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세리머니
조우리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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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을 함께 산 두 여자가 지금 당장
부부로 인정받기 위해 필요한 게 뭔지 아세요?”

세상을 바꾸기 위해 필요한 건
이미 다 준비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우리가 보지 못하고 있을 뿐.

온 세상이 답답한 벽장같다던, 선택할 수 있다는 거, 선택하지 않는 것도 선택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권력인지 알려고도 하지 않느냐며 분노하는 은경, 도무지 완벽히 공략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상이라는 던전을 헤매는 동안 지치지 않게 돕고 싶다고, 그럴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애쓰고 간절해지리라는 가경, 저지르지 않은 죄는 죄가 아니라며 자신을 마음을 숨기며 죽은 듯이 살아가던 선미.

누군가에겐 평범한 일상이 누군가에겐 들킬까봐 조마조마한 일상이 되기도 한다. 가경과 선미, 은경, 송미영과 이순영을 통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죄가 되고 해서는 한 될 일이 되어야만 하는지, 사회의 시선을 두려워해야 하고 납득할 수 없음에도 체념해야만 하는지 묻고 있다.

도선미의 입장에서 소설을 읽었다. 성정체성을 드러낼 기회조차 없었던 기독교집안에서 자란 선미는 그 집단에서 벗어나기 위해 공무원이 되어 집에서 멀리 떨어진 하주에 정착하게 되었다. 하주는 작은 도시인데다 공무원인 선미는 입방아에 오를만한 일은 절대 하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두며 조용히 지내고 있었다. 그런 선미가 가경의 계획에 의도치않게 가담(!)하게 되면서 더 이상 마음속에만 담아두지 않고 알을 깨고 나오듯 벽장밖으로 나오게 된다. “그거면 돼요.” 에서 “모자라요.” 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사회가 얼마나 혼란스러워지는지 보고 싶다는 선미의 변화에 어쩐지 뭉클해졌다. 그렇게 그들의 계획은 실행으로 옮겨졌고 101쌍의 동성커플이 혼인신고를 하는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쩐지 우리의 행정체계가, 법이 좀 우습게 느껴졌다고나 할까. 결국 101쌍이 되어서야 알아차리게 되는 상황이, 그저 실수로 덮고 왜 그랬는지조차 조용히 넘어가려는 대처가 말이다.

선미는 원하면서도 포기했다고 속여온 자신의 마음이 부끄러워졌다.(p.97) 자신에 대해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에 안도하던 선미가 가경이 자신을 안다는 사실이 두렵기만 한 일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p.119) 선미와 가경이 함께한 동성 혼인신고 승인은 계속됐고 100쌍을 부부를 만들어냈다. 그들을 보면서 어떤 억울함, 어떤 상실감, 어떤 분노와 고민, 선택과 모험이 나 혼자만 겪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나니 세상이 다르게 받아들여졌다.(p.187)는 선미는 이제 예전의 선미가 아니었다. 그저 사랑한다는 말로는 부족하므로.

선미와 은경이 그 후로 어떻게 되었을지는 모를 일이다. 그러나 작은 축제같던 그 날을 시작으로 모두의 축하와 폭죽이 터지는 진짜 축제가 열리길 기대해본다. 작가님의 사인처럼 비장하게 말고, 신나게 나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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