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 거야 - 230 Days of Diary in America
김동영 지음 / 달 / 2007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 거야 _ 김동영(생선)

 

 

 

세상 모든 사람들은 누구에게든 혹은 어디서든,

자기 자신이 중요하고 필요한 사람으로 받아들여지길 원한다.

물론 나도 그랬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고 보니

마치 내가 때마다 갈아줘야 하는 자동차 소모품처럼 느껴졌다. p.18

 

▷ 사실 예전부터 책장에 있던 책이었다. 몇 장 읽다가 만 책.

책은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 다르게 읽힌다.

나는 지금 생선처럼 직장을 잃었다.

잘린 것은 아니지만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갔으니

잘렸다고 해도 될 것 같다.

상황이 어찌됐든 내가 필요하지 않으니까.

직장을 잃고나니 이 책이 눈에 들어왔고

처음과는 다른 기분으로 한 장씩 천천히 읽었다.

직장으로 인해 나의 가치가 보여지는 것이 아닌데

지금 상황이 나를 쓸모없이 느껴지게도 했었다.

바닥으로 내려앉아 웅크리고 숨지 않았지만

자동차 소모품이라고 느꼈던 생선의 그 심정이 전보다 더 와닿았다.

200일 이상은 아니었지만 나도 짧은 여행을 떠났었다.

갑자기 텅 빈 듯한 감정을 어찌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떠나올 때 가졌던 용기만큼만 여행하는 거야.

그러면 어떻게든 여행의 끝에 가 있을 테니.’

그랬더니 결국 내가 달린 거리만큼 처음에는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던 무언가가

내게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그 무언가는 마치 내가 간절히 만나기를 기다렸던 그 누구의 존재 같기도 했다.

최면 같았다.

 

내가 없더라도 내가 떠나온 그곳에선 여전히 찬란한 햇빛이 비치고,

새 계절이 올 것이며, 모두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바쁠 거란 걸 알고 있었다.

 

오직 나만 홀로 떨어져 나왔으니 내가 그곳을 생각하는 만큼

누군가도 날 기억해주길 바랄 뿐.

하지만 변한 건 아무것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내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도 세상은 어제와 같은 것이다.

단지 이렇게 조금, 아주 조금 변한 나 자신만 있을 뿐. p.21

 

▷ 나는 직장을 잃었고 여행을 다녀왔다. 오타루에서 새해를 맞이했다.

세상은 평소와 똑같이 돌아간다.

하지만 오타루에 다녀오고 시험을 준비하고. 그렇게 조금씩 변하고 있다.

그런 나를 보듬고 나아가고 싶다.

 

"하지만 사람이 살아가면서 꼭 위로 높아지는 것만이 정답은 아닌 것 같아.

옆으로 넓어질 수도 있는 거잖아. 마치 바다처럼.

넌 지금 이 여행을 통해서 옆으로 넓어지고 있는 거야.

많은 경험을 하고, 새로운 것을 보고,

그리고 혼자서 시간을 보내니까, 너무 걱정 마.

내가 여기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다른 사람들이 너보다 높아졌다면,

넌 그들보다 더 넓어지고 있으니까." p.66

 

 

▷ 위로 높아지기보다

옆으로 더 넓어지기를 바란다.

그래도 불안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내 발걸음을 믿고 걷고 싶다.

 

 

살아가면서 내가 지금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면

지금처럼 혼란스럽거나 불안하지 않겠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그걸 모른채 여기저기 헤매고 있다.

그래서 나는 울면서 달렸고,

어쩌면 당신도 나처럼 울면서 달리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p.94

 

▷ 왜 여전히 어디로 가야 하는지,

지금 가는 길이 맞는지 몰라 헤매는 것일까.

정해진 목표가 있다면 좋을텐데.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정확한 건 없는 게 미래겠지.

그래서 불안한건지도. 나도 마음으로 울며 달리는지도.

 

 

 

그들이 떠난 자리에 한참을 쭈그리고 앉아서 생각했어.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가에 대해서.

돌아갈 길을 모르는 바보가 되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마운 경험인가에 대해서.

그리고 가끔은 바보가 되어 누군가가 나를 어디론가 데려다준다는 것이

얼마나 괜찮은 일인가에 대해서도.

지긋지긋한 관계들 속에서 어디론가 조용히 숨고 싶을 때,

난 이 일을 되새기게 될 것 같아.

결국은 돌아올 수밖에 없는 지도를 들고 결국 그 길을 돌아올 테고,

다시 그 사람들 속에서 관계를 고마워하면서 살아갈 테니까.

그렇게 결국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을 테니까. p.125

 

 

▷ 여행의 의미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떠나고 나서야 소중함을 알게 되는 것.

결국 되돌아올 곳이 있기 때문에 여행이 의미가 있는 것이라는 것.

관계의 소중함과 돌아갈 곳에 대한 감사함이 바로 여행에서 느껴지는 거라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사랑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취향에 대해서만큼은 좀더 자연스러워지고 편안해지는 것. p. 131

 

▷ 타인의 취향을 존중하고 배려한다는 것만큼 어려운 것이 또 있을까.

나는 나의 취향을 고집하지나 너는 나를 따라와야 하는 것,

그 얼마나 이기적인지.

점점 나의 취향을 고집하게 되지만

내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보다

다름을 인정하는 사람이고 싶다.

 

 

“이제까지는 새로운 무엇인가를 보고 느끼는 것이 여행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것 말고도 당신 같은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할 수 있는 것도 여행인 것 같아요.” p.182

 

▷ 여행이란 그런 것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 낯선 공간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것.
그 곳에서 또 나른 나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
평범하던 일상의 모든 것이 특별해지고 그 곳에서 만난 이들이 그리워진다.
그래서 계속 떠나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래, ‘오래된 사람’.

나도, 이 여행을 끝내고 나면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오랜만에 봐도 어제 보고 또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사람.

여전한 사람.
한결 같은 사람.
그렇게 당신에게 힘이 되는 사람. p.199

 

 

▷ 늘 한결같은 사람. 다시 보고 싶은, 그런 친근한 사람.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변덕스럽고 투덜거리는 내가 아니라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

 

 

 

여행 중에 얻은 또 다른 휴가.
아무것도 보지 않고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는 시간……
여행을 떠나오기 전 내가 좋아하는 안선배가 해줬던 말처럼,
인생에서 우리가 무엇인가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편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진 걸 소모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훌륭한 경험인지 모른다. p. 229

 

 

▷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배우고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바쁘게 살아가는 것이 미덕인 듯
살아가는 것 같다.
멈춰있는 것은 도태되고 안주한다고
어서 빨리 달려가라며 등을 떠미는 것 같다.
그런 와중에 가만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시간조차
훌륭한 경험일지 모른다는 그의 한 문장에
'그래, 지금 그대로도 괜찮아' 라고 이해받은 것만 같았다.
어느 누군가에겐 별볼일없는 문장일지라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 큰 위안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까.

 

 


외로움은 참을 수 없는 것.
가난은 숨길 수 있지만,
두려움은 숨길 수 있는 거지만
외로움은 숨길 수 없는 것. p.238

 

 

 

▷ 혼자라도 괜찮다. 외롭지 않다.
그래도 평생 혼자일 순 없는 것이다.
누구도 외로움에서 벗어날 순 없다.
그러니 함께 살아가는 것이 아닐지.


 

 

나는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그 많은 풍경들에게 일일이 대답했다.
그리고 말했다.
그 아름다운 길 위에 나를 못질해줘서,
또 나를 찬란하게 해줘서 고맙다고! p.298

 

 

▷ 떠나고 나니 내가 보이더라.
모나고 변덕스러운 나도,
아이처럼 설레는 나도,
두려워하는 나도,
행복해하는 나도 보이더라.
다음에 좀 긴 여행을 떠나고 싶다.

 

 

하리

세상엔 정말 많은 직업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사막 한가운데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찾아 헤매는 직업이 있다는 건 상상밖의 일이었다.

그 사람은 누군가가 자신의 존재를 상상하는 것을 크게 원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사막에서는 아무것도 소용이 없을 테니까.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만 있을 뿐이니까.

그는 그저 옆에 서 있는 사람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채 맡은 일을 마치고 돌아가면 그뿐이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

황량한 사막은 그야말로 사람을 아무것도 아니게 한다. p.46





훌쩍 떠나고 보니 내가 알고 있는 건 지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고,

정작 내가 제대로 알고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여행 내내 느꼈다.



그러므로 난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했다.

내가 말하던 방식대로가 아니라 제대로 말하는 법,

내가 먹는 것만 먹는 게 아니라 내가 먹을 수 없는 것까지 먹는 법,

그리고 옷을 개는 법, 자고 일어난 자리를 정리하는 법,

심지어 벌여놓은 짐을 다시 싸는 법까지 모든 걸 다시 배워야 했다.

나는 그 동안 가방 안에 아무렇게나 쑤셔넣은 전선들처럼

엉망으로 엉켜 있었다.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모든 걸 혼자 해야 한다고 해서 겁을 먹기보다는

새로 배울 것들 앞에서 설레기도 한다. p.59



난 언제부턴가 이 대책 없는 여행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그렇게 불안했던 건,

내 눈에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대책 없이 펼쳐진 풍경들 앞에서

내가 너무 멀리 와버린 것 같다는 기분이 들어서였다.

어차피 난 갈 곳을 미리 정해두지 않았기에 길을 잃을 일도 없었다.

하지만 난 바보처럼 자주 길을 잃었다.

망설임이, 불안함이 날 그렇게 만들었다.

정확한 목적지가 있었다면

오히려 찾아가기 쉬울지도 모르지만 목적지가 없었기에

난 길 위에서 항상 망설였고 자주 서성거렸다. p.63

많이 달라진 그를 탓하기보다는

전혀 변하지 않은 나 자신을 의심하는 게 더 낫다.

별똥별이 떨어질 때 소원을 빌지 못했다고 투덜대기보다는

하루에 세 번 자기가 원하는 걸 기도하는 편이 더 낫다.

많이 먹기보다는 오래된 생각을 버리는 게 더 낫다.

사랑하기보다는 사랑받는 편이 더 낫다. p.75

뭔가에 빠져드는 일, 그 일은 논리가 없다.

해석도 불가능하다. 마치 사랑처럼. p.161







세상에서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만 있다면

조금은 초라해도 아무 상관없다는 걸.

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 거야. 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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