빛과 안개에서는 쓰기에 대한 부분도 있어서 또 좋았다. 쓴다는 것은 내겐 어려운 일이고 리뷰를 쓰는 순간에도 고민하고 고민해서 쓰지만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일단 쓰고 본다는 작가의 문장이, 내 글이 제일 후지고 별로인 것처럼 느껴지더라고 일단 쓴다는 그 문장이 무척이나 마음을 다독여주었다. 제대로 된 글을 쓰진 못하지만 용기를 얻어 별볼일 없는 리뷰라도 조금씩 써보고 있다. 천천히 차근차근.

책 속에 나무와 숲 같은 풍경, 비오는 풍경, 꽃이 피는 풍경 등 자연이 자주 나온다. 사람이 두렵고 사람이 어려운 나에게 자연은 위로를 준다. 그래서 지난 2년간 꽃을 보고 나무를 보고 바다를 보며 그렇게 걷고 걸었던 모양이다. 이제는 아픈 마음 말고 기쁜 마음으로 계절의 흐름을 느끼고 싶다. 마음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자꾸만 아프기도 하는데 괜찮아지겠지, 그렇게 조용히 다독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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