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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를 모르고 - 개정판
오수영 지음 / 고어라운드 / 202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는 서로를 모르고, 오수영

- 누군가를 안다는 것이 무엇일까. 누군가와 안다, 친하다는 기준이 과연 무엇일지 생각해본다. 내가 당신을 알고 있는 것이 진짜 제대로 알고 있는게 맞는지 오해하는 건 아닌지 더 조심스러워지는 날들이다.
p.3 안다고 믿었던 것들에 대한 확신이 사라집니다. 오히려 모른다고 믿었던 것들이 나를 끈질기게 지켜주고 있습니다.
- 안다고 믿는 것. 그것을 확신할 때 오만해지기 쉽다. 내가 아는 너를 이렇다, 내가 알고있기로는 이렇게 해야 해, 내가 널 잘 알아서 하는 말이야, 걔는 이런 거 좋아해, 이런 거 싫어해 등등 누군가를 안다는 이유로 그 사람의 생각을, 마음을 얼마나 많이 착각했을까. 함부로 아는체 하는 것만큼 경솔한 일이 또 있을까.
당신을 알아가고 싶을 때가 있었다. 알아가며 알게 되는 모습을 좋아하고 그렇게 가까워지는 사이들이 있었다. 그러나 안다는 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의 우리가,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와, 우리와 같을까?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시간은 흐르고, 마음은 변하고, 그 순간의 풍경과 계절과 냄새가 달라진다.
p.72 우리가 대체 서로의 어떤 모습에 반했던 것이었고, 서로의 어떤 모습에 싫증이 나버렸던 건지 도저히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지녔던 서로에 대한 상상력이 너무 지나쳤던 걸까요. 그렇다고 우리가 만약 서로에게 다른 모습을 봤었더라면, 그건 과연 서로의 진짜 모습일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겠습니까.
(...)
서로를 알았었다는 말보다는 서로에게 우리가 뭘 원했었는지를 알게 됐다고 말하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몰랐던 당신과, 몰랐던 나. 우리 이제는 각자의 자리에서 마음속에 새로운 사람의 이미들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겠지요. 부다 우리 지금은 그때보다 자신과, 그리고 상대방에게 조금 더 솔직한 이미지로 남겨지길 바랍니다.
- 매 순간 우리가 진심으로 대한다 할지라도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때의 마음과 기분이다. 그래서 지나고서나 후회하기도 그립기도 사랑스럽기도 하겠다. 무엇을 원했었는지 알게 되었다고 그래서 시간을 되새기고 다시 알아가고 지우고 그렇게 살아간다.
p. 81 우리는 실시간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만나지 않는다. 언제나 서로라는 존재의 곁을 맴돌지만 마주치지 않는다. 우리는 서로의 실명을 모르고 서로의 민낯을 모른다. 우리는 서로가 꾸며놓은 각자의 방을 구경하며 그것이 서로라는 존재의 느낌이라고 믿고, 그것이 바로 서로의 본모습의 일부라고 믿는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이미지는 자신을 대변해 줄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p.82 현실 속의 사람들은 자신의 방문을 좀처럼 열려하지 않는데 온라인 속 가상의 이미지를 향한 마음의 문은 느낌만으로 열릴 수 있다니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우리는 숱한 이미지와 낱말들을 공유하고, 따로는 현실에서 만나 서로의 상반되는 모습을 들키며 신인류의 관계에 적응해간다. 우리는 언저네처럼 서로에게 스치듯 머물고, 머물 듯 스치고야 만다. 그러다가 가끔씩은 내가 온라인에서 바라보고 있는, 이렇게 매력적인 당신의 이미지가 정말 당신일까 생각한다. 어찌됐건 우리는 서로 적잖이 연결되어 있는 이미지들이기 때문이다. 이별한 적 없지만 이별했던 것 같아서 이곳에서도 우리는 서로를 쉽게 떠나지 못한다.
- 인스타그램을 통해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내가 보여주고 싶은 이미지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좋아하는 취향을 드러내고 취미생활을 한다. 인스타그램이 하나의 사회가 되었다. 일 년에 한 번 만날까말까 하는 친구나 지인보다 인스타그램 속 팔로워들과 더 소통하고 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서로를 잘 알고 있는 걸까. 보여주고 싶은 모습을 바탕으로 한 나의 작은 세계에서는 좋은 사람들이 많고 그들과 소통하는 짧은 시간동안에는 서로가 결이 맞는 비슷한 사람이라 믿게 된다. 우리는 서로를 모르면서. 그러나 또 너무나 잘 알아채기도 하면서.
p.160 사람들이 첫 만남에서 외모를 가장 먼저 볼 수밖에 없는 것처럼, 마음에도 각자의 모양이 있어서 그것을 마치 얼굴의 형태처럼 누구나 알아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럴 수 있다면 우리는 애초부터 외모와 더불어 서로의 마음의 모양을 보고 서로에게 다가갈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게다가 마음의 모양을 알고 시작한 만남이기 때문에 서로를 괜히 의심하거나 상처를 주는 일을 조금은 덜 수 있지 않을까.
관계는 늘 피곤하고, 현실은 더 힘들고, 마음은 알아보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찾게 되고 나를 들여다보고 주저앉았다가도 일어나 나아간다.
나이를 먹어도 마음은 늘 휘청대고 미숙할 뿐이고
어쩔 땐 너무 냉정하고 이기적인 내가 놀랍기도 하다.
상처받고 싶지 않으니까.
좋은 사람을 곁에 두고 싶으니까.
그래서 조금은 행복해지고 싶으니까.
마음의 모양을 알아볼 수 있다면 좋겠다.


사랑과 이별의 말들이란
어쩌면 애초부터 상대방이 아닌
허공에 뿜어놓은 예쁜 비눗방울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p.80
금세 사라질 비눗방울 같은 말들이라고, 사랑과 이별을 말들을 허무하게 바라보게 된다 하더라도.
영원할 것이라 믿었던 관계도 언젠가는 사라져버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더라도.
사랑이 지나가고, 사람이 멀어지더라도 삶은 계속되니까. 그렇게 다시.
서로를 더 잘 알고 싶다는 마음으로.
내 마음도, 당신 마음도 더 잘 알아가고 싶다는 마음으로.
오수영(지은이)의 말
영원할 것이라 믿었던 관계가 변해가는 모습에 침잠하는 분들이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p.110 사람들은 어쩌면 이미 사랑 이야기에 지쳐버렸는지도 모른다. 모두가 사랑을 말하고, 누구나 이별 후의 미련과 집착을 말하고, 그리고 아무나 알지도 못하는 그들에게 괜찮다며 함부로 위로를 하려 한다. 사랑은 커다랗고 거부할 수 없는 삶의 부분이다. 하지만 우리를 감싸고 이는 우리의 소중한 삶과 마음, 그리고 우리라는 인간에 대해서 조금 더 들여다보고, 귀를 기울여 봐야하지 않을까. 사랑은 지나가도 우리의 삶은 이 순간에도 여전히 계속된다. 우리의 마음이 과거를 향하고 있을지라도, 우리의 삶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앞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좀 더 돌봐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