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척 길벗어린이 문학
우메다 슌사코 글, 우메다 요시코 그림, 송영숙 옮김 / 길벗어린이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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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에서 왕따, 집단따돌림은 뉴스에서도 책 속에서도 흔히 볼 수 있게 되었다. 그 수위는 장난스런 괴롭힘을 넘어 잔인하고 심각한 수준까지 변해가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 피해자와 가해자가 있다. 간혹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기도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는 모습까지도 나타난다. 이 책은 <모르는 척>이라는 제목에서도 느껴지듯이 괴롭힘을 당하는 친구를 모르는 척 하는 방관자의 시선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돈짱은 사소한 실수 하나 때문에 야라가세 패거리에게 집단따돌림(이지메)을 당하게 된다. 처음엔 단순히 미술시간에 그림을 망치는 정도였지만 점점 괴롭힘의 수위는 잔인하고 폭력적으로 변한다. 연극을 핑계삼아 폭력을 휘두르고 문구점에서 학용품을 훔치게 한다. 반 친구들은 야라가세 패거리의 행동을 목격하지만 모두들 모르는 척 한다. ‘나’는 돈짱을 불쌍히 여기면서도 모르는 척 한다. 혹시나 야라가세가 자신도 괴롭힐까봐 두려워하며 괴로워한다. 그러다 문구점에서 돈짱이 샤프를 훔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고 그로 인해 야라가세에게 휘둘리게 된다. 방관자에서 피해자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부모님께 얘기하지만 가볍게 흘려넘긴다. 부모님 역시 방관자와 마찬가지이다. 선생님도 그렇다. 반 아이들 앞에서 “우리 반에는 친구를 괴롭히는 아이는 없지요?” 라며 무관심한 태도를 보인다. 어른들의 태도때문에 아이들은 위로받거나 기댈 곳 없이 상처받고 정말하게 되는 것이다. 작가는 바로 이런 모습을 비판하고 싶었을 것이다.

결국 돈짱은 학예회에서 야라가세에게 달려들어 바지를 벗기며 복수를 하게 된다. 그리고 전학을 가고 나서야 괴롭힘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리고 씁쓸한 사실은 야라가세가 중학생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이다. 야라가세도 언제든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바로 우리가 방관해서 안된다는 것이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는 자꾸만 돈짱이 떠올라 괴로워하다가 졸업식 날 많은 아이들 앞에서 용기가 없어서 모르는 척 했던 자신의 모습에 대해 얘기한다. 그리고 이런 모습으로 중학생이 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제야 ‘나’는 후련함을 느낀다. 그렇게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인물은 어묵파는 아저씨이다. 돈짱이 의지할 곳 없이 절망하고 있는 때 위로해 준 사람이다. 그리고 ‘나’에게 모르는 척해선 안된다고 알려준 사람이기도 하다. ‘나’의 부모님이나 선생님과 같은 어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저씨와 같은 어른도 있는 것이다. ‘모르는 척’하는 것은 그 친구가 괴롭힘을 당해도 괜찮다고 하는 것과 같다고, 여럿이서 한 아이를 아프게 하는 거라고 알려주었다. 아저씨를 통해서 어른들이 해야 할 자세를 보여주고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해주는 것 같다.

우리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나타나고 있는 집단따돌림 앞에서 우리들은 어떻게 대처하고 바라보고 있을까? 바로 ‘나’와 같이 방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묵파는 아저씨가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렇다고 해도 역시 모르는 척해서는 안 되는 거야. 마음속에 간직한 등불이 꺼져 버리면 어떻게 되겠니?” 우리들의 마음속에 있는 등불이 꺼지지 않고 그 따뜻한 전해지는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해도 역시 모르는 척해서는 안 되는 거야. 마음속에 간직한 등불이 꺼져 버리면 어떻게 되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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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19
사라 스튜어트 지음, 데이비드 스몰 그림, 지혜연 옮김 / 시공주니어 / 199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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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브라운은 마르고 수줍은 많은 아이다. 엘리자베스가 좋아하는 것은 바로 책 읽기! 인형놀이도, 스케이트도 관심이 없다. 오직 책에만 관심이 있다. 어릴 때에도 책만 읽던 엘리자베스는 학교에 가서도, 나이가 들어서도 늘 책만 읽는다. 어릴 때 꿈꾸는 것이 있었다. 책으로 가득한 집 안에서 하루 종일 책을 읽고 싶었다. 책 속에 파묻혀 해가 지는 것도 모른 채 책을 읽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다. 엘리자베스가 침대 위 이불 속에서 손전등을 켜고 읽던 모습을 보며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라 웃음을 터트렸다. 엘리자베스는 어른이 되어서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집 안이 책으로 가득 찰 지경에 이를 때까지 책을 사고 읽었다. 그리고 집을 기증하여 도서관으로 만든다. 아. 얼마나 아름다운 삶인가. 책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삶. 자신의 집이 도서관이 되어 사람들에게 자신의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만든다는 것은 정말 아름다워 보였다. 그리고 할머니가 되어서 책을 읽는 엘리자베스의 모습이 참 행복해보였다. 나도 엘리자베스처럼 늙어서도 책을 읽고 책 때문에 행복한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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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청소부 풀빛 그림 아이 33
모니카 페트 지음, 안토니 보라틴스키 그림, 김경연 옮김 / 풀빛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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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표지판을 닦는 청소부 아저씨는 행복했다. 자기 일을 사랑했고 깨끗하게 표지판을 닦으며 칭찬도 받았다.

 

아저씨는 자기가 닦는 표지판과 그 거리를 사랑했으니까 인생에서 바꾸고 싶은 것이 있냐고 물어도 '없다'라고 대답한다고 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

 

지나가던 아이와 엄마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닦고 있는 표지판 속 인물들에게 대해 보게 된거다.

 

바흐 거리, 베토벤 거리, 하이든 거리. 자신이 닦는 표지판이 있는 거리의 음악가, 작가들. 아이가 몰랐던 것처럼 아저씨도 그들을 몰랐다.

 

그 때 깨달았다. 아, 이 유명한 사람들의 이름을 바로 코 앞에 두고도 그 사람들에게 대해 아는 것이 없구나, 라고.

 

그 후부터 아저씨는 음악을 찾아 듣게 되었고, 음악회에 가고, 오페라에 갔다.

 

그리고 일하면서 곡을 외워서 휘파람을 부르곤 했다.

 

그리고 작가들이 궁금해졌고 도서관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처음엔 잘 이해가 안 되고 모르는 것도 있었지만 매일 매일 책을 읽고 음악을 들었다.

 

그러더니 표지판을 닦으며 음악에 대해, 책에 대해 중얼거리며 스스로에게 강연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 명, 두 명 아저씨의 강연을 듣느라 사다리 아래 멈춰져 있는 사람이 들어났다.

 

아저씨는 점차 유명해졌고 대학에서까지 연락이 왔지만 아저씨는 거절했다.

 

자신은 청소부일뿐이라며,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강연을 하는 것이니 교수가 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아저씨는 여전히 표지판을 닦는 청소부로 남아있다.

 

 

 

 

 

 

간략하게 정리했기도 하지만 글이 많지 않은 그림동화책이다. 나는 그림동화를 좋아한다.

 

얼굴 빨개지는 아이, 자전거를 못 타는 아이, 생각을 모으는 사람 등.

 

행복한 청소부는 직업에 대한 가치와 편견, 행복의 기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초등학생들이 읽어야 할 동화지만 동시에 어른들에게 필요한 동화이기도 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해 늘 고민하며 살아오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청소부 아저씨가 참 사랑스럽다.

 

현실 속에 자신의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경제적인 여건과 사회적 지위, 명예가 섞인 복잡한 의미의 직업 안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대한 개념은 빼버리지 않을까 싶다.

 

동화에서 '청소부가 시와 음악을 안다고?' 라며 놀라는 장면이 있다.

 

그게 우리 사회의 모습인 것 같아 조금 씁쓸하기도 하다.

 

그러나 직업으로 인한 시선과 판단을 나도 하고 있기에 부끄럽기도 하다.

 

동화를 읽고난 아이가 청소부가 된다고 하면 부모가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동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청소부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겠지.

 

철부지같은 소리를 한다고 생각할수도 있지만 나는 그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

 

돈도 많이 벌고 명예도 얻고 다른 이들이 부러워하는 일을 한다는 것도 물론 좋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자기의 마음이나 의지가 배제된 일이라면 그건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청소부 아저씨처럼 자신의 소신을 지키며 살아가고 싶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이 삶이 좋다.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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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는 아무데나 가야겠다 - 우리가 가고 싶었던 우리나라 오지 마을 벨라루나 한뼘여행 시리즈 1
이원근 지음 / 벨라루나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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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도 전에 떠오르는 풍경이 있다. 태백 구와우 마을, 비바람에 쓰러진 해바라기가 가득했던 그 곳이다. 그리고 해바라기를 따라 걸으며 보았던 야생화의 이름을 들려주던 이원근 팀장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게 바로 작년 여름의 일이다.

 

비오는 여행길이었지만 빗물로 선명해진 초록의 숲이 어찌나 아름다웠는지 아직도 그 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여행사를 통해 가는 국내여행은 처음이었던 그 때 그를 보면서 ‘이 사람은 진짜 이 곳을 좋아하는구나! 좋아서 하는 여행이구나’ 란 생각을 잠시 했었다.(책은 강원도가 대부분이고, 강원도를 가장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런 그가 책을 냈다. ‘주말에는 아무데나 가야겠다’ 라며. 아무데나 간다니!! 얼마나 자유롭고 두근거리는 말인지 모르겠다. 17년간 국내여행만을 했던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 기대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어릴 때 해외여행만을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기회가 된다면 가보고 싶은 나라들이 많다. 국내는 언제든 갈 수 있기에. 그러나 삶의 대부분을 국내여행으로만 다녔던 저자의 책을 보니 참 안일한 생각이었다 싶다. 어떤 페이지를 펴더라도 너무나 아름다운 곳, 사진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움이 전해지지만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그런 곳을 보여주고 있었다.

 

듣는 것만으로도 설렌다는 동강, 고개의 형상이 새가 날아가는 모습이라 붙여진 새비령, 비경의 호수와 아홉가지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이라는 비수구미, 골짜기를 뜻하는 강원도 말인 고라데이, 수레를 타고 넘었다는 수레너미재, 꽃이 많아 꽃꺼기재, 야생화의 천국인 곰배령. 이름만 들어도 그 아름다운이 느껴지는 듯하다.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곳은 모두 이 책에 모여 있다.

 

‘우리가 가고 싶었던 우리나라 오지 마을’이라는 부제에 맞게 정말 오지마을만을 소개하고 있다. 나는 이 책에서 처음 듣는 곳이 너무 많아 한 곳, 한 곳 여행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오지마을이기 때문에 교통편과 식사, 숙박이 쉽지 않다. 쉽게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니 그 곳이 더 궁금하고 찾아갔을 때의 기쁨은 더욱 크지 않을까 싶다.

 

내 생애 이 곳들을 전부 볼 수 있을까. 이 아름다운 곳이 훼손되지 않길 바랐던 저자와 아버지의 바람처럼 언젠가 내가 그 곳을 찾아갔을 때 그 모습 그대로 남아있길 바래본다. 일단 가장 가까운 보곡마을로 떠나야겠다. 아무데나 가라고 떠밀지 않아도 나는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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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 거야 - 230 Days of Diary in America
김동영 지음 / 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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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 거야 _ 김동영(생선)

 

 

 

세상 모든 사람들은 누구에게든 혹은 어디서든,

자기 자신이 중요하고 필요한 사람으로 받아들여지길 원한다.

물론 나도 그랬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고 보니

마치 내가 때마다 갈아줘야 하는 자동차 소모품처럼 느껴졌다. p.18

 

▷ 사실 예전부터 책장에 있던 책이었다. 몇 장 읽다가 만 책.

책은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 다르게 읽힌다.

나는 지금 생선처럼 직장을 잃었다.

잘린 것은 아니지만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갔으니

잘렸다고 해도 될 것 같다.

상황이 어찌됐든 내가 필요하지 않으니까.

직장을 잃고나니 이 책이 눈에 들어왔고

처음과는 다른 기분으로 한 장씩 천천히 읽었다.

직장으로 인해 나의 가치가 보여지는 것이 아닌데

지금 상황이 나를 쓸모없이 느껴지게도 했었다.

바닥으로 내려앉아 웅크리고 숨지 않았지만

자동차 소모품이라고 느꼈던 생선의 그 심정이 전보다 더 와닿았다.

200일 이상은 아니었지만 나도 짧은 여행을 떠났었다.

갑자기 텅 빈 듯한 감정을 어찌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떠나올 때 가졌던 용기만큼만 여행하는 거야.

그러면 어떻게든 여행의 끝에 가 있을 테니.’

그랬더니 결국 내가 달린 거리만큼 처음에는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던 무언가가

내게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그 무언가는 마치 내가 간절히 만나기를 기다렸던 그 누구의 존재 같기도 했다.

최면 같았다.

 

내가 없더라도 내가 떠나온 그곳에선 여전히 찬란한 햇빛이 비치고,

새 계절이 올 것이며, 모두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바쁠 거란 걸 알고 있었다.

 

오직 나만 홀로 떨어져 나왔으니 내가 그곳을 생각하는 만큼

누군가도 날 기억해주길 바랄 뿐.

하지만 변한 건 아무것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내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도 세상은 어제와 같은 것이다.

단지 이렇게 조금, 아주 조금 변한 나 자신만 있을 뿐. p.21

 

▷ 나는 직장을 잃었고 여행을 다녀왔다. 오타루에서 새해를 맞이했다.

세상은 평소와 똑같이 돌아간다.

하지만 오타루에 다녀오고 시험을 준비하고. 그렇게 조금씩 변하고 있다.

그런 나를 보듬고 나아가고 싶다.

 

"하지만 사람이 살아가면서 꼭 위로 높아지는 것만이 정답은 아닌 것 같아.

옆으로 넓어질 수도 있는 거잖아. 마치 바다처럼.

넌 지금 이 여행을 통해서 옆으로 넓어지고 있는 거야.

많은 경험을 하고, 새로운 것을 보고,

그리고 혼자서 시간을 보내니까, 너무 걱정 마.

내가 여기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다른 사람들이 너보다 높아졌다면,

넌 그들보다 더 넓어지고 있으니까." p.66

 

 

▷ 위로 높아지기보다

옆으로 더 넓어지기를 바란다.

그래도 불안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내 발걸음을 믿고 걷고 싶다.

 

 

살아가면서 내가 지금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면

지금처럼 혼란스럽거나 불안하지 않겠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그걸 모른채 여기저기 헤매고 있다.

그래서 나는 울면서 달렸고,

어쩌면 당신도 나처럼 울면서 달리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p.94

 

▷ 왜 여전히 어디로 가야 하는지,

지금 가는 길이 맞는지 몰라 헤매는 것일까.

정해진 목표가 있다면 좋을텐데.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정확한 건 없는 게 미래겠지.

그래서 불안한건지도. 나도 마음으로 울며 달리는지도.

 

 

 

그들이 떠난 자리에 한참을 쭈그리고 앉아서 생각했어.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가에 대해서.

돌아갈 길을 모르는 바보가 되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마운 경험인가에 대해서.

그리고 가끔은 바보가 되어 누군가가 나를 어디론가 데려다준다는 것이

얼마나 괜찮은 일인가에 대해서도.

지긋지긋한 관계들 속에서 어디론가 조용히 숨고 싶을 때,

난 이 일을 되새기게 될 것 같아.

결국은 돌아올 수밖에 없는 지도를 들고 결국 그 길을 돌아올 테고,

다시 그 사람들 속에서 관계를 고마워하면서 살아갈 테니까.

그렇게 결국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을 테니까. p.125

 

 

▷ 여행의 의미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떠나고 나서야 소중함을 알게 되는 것.

결국 되돌아올 곳이 있기 때문에 여행이 의미가 있는 것이라는 것.

관계의 소중함과 돌아갈 곳에 대한 감사함이 바로 여행에서 느껴지는 거라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사랑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취향에 대해서만큼은 좀더 자연스러워지고 편안해지는 것. p. 131

 

▷ 타인의 취향을 존중하고 배려한다는 것만큼 어려운 것이 또 있을까.

나는 나의 취향을 고집하지나 너는 나를 따라와야 하는 것,

그 얼마나 이기적인지.

점점 나의 취향을 고집하게 되지만

내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보다

다름을 인정하는 사람이고 싶다.

 

 

“이제까지는 새로운 무엇인가를 보고 느끼는 것이 여행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것 말고도 당신 같은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할 수 있는 것도 여행인 것 같아요.” p.182

 

▷ 여행이란 그런 것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 낯선 공간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것.
그 곳에서 또 나른 나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
평범하던 일상의 모든 것이 특별해지고 그 곳에서 만난 이들이 그리워진다.
그래서 계속 떠나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래, ‘오래된 사람’.

나도, 이 여행을 끝내고 나면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오랜만에 봐도 어제 보고 또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사람.

여전한 사람.
한결 같은 사람.
그렇게 당신에게 힘이 되는 사람. p.199

 

 

▷ 늘 한결같은 사람. 다시 보고 싶은, 그런 친근한 사람.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변덕스럽고 투덜거리는 내가 아니라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

 

 

 

여행 중에 얻은 또 다른 휴가.
아무것도 보지 않고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는 시간……
여행을 떠나오기 전 내가 좋아하는 안선배가 해줬던 말처럼,
인생에서 우리가 무엇인가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편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진 걸 소모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훌륭한 경험인지 모른다. p. 229

 

 

▷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배우고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바쁘게 살아가는 것이 미덕인 듯
살아가는 것 같다.
멈춰있는 것은 도태되고 안주한다고
어서 빨리 달려가라며 등을 떠미는 것 같다.
그런 와중에 가만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시간조차
훌륭한 경험일지 모른다는 그의 한 문장에
'그래, 지금 그대로도 괜찮아' 라고 이해받은 것만 같았다.
어느 누군가에겐 별볼일없는 문장일지라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 큰 위안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까.

 

 


외로움은 참을 수 없는 것.
가난은 숨길 수 있지만,
두려움은 숨길 수 있는 거지만
외로움은 숨길 수 없는 것. p.238

 

 

 

▷ 혼자라도 괜찮다. 외롭지 않다.
그래도 평생 혼자일 순 없는 것이다.
누구도 외로움에서 벗어날 순 없다.
그러니 함께 살아가는 것이 아닐지.


 

 

나는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그 많은 풍경들에게 일일이 대답했다.
그리고 말했다.
그 아름다운 길 위에 나를 못질해줘서,
또 나를 찬란하게 해줘서 고맙다고! p.298

 

 

▷ 떠나고 나니 내가 보이더라.
모나고 변덕스러운 나도,
아이처럼 설레는 나도,
두려워하는 나도,
행복해하는 나도 보이더라.
다음에 좀 긴 여행을 떠나고 싶다.

 

 

하리

세상엔 정말 많은 직업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사막 한가운데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찾아 헤매는 직업이 있다는 건 상상밖의 일이었다.

그 사람은 누군가가 자신의 존재를 상상하는 것을 크게 원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사막에서는 아무것도 소용이 없을 테니까.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만 있을 뿐이니까.

그는 그저 옆에 서 있는 사람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채 맡은 일을 마치고 돌아가면 그뿐이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

황량한 사막은 그야말로 사람을 아무것도 아니게 한다. p.46





훌쩍 떠나고 보니 내가 알고 있는 건 지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고,

정작 내가 제대로 알고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여행 내내 느꼈다.



그러므로 난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했다.

내가 말하던 방식대로가 아니라 제대로 말하는 법,

내가 먹는 것만 먹는 게 아니라 내가 먹을 수 없는 것까지 먹는 법,

그리고 옷을 개는 법, 자고 일어난 자리를 정리하는 법,

심지어 벌여놓은 짐을 다시 싸는 법까지 모든 걸 다시 배워야 했다.

나는 그 동안 가방 안에 아무렇게나 쑤셔넣은 전선들처럼

엉망으로 엉켜 있었다.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모든 걸 혼자 해야 한다고 해서 겁을 먹기보다는

새로 배울 것들 앞에서 설레기도 한다. p.59



난 언제부턴가 이 대책 없는 여행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그렇게 불안했던 건,

내 눈에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대책 없이 펼쳐진 풍경들 앞에서

내가 너무 멀리 와버린 것 같다는 기분이 들어서였다.

어차피 난 갈 곳을 미리 정해두지 않았기에 길을 잃을 일도 없었다.

하지만 난 바보처럼 자주 길을 잃었다.

망설임이, 불안함이 날 그렇게 만들었다.

정확한 목적지가 있었다면

오히려 찾아가기 쉬울지도 모르지만 목적지가 없었기에

난 길 위에서 항상 망설였고 자주 서성거렸다. p.63

많이 달라진 그를 탓하기보다는

전혀 변하지 않은 나 자신을 의심하는 게 더 낫다.

별똥별이 떨어질 때 소원을 빌지 못했다고 투덜대기보다는

하루에 세 번 자기가 원하는 걸 기도하는 편이 더 낫다.

많이 먹기보다는 오래된 생각을 버리는 게 더 낫다.

사랑하기보다는 사랑받는 편이 더 낫다. p.75

뭔가에 빠져드는 일, 그 일은 논리가 없다.

해석도 불가능하다. 마치 사랑처럼. p.161







세상에서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만 있다면

조금은 초라해도 아무 상관없다는 걸.

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 거야. 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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