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계절 - 일본 유명 작가들의 계절감상기 작가 시리즈 2
다자이 오사무 외 지음, 안은미 옮김 / 정은문고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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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같이 사계절이 뚜렷한 일본의 작가들에게 계절을 받아들이는 마음은 어떨까. 작가에 대한 동경이 있고 계절의 냄새를 좋아하는 나로선 책 소개부터 흥미를 끌었다. 계절이 지나가는 것을 눈으로 코로 귀로 느낀다. 그리고 가을만 타는게 아니라 계절 자체를 타는 것 같은 기분이다. 작가들은 계절을 글로 표현하겠지. 아름다운 문장으로.

생각했던 것보다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워낙 모르는 작가가 많기도 했고 문체가 마음을 울리지 않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계절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우리나라 작가들의 계절에 대한 글도 읽어보고 싶다.



여름 안에 가을이 몰래 숨어 이미 찾아왔는데도 사람은 불볕더위에 속아 알아채지 못한다. 귀 기울여 들어보면 여름이 오자마자 벌레가 울고, 정원을 유심히 둘러보면 도라지꽃이 피어 있다. 잠자리도 원래는 여름벌레이고 감도 여름 동안에 착실히 열매를 맺는다.

가을은 교활한 악마다. 여름 사이 모든 단장을 마치고 코웃음을 치며 웅크리고 있다. 나만치 날카로운 눈을 가진 시인이라면 그 기색을 눈치챈다.

아, 가을_다자이 오사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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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긴밤 - 제21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83
루리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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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마지막 하나 남은 흰바위코뿔소와

코뿔소 품에서 태어난 어린 펭귄.

그땐 기적인 줄 몰랐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것이 다른 우리에게 서로밖에 없다는 게.



노든은 코끼리 고아원에서 코끼리들과 자란 코뿔소다. 지구상의 마지막 하나가 된 흰바위코뿔소 노든은 소중한 가족을 잃고 친구를 잃으면서 매일 악몽을 꾸고 살아남은 것이 운이 좋은 것인 알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인간들을 코뿔소의 뿔을 얻기위해 쉽게 코뿔소들을 사냥하며 코뿔소를 멸종직전에 이르게까지 만든다. 그러다 전쟁으로 노든이 있던 동물원이 파괴되면서 노든은 다시 한 번 세상밖으로 나서게 된다. 치쿠와 버려진 알을 데리고. 치쿠는 죽는 순간까지도 펭귄알을 품었고 노든은 그렇게 태어난 펭귄과 함께 바다를 찾아떠난다.



책을 읽는 내내 자꾸만 눈물이 나는 걸 멈출 수가 없었다. 훌륭한 코뿔소가 되는 일만 남은 노든이 코끼리 고아원을 나와 가족을 만들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 아내를 잃는 그 순간은 터져나오는 울음에 책을 계속 이어갈 수 없었다. 상처입은 채로 동물원에 가게 된 노든이 앙가부를 만나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힘을 얻었지만 또다시 친구를 잃게 된다.



하지만 노든은 살아남은 것이 정말 운이 좋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p.40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고통스럽고 후회와 자책으로 가득찬 노든은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포기할 수가 없어. 왜냐면 그들 덕분에 살아남은 거잖아. 그들의 몫까지 살아야 하는거잖아. 그러니까 안간힘을 써서, 죽을힘을 다해서 살아남아야 해.”



그들의 몫까지 살아야 한다는 노든과 스스로 살고 싶어서 악착같이 살아낸 어린 펭귄. 너무도 다른 둘이 바다를 찾아떠나는 여정이 자꾸만 먹먹해져서 혼났다. 노든을 지키기 위해 할 줄 아는 거라곤 똥뿌리는 것뿐인 펭귄의 모습에도, 나도 그래라고 대답한 노든의 모습에서도, 복수하지 말고 같이 살자고 말하는 펭귄의 말에도 눈물은 시도때도 없이 흘러내렸다.



“그치만 나한테는 노든밖에 없단 말이에요.”

“나도 그래.”

눈을 떨구고 있던 노든이 대답했다. 그때 노든의 대답이 얼마나 기적적이었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것이 다른 우리가 서로밖에 없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그때는 몰랐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기적이었다. 윔보와 치쿠가 버려진 알을 품어 준 것부터, 전쟁 속에서 윔보가 온몸으로 알을 지켜 내 준 것, 치쿠가 노든을 만나 동물원에서 도망 나온 것, 마지막 순간까지 치쿠가 알을 품어 준 것, 그리고 그 마지막 순간에 노든이 있어 주었던 것……. 그 모든 것이 기적이라는 단어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었다. p.94



안전하다 생각했던 동물원에서 나와 홀로 나아가야 할 수많은 긴긴밤이 무척 두려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길로 두렵지만 긴긴밤을 견디며 찾아갈 것이다. 긴긴밤 하늘에 반짝이는 별처럼 빛나는 무언가를 찾아서.

우리를 지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게 하는 것은 내 옆을 지킨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이 나에게 힘을 줄 것이고 나 역시도 그들에게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저 혼자라고 생각하지 않고 함께하는 삶의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고, 그렇게 긴긴밤을 보내며 반짝이는 무언가를 찾게 될 거라고 말이다.



나는 세상에 마지막 하나 남은 흰바위코뿔소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가족을 위해 목숨을 걸고 뛰어나간 노든의 아내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직 죽지 않은 연인을 뒤로하고 알을 데리고 도망쳐 나오던 치쿠의 심정을, 그리고 치쿠와 눈이 마주쳤던 윔보의 마음을, 혼자 탈출하면 무슨 재미가 있겠느냐던 앙가부의 마음을, 코끼리들과 작별을 결심하던 노든의 심정을 이해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p.124



노든의 이야기와 함께 아름다운 그림들이 있었다. 슬프지만 아름다운 이야기였고 앞으로 이어질 긴긴밤을 살아갈 용기를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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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3-06-09 21: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그래도 예전에 독서괭 님 서재에서 감동적이었다는 글을 읽고 한 번 읽어보려고 찜했었던 책이네요.^^
아...병렬독서!!! 한 권 곧 추가될 것 같네요ㅋㅋㅋ
근데 잉크 글자색도 이쁘군요?^^

하리 2023-06-09 21:33   좋아요 1 | URL
오래오래 여운이 있는 책이었어요 추천추천🥰 제가 파랑계열을 좋아해서 잉크가 파랑쪽이 많더라고요 히히 쨍한 파랑 좋아요💙
 
사랑하고도 불행한 (리커버 특별판)
김은비 지음, 무라야마 도시오 옮김 / 디자인이음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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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문고 다른 책들은 작은 판형인데 이 책은 크다. 신기하게 일본어번역이 같이 있다.

그저 행복하고 좋기만 한 사랑이 있을까.
사랑하고도 불행할 수 있고
사랑때문에 아프기도 할테지.

온세상 꽃밭같이 행복하면 좋겠지만
사랑때문에 울고 괴롭고 좌절하고
그래서 아프기도 하다.
언제나 사랑은 어렵다.

■ 내 사랑은 매번 극단적이야.
그래서 시작됐고, 그래서 끝났지.
이런 내 사랑도 괜찮다면
나는 지금 네게 당장 달려갈 거야. p.37

■ 사랑이 무엇인지 잘은 모르지만
그래도 나는 당신을 쓴다. p.46

■ 나의 행복과 불행의 이유가 모두 당신이 될 수능 없겠지만
그래도 우리 이 모든 걸 함께하기로 해.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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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안개 - light and fog
최유수 지음 / 도어스프레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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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안개, 최유수


빛이 기억을 빚는다. 어둠은 감정을 빚는다. 문틈 사이로 눈빛이 닫히고 나면 과거는 멀어진다. 그리움보다 더 멀리. 밤이 지나간 자리에 빈 괄호들이 남겨져 있다. 안개 속에서 빛들의 목소리를 받아 적었다.
#책소개



최유수를 좋아하는 사람 덕분에 최유수를 알게 되었고 나 역시도 최유수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래서 사랑의 몽타주와 무엇인지 무엇이었는지 무엇일 수 있는지를 거쳐 빛과 안개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 사람이 읽고 있던 책은 아무도 없는 바다라는 책이었고 아직 그 책을 읽지는 못했다. 좋아하는 작가가 생기고 그 작가의 책을 하나씩 읽어나가는 일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뭉클해지기도 하고. 애틋하고 뭉클하고 먹먹해지는 그런 문장을 사랑한다. 최유수의 글에게는 그런 문장들이 많은데 빛과 안개에서는 쓰기에 대한 부분도 있어서 또 좋았다. 쓴다는 것은 내겐 어려운 일이고 리뷰를 쓰는 순간에도 고민하고 고민해서 쓰지만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일단 쓰고 본다는 작가의 문장이, 내 글이 제일 후지고 별로인 것처럼 느껴지더라고 일단 쓴다는 그 문장이 무척이나 마음을 다독여주었다. 제대로 된 글을 쓰진 못하지만 용기를 얻어 별볼일 없는 리뷰라도 조금씩 써보고 있다. 천천히 차근차근.

책 속에 나무와 숲 같은 풍경, 비오는 풍경, 꽃이 피는 풍경 등 자연이 자주 나온다. 사람이 두렵고 사람이 어려운 나에게 자연은 위로를 준다. 그래서 지난 2년간 꽃을 보고 나무를 보고 바다를 보며 그렇게 걷고 걸었던 모양이다. 이제는 아픈 마음 말고 기쁜 마음으로 계절의 흐름을 느끼고 싶다. 마음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자꾸만 아프기도 하는데 괜찮아지겠지, 그렇게 조용히 다독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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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세리머니
조우리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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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을 함께 산 두 여자가 지금 당장
부부로 인정받기 위해 필요한 게 뭔지 아세요?”

세상을 바꾸기 위해 필요한 건
이미 다 준비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우리가 보지 못하고 있을 뿐.

온 세상이 답답한 벽장같다던, 선택할 수 있다는 거, 선택하지 않는 것도 선택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권력인지 알려고도 하지 않느냐며 분노하는 은경, 도무지 완벽히 공략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상이라는 던전을 헤매는 동안 지치지 않게 돕고 싶다고, 그럴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애쓰고 간절해지리라는 가경, 저지르지 않은 죄는 죄가 아니라며 자신을 마음을 숨기며 죽은 듯이 살아가던 선미.

누군가에겐 평범한 일상이 누군가에겐 들킬까봐 조마조마한 일상이 되기도 한다. 가경과 선미, 은경, 송미영과 이순영을 통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죄가 되고 해서는 한 될 일이 되어야만 하는지, 사회의 시선을 두려워해야 하고 납득할 수 없음에도 체념해야만 하는지 묻고 있다.

도선미의 입장에서 소설을 읽었다. 성정체성을 드러낼 기회조차 없었던 기독교집안에서 자란 선미는 그 집단에서 벗어나기 위해 공무원이 되어 집에서 멀리 떨어진 하주에 정착하게 되었다. 하주는 작은 도시인데다 공무원인 선미는 입방아에 오를만한 일은 절대 하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두며 조용히 지내고 있었다. 그런 선미가 가경의 계획에 의도치않게 가담(!)하게 되면서 더 이상 마음속에만 담아두지 않고 알을 깨고 나오듯 벽장밖으로 나오게 된다. “그거면 돼요.” 에서 “모자라요.” 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사회가 얼마나 혼란스러워지는지 보고 싶다는 선미의 변화에 어쩐지 뭉클해졌다. 그렇게 그들의 계획은 실행으로 옮겨졌고 101쌍의 동성커플이 혼인신고를 하는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쩐지 우리의 행정체계가, 법이 좀 우습게 느껴졌다고나 할까. 결국 101쌍이 되어서야 알아차리게 되는 상황이, 그저 실수로 덮고 왜 그랬는지조차 조용히 넘어가려는 대처가 말이다.

선미는 원하면서도 포기했다고 속여온 자신의 마음이 부끄러워졌다.(p.97) 자신에 대해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에 안도하던 선미가 가경이 자신을 안다는 사실이 두렵기만 한 일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p.119) 선미와 가경이 함께한 동성 혼인신고 승인은 계속됐고 100쌍을 부부를 만들어냈다. 그들을 보면서 어떤 억울함, 어떤 상실감, 어떤 분노와 고민, 선택과 모험이 나 혼자만 겪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나니 세상이 다르게 받아들여졌다.(p.187)는 선미는 이제 예전의 선미가 아니었다. 그저 사랑한다는 말로는 부족하므로.

선미와 은경이 그 후로 어떻게 되었을지는 모를 일이다. 그러나 작은 축제같던 그 날을 시작으로 모두의 축하와 폭죽이 터지는 진짜 축제가 열리길 기대해본다. 작가님의 사인처럼 비장하게 말고, 신나게 나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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