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마시고 우리가 하는 말, 한유석

 

 

 

 

 

 

 

 

 

 

 

 

하루의 끝, 한번에 와인 한 병을 비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보통 세 번에 나누어 마시는데

좋아지든 나빠지든 마실 때마다 맛의 변화가 좋다.

보관의 문제도 있겠지만

같은 와인이 공기와 만나 다른 표정을 짓는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같은 사람이지만 이십대, 삼십대, 사십대 각각 다른 표정을 짓는다.

 

 

 

 

 

 

 

 

사는 일은 깊이가 필요하지만

맥주 한잔 마실 때 만큼이라도 마음고생은 날려버리라고.

부엉이와 함께 진지함과 가벼움이 함께 날아오르고,

즐거운 비행이었다고 미소로 착륙한다.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발을 딛는 순간,

좋아하는 마음이 도움닫기 발판이 되어 더 멀리,

더 깊이 가게 된다.

스스로 부풀어올라 하늘을 날아 무지개를 보기도 하고,

천길 나락으로 추락하기도 한다.

 

 

 

 

 

 

술자리의 내다버리고 싶은 기억도 많지만,

땅거미가 지는 밤,

그래도 술그늘을 찾는 것은 음식그늘,

사람그늘이 함께 빚어내는 아름다운 순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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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6-01-29 0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직접 쓰신 건가요. 글씨를 잘 쓰시네요.^^
하리님, 좋은밤되세요.^^

하리 2016-01-31 01:26   좋아요 1 | URL
좋은 구절 쓰는 걸 좋아해서 읽고나면 써보고 있어요. 칭찬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도 좋은 밤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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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를 잘 다루는 사람이고 싶다가
나무를 잘 다루는 사람이고 싶다가
한때는 돌을 잘 다루는 이 되고 싶었는데
이젠 다 집어치우고

아주 넓은 등 하나를 가져
달도 착란도 내려놓고 기대봤으면

아주 넓고 얼얼한 등이 있어
가끔은 사원처럼 뒤돌아봐도 되겠다 싶은데

오래 울 양으로 강물 다 흘려보내고
손도 바람에 씻어 말리고

내 넓은 등짝에 얼굴을 묻고
한 삼백년 등이 다 닳도록 얼굴을 묻고

종이를 잊고
나무도 돌도 잊고
아주 넓은 등에 기대
한 시절 사람으로 태어나
한 사람에게 스민 전부를 잊을 수 있으면

 

 

아주 넓은 등이 있어, 이병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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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28 22: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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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청소부 풀빛 그림 아이 33
모니카 페트 지음, 김경연 옮김, 안토니 보라틴스키 그림 / 풀빛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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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표지판을 닦는 청소부 아저씨는 행복했어. 자기 일을 사랑했고 깨끗하게 표지판을 닦으며 칭찬도 받았지.

아저씨는 자기가 닦는 표지판과 그 거리를 사랑했으니까 인생에서 바꾸고 싶은 것이 있냐고 물어도 '없다'라고 대답한다고 했어.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말이야.

지나가던 아이와 엄마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닦고 있는 표지판에 보게 된거지.

바흐 거리, 베토벤 거리, 하이든 거리. 자신이 닦는 표지판이 있는 거리의 음악가, 작가들. 아이가 몰랐던 것처럼 아저씨도 그들을 몰랐어.

그 때 깨달았지. 아, 이 유명한 사람들의 이름을 바로 코 앞에 두고도 그 사람들에게 대해 아는 것이 없구나, 라고.

그 후부터 아저씨는 음악을 찾아 듣게 되었어. 음악회에 가고, 오페라에 갔지.

그리고 일하면서 곡을 외워서 휘파람을 부르곤 했단다.

그리고 작가들이 궁금해졌고 도서관에 드나들기 시작했어.

처음엔 잘 이해가 안 되고 모르는 것도 있었지만 매일 매일 책을 읽고 음악을 들었어.

그러더니 표지판을 닦으며 음악에 대해, 책에 대해 중얼거리며 스스로에게 강연을 하기 시작한거야.

한 명, 두 명 아저씨의 강연을 듣느라 사다리 아래 멈춰져 있는 사람이 들어났어.

아저씨는 점차 유명해졌고 대학에서까지 연락이 왔어. 그러나 아저씨는 거절했지.

자신은 청소부일뿐이라며,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강연을 하는 것이니 교수가 되고 싶지 않다고 했어.

아저씨는 여전히 표지판을 닦는 청소부로 남아있단다.

간략하게 정리했기도 하지만 글이 많지 않은 그림동화책이다. 나는 그림동화를 좋아한다.

얼굴 빨개지는 아이, 자전거를 못 타는 아이, 생각을 모으는 사람 등.

행복한 청소부는 직업에 대한 가치와 편견, 행복의 기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초등학생들이 읽어야 할 동화지만 동시에 어른들에게 필요한 동화이기도 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해 늘 고민하며 살아오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청소부 아저씨가 참 사랑스럽다.

현실 속에 자신의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경제적인 여건과 사회적 지위, 명예가 섞인 복잡한 의미의 직업 안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대한 개념은 빼버리지 않을까 싶다.

동화에서 '청소부가 시와 음악을 안다고?' 라며 놀라는 장면이 있다.

그게 우리 사회의 모습인 것 같아 조금 씁쓸하기도 하다.

그러나 직업으로 인한 시선과 판단을 나도 하고 있기에 부끄럽기도 하다.

동화를 읽고난 아이가 청소부가 된다고 하면 부모가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동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청소부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겠지.

철부지같은 소리를 한다고 생각할수도 있지만 나는 그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

돈도 많이 벌고 명예도 얻고 다른 이들이 부러워하는 일을 한다는 것도 물론 좋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자기의 마음이나 의지가 배제된 일이라면 그건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청소부 아저씨처럼 자신의 소신을 지키며 살아가고 싶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이 삶이 좋다.

하리

말은 글로 쓰인 음악이구나. 아니면 음악이 그냥 말로 표현되지 않은 소리의 울림이거나.

나는 하루종일 표지판을 닦는 청소부입니다. 강연을 하는 건 오로지 내 즐거움을 위해서랍니다. 나는 교수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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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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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 나서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한참 가슴이 두근거렸다.
안타까움과 먹먹함, 행복함의 복합적인 감정이 가슴 속에 소용돌이치며 한 동안 여운을 주었던 소설이었다.
프롤로그에서 주인공 아름이가 말한다. 가장 어린 부모와 가장 늙은 자식의 이야기라고.
열일곱 살에 결혼한 부모가 낳은 아이인 아름이는 조로 증이라는 희귀병에 걸렸기 때문에 가장 늙은 자식이 되어 버린 것이다.

나는 이 소설을 통해 조로 증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다.
조로 증이란 나이에 비해 노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병으로 아름이는 17살에 80세의 노인의 모습이 되어버렸다.
젊음의 시절을 채 경험해보기도 전에 늙어버린 아이.
부모는 아름이에게서 여든 살이 됐을 때의 자신을 보고, 아름이는 부모에게서 서른넷이 됐을 때의 자신을 본다.
오지 않은 미래와 겪지 못한 과거를 마주본다니 서글픈 장면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름이는 철없이 뛰어 놀고 공부하기 싫어하는 보통의 십대와 달리 성숙했고 슬프리만치 무덤덤하게 살아간다.
아름이에게 있어 삶을 배울 수 있는 것은 책이었다. 누구보다 많은 책을 읽으며 살아보지 못한 삶을 배우게 된다.
기한이 정해진 삶을 사는 아름이는 배움의 의미가 없어 보일 수 있지만 삶을 원망하기보다 삶 속에서 그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책 속에서 배운 삶의 지혜는 아름이를 즐겁게 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준다.

그렇게 자문자답과 책을 통해 삶을 살아가는 아름이에게 조로증이라는 병은 눈을 멀게 하고 더욱 늙어가게 했고
병원비와 약값을 충당할 수 없었던 그 때 엄마의 아는 사람이 TV출연을 요청하게 된다.
아름이의 사정을 알리고 사람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이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을 두고
부모는 아름이가 상처입을 것이 걱정돼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아름이는 부모를 위해 TV에 출연하기로 결정하게 된다.
부모를 배려하고 슬프거나 힘든 척하지 않고 오히려 명랑한 척 하는 아름이의 그 모습이 참 안쓰러웠다.
결국 촬영이 시작되고 아름이가 작가나 피디와 인터뷰를 통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그 중에서도 아이들이 부러웠던 적이 없었냐는 질문을 했을 때가 가장 가슴에 와 닿았다.
아름이가 오디션을 보는 아이들을 보며 부럽다고 말하자 작가는 꿈을 이루는 아이들의 모습이 부러웠냐고 묻는다.
그런데 아름이는 오디션에 떨어져서 우는 아이들을 보며 부럽다고 했다.
앞으로도 실패와 실망과 거절을 당하는 경험을 하면 살아가는 그 아이들이 부럽다고,
자신은 실패해볼 기회조차 없었으니 실패해보고 싶었다고 대답한다.
중, 고등학교 시절뿐만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동안 누구나 다 실패를 두려워하고 실패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런데 아름이는 실패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그 기회와 시간이 아름이에게 없기 때문인 것이다.

우리에게 아름이에게 없는 수많은 시간과 기회가 있음에도 우리는 왜 두려워하는 것일까.
무엇이든 도전해보고 실패해보며 삶을 살아갔을 때 더욱 가치있는 삶인데 말이다.
이왕이면 실패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더 편할 것이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실패하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다.
실패로 인해 무엇을 배우느냐, 실패를 딛고 어떻게 나아가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아름이는 알고 있었겠지.

그렇게 인터뷰를 하며 촬영을 하고 방송이 나가자 아름이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생겼고 그 속에서 설레는 사랑이 온다.
TV를 본 서하라는 여자아이와 이메일친구가 되었는데 메말랐던 아름이의 삶에 여름과도 같은 싱그러운 두근거림이 찾아온 것이다.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자신의 마음을 보여주고 두근거리는 첫사랑의 감정에 기뻐하는 아름이의 모습은 여느 소년과 다를바 없었다.
이미 노인의 몸을 하고 있는 아름이지만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은 삶의 끝을 향해가고 있던 아름이에게 소중한 인연이었을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서하라는 아이가 사실은 삼십대의 아저씨였고 아름이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했다는 것이었다.
그 사실이 굉장히 괘씸하고 화가 났지만 어쩌면 아름이에게 평생 느낄 수 없었을 설레는 첫사랑의 두근거림과 행복감을 주었기에
서하를 자신의 기억 속에 담아두고 자신만의 서하로 남겨두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서하와 연락이 끊기고 서하가 누구인지 알게 된 후로 아름이의 상태는 악화되어 갔다.
아름이는 ‘두근두근 그 여름’이란 단편을 마지막 선물로 준비한다.
‘두근두근 그 여름’은 아름이가 부모의 마음을 알고 싶어서 쓰게 된 부모의 이야기이다.
그 책을 쓰면서 아름이는 부모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게 된다.

아버지는 말한다. 네가 나의 슬픔이라 기쁘다고.
아름이가 부모에게 슬픔이 되었어도 그것을 기쁘다고 말하는 부모의 사랑을 책 한 권에 담아놓고 아름이는 떠난다.

과연 나는 삶 속에서 그 의미를 찾는데 얼마만큼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있을까.
서하의 질문이 생각난다.
서하가 아름이에게 물었다.
너는 언제 살고 싶냐고.
아름이가 대답했다.
나를 둘러싼 주변의 모든 것이 나를 두근거리게 한다고.
나에게 있어 하루는 자연스럽게 지나가는 하루일지 몰라도
아름이에게 그 하루는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소중한 하루일 것이다.
그렇기에 주변의 모든 것을 두근거리며 바라보고 받아들였으리라.
한번도 젊은 적은 없었던, 젊은 날을 살고 싶었을 아름이의 삶은 내가 보낸 평범한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한다.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갈망하던 내일이라는 명언이 있다.
아름이는 겪지 못한 젊음과 미래를 지금 내가 살아가는 있는 것이다.
헛되이 보내는 하루가 아니라 하루의 삶을 감사히 여기며 살고 싶다. 그리고 배우는 자세로 삶을 바라보고 싶다.
그렇게 ‘두근두근 내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미안해하지마.

사람이 누군가를 위해 슬퍼할 수 있다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니까.

네가 나의 슬픔이라 기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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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6-01-26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근두근!!
저도 그때 그러면서 읽었더랬죠^^
좋아하는 작가에요!

하리 2016-01-28 01:38   좋아요 0 | URL
두근거리게 하는 책이네요ㅎ 저도 이 책 읽고 좋아하게 되었어요^^

서니데이 2016-01-28 0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리님, 좋은밤되세요.^^

하리 2016-01-28 10:3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도 오늘 하루 행복하게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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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너에게 듣고 싶은 말
임수진 지음 / 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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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방학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계피라는 가수는 더더욱 모른다.

 

가을방학의 계피의 에세이. 

 

'언젠가 너에게 듣고 싶은 말'

 

낯설지만 궁금해진다.
 
이 책은 달 출판사 서포터즈를 할 때 모니터링을 했던 책이기도 하다.

가제본도 아닌 A4 용지로 된 원고로 모니터링을 했었는데

아무래도 뮤지션의 에세이가 범람하고 있다보니 그만큼 기대치가 높았던 게 사실이다.

기대가 컸던건지 활자로만 봐서인지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계피란 가수에 대해서도 잘 모르면서.

 

9월에 출간된 책인데 그동안 읽지 못하고 이제야 다 읽었다.

따뜻해보이는 커버와 두근거리는 제목.

 

그럼에도 나는 이미 별로일 것이다란 선입견의 눈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처음엔 좀 너그러운 마음으로 읽지 못했었다.

하지만 읽어가면서 뾰족한 마음으로 비난의 화살을 준비한 상태였던 내가 좀 부끄러워졌다.

마음이 달리하고 보니 책도 달리 보이더라. 이런 간사한 마음같으니..

읽으면서 자꾸만 흠칫 놀란다. 내 마음에 들어와보기라도 한 것처럼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 

 

포스트잇과 밑줄은 자꾸 늘어간다.

 
평범하고 솔직한 이야기들이다.(포장되지 않은듯한 그 진솔함이 좋더라.) 

가을방학의 가사가 좋았지만 그건 계피가 아닌 바비의 가사.

그렇다면 계피의 글은 어떨까, 란 생각을 계속 했던 것 같다.

그녀의 글은 생각보다 소녀감성의 느낌이 아니었다. 성숙하고 생각이 많고 현실적이다.

목소리는 맑고 고운데 글은 어두운 면도, 귀여운 면도, 따뜻한 면도, 허술한 면도 있다.

 

다양한 모습의 계피를 만날 수 있었다.

그녀의 글에선 사고방식이랄까, 삶을 바라보는 태도에서 자유로운 빛이 느껴진다.

(아무래도 아버지나 시댁, 남편, 고양이 같이 나와 관계없는 이야기들은 공감가지 않기도 했지만)

교훈 매니아는 그녀인데 내가 교훈을 얻어가는 것만 같다.

 

아는 언니에게서 인생상담을 받은 것만 같기도 하고.

 

의지 없는 인생의 아름다움.

어영부영 가는 인생의 사랑스러움.

의지로는 사랑할 수 없지. 의지로는 사랑을 지속할 수도 없다. 적어도 나는 할 수 없다. p179

 

여영부영 가는 인생, 너무 마음에 든다. 든든해진다.

 

위로하려고 한 건 아니었겠지만 위로받은 기분이다.

함부로 평가했던 게 미안해질 지경이다.

(이야기의 흐름이 너무 휙 바뀐다던가, `~여` 이런 부분은 역시 거슬리긴 한다.)

역시 책은 끝까지 읽고봐야 한다. 마음 속에 울림을 주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제 그만 노력했으면 좋겠다. 수고했다고 누가 등이라도 두드려주면 좋겠다. p.78

 

 

어린 시절을 낙원으로 묘사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반박하고 싶은 것은 아니고 그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막막함을 느꼈다.

인생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바람의 기분. 물기 하나 없는 거대한 모래 산을 마주하는 기분. p.89

 

서툴렀던 기억이라고 해서 소중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강렬한 건 또 그것대로 그때뿐이었으까.

더이상 갈 데가 없어서 사무치면서 놓아버리고, 후에는 낱낱이 헤집어서 땅에 패대기쳐버렸다가,

결국엔 그 나름대로의 사랑스러움이 있는 시간이었다는 걸 인정하는 게 짝사랑의 수순이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한테 좋은 언니가 되어서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주고 싶다. p.104

 

실은 상대를 깊이 알고 모르고는 좋아한다는 감정에 큰 영향을 미치지도 않는다.

상대를 잘 모르고서 좋아해도 된다. 오래 같이 지낸다고 해서 꼭 잘 알게 되는 건 아니니까.

감정이란 순간적으로 햇빛에 빛나는 유리조각 같은 것이다.

감정의 뿌리가 깊다고 절실한 것은 아니며 얕다고 경박한 것도 아니다.

다양하고 다양한 사랑의 결들. 그 모든 색색의 순간들을 그저 나누면 된다고 생각한다. p.103

 

 

미친 건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휘몰아치는 시간이 지나고 다시 깨어난 순간,

내 빈 손바닥을 망연자실하게 들여다보면서 알았다.

미친 건 그냥 미친 거다. p.110

 

혼자 서 있을 수 있으므로 드디어 누군가에게 기댈 어깨를 내줄 수 있다.

상대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다. 안아주고, 보듬어주고, 이해해준다. p.114

 

 

엄마, 내 마음속에 뭐가 들어 있는지 잘 모르겠어.

다들 그럴 때가 있다고 생각하려 애쓰는 내가 치사해. 다들 이러지는 않는 것 같아. p.126

 

 

나는 전화라는 건 사실 은근히 폭력적인 물건이라고 생각한다.

언제든 네가 노크하면 내가 늘 문 열어줘야 돼? 아니 사랑 들먹이지 말고. p.136

 

우리는 사랑으로 용인해달라고 하는 게 정말 너무 많다.

전화해줘. 관심 가져줘. 이해해줘. 내 말대로 해줘. 내가 말하는 것과 같은 사람이 되어줘.

내 옆에만 있어줘. 내 취향이랑 비슷한 취향을 가져줘. 내 생각이랑 비슷한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어.

이런 걸 전혀 요구하지 않는 사람은 마더 테레사 정도겠지만,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이 요구들이 정도를 넘어서는 경우는 얼마나 흔한가.

자기 복제 로봇이랑 사귀면 딱 알맞을 것 같다. p.137

 



비웃는 일은 언제나 쉽다. 위로하고, 다시 힘내어 살아가는 일은 언제나 어렵고. p.164

 



나는 오히려 무언가에 대해 강한 의견을 토로하고 나면 좀 염려가 된다.

다른 이가 그러는 걸 봐도 마찬가지다. 분명히 그 의견이 살다보면 변할 수도 있을 텐데.

살다보면 정도가 아니고, 새로운 정보와 경험이 있을 경우 당장 내일이라도 변할 수 있는데.

무엇을 파고 파고 들어가면 입장이 바뀌는 일은 정말 흔하지 않던가.

입장이 바뀌지는 않더라도 이해해버리는 마음이 나지 않던가. 슬쩍 풀어져버리지 않던가. p.177

 

 

내 감정은 믿을 수 없다. 내 생각도 믿을 수 없다. 감정이 나를 속인다.

믿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이 감정에 사로잡힌 순간이 지나고 나면 나는 분명히 다른 감정을 느낀다는 것이다. p.177

 

 

의지 없는 인생의 아름다움.

어영부영 가는 인생의 사랑스러움.

의지로는 사랑할 수 없지. 의지로는 사랑을 지속할 수도 없다. 적어도 나는 할 수 없다. p179

 

 

다른 사람 충고 듣지 마. 다 자기 맥락에서의 자기 말이야.

충고 안 들어서 망할 거면 망해버려.

네 방식대로 망해버려. 망해서 빨리 알아차리게.

다 늦어서 망하면 어떻게 다시 돌아오려고 그래.

그러니까 걱정 말고 확, 알겠지 확, 피어버리자. 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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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25 07: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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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25 23: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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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26 00: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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